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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이해하기 위해서
1. 낭만주의 (Romanticism)
낭만주의라는 말에서 극도의 반감을 가진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음악사의 발전과정에서 낭만주의라는 말은 어떤 거대한 흐름을 그저 뭉뚱그려 놓기만 한 듯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문예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낭만이다. 마음속에 낭만이 없다면 감정의 분출을 음악으로 형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분출될 적에 그 당시의 양식을 따랐을 뿐이다.
베토벤의 장엄 미사가 그 스스로의 독실한 신앙적 고백이라고 믿어지지는 않는다. 실질적인 카톨릭 예배에서 사용되기는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기교적으로 성악진이나 관현악진에서 고도의 기량을 요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거대한 길이의 규모, 그리고 창작 당시의 베토벤은 교향곡에 합창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작곡 기법을 사용하던 시기였다. 거대한 규모와 장대한 길이의 작품, 여기에 부합되는 양식은 미사 뿐이었고 그리하여 말기의 거대 성악곡으로 미사를 택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감정의 분출은 그 당시의 지배적인 형식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형식이 지켜지지 않으면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거나 컬트가 된다), 이 형식을 결정지은 것이 당시의 예술사조가 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예술가로 하여금 끊임없는 창작의 고통 속에 빠져들게 했을까.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하지만(유희, 쾌락, 본능, 이성의 유혹 등등), 그 모든 것들을 포괄할 수 있는 것이 낭만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떤 한가지 현상에서 사람마다 보이는 반응이 현저하게 다름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경우 어떤 사람은 술 한 잔 마시고 잊어버리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냥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두고두고 잊지 못하며 평생을 간다. 또 어떤 사람은 시를 쓰거나 음악을 작곡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상황에 반응하여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그 원동력을 나는 낭만이라고 본다. 주변의 일들을 보다 섬세하고 자세하게 관찰하여 보다 더 강하게 반응하는 그 기저에는 낭만이 있다.
이렇듯 낭만은 예술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사항이지 절대 어떤 사조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낭만이라는 시기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좋을까.
흔히들 음악사에서 낭만주의를 19세기로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태동되어졌다고 보는 낭만주의는 전대 고전파의 반발로 등장한 것이다. 전대의 고전파가 지니는 전체주의적인 양상은 형식의 획일화를 가져왔고 그 획일화는 상상력을 제한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발은 자연 개인주의와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개인주의는 개개인의 주관을 수용하는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형식의 파괴는 각기 다른 문예 양식으로 거듭나게 된다.
교향악에서는 4개의 악장이라는 룰이 베토벤 이후로 빈번하게 깨어지게 되었고, 느린 악장의 위치가 바뀌는가 하면, 두 개의 악장이 연결되기도 하고 합창이 등장하기도 한다. 교향시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작곡가 민족의 고유한 멜로디가 작곡가의 여러 작품에 쓰이기도 하고, 길이 상으로는 장대하게 길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양식을 결국 '아름다움을 위해서라면 범하지 못한 규칙은 없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결국 다조, 무조의 음악으로 나아가게 된다. 19세기 낭만파의 종말은 결국 스스로의 안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 때문에 낭만주의라는 시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종류의 음악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브람스나 멘델스존같은 신고전양식으로 나간 작곡가도 있으며, 바그너처럼 총체예술에 다가간 음악가도 있었으며, 리스트와 파가니니처럼 초절기교를 추구한 작곡가도 있었고, 드보르작이나 차이코프스키, 멀리는 시벨리우스까지 국민악파로 나아간 음악가도 있었다.
결국 우리가 부르는 낭만주의는 19세기, 혁명이 끝난 후 발현된 개인주의와 맞물려서 돌아간 혼돈, 혹은 자유로운 상태의 음악들을 포괄하는 용어일 뿐이다. 전대의 엄격함에 대응하여 생성된 바로크, 바로크의 자유로움에 대응하여 태어난 고전주의, 고전주의의 종말과 더불어서 태어난 개인주의, 혹은 자유주의는 음악사에서 낭만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그 극단의 지점까지 나아간 음악가가 바로 베를리오즈이고 그의 대표작은 환상교향곡이다.
2. 환상교향곡의 환상과 혁명에 대해서
- 환상교향곡은 1830년도에 초연 되었고 성공리에 마쳤다. 이는 베토벤이 서거한지 3년 후의 일이었고,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이 초연 된지 7년 후의 일이다. 고작 7년 사이에 세상이 변해버렸는가.
2-1. 베를리오즈는 프랑스 출신이었다.
전제왕정에 대한 저항정신이 돋보였던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프랑스 특유의 저항정신은 30년대의 7월 혁명으로 이어졌고 환상교향곡은 그 해 30년도에 초연되었다. 전제주의에 대한 저항정신이 만연한 시대 상황에서 고전주의에 입각한 작품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반복하면, 환상교향곡은 광기의 시대에 태어난 극단적인 문예 작품이다. 30년대의 프랑스는 혁명의 냄새가 짙게 풍기고 있었다. 절대왕정으로의 복귀를 꾀한 사를 10세는 산업자본주의로 태어난 부르주아 세력과 대립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군대와 학생, 시민군은 또 다시 대립 될 수밖에 없었는데, 전쟁은 시민군의 승리로 돌아갔고 왕은 새로운 헌법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1830년도의 7월 혁명이다. 환상 교향곡의 혁명성은 당시 프랑스의 혁명의 피를 수혈 받고 있었던 것이다.
2-2. 베를리오즈는 여배우 헤리엇 스미드슨을 사랑하였다.
그가 24세 때에 영국의 어느 극단이 파리에서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상연한 일이 있었다. 이때에 여주인공으로 나타난 스미드손(Smithson)이라는 여인의 연기에 도취해 버린 그는 즉시로 그녀를 일방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다음 해에 그는 그녀의 주목을 끌기 위하여 작곡 발표회를 가졌으나 그녀는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 후 27세 때에 그녀에 대한 추문(醜聞)을 듣고 반발적으로 모크(Moke)양과 약혼을 해 버린 그가 이듬해에 로마로 혼자서 유학의 길을 떠난 사이에 그녀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되어 흥분한 나머지 그들을 죽여 원한을 풀려고 파리로 돌아오던 중 차차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되돌아갔다가 다음 해에 로마 유학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작곡 발표회를 열어 크게 성공을 거둔 끝에 20일 후에 이를 재연(再演)했는데 이때에 비로소 스미드손 양이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고 또한 서로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드디어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에 파리의 영국 대사관에서 일체의 반대를 물리치고 그렇게도 그리던 스미드손 양과 결혼을 했으니 그때의 그녀의 나이는 33세였다.
그 후 그는 아내가 된 그녀의 막대한 부채를 갚아 주기 위하여 대 연주회를 열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이듬해에는 첫 아들(루이)을 보았으나 그들의 결혼 생활은 원만치가 못해 서로 별거하던 중 38세 때에 가수 레시오(Recio)양과 연애 관계가 생겨 그의 파란 많은 생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다가 드디어 51세 때에 스미드손이 죽은 뒤에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을 했지만 59세 때에 그녀가 심장마비로 죽었고 64세 때에는 아들(루이)마저 죽어 버리므로 이에 큰 타격을 받아 결국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상기 자료 : http://goclassic.co.kr
베를리오즈의 위의 이야기는 음악사에서 수만과 클라라 혹은 브람스의 그것과 더불어서 가장 유명한 사랑의 열병으로 알려져 있다. 위의 내용으로 보면 사랑과 실연, 죽음이 보인다. 이는 환상교향곡의 중요한 스토리라인이 되어서 음악으로 형상화된다.
* 신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이야기로
따라서 환상교향곡이 가지는 혁명성 중의 중요한 하나는 신적인 사고에서 상당히 탈피해 있다는 것이다. 사후의 세상 역시 천국이 아니라 지옥으로 그려지는 것도 놀랍고 살인으로 인한 죽음으로의 행진이 당당하다는 것도 놀랍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 곡의 스토리 라인은 다음과 같다.
1악장 : 꿈과 열정
마음의 병에 걸린 한 젊은 음악가가, 맘속에 그리는 이상적인 인간의 매력을 다 갖춘 여성을 처음 만나, 무서운 사랑에 빠진다고 작자는 상상한다. 왠지 사랑하는 여자의 이미지가 하나의 악상과 결합되어 그의 마음에 들어온다. 그는 그 악상의 정열적인, 그러나 기품이 있고 내성적인 성격이 그녀의 성격과 같다는 것을 감지한다. 이 선율과 그녀의 모습이 이중의 고정개념(악상)으로서 끊임없이 그를 따라다닌다. 이 교향곡의 각 악장에, 첫 알레그로의 개시의 선율이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울한 몽상상태에서 , 착란한 정열에 이르기까지의 경과가, 분노와 질투, 마음의 평안, 눈물, 종교적인 안위가 섞여 제 1악장의 소재가 되어 있다.
2 악장 : 무도회
그 음악가는 자기가 인생의 가장 복잡한 환경 가운데 놓이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축제의 소용돌이 속에 끼어 들기도 하고 자연미의 평안한 사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마을에서도 들에서도 어디를 가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괴롭힌다.
3 악장 : 들 풍경
시골에서의 어느날 저녁, 멀리서 두 목동이 부는 목적 소리가 들린다. 이 목가적 이중주, 주위 환경 미풍으로 조용히 살랑이는 나무들의 속삭임, 그가 최근에 발견한 희망의 싹, 이러한 모든 것이 결부되어, 그의 마음을 이상하게 평온하게 하고, 그의 생각을 밝게 물들인다. 그는 스스로의 고독을 다시 생각한다. 그는 이젠 고독을 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한다. - 그러나 만약 그녀가 모른다고 배신한다면 - 이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기분, 어두운 예감으로 어지럽혀지는 이러한 행복의 사념이, 아다지오 악장의 주제가 되어있다. 마지막에 목동의 한 사람이 다시 목적을 부는데 상대는 여기에 대답하지 않는다. 멀리서 천둥소리, 고독, .정적.
4 악장 : 단두대로의 행진
그의 사랑이 거절되었음을 확실히 안 작곡가는 아편으로 음독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치사량에 이르지 못하여, 그는 무서운 환상을 수반한 깊은 잠에 떨어진다. 그는 애인을 죽이고, 사형을 선고 받고, 단두대에 연행되어 자신의 처형을 보는 꿈을 꾼다. 때로는 음울하고 거칠며, 때로는 당당하고 밝은 행진곡의 소리에 맞추어 행진하고, 무거운 발걸음이 굉장한 시끄러움을 타고 계속된다. 행진 끝에 고정악상을 나타내는 4개의 소절이 사랑의 마지막 추억처럼 다시 나타나는데 오케스트라의 결정적인 일격으로 지워져 버리고 만다.
(마지막 부분 실연당한 음악가가 단두대에 목이 걸렸을 적에 떠오르는 것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목관으로 조용하게 제시되는데 오케스트라의 일격으로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지고 굴러떨어지는 목의 모습은 현의 피치카토로 제시된다.)
5 악장 : 마녀들의 밤의 향연의 꿈
그는 그를 매장하기 위해서 모인 무서운 유령, 마술사, 마녀, 그밖에 갖가지 요괴들의 일단이 한 가운데에 있는 그를 본다. 야릇한 소리, 신음, 오싹하는 웃음,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다른 고함소리가 호응하는 듯하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선율이 다시 나타나는데 그것은 그 고귀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것은 이제 야비한 선율에 불과하고, 보잘것 없는 그로테스크한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녀가 이 밤의 향연에 찾아온다. 그녀가 도착하자 환희하는 요괴들의 소음, 그녀는 악마적인 밤의 향연에 낀다. 장례식의 종은 '진노의 날'의 패러디와 어우러지고 밤의 향연의 원무. 원무는 진노의 날과 결합한다.
* 극심한 사랑의 열병은 죽음마저 불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베를리오즈는 신의 영역에서 머물던 음악의 스토리 라인을 철저하게 인간의 그것으로 끌어내리고 있으며, 이러한 것은 보다 원색적인 관현악 운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베를리오즈의 교향곡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금관의 화려한 사용이다. 트럼펫이 바로크 시대에 독주악기로 화려하게 사용되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전대의 금관 강주의(强奏) 운용은 오케스트라의 총주에서나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에 반해 이 곡에서는 금관의 강주를 자주 만날 수 있는데, 곡의 곳곳에서 보다 더 강열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외향적인 음색 때문에 베를리오즈는 살아생전 이류 작곡가 취급을 받기도 한다.
* 음악에서의 스토리텔링
음악에서의 기승전결에 따른 문학적인 이야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전대의 작품에서는 그리 많지 않았다. 베토벤의 경우 웰링턴의 승리라는 관현악곡이 있지만 그것은 소품, 혹은 이벤트의 성격이 강한 곡으로 가치가 그리 크지 못하다. 하지만 이 곡에서는 어떠한 교회의 종소리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외향적인 장식 없이 한 편의 훌륭한 서사를 완성해 내고 있다.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지고 있으며 이는 표제음악의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하나의 거대한 서사의 흐름을 음악으로 이처럼 훌륭하게 묘사한 예는 리스트의 교향시들과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쿨레르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샤르카 등의 예가 있다. 이러한 사항으로 봤을 적에, 1830년대에, 일관된 이야기를 음악으로 묘사한다는 것은 상당히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 단두대의 이미지
프랑스 문화에서 단두대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에서 어떤 의사에 의해 발명된 이후로 공포의 대성이었고 살육과 집단의 고아기가 공존해 온 이미지였다. 예술작품에서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적 아이콘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의 경우는 칼과 성, 핵이 단골으로 등장한다. 여기 환상교향곡에서는 당시 단두대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이 공포와 집단의 광기로 스며들었음을 알 수 있다.
2-3. 베를리오즈는 뒤늦게 음악을 시작하였다.
그를 의사로 만들고 싶어하던 아버지의 강요로 의학을 공부하던 그는 해부실에 들어간 순간 즐비하게 놓여 있는 시체를 보고 질겁을 해 도망쳐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23세 때 어렵게 허락을 받아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는 어렸을 때 플루트와 기타를 조금 만져 보았을 뿐 악기라고는 전혀 다룰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는 극소수의 작곡가 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간혹 예술사에서 무지(無知)는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다. 적어도 베를리오즈는 천재 음악가(생이지지의 신비로움에 대한 감탄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천재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 왔던가)로부터 자유로웠고 피아노로부터 자유로웠다. 따라서 정형성이라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관현악에서의 자유로움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자유로움으로 인하여 디테일에 주목하기보다는 거대한 스케일의 음량이 주는 효과에 주목하기도 한다. 환상교향곡의 5악장의 코다에서는 관현악 총주에 의한 무시무시한 파괴음이 들린다. (개인적으로 베를리오즈가 피아노를 잘 치는 음악가였다면 이러한 파격적인 음량감을 들려주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3. 기타 등등
작곡연도 : 비교적 단기간에 완성되어서 1830년도에 초연하였다.
초 연 : 1830년 12월 5일 파리 음악원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악기편성 : 플루트2 (하나는 피콜로로 겸함), 오보2 (하나는 잉글리시 혼으로 겸함), 클라리넷2(하나는 Eb 클라리넷 겸함), 파곳4, 혼4, 코넷2, 트럼펫2, 트롬본3, 튜바2, 팀파니2 (제3악장에선 4명, 제4, 제5악장에선 2명), 큰북, 심벌즈, 종 (튜뷸러 벨), 하프2, 현5부.
4. 환상 교향곡의 음반들
* 개인적인 선택
Best :
라파엘 쿠벨릭 /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 / 오르페오
오르페오의 81년도 실황 녹음.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이라는 수려한 악단을 두고 강한 소리 일변도의 해석에의 유혹을 빠져나간 연주. 그렇다고 역감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탄탄한 합주력에 해석의 기반을 두고 쿠벨릭 자신만의 환상을 유감없이 펼쳐보인다. 5악장의 기가 막힌 연출은 언제 들어도 소름이 돋을 지경.
Best Jr :
마리스 얀손스 / 베를린 필 / 스팩트럼DVD
사실 얀손스의 이 음반을 구입하고 이 연주야말로 꿈에 그려오던 환상의 이상적인 모델이 아닐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탐미적이면서도 강열한 오케스트라 운용은 듣는이의 귀를 잡고 놓아주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여기에다가 잘 연출된 영상은 그 멋과 맛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귀기서린 연출이 주는 소름끼치는 표현력은 쿠벨릭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결론이다.
발레리 게르기에프 / 빈 필 / 필립스
최근에 나온 신보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음반. 발레리 게르기에프라는 이름과 빈필의 조합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음반을 듣기 전부터 손이 떨릴 지경이니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음반이다. 포효하는 듯한 저음들의 향연과 강열한 오케스트라 운용은 이전에는 맛보기 힘들었던 것으로 이 음반이 물건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아주 간혹이지만, 게르기에프 역시 어떠한 메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헤라자데나 알렉산더 네프스키에서 보여준 스펙터클한 음향의 향연은 이 곡와 울리는 요소이긴 하지만 100% 이상적인 모델을 구현해 주기는 힘들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입문자를 위한 선택
폰 카라얀 / 베를린 필 / DG (74-75)
카라얀의 70년대 환상교향곡 녹음은 당시의 녹음 레벨을 최대한으로 올렸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스펙터클한 음향을 들려준다. 당시 도이치 그라모폰의 정점을 알 수 있는 음반으로, 이는 지금 들어도 어느 정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조금 느릿한 템포로 환상교향곡이 들려 줄 수 있는 당시 최대의 음향의 향연을 펼쳐보인다. 환상교향곡의 거대함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린 70년대의 카라얀 다운 연주.
콜린 데이비스 / 런던 심포니 / 필립스
콜린 데이비스는 일반적으로 모험성이 적고 안정적인 해석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환상 교향곡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모범적이지만 그만큼 듣는 재미가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데이비스경의 초기 연주로 후에 데이비스는 개인적으로 아는 한도 내에서는 3차례의 연주를 더 남긴다. 한 번 듣고 넘길때에는 그 가치를 모르지만 오랜시간 접할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음반.
장 클로드 카자드슈 / 릴 국립 오케스트라 / 아르모니아 문디 프랑스
아르모니아 문디 레이블에 대한 통념으로 응축된 규모에 군더더기 없는 해석의 환상교향곡이라는 생각이 선입견으로 작용된다. 더욱, 순백의 음반 디자인에서 그런 느낌이 더욱 배가되는데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이와는 정 반대의 해석을 들려준다. 조금은 어둑한 듯한 녹음에 현의 팽팽한 장력이 일품이다. 전곡을 관통하는 긴장감이나 탄탄한 서사적 흐름은 상당히 만족할 만 하나 곡이 진행될수록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고전적 선택
샤를르 뮌쉬 / 보스턴 심포니 / RCA
뮌쉬의 환상 교향곡은 이 음반과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이 있다. 2년차의 녹음 터울을 갖고 있는 이 음반들 중에서 평가가 엇갈리지만, 신생 오케스트라와 잘 단련된 오케스트라와의 차이에서 기인한 평가를 따르면 보스턴 심포니와의 이 음반을 좀 더 앞 에 세워 두고 있다. 뮌쉬의 환상은 이 곡을 잘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출발한다. 악보를 표현하는데에 일체의 잔재주를 배제하고 클라이막스를 향해 최단거리로 달려간다. 하지만 환상 특유의 서정성을 기대하기는 힘든 연주.
앙드레 클뤼탕스 / 필하모니아 / EMI
앙드레 클뤼탕스의 환상 교향곡은 현재 시중에 3종류가 유통되고 있다. 이 음반은 그 중에서 지금은 구하기 조금 어려워진 음반으로 도시바 EMI에서 출반된 것이다. 이 음반 말고 동경 라이브 녹음이 얼마전에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터지는 열광만이 존재할 뿐, 섬세한 아름다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5악장의 열광은 인상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바비롤리나 게르기에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50년대 후반의 이 녹음은 동경 라이브와는 달리 서정적인 면을 잘 포착하고 있고 지나치게 광포하지 않다. 베토벤으 교향곡이나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들려준 기품이 잘 깃들어 있는 연주.
존 바비롤리 / 할레 오케스트라 / EMI
바비롤리의 이 음반은 이제 시중에서는 거의 구하기 힘든 것이 되었다. 스코어를 재현하는데에 있어 해석자의 주관을 적극 반영한 연주로 특히 2악장의 주관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5악장을 정점으로 두고 차츰 긴장감을 높혀가는 것은 정말 바비롤리 다우며 5악장의 터지는 열광은 게르기에프의 그것과 비견될 만하다.
모노녹음
피에르 몽퇴 / 센프란시스코 심포니 / RCA
몽퇴 역시 환상교향곡을 수차 녹음하였지만 이 녹음은 한 시대 이전의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연주의 정점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40년도의 열악한 모노 녹음이지만 전곡을 관통하는 통일성이나 탄탄한 서사를 들려주는 듯한 일관성은 6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감탄을 자아낸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존 엘리엇 가디너 /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 / 필립스
가디너의 이 음반은 초연 당시의 규모와 연주양식을 적극 반영한 음반으로 그 역사적 가치가 있다. 환상교향곡을 좋아하는 매니아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음반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선택하기에는 위험한 요소가 있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해석을 들려주지만 건조하고 일체의 잔향을 배제한 녹음은 이 곡의 스케일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 이 곡이 광기의 시대에 태어난 곡임을 감안한다면 더 열정적이었어도 좋았을 것이다.
마크 민코프스키 / 말러 쳄버 오케스트라 / DG
이 음반에 대한 평가도 분분한 듯 하다. 분명 청신한 해석이라는 데에 토를 달 수는 없겠지만, 멜로디를 유려하게 그려나가는데에 일단 민코프스키는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환상교향곡 특유의 탐미적인 요소는 찾기가 힘들어져버린 연주가 되고 말았다. 더욱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초연당시의 규모로 응축하여 원전성을 지킨 연주이건만 왜, 개정판 악보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남는다.
정명훈 /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 DG
정명훈의 이 음반은 발매당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음반으로 팽귄 가이드 2001년판에서도 첫 선택으로 올라와 있다. 또한 그 해의 일본 유수의 음반상인 레코드 아카데미의 대상을 수상한 음반이다. 하지만 개정판을 적극 수용했다거나 감정을 배제하고 곡을 이끌어간다는 것이나 하는 사항들이 참신하게 다가오지만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 어둑하고 건조한 녹음으로 오케스트라의 기민한 움직임이 잘 포착되지 않는 것도 아쉬움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너무 안정 위주의 연주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창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