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2일 묵상 본문 : 호세아 9장 10절 - 17절 - 주와 분리됨을 가장 큰 고통으로 여기고 복음으로 주와 연합되어 살기를 힘쓰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주말의 아침을 시작하며 주의 보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보좌 앞에서만 참 평안과 능력과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 앞에 나아가 참된 것으로 마음을 채우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주의 도우심을 따라 주어진 일을 감당함으로 선한 열매가 맺혀지길 소망합니다.
만나는 자와 교제하는 모든 자에게 생명의 은혜를 전하며 살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은혜와 사랑으로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그들에 대한 기쁨이 광야에서 얻을 수 없는 포도를 보게 된 것 같고 무화과 첫 열매를 본 것처럼 기뻤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바알브올(바알신전이 있던 지역)에게 가서 우상을 섬기고 음행하여 가증한 자들이 되었음을 선언하신다.
11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에브라임의 영광은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의미하고 하나님이 은혜를 거두시고 떠나신 모습을 새의 날아감, 해산, 임신 등으로 표현하면서 생명의 은혜가 사라지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12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혹시나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 있어도 그 자식이 죽게 될 것을 선포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재앙이 임하게 될 것을 선언하신다.
13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의 무역 중심지요 항구 도시였던 두로와 같이 좋은 곳,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셨지만 우상숭배로 인해 자손들이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음을 선포하신다.
14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에 대해 호세아는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상황이 되도록 해달라고 간구한다. 이러한 기도는 재앙의 때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 유익하기에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의미와 생육하고 번성하지 못하는 심판이 임하기를 구하는 2가지 의미를 가진다.
본문은 호세아가 2번째 의미인 하나님의 공의에 의한 심판을 호소한 것에 두 중심을 둔다.
15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길갈은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 장소 중 중요한 거점이었고 이러한 장소를 하나님이 미워하셨으며 그로 인해 부정한 아내를 쫓아내듯 관계를 끊어버리시고 사랑하지 않을 것을 선포하신다.
또한 지도자들이 영적 타락에 앞장섰기에 그들을 반역자와 같이 대우하실 것을 보여주신다.
16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이며 아아를 낳아도 하나님이 그를 죽이실 것이라고 선포하심으로써 12절에서처럼 철저하게 심판하실 것을 보여주신다.
17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은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결과는 여러 나라로 쫓겨나 떠도는 자가 되는 것임을 선포한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포도나무와 열매를 보는 것처럼 특별한 사랑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무화과의 첫 열매와 같이 사랑스러운 존재였음을 말씀하신다.
다른 모든 민족보다 뛰어난 것이 없고 특별한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셨으며 가장 좋은 것으로 그들에게 공급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패역한 일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의 태도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으며 수치를 안겨드리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바알을 함께 섬기는 태도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더욱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못하는 백성들의 모습은 무지와 어리석음 자체였고 무능함의 극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호세아는 그들에게 심판이 임하기를 간구했으며(14절) 철저한 심판이 그들에게 더 큰 유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살았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으며 바알의 제단에서 행해지는 음행을 보고 동참하여 동일한 우상숭배의 모습으로 사는 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에 마음을 두었는지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 달라진 것이다.
오늘날에도 성도가 무엇을 보고 무엇에 마음을 두었는지에 따라 그들의 열매가 달라진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보고 즐기는 것은 결국 세상의 열매를 맺는 자가 된다.
그 안에는 불만과 갈등, 시기와 질투가 있으며 분열과 다툼이 가득하게 된다.
그래서 온전함이 사라지고 연합이 깨지며 서로를 향한 미움과 증오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며 현재 수많은 교회가 성도들 간의 갈등과 다툼으로 인해 고통하며 아파하는 모습이 많은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의 우상을 따르고 쾌락과 음행을 따르는 이스라엘을 떠나시겠다고 선포하셨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과 절망은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이다.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내신 분이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장 큰 고통으로 여기시고 탄식하셨던 분이었다.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5,46)
하나님과의 분리를 가장 큰 고통으로 여기신 주님의 모습은 성도가 무엇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인생의 고통과 절망은 물질의 빈곤이 아니며 사람들로부터의 고립도 아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과 절망은 하나님과의 분리이며 죄와 허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이것을 가장 큰 고통으로 여기는 태도는 그가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가를 보여주는 척도다.
하나님을 아는 수준만큼 하나님과의 분리, 연합되지 못한 아픔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습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에 목숨을 걸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을 아는 것에 무지하기 때문이며 연합됨의 기쁨에 익숙하지 않고 빈약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복음의 은혜를 아는 것은 이러한 연합의 기쁨을 아는 것과 같으며 복음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자가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을 누리는 자가 된다.
반대로 하나님과 분리된 삶의 모습은 비참함과 고통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된다.
들릴라에게 유혹되어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떠난 삼손의 모습은 비참함 자체였다.
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22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삿16:19~22)
비참함과 고통의 삶에 처한 삼손의 모습은 인생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의 머리털이 다시 자라는 것은 심판을 통해 생명의 은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여주며 인생의 참 소망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되는지를 보여준다.
여전히 심판의 대상자와 같은 나의 모습에서도 소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게 하시는 은혜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주와 연합된 자로 설 수 있기를 소망하게 하신다.
주의 지체들도 이러한 주의 연합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로 나아가고 멀리서 이 연합의 기쁨을 증거 하는 파리에서도 동일한 은혜가 풍성하게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북이스라엘의 모습처럼 심판으로 멸망을 당해야 하는 자가 저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심판을 통해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고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복된 손길이라는 사실을 또한 고백합니다.
그 주의 손길을 경험하며 사는 자 되게 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땅의 것에 마음을 두고 눈을 두면 심판의 자리로 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자각하고 깨어 있는 마음을 주셔서 마음과 시선을 주께로 향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참 생명 되시고 능력되심을 알고 주와 연합되기를 소망하며 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주와 연합하는 것에서 실패하는 것을 가장 큰 고통으로 여길 줄 아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마음을 지켜 주 안에 거하기를 힘쓰고 그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얻는 생명의 은혜로 사는 자 되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