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룻기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찬송가 382장(너 근심 걱정 말아라)
오늘 우리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보리 이삭을 주우러 나섰다가 우연히 남편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 이르러 거기서 이삭을 줍게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 밭의 주인 보아스는 룻의 시가의 기업 무르는 자가 되어 얼마 후에 다 망해버린 시어머니의 집안을 다시 세우고 룻의 시어머니와 룻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그 날 룻이 보아스의 밭에 이르러 보리 이삭을 줍게 되어 보아스와 만남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은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연히’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미크레’인데, 이 단어는 예상치 않게 일어나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인간의 눈으로는 전혀 계획하지 않은 일이요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 우연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만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압 여인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 그의 시가의 고향 베들레헴에 와서 홀시어머니를 봉양하려는 효의 마음을 가지고 보리 이삭을 주우려고 나섰던 발길을 하나님은 친히 인도하셔서 그의 가문을 살리고 착한 룻을 행복하고 안정된 삶으로 이끌어주시려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의 손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상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룻의 삶에 이러한 우연한 만남을 베푸셔서 보아스를 통하여 은혜를 입고 그 때부터 날마다 어머니 나오미를 배불리 먹이게 하시고 룻도 두려움과 근심없이 날마다 보아스의 밭을 따라 이삭을 줍다가 그 보리 추수를 마치는 때에 마침내 어머니 나오미의 요청에 순종하여 룻이 보아스에게 청혼하여 기업을 무르고 룻이 평안 중에 보아스와 결혼하여 그의 자녀 오벳을 낳고 그 후손 중에 후일 다윗 왕이 태어나고 그 계보를 따라 신약 시대에 우리 주님이 탄생하시는 큰 은혜가 임하였던 것입니다. 룻의 아름다운 마음과 충성된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우연이라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통하여 그녀를 메시야의 가문의 일원이 되는 영광을 주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은 역사 속에 계속 됩니다. 후일에 바알 숭배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잡아 죽이기로 작정하신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죽음의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임합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보면 아합 왕이 요단 동편 땅 길리앗 라못을 아람 나라가 와서 점령하자 그 땅을 회복하고자 남 유다 여호사밧 왕을 초대하여 함께 전쟁에 참여하자고 꾀였습니다. 하나님은 북 이스라엘 아합 왕만 죽이려 작정했기에 여호사밧 왕이 그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 일이 복잡하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교활한 아합 왕은 전쟁 중에 적의 공격 초점이 자기에게 몰리는 것을 피하고자 자기는 변장하여 일반 군사 중 하나로 위장하고 남 유다 왕 여호사밧 왕만 화려한 왕복을 그대로 입으라고 했습니다. 순진한 여호사밧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지만 인정에 끌려서 아합 왕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아합 왕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는 살고 여호사밧 왕은 죽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람 나라 군대의 지휘관들이 앞다투어 여호사밧을 죽이려고 몰려들어왔습니다. 이는 아람 왕이 자기 휘하의 32명의 지휘관들에게 다른 사람은 놔두고 이스라엘 왕 아합만 잡아 죽이라고 일렀기 때문입니다.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을 아합 왕으로 알고 다들 몰려들어 그를 죽이려 한 것이니, 이제 여호사밧은 죽기 일보 직전까지 밀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너무 급하니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고함치듯 기도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 적군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이 아합 왕이 아닌 줄을 즉시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아합 왕을 찾아 죽이려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경건한 여호사밧의 짧은 외마디 기도에 응답해주시어 그를 살려주시고, 아합 왕의 잔꾀를 폐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변장하여 느긋하게 전쟁을 즐기며 싸우던 아합 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열왕기상 22:34 말씀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무심코’ 쏜 화살에 아합이 맞았습니다. 완전 무장하고 변장까지 하여서 어떤 적의 위협도 대비했지만 그가 우연히 팔을 들어 갑옷의 옆구리가 들렸는데, 그 빈 틈을 우연히 쏜 화살이 쿡 맞추어서 그는 피를 쏟고 말았습니다. 아합은 전쟁터에서 속히 빠져 나가 부상을 치료하려 했지만 주변에 갑자기 적군들이 몰려와서 에워싸므로 포위를 뚫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인 줄도 모르는 상태인데 아합의 주변에는 아람나라 군대가 몰려들어서 아합은 꼼짝없이 갇혀서 나가지 못한 채 피를 다 쏟고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연인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그 우연의 화살을 친히 사용하여 본래 아합 왕을 길리앗 라못에 가서 죽게 하리라는 아히야 선지자의 예언 말씀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무심코 쏜 화살이지만 그 화살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아합 왕의 갑옷 솔기 빈 틈에 정확히 명중하여 그를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일이 우연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의 정하신 뜻과 그의 기뻐하시는 소원을 따라 행함으로써 인류의 흥망성쇠와 개인의 길흉화복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9:11,12 말씀에 이르기를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기회는 그들 모두에게 임함이니라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에 달려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 삶을 공순하게 맡기는 신앙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고자 하시면 어떻게 하더라도 낮아지게 되어 있고 하나님께서 높이고자 하시면 어떻게 하더라도 높아집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시면 어떻게 해서라도 형통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시려고 하시면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도 결국에는 졸딱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세상 만사가 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 아래에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법도에 항상 순종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길 아래 항상 겸손합시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고 평안과 은총을 얻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