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오늘 복생캠프 3일째입니다.
어제 캠프를 마치고 무지 피곤한 몸으로 30분 정도 드라이브하며 파리 야경을 보았습니다.
파리에 왔어도 머무는 동네 한바퀴 돌아볼 여유가 없으니 파리 지체가 안타까워 강권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생명의 기쁨이 샘솟는 시간은 파리 구경보다 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런 저희들의 마음을 주관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더 큰 은혜로 파리 캠프를 마무리하게 하옵소서.
파리 지체들이 주님과 생명의 교제를 함으로 영생의 삶을 힘있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후에는 비행기 타고 뚤루즈로 이동합니다.
그곳에서 현지인과 마다가스카르인과 한국인을 대상으로 캠프를 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뚤루즈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사모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자기주장의지를 십자가 못 박습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부정성의 옷을 벗어버리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실 때 주님과 함께 기쁨의 춤을 추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11.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 가리니 해산하는 것이나 아이 배는 것이나 임신하는 것이 없으리라
12. 혹 그들이 자식을 기를지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떠나는 때에는 그들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13.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로다
14. 여호와여 그들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 하나이까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15.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16. 에브라임은 매를 맞아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나니 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17.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 그들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떠도는 자가 되리라
(본문 주해)
10절 : 하나님께서는 사막에서 열린 포도송이를 발견하듯 이스라엘을 발견하셨고, 무화과나무의 첫 열매처럼 그들의 조상들을 대하셨다는 것은 출애굽 구원에 이어 체결된 시내산 언약을 상기하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언약을 맺은 후 이내 말씀에 불순종하여 언약을 깨뜨리고 만다.
그것은 바알브올에서 우상에게 몸을 바친 일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고 모압 신을 섬긴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따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헌신하여야 할 텐데 오히려 우상에게 몸을 바치는 것이다. 그래서 우상과 같이 가증하여진 것이다.
11~12절 : 하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 명예는 이들이 말씀에 순종하여 언약 안에 거할 때에만 유효하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이 주신 명예는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그들은 아이를 낳지도 못하고 잉태하지도 못할 것이다. 설령 살아남아 양육하는 아들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없애버리실 것이다.
13~14절 : 심판받는 이스라엘에 대한 호세아 선지자의 탄식과 간구이다.
이스라엘(에브라임)은 두로와 같이 아름다운 곳에 심겨졌으나, 결국 그 자식들을 살육자에게 보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 에브라임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자궁과 말라붙은 젖가슴을 달라고 구한다. 왜냐하면, 자식들을 죽음에 넘겨주는 이스라엘의 운명이라면, 차라리 자식들이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 백성의 끔찍한 운명을 목도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선지자의 고통이다.
15~16절 : 그러나 이 선지자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심판이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온 직후 애굽의 수치를 굴러버린 장소요, 제단을 쌓은 곳이다(수4:19~24). 또 초대 왕 사울이 왕이 된 곳이다(삼상11:14).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온 시작부터, 그리고 왕정시대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언약을 깨뜨린 것이다.
그래서 ‘내 집’(하나님의 집)에서 쫓아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이란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는 것을 말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서 쫓아내어 버리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방 나라로 쫓겨나 흩어지는 심판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BC.721년),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BC.586년) 멸망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사랑하는 자식들을 죽이리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이 정도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자리에 이른 것이다.
17절 :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니, 나의 하나님이 백성을 버리실 것이다. 그 백성은 만민 사이에서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다.”(새번역)
불순종한 백성들의 운명을 개탄하는 호세아의 탄식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 떠나버리시면 이렇게 돼버린다는 것이다.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포도송이를 본 듯, 제 철에 막 익은 무화과의 첫 열매를 본 듯 그렇게 나를 찾아와 주시고 만나주신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주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나를 찾아와 주신 것이다.
나 스스로가 복음을 애타게 듣고 싶어한 적도 없었는데, 그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하나님 앞에서 죽어 마땅한 자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었다.
이 생명은 창세전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의 생명을 내게 주신 것이니, 나는 거듭난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를 누림은 더 이상 땅의 것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위의 것을 구하고 찾는 자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3:1~2)
이 땅에서 위의 것을 구하며 찾는 삶은 녹록치 않다.
그것은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라도 여전히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언제나 죄의 세력은 유혹과 협박에 노출되어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이스라엘의 악한 본성이 내게도 있어 그 유혹과 협박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반응하는지.....
그러나 내게는 복음이 있다.
매일 주어지는 그 생명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붙들게 된다.
바로 죄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는 십자가에 연합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십자가 보혈은 나의 구원에만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의 삶을 주님께 정결한 것으로 드려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탐심과 나의 주장의지와 부정성을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주님께 연합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내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요, 이스라엘의 버림받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시리니”(17a절)
포도송이처럼, 무화과 열매처럼 반겨 만나주시는 주님의 말씀에 오늘도 귀 기울인다.
(묵상 기도)
주님,
매일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주님을 배신하는 악한 죄의 본성이 제게도 있음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에 연합됨으로 죄의 세력을 무력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