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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보현행원(부사모)
 
 
 
카페 게시글
부사모게시판법당 간화선 수행과 대담
날샐뻔 추천 0 조회 62 16.07.15 20:51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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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7.16 09:03

    첫댓글 날샐뻔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녹취라는게 쉬운 일이 아닌데 정확히도 스님의 가르침을 녹취하셨군요. 고맙습니다.
    날샐뻔님이 수고를 해 주셨으니 제가 또 가만 있을 수는 없겠군요. 몇 마디 또 허물을 짓겠습니다._()_

  • 16.07.16 09:06

    적명스님의 짤막한 말씀 속에는 간화선, 그리고 위빠사나의 모든 것이 아주 짧게 요약되어 있습니다. 말씀 하나하나가 모두 핵심 요소입니다. 그래서 수행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 또 수행을 별로 실제 안 해보신 분은 스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 갈 것입니다. 즉, 스님 말씀이 잘 이해가 안 가는 분은 수행을 잘 모르고 수행도 안 해 보신 것으로 스스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절을 했던 화두를 들었던 염불을 했던 위빠나사 등 그 무엇을 얼마나 했던 제대로 하신 분은 스님 말씀을 그대로 알아들으실 수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너무 구름잡는 이야기로 들리실 겁니다. 동영상 보신 분들은 한번 스스로를 비춰 보시기 바랍니다.

  • 16.07.16 09:12

    제가 볼 때 간화선은 대단히 뛰어난 수행법입니다. 종파 중에서 거의 후반기에 출발한 선종이 다른 쟁쟁한 교학 위주의 종파를 제치고 중국불교를 대표하는 종파가 된 건 다 이유가 있지요. 달마의 관심법(관법)이 우선 뛰어났고, 관법이 한계에 이르자 중반에 대혜라는 걸출한 스승님이 나타나시어 시절인연에 맞게 관법위주의 선종을 화두 위주의 선종으로 바꿈으로써 선종은 소멸의 위기를 넘기고 다시 부흥의 계기를 마련했다 할 것입니다. 그만큼 간화선은 뛰어납니다. 해보시면 압니다!

  • 작성자 16.07.16 09:13

    동영상에 자막이 있어서 그대로 적었습니다...^^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서 아직 다 적지를 못했는데 글이 날라갈까봐 일단 임시로 올렸습니다...^^;;

  • 16.07.16 09:17

    그런데 간화선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처음 가르침이 변질되어 말장난 비슷하게 되어갑니다. 아마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중국선사들, 경허 이후의 우리나라 선사들도 제가 보기에 말장난 수준의 간화선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러니 본래는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본래 대혜선사는 간화선을 대중을 위해 만드심) 선이란것이 그만 저멀리 남의일이 되어버리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어요. 하나라도 알아듣게 불법을 설명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중생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설하는것이 자신의 도가 높은걸 증명하는것처럼 되어버린겁니다. 그래서 알아들게 설명하려 하지 않고 어떻게든 못알아듣게 법문 하시는 경향이 있지요. 본말전도지요

  • 16.07.16 09:23

    청정도론은 상좌부불교의 대스승 붓다고사가 지은 것으로, ‘선정’수련(사마타)를 통해 '통찰지(위빠사나)'를 얻게 한 후 청정의 세계로 이끄는 게 목표인 가르침입니다.그 방법으로 붓다고사는 ‘보이는 세계’의 분석, 관찰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궁극의 세계)’로 이끄는 형식을 취해요. 우선 계를 지켜 몸과 마음을 청정한 다음 명상으로 들어가는 데, 까시나라는 것이 그 첫번째로, 우선 땅의 까시나를 만듦으로써 근접삼매에 들어갑니다. 보이는 세계인 땅을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 삼고 관찰함으로써 보이는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땅의 까시나를 닦은 후 다시 다른 기타 까시나로 들어갑니다.

  • 16.07.16 09:26

    수행을 하면, 아니 이 세상 무슨 일을 하든 정말 내가 원하는 일, 그리고 온 심혈을 기울여 일을 하면 희열이 옵니다. 기쁨이 오는 것이지요. 이걸 불교에서는 법락이라고 하는데, 이 기쁨은 수행에서만 오는 게 아닙니다. 일체 중생이 일체 세상일에서 와요. 그걸 불교에서는 樂이라 하지만 일반 언어로는 <즐거움>입니다. 열반종요엔지 승만경인지 어디에선가에는 우리가 성불하는 건 결국 중생에게 본래로 존재하는 <즐거움에 대한 추구> 때문이라고 설명해요. 그만큼 즐거움은 중요한 겁니다.

  • 16.07.16 09:30

    <즐거움,진화가준최고의선물(조너선밸컴/노태복/도솔출판사/2008)>이란 책을 보면, 동물에겐 모두 즐거움이 있고 이 즐거움이야말로 진화의 원동력(因)이요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果)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들면 모든 동물은 놀이를 즐기는데, 이런 놀면 즐겁고 이런 즐거움이 있기에 이를 추구하기에 진화가 일어나고 또 진화가 일어나면 보상으로 즐거움이 온다고 저자는 주장해요. 이건 앞서 제가 말씀드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락에의 추구가 중생을 성불케 한다>는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지요. 언어만 다를 뿐입니다.

  • 16.07.16 09:31

    그래서 수행하면 즐겁다, 수행맛을 알면 수행 안하곤 못 배긴다, 하며 수행만을 강조하는 일부 수행자의 가르침을 제가 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기독교나 이슬람인들이 신을 믿으면 즐겁다, 기쁨이 온다 등등으로 마치 그런 기쁨이 믿는 자의 전유물인줄 아는 것이 어리석게 보이기도 하는 이유지요. 또 수행해서 오는 법열을 그것만이 전부이고 자기 수행만이 그런 법열을 가져오는 줄 아는 것도 우습게 보는 이유에요. 그리고 법열을 마치 수행의 끝인 줄 아는 분들도 마찬가지.

  • 16.07.16 09:34

    염불하는 이놈이 누군가?하고 참구하는 걸 <염불선>이라 합니다. 이런 염불선은 또 실상관, 또는 실상염불로서, <이 세상 천지만물이 부처 아닌 것이 없다>라며 부처 아닌 것이 없는 그 자리를 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부 간화선자들은 염불선은 선이 아니라고도 말하지요. 그러나 간화선만이 선은 아닙니다. 요즘 간화선자들은 기독교인들을 닮아 가고 있어요. 입만 떼면 간화선만이 최고라 하고 간화선 아니면 깨닫지 못한다는 극단적인 말도 서슴지 않지요. 우리가 흔히 기독교인들에게 보는 교만함, 배타적 사고가 간화선자들에게 팽배합니다. 다 우스운 일이지요. 대혜스님은 전혀 그러시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 16.07.16 09:37

    간화선 창시자 대혜스님의 대표작, <서장>을 읽어보면 스님이 얼마나 중생을 사랑하고 얼마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시고자 했는지, 그 간절하고 애틋한 마음이 글 하나나하나에 스며 있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스님의 애틋한 마음이 실려 있습니다. 거기엔 교만, 배타적 태도, 이런 거 전혀 없어요. 보현행원 공부가 익은 분들은 대혜스님의 모습이 바로 보현행자요 스님의 가르침이 바로 보현행원적 가르침임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대혜스님도 보현행원은 인연이 없어셔서인지, 거기 대한 언급은 없어요. 저같은 사람이 행원 전법에 힘든 이유도 이런 이유가 큽니다. 한 말씀만 일러 놓으셔도 되는데 말이죠.

  • 16.07.16 09:40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니다. 댓글도 힘드네요. 어쨌든 간화선은 뛰어난 수행법이고,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 불교를 대중을 위한 보편불교, 일반불교로 바꿔 놓은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특별한 분들이 특별히 하는 가르침이 그만 되어 버렸지요. 간화선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부처될 수 있고 누구나 깨칠 수 있게 하기 위해 나온 가르침입니다. 우리 불자님들도 간화선 공부도 꼭 해보시기 바랍니다. 단, 깨칠려고 하지 말고 부처님 공양 중생 공양 잘하기 위해 하세요!

  • 작성자 16.07.16 15:59

    네에... 소중한 댓글 너무 고맙습니다 ^^ _()_

  • 작성자 16.07.16 16:12

    동영상을 볼때는 뭔가를 아는듯한 착각에 빠졌었는데요....
    이렇게 글로 다시 써보니 아주 일부만 이해를 하고 있더군요 ^^

    보현행원의 열번째 발원인 나의 공덕을 모두 회향하는 글을 읽을때는 사실 아직 마음이(?) 공허한 느낌이 듭니다.
    특히 '중생들이 스스로 지은 악업 때문에 겪게되는 모든 고통을 제가 대신 받는다' 부분은 읽으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지은 업장의 참회도 힘든데 다른 사람의 업장을 내가 받아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물론, 그때 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속으로 계속 외치지만요...

    계속해서 열심히 하면 벗어날수 있겠죠...^^

  • 16.07.20 13:57

    날쌜뻔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법문을 또 글로도 반복 읽고 , 보현선생님 법문 까지 들었습니다.
    긴글 올리시는라 수고 많으셨어요.^^
    나무마하반야바라밀
    _()()()_

  • 16.07.22 12:19

    녹취를 해본 분들은 이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작업인지 모두 공감하실 수 있을거에요. 날샐뻔님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한번더 복습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종교가 시간이 흐를수록 창시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가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로 제 생각엔 예수님의 의도와는 다른 형태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오류가 불교라고 없을까요? 없다고 믿는 것이 오류의 시작일 듯도 합니다.
    대혜 스님의 애틋한 방편이 화두선이라는 수승한 방법을 낳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또 하나의 대중과 괴리된 수행법이 되어버렸다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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