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더지 여자
이선희
옆집에는 자주 두통을 호소하는 여자가 산다
그녀의 방에는 생을 어지럽힌 책들로 어질러져 있다
컵라면 빈 컵과 빈 과자봉지가 빵빵하게 헛배 불러 있고
궁핍의 흔적을 지워보려는 몇 장의 옷가지와
꺼지지 못하는 노트북이 헛꿈을 꾸고 있다
한때 하늘의 태양과 결혼하겠다는 신분 상승을 꿈꾼 이력도 있다
가끔 부스럭부스럭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로 존재를 확인한다
동네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옆집 여자
어느 날 큰 식당에서 보았다
두더지 잡기 놀이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어딘가로 들어갔다 나왔다
세상살이가 협소하고 불리한 조건에도 잘 파헤쳐가는
그녀가 지나간 자리가 거품처럼 부풀었다
---애지 가을호에서
첫댓글 좋은 시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회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