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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
말라기 3:1-6
말라기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입니다.
말라기하면 보통 십일조를 언급한 책으로 알고 있고 또한 말라기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말라기는 사람이름이 아닙니다.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뜻이며 그런 점에서 말라기라는 사람이 쓴 책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의 사자’라는 익명으로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쓸 때는 바벨론에서 귀국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고 난 이후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70년 만에 돌아온 백성들은 성전을 건축하면서 큰 기쁨과 기대를 가졌습니다.
성전이 건축되고 하나님의 제사가 회복되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축복하실 것이란 기대였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다시 한 번 찬란하고 축복받은 생활을 할 것이라 기대하였고,
예레미야가 예언한 대로 다윗에게서 한 의로운 가지가 일어나 왕이 되어 공평과 정의를 행하고 유다는 구원을, 이스라엘은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성전이 건축되고 성전예배가 회복되었지만 삶은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들의 거처는 예루살렘과 그 주위의 조그만 땅에 국한되었습니다.
그 마저도 오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은 황폐하였고 곡식을 내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백성들의 생활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태가 여러 해 동안 계속되고 이전 선지자들이 약속한 일들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망하고 낙담하였으며 냉소주의와 불신앙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3:14)
그러면서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2:17)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까?’(1:2)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신앙을 내뱉었습니다.
이러한 원망과 불신앙은 형식적이고 적당한 신앙생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거의 하지 않았고, 제물을 드릴 때에도 더러운 떡을 바쳤고, 흠 없는 제물이 아니라 훔친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익명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데 이것이 바로 말라기서입니다.
이런 백성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자를 보낸 후에 여호와가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이 먼저 와서 메시야 맞을 준비를 시킨 것으로 이 말씀이 너희에게 응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10)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자를 세례요한으로 보면 그 다음에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예언의 말씀이었고 이 예언은 400여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이 땅에 오시고 우리가운데 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머나먼 곳에서 이 땅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천군천사들과 행복하게 지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친히 지으신 이 땅에 관심을 가지시고 이 땅을 구원하시며 이 땅이 행복한 곳이 되도록 힘쓰시는 그래서 필요하시면 언제든 우리에게 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이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만 대림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절기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미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 땅에 초림 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제인가 알 수는 없지만 두 번째로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실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을 준비하여 잘 맞이한다는 것은 정말 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못하고 뜻밖에 맞이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주님, 앞으로 오실 주님은 왜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까?
주님이 임하시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이유를 잘 알아서 거기에 합당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1. 먼저, 주님은 이 땅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십니다.
5절 말씀을 보면,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임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고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야만 먹을 수 있도록 하셨고 해산하는 고통을 감내하도록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범죄 하였을 때 하나님은 천사들과 함께 직접 그 성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관영하였음을 보시고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어서 그 성을 심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재림의 주님은 심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모든 사람을 모아서 영벌에 처할 자와 영생에 처할 자를 구분하시고 심판하심으로 역사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잘못되고 거짓된 모습을 다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임재 하셔서 죄인 된 자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에 말라기 선지자가 지적하고 있는 백성들의 잘못은 크게 3가지입니다.
①첫째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에 대한 죄입니다.
그들은 눈먼 희생제물을 드렸고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렸습니다.
이런 제물을 드리면서 이 일을 아주 번거로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아주 번거롭고 귀찮은 일로 여기고 제일 볼품없는 것으로 드리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②둘째는, 제사장들의 죄입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잘못된 제물을 드리면 그것을 지적하고 올바르게 가르쳐야할 텐데 제사장들은 그것을 묵인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사장 스스로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세 번째는,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잘못이었습니다.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것은 율법에서 금하였던 일인데 백성들은 이러한 죄를 범하였고,
이방인과 결혼하기 위하여 살고 있는 부인과 이혼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런 3가지 대표적인 죄 가운데 말라기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고 있는 죄가 성전제사에 대한 죄입니다.
선지자는 가장 볼품없는 제물을 드리는 백성들의 모습을 지적하면서 이런 제물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기뻐 받겠느냐? 고 반문합니다.(1:8)
인간총독에게도 드릴 수 없는 형편없는 제물을 만군의 하나님께 드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까지 하고 계십니다.
얼마나 화가 나고 안타까웠으면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것을 가장 긴급하고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하셨기에 갑자기 성전에 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타락하고 신앙이 타락하고 성도가 타락하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세상이 타락할 때 세상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내가 거기에서 의인 10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그 성을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의인 10명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말라기 시대는 종교가 타락되었고 성전예배가 타락되었기에 자연히 사회가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잘못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주께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하시기 위해 임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분명히 죄에 대한 대가를 치루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심판이 어떤 형태로 어떤 방법으로 나타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심판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2. 두 번째로, 주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임하십니다.
2절을 보면,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련소에서 연단하여 깨끗한 순금으로 만들고 잿물을 사용하여 빨래를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죄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3절에서는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했습니다.
주님께서 임하시는 목적은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말하자면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임하십니다.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는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그대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삯을 치르신 주님을 믿음으로 인간은 죄에서 깨끗해지고 사망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깨끗해지는 역사를 받은 사람들을 성경은 수없이 많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하늘의 영광을 보여주실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고백한 이사야에게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깨끗함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화가 아니라 죄를 사함 받고 생명과 구원을 받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삭개오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이기적이고 물질중심적인 삶을 회개하고 깨끗한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은 기적을 통하여 주님의 본연의 모습을 보았을 때 엎드려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소서.’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얼룩진 이 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구원을 힘입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이번 성탄절에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영접하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가족들과 이웃들이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함을 받아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세 번째로 주님은 언약의 사자로 임하십니다.
1절 하 반절에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언약의 사자라는 말은 백성들과 언약을 맺고 언약을 지키는 자에게 축복하시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의 사자를 기다렸습니다.
그 언약의 사자가 바로 그로부터 400여년 후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언약은 제자들과 성만찬을 잡수시면서 말씀하시고 맺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주님께서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고
잔을 주시면서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새 언약은 예수님의 몸과 피로 세우신 언약을 말합니다.
곧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몸을 찢기시는 그 십자가의 사랑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말합니다.
이 약속대로 하나님은 인간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3:16-17)
이 언약은 사랑의 언약이며 은혜의 언약이며 믿음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붙잡는 자는 어떤 죄인이든지 용서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언약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새 언약의 축복을 받으신 성도 여러분, 새 언약의 사자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
새 언약을 갖고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맞이하여 새 언약의 복된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심판의 주로 임하실 재림의 주님을 잘 맞이할 수 있고 그 심판의 날에 영생의 축복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2022.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