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아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 읽기>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신동엽 시인 사후에 발간된 『신동엽 전집』 중 일부 내용이 긴급조치 9호에 걸려 한 달 만에 판매금지처분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전집의 수정증보판은 박정희 씨가 죽은 뒤에야 나올 수 있었다고 하지요.
오래 전부터 저는 신동엽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시를 멋진 낭송으로 듣고 싶었습니다. 최근 시들의 작법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이 ‘옛날 시’가 주는 감동을 새롭게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진정성’이라는 말의 뭉클한 울림이 살아있는 이시는 마치 음악이 우리의 영혼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애둘러가지 않고 영혼에 직접 울립니다. 어떤 아름다움은 이렇게도 오는 것입니다. 성큼성큼 건너오는 푸르디푸른 청년의 마음. 아, 잃지 말아야 할 이런 마음을 혹시너무 많이 잃고 산 것은 아닌지….
알다시피 이 시는 4.19 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갑오년의 농민전쟁과 연결되며 시인이 견뎌내야 했던 독재시절에 대한 항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시인의 항거는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논/아사달 아사녀”의 순수한 사랑의 기운으로 승화합니다. 푸르른 청년의 서정은 마침내 “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는 시행에 이르러 눈물처럼 뜨겁게 터져나옵니다. 기교 없이 직접 거는 말이 꽃처럼 번집니다.
아, 진실로 진실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잔인한 짓을 하는 그 모오든 쇠붙이들이 이 땅에서, 이 별에서,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라고 기어코 말해봅니다. 여전히 싸우고 있는 그대여 부디, 평화…!
―김선우, 『어느 하루 구름극장에서』, 단비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