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41]천년만에 다시 새겨지는 ‘오수개’ 형상
거창한 오석烏石 기념비 전면에 개犬의 형상<사진>이, 최근 충남 보령의 한 돌집(석재상)에서 새겨지고 있다. 새겨지는 이 개는 바로 1천년 전 호남지역에서 불길 속의 주인을 살리고 죽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의견으로 유명한 ‘오수개’이다. 내가 희한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1천년 전에도 동네주민들이 이 개의 죽음을 기리자고 세운 의견비(충견비)의 전면에 글자 한 자 없이 죽어서 승천하는 개의 형상을 그렸다(새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1천년만에 새로이 새겨지는 개의 형상을 기념비 전면에 새긴다는 것이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또한 두 개의 개 형상이 1천년 전의 승천하는 모양의 개를 제대로 세워놓고 보면, 지금 1천년 후 복원된 개와 거의 100% 흡사하다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냐는 것이다. 물론 1천년 전에 세운 기념비 뒷면에는 비 건립에 기여한 시주자 70여명(현재까지 확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1천년 뒤인 오늘 세우는 비 뒷면에는 30여년 동안 복원과정에서 애쓰고, 앞으로 더욱 애쓸 50여명의 이름을 새기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
아무튼, 이 일은 어찌된 연유일까? 어찌하여 1천년 뒤인 지금 시점에서 비 앞면에 비문이 없이(기념비 제목만 있을 뿐) 개의 형상을 조각하는 ‘개 기념비碑’를 세우는 것일까? 그것은, 지난 30여년 동안 여러 분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생물학적으로 복원에 성공한 ‘오수개’가 지난 6월 30일 유엔 FAO가 운영하는 가축다양성정보시스템(DAD-IS)에 의해 보존·육종해야 할 4품종의 개(오수개, 삽살개, 불개, 풍산개)로 등재됐기 때문인 것이다. DAD-IS는 동물 유전자원의 접근과 이익 공유를 위한 글로벌한 정보공유체계를 갖추고, 동물 유전자원의 보전, 관리 및 활용을 지원하는 국제 시스템. 현재 199개 나라 39축종(畜種) 1만 5,188계통의 정보가 등재돼 있다고 한다. 임실군(군수 심민)과 오수개연구소(운영위원장 심재석)는 '오수개'라는 한국 고유품종의 국제기구 등재를 계기로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부상하는 오수개의 위상과 그 의미(문화적 고찰)를 널리 알리고자, 오는 8월 29일 오수개 기념비를 건립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가상한 일이다. 이보다 더 훌륭한 일이 없을 듯하다.
“저것이 그 유명한 오수의견비여. 세운 지 족히 천년이 넘었을 것이구만”이라는 어느 한촌寒村 촌로村老들의 구전口傳돼 온 말이, 드디어 금석문학자 손환일 박사의 탁본에 의하여, 의견비 건립연대, 즉 간지干支가 확인되는 역사적인 순간의 보고회가 지난해 임실문화원에서 있었다. 머지않아 종합학술대회가 개최돼 건립연대가 공인公認을 받으면, 이 비야말로 세계 최고最古의 비로 세계적인 토픽과 함께 각광을 받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대체 ‘임술년壬戌年’은 서기西記 몇 년이란 말인가? 아직은 정확하게 건립의 해를 찍을 수는 없지만, 1977년 정부에서 펴낸 ‘한국문화유적총람’에서 의견義犬사건 발생의 해를 973년(전거典據 추적중)이라고 적시한 것과 최자의 보한집補閑集이 1234년 펴낸 것을 감안할 때, 973년과 1234년 사이의 ‘임술년’일 것은 틀림없을 터. 촌로들의 구전과 함께 사건(973년)이 일어난 5년 후, 개띠해인 1022년의 임술년으로 추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느 촌민은 돌(비석)을 현물로 시주했으나, 대부분은 십시일반 건립비에 보탰을 것이다. 그러려면 건립시기가그때쯤이라야 맞지 않을까. 물론 1082년이나 그 이후가 아니란 법은 없지만, 그 의견비와 의견묘가 조선초 문인 노석동의 한시로 미뤄 짐작컨대, 그때까지도 현존했다고 볼 수 있다. 언제 매몰됐을 의견비가 1925년 을축대홍수때 오수천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 천변으로 끌어올려졌고, 1939년 현재의 원동산 자리로 옮긴 역사적 사실들도 당시 언론이 분명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천년 전 사건’이네 뭐네 하며 입으로 내려온 의견설화가 실화임이 확실하고, 멸실된 것으로 알려진 오수개의 복원이 이뤄진 역사적인 이 마당에, 유엔기구의 동물자원 보존·관리 품종으로 등재된 것이 어찌 임실군만의 영광이고 임실군만이 경하받아야 할 일인가? 항차 전북자치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자랑이지 않겠는가. 과문의 소치이지만, 무슨 개를 기념한다고 동상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1천 년 전에 인근 군민 대부분이 푼돈을 모아 비 전면에서 개가 죽어 승천하는 모습을 새기고, 뒷면에 시주자 명단 100여명을 새긴 비가 있다는 말은 전세계적으로 ‘듣보잡’이었던 것을. 더구나 1천 년 후인 오늘날 유엔기구에서 동물자원 보호 이용차원으로 그 품종을 등재하여 보존과 관리에 힘을 쓰겠다며 국제시스템에 등재할 줄이 올 때를 그 누가 짐작이나 했을 것인가? 자, 이제, 오수면에서, 임실군에서, 전북자치도에서, 더 나아가 대한민국에서 ‘오수獒樹’라는 조그마한 소읍을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만드는데 박차를 가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만방에 그 역사적 의의를 알려야 할 때가 아닐까? 8월 29일 기념비 제막식, 그날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부기1: 오수개 품종등재기념 심포지엄(8월 29일 오후 3시, 오수반려누리센터 2층)
-오수의 FAO DAD-IS 품종 등재와 자원주권(축산과학원 김승창 박사)
-한국 고대견종과 오수개의 문화적 고찰(대전대 박승규 교수)
-치유 반려동물로서의 오수개 활용방안(원광대 김옥진 교수)
-오수 반려동물 컨텐츠를 활용한 세계화전략(전북대 혁신센터장, 전 KAIST 대외부총장)
부기2: 보령 ‘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석재집을 졸지에 방문하게 된 까닭은, 지난 토요일 오수개연구소 심재석 운영위원장이 “최종 검수를 해야 하는데 같이 갈 사람 손들라”고 단톡방에 올린 카톡 때문이었다. 어렵사리 시간을 쪼개 동참한 것은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이 졸문은 기념비 전면에 새길 ‘오수개’ 형상 밑그림을 바라보며, 원동산의 의견비 전면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면서 든 생각의 일단을 급하게 쓴 것이다. 돌아오는 길, 무창포 횟집에서 2.8kg짜리 농어(시가 68000원)회 한 접시에 지역소주 ‘이제 우린’을 나 혼자 달게 마신 까닭이기도 하다.
부기3: 1천년 전의 임실군민과 1천년 후의 임실군민이 입을 맞춘 듯 ‘개 기념비’를 세우면서 전면에 글자 한 자 없이 개형상만 새기게 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 필연일까? 나는 필연必然에 한 표를 던지리라. ‘오수개’는 우리 임실군민과 오수면민에 있어 과연 무엇일까? 일단은 ‘재밌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난해 탁본조사에서 건물대시주와 많은 시주자 이름(넉 자의 이름이 많았다)은 확인됐으나, 비명碑銘은 넉 자 중 두 자만 확인된 게 너무 애석하지만, 그 수수께끼가 언젠가(조만간 빠른 시일에)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수천변에서 어느날 오수 의견묘의 묘지석이 나온다면 어떨까? 전해 내려오는 <견분곡犬墳曲>의 노랫말이 어디에선가 나타날 수는 없을까?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48]“천년의 침묵” 오수獒樹 의견비義犬碑 - Daum 카페
부기4: ‘2030 세계반려동물산업엑스포’는 과연 임실 하고도 오수 의견테마파크를 중심으로 개최될 수 있을 것인가? 올해로 39회를 기록한 오수의견문화제는 세세년년 임실군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인가? <오수개판가>는 창작판소리로 자리매김되어, 우리 자라나는 후세 세대들의 인성교육의 거울이 될까? 숙제가 참으로 많다. 임중도원任重道遠, 길은 멀고 책임은 무겁고 또 무겁구나.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68] 유튜브로 되새기는 그날의 감흥感興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