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의 시작은 야구 시즌을 알리는 신호다. 이번 주부터는 야수들이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국내 선수들의 동향도 큰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텍사스 레인저스 박찬호, 보스턴 레드삭스 김병현, 뉴욕 메츠 서재응, 플로리다 말린스 최희섭,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봉중근 등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밖에 몬트리올 엑스포스 송승준, 김선우, 시카고 컵스 류재국, 시애틀 매리너스 백차승, 추신수등도 스프링캠프에서의 활약이 외신을 타고 흘러 들어올 예정이다. 이들은 아직 개막전 엔트리 25명에 합류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송승준, 김선우는 올 시즌 중에 발탁될 가능성이 높고 류재국, 추신수, 백차승은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할 듯하다.
사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전부 장밋빛이다. 이 때가 감독과 구단관계자들게는 가장 부담이 없는 기간이다. 그러나 장밋빛은 시범경기가 종반에 들어서면서 바뀐다. 잿빛으로 변하는 팀이 하나 둘씩 생기게 마련이다.
메이저리그 캠프는 보통 50~60명의 선수들로 붐빈다. 메이저리그 엔트리 40명에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해 캠프에 초청받은 '넌 로스터 인바이티(Non Roster Invitee)' 선수들로 구성돼 있다. '넌 로스터 인바이티'는 매우 합리적인 제도다.
이른바 엔트리외에 초청받은 대상자들은 대부분 전년도에 프리에이전트로 풀린 선수들로 구단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이들은 캠프에 초대받아 40명 엔트리 선수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고 훈련도 똑같이 한다. 미국은 연봉이 시즌이 들어가는 3월말부터 2주 단위로 지급한다. 캠프 기간 동안에는 '밀 머니(meal money)'로 통하는 용돈을 1주일 단위로 지급받는다. 주당 280달러50센트씩이다. 박찬호를 비롯한 국내파 모든 선수들도 똑같이 주당 280달러50센트씩을 지급받는다.
초청대상자들은 시범경기를 거쳐 25명 엔트리에 포함되면 계약이 자연스럽게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전환된다. 예전 박찬호의 개인 배터리였던 채드 크루터도 LA 다저스에 입단할 때 이 과정을 통했다. 이 제도는 양측에 다 득이 된다. 어차피 선수들도 훈련을 해야 하고 구단은 시범경기 검증을 통해 계약여부를 결정짓는게 좋다. 엉뚱한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선수는 그 팀에서 방출되더라도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게 바로 '넌 로스터 인바이티'제도다. 현재 LG 트윈스 소속이 된 알 마틴의 경우 지난해 스프링캠프는 플로리다 말린스에 합류해 훈련을 거친뒤 이 팀에서 방출돼 시즌은 탬파베이 데블레이에서 뛰었다.
캠프에서 감독과 단장은 주전급 선수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부상자와 신인급, 초청대상자들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주전들의 기량이라는 것은 하루 아침에 쇠락하지 않는다. 이미 그들은 검증이 됐고 개막전에 맞춰서 컨디션만 조절하면 된다.
현재 5명의 메이저리그 진출 국내파 가운데 스프링 트레이닝 과정에 큰 문제가 없는 선수로는 보스턴 김병현, 뉴욕 메츠 서재응 정도가 꼽힌다. 부상에서 돌아온 박찬호, 스토브리그 때 트레이드된 최희섭, 애틀랜타 봉중근의 경우에는 시범경기가 매우 중요한 시험대다. 특히 기득권을 잃어버린 박찬호는 시범경기부터 예전 신인처럼 눈에 불을 켜고 덤벼야할 처지다. 여유가 없다.
벅 쇼월터 감독이 에이스 좌완 케니 로저스와 박찬호만이 선발로 확정됐다고 발표는 했지만 시범경기 투구내용에 만족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이 방침은 바뀐다. 2년의 부진 때문이다. 최희섭도 아직은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봉중근 역시 지난해 방어율이 5.05였다. 내셔널리그 방어율 5점대는 곤란하다.
스프링캠프에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구성되는 이유는 경기를 치르면서 선수를 걸러내고 주전들의 컨디션을 개막전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투수들은 등판간격을 맞춰야 되고 적정선의 투구이닝도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려면 투수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두팀으로 나눠 '인트라 스쿼드' 경기를 벌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개막 10일 정도를 앞두면 선수 이동이 심해진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선수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기량이 미달됐다고 판단된 초청대상자들은 방출당하는 설움을 맛본다.
메이저리그 시범경기도 국내처럼 대충하기는 마찬가지다. 신예들이나 죽기살기로 덤빈다. 4년 동안 취재하면서 느낀 바다. 다만, 국내와 다른 점은 야구장의 열기가 시범경기도 무척 진지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팬들이 관광객이나 은퇴한 노인네들이 많다. 그들은 태양아래서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애리조나 캑터스리그는 이동거리가 짧아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원정경기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플로리다 그레이프프루트리그의 경우에는 이동거리가 2시간 이상의 먼 경우에는 스타들이 거의 불참한다. 그러나 시범경기 막판에는 개막전에 몸상태를 맞춰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스타급 플레이어들도 참가해 본격적인 개막을 알린다.
역대로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낸 팀이 정규시즌에서도 성적이 비례하는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다. 시범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팀들을 보면 대개 선수층이 젊다. 이들은 항상 주전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여서 매경기 최선을 다한다. 사실 시범경기 결과에는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코칭스태프, 구단관계자들이 납득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