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 줍기 / 강영은 비문으로 무성해진 풀 사이 감나무가 꽃을 피웠다 벌과 나비의 말 없는 발, 발 없는 말이 햇살의 펜촉 따라 밑줄 긋는다 바람과 햇빛이 채운 순간의 기록이 엉망이 된다 꽃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오후 늘어진 능소화가 붉은 끈처럼 그늘을 뚫는다 그늘 틈으로 매미의 절창이 쏟아진다 예보 없이 날아든 열대성 저기압이 가지와 잎을 잘못 읽는다 바람이 아니라 손길처럼 시선이 아니라 판결처럼 빗줄기가 풋열매를 떨어뜨린다 끝내 익지 못하고 떨어진 낙과 흩어진 기호들이 발치에 뒹군다 버려진 것도 내 언어의 일부라고 나는 마당에 떨어진 미완의 문장들을 하나씩 주워 든다 그 문장들이 아프다고 여름이 다 가도록 한 계절을 다시 써 내려간다 탈고한 감나무가 붉은 등을 내건다 둥근 발음이다 가을!
— 《사이펀》2026년 여름호 ------------------------------------
* 강영은 시인 1957년 제주 서귀포 출생. 제주교육대학, 방송통신대 국문과 졸업,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석사 2000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최초의 그늘』『풀등, 바다의 등』『마고의 항아리』『상냥한 시론詩論』『너머의 새』『그리운 중력重力 』등 시선집『눈잣나무에 부치는 詩』 에세이『산수국 통신』등.
*************************************************************** 강영은의 시 「문장 줍기」를 읽습니다. 문장을 줍는다는 표현은 비유일진대, 지천에 널리고 깔린 풀과 나무 그리고 벌레와 계절의 변화에서 천변만화하는 존재의 낌새와 소식을 언어로 가늠해 보는 시인의 눈길이 미덥습니다. 언어는 로고스며, 이성이며, 말씀입니다. 경전에도 나오는 로고스는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처럼 현상계에 미치는 절대 세계의 작용으로 봄이 마땅합니다. 그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한다면 시인이 서두에서 말한 “비문으로 무성해진 풀 사이/ 감나무가 꽃을 피웠다”란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성한 풀 사이에 감나무꽃이 피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봅시다.
감나무는 무슨 일로 꽃을 피웠을까요? 이런 어리석은 물음을 던지는 게 다른 까닭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 나무는 왜 이파리를 떨구나, 노을은 하늘빛을 어쩌자고 심란하게 뭉개고 있나, 빗줄기와 강물은 왜 흘러 흘러 바다로 모여드나와 같은 의문도 모두 한통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는 현실계의 모든 형식과 현상은 ‘하나’가 일으킨 마음 자락이 펼치는 프리즘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나는 마당에 떨어진 미완의 문장들을/ 하나씩 주워든다/ 그 문장들이 아프다고/ 여름이 다 가도록/ 한 계절을 다시 써 내려”가는 생각을 불러일으킨 텅 빈 앎을 헤아리다 보면 세상천지 굴러가는 물건들이 건네는 귀엣말쯤 들려오지 않겠는가 싶어요.
말과 사물 사이, 봄과 엿들음 사이, 옴과 한없이 사라지려는 것들 사이에 천천히 일어서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곧 말로 채도彩度를 입히고, 점점이 일어서고 가라앉는 세계가 때때로 무르익거나 공기처럼 가벼워져 우리 사이로 흩날리는 때 어느 문장은 마침표를 찍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문장 줍기」는 울림으로 공명하는 사람과 자연의 통 큰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정훈 (문학평론가) / 《사이펀》 202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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