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떠나는 신선을 배웅하며
여름비와 다르게 담담하게 내리는 비를 보고
이미 가을이라는 계절로 진입했음을 알겠다.
하긴 벌써부터 아침 저녁 기온이 현저하게 차이나는 무설재 뜨락에 서면
금방이라도 쌀쌀한 찬바람에 온 몸을 맡겨야 될 것 같은 예감임은 물론
반팔 매무새가 어쩐지 썰렁하고 남사스러워 긴팔로 갈아입고나니 더더욱
계절이 실감 난다.
그러다 보니 이래 저래 철지난 계절 관련 품목을 정리하느라 며칠간 몸과 마음이 바빴다...게다가
다가올 추석을 위한 밑준비를 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아 - 추석엔 모든 제꾼들이 무설재로 납신다.
그리하여 이불 빨래, 베개, 커텐은 말할 것도 없고 시간만 나면 대청소를 해야하고 먹을거리 준비도 해야한다-
벌써부터 그 하루를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 는 것, 어찌보면 세월이 미래 지향적인 것에 비하면
참으로 낙후된 묵은 절차가 아닐 수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을 맞는 마음은 그래도 요즘처럼 바쁜 와중에 기꺼이 친인척들과
소통할 기회이지 싶다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욱하고 짜증이 일다가도
이 세대가 지나면 더더욱 전통적인 관습은 사라지고 말겠지 싶어 나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어쨋든 와중에 몇몇 발걸음과 다담을 나누며 지친 일상에 담겨진 피로을 씻어내기도 하고
간만에 서울로 걸음을 옮겨 아들을 만나 짧은 점심을 먹고 -소유진의 남편이 한다는 황해라는 체인 중국집,
결론은 글쎄 다 - 이제는 제 소명을 다해버린 무설재 쥔장의 카메라 대신 넘겨받은 아들의 카메라가
나머지 임무를 부여받게 되었으니 최선을 다해 촬영을 하며 아들의 카메라를 사랑할 일만 남겠다.
간만에 만났지만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아들과 헤어져 인사동으로 고고고...그 인사동은
여전히 외지인들의 발길로 들끓고 오래된 그러나 인사동엘 가면 늘 찾아지는 빨간색 창틀이 아름다운
"볼가"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세계, 여전히 고즈넉하고 좋기만 하다.
인사동 한 켠에 낡고 세월이 흐른 묵은 情을 여전히 느끼게 해주는 곳이 있다 는 것,
긴 말이 필요 없는 참 좋다 로 마무리 되는 볼가에서 오랜 친구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도 역시 켜켜이 묵었다.
하지만 역시 서울행은 스케줄이 엮인지라 다음 행선지 조계사로 찾아들어 임사체험 전문가, 이름하여
웰 다잉을 전국민에 퍼뜨린 장본인 "김기호"씨와 무용가 "김미경"쌤과 그의 친구를 만나 긴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세월이 흘러도 묵은 된장같은 사람들은 늘 여전하다 는 것이 진리인 듯...저녁을 먹고 인사동에 자리한
보이차 전문 "연화정"엘 들러 하루동안 마시지 못한 차를 마시며 간만에 찾아든 덕분에 오랜 회포를 풀다보니
어느새 퇴장을 해야 할 시간이다.
서둘러 만남을 정리하고 돌아서는데 아, 서울,,,피곤하고 힘이 들도다 가 절로 나오지만 기꺼이 서점엘 들러
그동안 미뤄두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과 요즘 트렌드이자 전에 티비 특강으로 보았던 구굴 직원들의
필독서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를 사들고 안성으로 돌아오니 그 공기가 반듯한 숨을 쉬게 한다.
어제는 하루종일 무라카미 하루키와 놀았다.
워낙 좋아하는 저자이기도 하고 그의 글체에 매료되어 매니아 되기를 자청한 까닭에
그가 세상에 내보이는 책은 웬만하면 죄다 섭렵하는 처지이긴 하지만
"색채가 없는 다카시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다 읽고 나니 더더욱 긴 여운이 남는다.
일단 책을 집어들면 놓지 못하는 것이 하루키의 매력이요 그의 화려하지 않은 문체가 늘 작은 감동을 주고
조근조근 누군가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읖어주는 듯한 편안함은 물론 한결같이 같은 느낌인 듯 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을 전달받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하지만 말이야 옛날에는 나한테도 멋진 친구가 몇명 있었어. 너도 그 가운데 하나였지.
그러나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난 그런 걸 잃어버리고 말았어, 서로가 어떤 시점에서 생명의 광채를
잃어버린 것 처럼,,,그러나 아무튼 뒤로 돌아갈 수는 없어, 포장을 뜯어버린 상품은 교환할 수 없거든,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고교시절,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후광이 있다 는 소재로 쓰여진 소설이지만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읽다보면
촉촉하게 젖어드는 그러나 가슴이 아리고 먹먹함으로 이 책을 손에서 놓게 된다 는 것, 쥔장의 소견이다.
본문에서도 전달되어지는
"어딘가에서 물처럼 소리도 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투명한 슬픔이었다.
자신의 슬픔이면서 손에 닿지 않는 투명한 슬픔이었다. 가슴이 헤집은 듯 아프고 숨이 막혔다"
또한 그러하다...비는 여전히 내린다.
오늘은 산책을 접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는 이유로
더불어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그의 심상을 전한다.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
오후에는
또 한권의 책으로 내면을 검색 당할 예정이다,.
첫댓글 시작하면 정신 못차리고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 무라카미 하루키 시작을 해 ? 말어~? 끙~~~!
금방 읽을 수 있어요...추석때 한가할 테니 빌려가소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간단 명료, 무채색...
재밌게 읽었어요
요즘 김애란 책에 빠져있는데...
젊은이들 대단해요.
모두가 하루용 책들이기에
긴 인문학서적 읽은후엔
이런류의 책들을 일주일에 3~4권씩 읽어제낍니다.
맞아요...책을 읽는데도 요령이 필요하죠.
저도 딱딱한 책을 읽은 다음에는 가벼운 책을 선호하긴 합니다.
그렇다고 처세술, 이런 것은 사양이구요.
처세술....
지금 처세를 해서 뭘 하겠다구요...
읽고 싶은 책들도
다 못읽고 있는 데...
ㅎㅎㅎㅎ 그러니까요...읽고 싶은 책은 너무 많고 여유는 함량 미달이고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