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40]'삼시충三尸蟲'이란 벌레를 아시나요?
한문학자 정민 교수의 칼럼집 <체수유병집滯穗遺秉集-글밭의 이삭 줍기>(김영사 2019년 펴냄, 264쪽)를 정신없어 읽다가 너무 재밌어 칼럼 한 편을 통째로 적어놓았다. 아홉 살 손자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재밌다며 엄청 심각하게 듣는다.
“우리 몸에 삼시충三尸蟲이라는 벌레가 살고 있단다. 이 녀석은 우리 몸 속에 숨어 주인이 하는 행동 중 잘못된 것을 모두 노트에 적어놓는대. 그래 갖고 두 달에 한번씩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연월일시, 모두 다 간지干支가 있단다) 밤이 되면 주인이 잠든 틈에 하늘나라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그동안의 잘못을 모두 일러바친대. 그러니까 고자질쟁이야. 그러면 옥황상제가 우리가 지은 죄만큼 우리 생명을 짧게 한다는 거야. 어때? 잘못을 하면 안되겠지?” “말도 안돼. 그런 벌레가 어디에 숨어서 산대?” “그건 나도 몰라. 근데 3마리가 있다는 말도 있어. 그런데, 주인이 그날(경신일)에 자지 않으면 몸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대. 그래서 옛날에 임금님도 겁이 나니까 신하들을 불러 밤새워 파티를 벌였대. 자지 않아야 삼시충이 못빠져나가 고자질을 못하겠지. 연산군이라는 폭군이 있었거든. 그 왕은 잘못한 게 많으니까, 경신일만 되면 신하들과 밤새 술을 마셨대. 경신일을 지킨다고 해 '수경신守庚申'이라고했대” “정말로? 그럼 나도 그날 안자야겠네. 할아버지, 경신일이 언제인가 알려줘” “하하. 너도 잘못한 것이 많은 모양이지. 글고 오래 살고 싶어?” “응. 할머니랑 할아버지도 오래 안아프고 살면 좋겠어. 왕할아버지도 백살 넘으면 좋겠고” “아이구, 이쁜 내 새끼” 이야기 한 토막에 죄없는 손주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는 여름밤이었다.
아무튼, 도교의 민속신앙이라는 삼시충 이야기를 앞에서 말한 정민 교수의 칼럼집에서 읽었는데, 그 책에는 그보다 훨씬 영양가 있는 고전칼럼 50편이 알알이 박혀 있었다. 우리 초등학교때 일화도 생각났다. 추수가 끝나면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들판으로 몰아 이삭줍기에 나섰다. 벼이삭 온전히 하나 주우면 거기에 벼 낱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고사리손들이 주운 이삭을 합하면 몇 푸대가 되기도 했다. 봄에는 보리 밟기 ‘사역’도 했던 시절이었다.
고전학자가 수많은 고전을 읽으며 떨어진 이삭 줍듯, 모은 글들. 역시 칼럼은 고전칼럼이 최고이다. 과거를 보면 현재를 알게 되고, 미래가 보이기 때문인가. 정민 교수의 저력(글빨, 말빨, 무불통지한 듯한 한문세계의 내공)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고향집 서가에 꽂혀 있는 정교수의 저서만 10여권은 족히 될 것이다(미쳐야 미친다. 책읽는 소리, 한시미학산책, 석별, 일침, 죽비소리 등). 최근에는 <돌 위에 새긴 생각>이라는 책으로 나에게 전각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하지 않았던가.
몇 년 전 어느 졸문에서 “우리 고전이야말로 현대화할 수 있는 컨텐츠의 무궁무진한 보물창고”라고 쓴 적이 있듯,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우리 선현들의 문집을 비롯한 고전들이 100% 쉽게 국역이 되어 우리가 읽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몇 배 더 왕성하게, 크리에이티브한 컨텐츠로 글로벌한 K-Culture의 시대를 활짝 꽃피우게 될 것이 자명한 것을.
정교수가 풀어내는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선생의 숱한 저작물의 일단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큰 학자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무릇 기하였던가. 과학의 세기인 오늘날이라고 그들이 산 세상과 크게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고전을 ‘내일을 여는 옛길’이라고 한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정 교수의 섬광閃光같은 사유와 내면 깊은 성찰이 빚어낸 고전칼럼 50편은 우리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글투성이인 것을. 존성대명尊姓大名이라고 말하자. 그분을 어제 처음으로 만나 보신각 근처 노포老鋪(토속정)에서 민어세트 메뉴(회, 부레, 전, 탕)로 3인이 3시간이나 어울리는 시간을 가진 것은 행운이자 대복이었다. 대체 그 이름을 안 지 몇 년만인가? 10년도 훨씬 더 전이다. 더구나 저자 사인의 <고전, 발견의 기쁨>(2022년 태학사 발행, 410쪽, 22000원) 선물까지라니. 우연처럼 다가와 필연처럼 빠져든 고전의 기록, 이 책은 또 얼마나 나에게 큰 기쁨을 안길지, 가슴까지 설렜다.
큰 학자임에도 그는 시종일관 겸손했다. 졸저를 한 권 드리니 “꼭 잘 읽어보겠다”고 다짐하는 그와 책에 대해, 고전에 대해 얘기 몇 마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전각예술인 친구 덕분이었다. 전각하는 친구와 격의없이 어울린 세월이 30년이 넘었다한다. 서슴없이 그를 '천재'라고 치켜세우는 정교수도 대만 교환교수로 갔을 때 전각을 제대로 배웠다고 했다. 하여 <학산당인보>에 대한 책 <돌 위에 새긴 생각>도 펴냈을 것이다. 정 교수가 좋았던 것은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는 것같아서이다. 그가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려드린 재야의 고수 학자와 문학인 그리고 제자(나와도 친분이 있는 박수밀 교수 등)은 또 몇몇이던가. 목포의 아동문학가 김일로 선생을 세상에 알린 것도 사실상 정교수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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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갈수록 그의 학문세계의 폭은 더욱 더 넓혀지고 깊어질 것이지만, 정년퇴직할 날이 2년이 채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그가 가진 학문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더욱 더 빛을 발해 우리 국문학과 한문학계에 기여하고 기념비적인 더 좋은 작품을 줄이어 저술할 것임은 물어보나마나. 돌아오는 길, 정교수의 건필과 건강과 건승을 기원하는 마음 한가득. 그리고 새로운 책 <고전, 발견의 기쁨>이라는 양서 읽을 생각에 더운 여름밤에도 발걸음이 바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