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인도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나 인도 상류 계급으로부터
심한 차별을 맛본 영국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장학금으로
영국의 명문 사립고인 이튼 학교를 졸업했다.
미얀마 경찰이 되었다가 식민지 지배의 참혹한 실상을 눈으로 보고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로 돌아선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국 의용군에 가담해 싸우다
바르셀로나에서 부상을 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좌익 내부의 격렬한 당파 싸움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다.
이 때의 경험을 담은 글이 1938년에 발표된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그리고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 독재화를 비판하는
정치 우화 소설 '동물농장(Animal Farm: A Fairy Story)'를 발표한다.
그로부터 겨우 3년 뒤인 1948년 'Animal Farm'이 '동물농장'이란 제목으로
한국에서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된다.
최초 번역본은 1946년의 폴란드어였고
우크라이나어 서문은 오웰 본인이 직접 서문을 달아주기도 했지만
번역출판 왕국인 일본에서 이 책이 1949년에야 번역 출간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보다 빨리 출판된 것이다.
해방 이후 혼란기를 거쳐 막 대한민국이 출발한 지
2달 밖에 안된 1948년 10월 한국에서 번역본이 나왔다.
번역가는 김길준이란 분이었고 출판사는 국제문화협회였다.
김길준 씨는 평안도 출신으로 미국 유학을 하고 해방 이후
미 군정청에서 통역관 겸 자문요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김길준 씨가 직접 영국의 출판사에 연락해
판권 문제를 해결하고 번역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업을 맡아 판권을 지불해 준 것은 미국의 해외 정보국이란 정부기관,
결국 미국은 스탈린의 사주에 의해 북측 지원을 받으며
남한에서 활동하던 우리나라 좌익과의 대항을 위해
조지 오웰의 이 소설을 긴급히 번역해 출간한 것이란 사실이
박홍규 교수의 저서('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 조지 오웰', 이학사 펴냄)에 의해 밝혀졌다.
그 덕에 우리는 'Animal Farm' 세계 최초 번역 출간이란 출판사(史) 이력을 갖게 되었다.
소설 ‘동물농장’은 한 농장에서 벌어지는 동물들의 반란과 그 후 변화를 통해
전체주의와 권력의 부패를 풍자한 소설이다.
동물들은 인간 농장주를 내쫓고 스스로 농장을 운영하지만,
결국 돼지들이 권력을 독점하며 인간보다 더 타락한 지배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초기에는 평등을 외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독재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선동과 프로파간다, 언론 조작과 역사 왜곡을 통해 대중을 통제하는 모습을 풍자한다.
소설에선 최고 지도자가 된 돼지 나폴레옹은 처음에는
혁명의 동지였지만 점차 정보와 교육을 독점하고, 기억을 통제하며, 공포를 조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군사력을 장악했다는 것보다 언어를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하는 언어에 익숙해진다.
불평등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새로운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서서히 정상화된다.
권력을 장악한 동물들이 만든 일곱 가지 계명의 마지막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인데,
이것이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로 바뀌었고
다른 계명은 없어진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동물들은 창문 밖에서 돼지들과 인간들을 바라본다.
술잔을 부딪치며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이제 구별되지 않는다.
한때 혁명을 이끌었던 돼지들은 어느새 인간이 되어 있었고,
동물들은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다.
조지 오웰은 '동물농장'에 이어 1948년에는 '1984년'이라는 소설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매스컴을 장악한 '빅 브라더'라는 거대한 독재자에 의해
지배되는 암울한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인데,
이 소설도 나오자마자 같은 해에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다.
오웰이 독자에게 남긴 질문은 권력은 왜 타락하는가가 아니다.
돼지들이 사람처럼 변해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묻고 있다.
조지 오웰이 비판한 사회는 공산주의 체제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또는 공화주의 등 모든 사회 시스템이나 이념 속에
잠재돼 있는 우리 인간성의 문제, 그를 통해 일어날 수 있는
감시와 통제의 사회체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자신 때로는 식민지 체제의 한 도구로서, 공화파 혁명주의자로서,
때로는 사회주의자로서 직접 많은 경험을 하고 거기에서 깨달은
인간성의 독재성이나 파쇼화가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독재는 북한의 김일성 유일 체제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함으로서
우리 사회의 독재나, 그 독재를 만드는 사회 구조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기가 힘들었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권력 차지하기, 권력 나눠 먹기 싸움,
그 와중에 일어나는 정권과 정당의 독재 등을 경험했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다른 나라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 문제가 현재도 진행형인 것 같다.
소설 '동물농장'이나 '1984년' 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독재라는 것은 그것을 용인하고 떠받들어주는 구성원들이 있기 때문이며,
그 문제를 깨닫고 고쳐내지 않고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어느 사회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남의 비판에 귀를 열면서,
자기 자신 속에 있을 독재의 욕망, 독재에 기대는 자세,
권력 획득욕이나 유지욕이 잘못임을 깨달아야 한다.
올바른 권리를 막으려는 감시와 통제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독재는 국민을 속이고, 국민들의 다른 생각을 막고,
다른 생각을 틀리다고 말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데서 출발한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따라만 가면
그 사회는 곧 '동물농장'이나 '1984년'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이 잡은 권력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판하면서 자신이 잡으면
모든 비판을 잠재우려는 것이 곧 독재임을 조지 오웰이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자신들의 권리가 독재자에게 넘어가고 난 뒤에
이를 다시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갑자기 등장한 사람의 눈이니, 돼지의 눈이니 하는 표현에
해묵은 책 이야기를 다시 소환해 본다.
첫댓글 읽기 편하도록 큰 글자체로 되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