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이번에 새로 개관한 울산도서관을 자주 이용한다. 도서대여증을 만들면 이용이 편하다기에 곳곳에 비치된 컴퓨터 한 곳에서 회원가입 절차를 거쳐 생애처음 도서대여증을 만들었다. 또 휴대폰을 등록해두면 휴대폰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인증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이미 두 차례 책을 빌렸는데 한 번에 5권까지 대여되며, 반납까지의 기간은 15일이다. 한때 문학청년의 꿈을 품지 않은 사람들이 어디 있으랴. 특히 지금 중년 이상의 인생 선배들은 활자매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6.25전쟁을 거치며 전후세대들에게 소유에 대한 집착을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었던 것 중의 하나가 책을 소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를 살아냈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인생의 쓰라린 좌절과 한탄으로 술고래가 되고, 끽연가가 됐던 사연이 없는 집이 얼마나 있을까. 그 사람들 중에서 술과 담배 대신 책을 샀다면 아마 리어카 몇 대 분량씩은 너끈히 모았을 것이다. 지난 번 소설가 이문열의 중단편집 한 권을 쉬엄쉬엄 읽었고, 짬짬이 동시대의 한수산 작가의 유랑서커스단원들의 떠도는 삶을 담은 「부초」를 읽었다. 울산도서관서 처음 빌린 조선일보의 창간비화에 얽힌 이야기를 담긴 「나는 아침이 두려웠다」를 찬찬히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듯 읽었다. 그 책에서 해방 전후와 전후시대의 시대상황과 현대사에 얽힌 굵직한 정치비사를 엿볼 수 있었다. 한편 저자는 인생의 취미로 사냥과 낚시와 골프를 즐겼고, 나는 그의 가이드로 밤늦은 이슥한 시간에 스릴러처럼 한 장 한 장 음미하며 책장을 넘겨나갔다. 저자가 전문사냥꾼들과 함께 사냥에 나서 몇 시간을 위장막 안에서 전혀 미동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고역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멧돼지 무리들이 시야에 잡혔는데 너무 멀리 있을 때 방아쇠를 당기면 사냥하는 사람이 곤경에 처한다고 한다. 적당한 거리에서 사냥감을 정확하게 조준해야 포획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깜빡 실수로 거대한 멧돼지가 눈앞에 가까이 나타나자 심장이 벌렁거려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마지막 온 힘을 다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래서 멧돼지가 마침내 방향을 틀었다. 나중에 정신을 차려 일행들과 함께 나섰더니 몇 십 미터 떨어진 곳에 장정 두세 배되는 커다란 멧돼지를 발견했다고 한다.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안다. 낯선 환경에 처음 발 디딜 때는 뭔가 어색해서 두리번거리며 살피게 되지만 차차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그처럼 책읽기라는 여행을 통해 혼자만의 고즈넉한 시간을 가지며 각양각색 인생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이 독서하는 사람의 낭만이 아닐까. 이번에는 23살 젊은 나이에 조선일보에 「별들의 고향」을 연재했던 소설가 최인호의 작품을 골라 담아왔다. 별들의 무덤보다 별들의 고향이라고 짓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제목이 바뀌었다는 일화도 전했다. 또 23살 청년작가의 글을 실어도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는 신문사 내부의 걱정도 있었지만 젊은 작가의 참신한 역량을 한번 믿어보자는 모험이 통해서 연재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장호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돼 공전의 히트를 쳤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었다. 갑작스런 폭우를 동반한 소나기에, 난데없는 우박세례와 날카로운 칼싸움하듯 천둥소리가 요란하니 난리가 난줄 알고 애완견은 두 마리가 무서워 벌벌 떨고 있다. 나는 강아지를 달래며 오늘밤 야밤을 틈타 독서여행을 떠나가는 행복한 보헤미안이 될 채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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