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옥으로 세 번 찾아가다
三顧草廬 (삼고초려) <삼국지> <촉서>
바로 이 사람이라고 생각 되는 뛰어난 인재를 예를 다해 맞아들인다는 뜻이다.중요한 직책이나 자리를 맡아달라고 의뢰할 때 쓰는 말이다.
형주의 신야성에서 주둔하며 '비육지탄'을 금치 못했던 유비에게 새로운 막료로 들어온 서서(徐庶)가 어느 날 아뢰었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는 자가 이곳에서 수십리 떨어진 와룡강(臥龍岡)에 살고 있는데, 잠자는 용인 '와룡' 이라고 할 만한 인물입니다. 부디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서서의 예기인즉 제갈공명이라는 인물이 높은 경륜과 군사로서의 비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비도 그 무렵 자신을 보필해줄 지모가 뛰어난 인재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바로 좀 데려와 주시오,"
"그건 무리입니다. 이 쪽에서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지 모르나, 부르면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서서의 말이 맞았다. 제갈공명은 호족(豪族)출신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사별하고 어렵게 학문을 닦고 병법을 공부했다. 공명과 같이 공부한 사이였던 서서는 공명의 남다른 재주와 슬기에 속으로 무척 경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명에게는 동란을 틈 타 출세를 하려는 객기는 조금도 없었다. 그는 양양(襄陽) 서쪽 와룡강에 초가를 짓고 살고 있었다.
아등바등 벼슬을 하려고 하지않았던 공명을 서서는 큰 인물로 생각하며 존경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비에게 추천한 것이었다.
유비도 공명이 자신이 그토록 찾던 이재라고 생각하고서 즉시 와룡강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집에 없었던지 만나지를 못했다.
유비는 다른 날 다시 찾아갔다. 가는 길에 눈이 날리기 시작하자 관우와 장비가 두덜거렸다.
"이런 날씨에 일부로 갈 것까지야 있습니까?"
그러자 유비는 이렇게 타일렀다.
"맹자께서는 '현인을 만나고자 하면서 거기에 맞는 방법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는 들어오기를 워하면서도 문을 닫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가지 않으면 내 마음을 전달 할 수 없지 않겠느냐."
예의를 갖추고 자신을 낮추며 방문을 했으나 공명은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유비가 세번째로 방문을 하려고 하자 관우와 장비는 타박을 놓으며 말했다.
"저런 풋내기에 무에 그리 집착을 하심니까? 그냥 단념하십시오."
유비가 만류를 뿌리치고 방문을 하자 비로소 초가로 맞아 주었다.
"나는 내 분수도 모르고 이 동란을 평정하여 천하에 대의를 펴려고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지력이 얕아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소. 아무쪼록 나의 힘이 되어주시기를 바라오."
유비가 간청을 하자 공명은 유비가 자신을 알아준 것에 감격해 유비를 위해 천하의 일을 도모하기로 결심한다.
진정 얻고 싶은 인재에게는 성의를 다해야
때는 207년, 유비의 나이 47세, 공명의 나이 27세였다. 유비가
스무 살이나 어린 공명을 성심성의를 다해 맞아드린 이 고사가
'삼고초려'라는 명언을 만들었다.
진정 얻고 싶은 인재는 이 정도의 열의를 가지고 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고사성어라 하겠다. 인는 성의를 다
해야 움직이는 법이다. 적당한 조건만 제시하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해 이 쪽에서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인재는 얻을 수 없다.
( 剛軒 選集 <1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