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3일(주)
* 시작 기도
(골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주님...
흑암의 권세 아래 있던 우리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의 생명을 얻었고 그 생명으로 오늘도 살아갑니다.
그 생명은 땅의 것이 아니라 위 곧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이 종은 육신의 소욕이 너무 커서 자꾸만 땅의 것에 눈자락이 향하려 합니다.
아들의 생명은 얻었으나 여전히 죄인된 자의 본성을 끊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주님께 간구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다시 한 번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옵소서.
첫 창조를 넘어 새 창조의 생명으로 이 하루를 살게 하소서.
예수님 때문에 오늘을 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호 10:1-15
제목 : 너희 묵은 땅 곧 심령을 기경하라.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2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3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4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독초 같으리로다.
5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6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7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8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9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10 내가 원하는 때에 그들을 징계하리니 그들이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그들을 치리라.
11 에브라임은 마치 길들인 암소 같아서 곡식 밟기를 좋아하나 내가 그의 아름다운 목에 멍에를 메우고 에브라임 위에 사람을 태우리니 유다가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뜨리리라.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는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13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14 그러므로 너희 백성 중에 요란함이 일어나며 네 산성들이 다 무너지되 살만이 전쟁의 날에 벧아벨을 무너뜨린 것 같이 될 것이라. 그 때에 어머니와 자식이 함께 부서졌도다.
15 너희의 큰 악으로 말미암아 벧엘이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왕이 새벽에 정녕 망하리로다.
* 나의 묵상
무성한 포도나무와 같은 이스라엘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맺을수록 우상에게 더 많은 제물을 바치고 땅이 아름답고 번영할수록 신상을 더 많이 세우며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두 마음을 품어 하나님과 우상을 섬기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너무나 가슴 아파 하신다.
그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인데 그들이 만든 제단을 부수고 세운 주상들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은 결국 타락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부패한다.
심지어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인 벧엘에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섬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우상을 부수면 결국 그들은 그로 인하여 슬퍼하며 제사장들도 그 영광을 잃어버리고 슬퍼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성한 포도나무가 열매를 많이 맺은 이스라엘과 같은 자이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은혜가 너무도 크며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우상으로 삼아버렸으며 우상을 섬기는 제물로 만들어 버린 자이다.
주님이 주신 그 은혜가 너무 크기에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주의 일에 매진하고자 목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면서도 나는 하나님과 맘몬을 섬기는 두 마음을 품은 자가 되고 말았다.
이런 자를 주님께서는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하시는데 내가 꼭 그런 자가 된 것이다.
(약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심판하시겠다고 하신다.
특히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벧엘을 우상의 전각지기로 만들어버린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안에서 세상을 사랑하여 간음하는 모습은 남편 호세아를 떠나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고멜과 다름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 그것을 끊지 못한다.
그래서 주의 심판이 필요하다.
끊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주님 앞에 범죄한 나는 주의 심판을 통하여 공의를 세워야 하며 주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여 날마다 주의 보혈로 씻는 자가 아니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사랑하는 아내가 자기의 품을 떠나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힘들어 하실까를 생각하면 내 가슴이 터지고 찢어질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내가 그런 두 마음을 품은 아내의 모습이라니...
성도들에게 내뱉는 말은 그럴 듯하여 그들의 귀를 부드럽게 하지만, 내 마음의 밭에는 독초가 자라 나를 점점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나만 아니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먹는 양들도 함께 죽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스라엘이 우상으로 섬기던 송이지는 이방 나라에 옮겨져 예물로 드려진다.
그것은 곧 그 나라에 수치를 당할 뿐 아니라, 자기들이 행하던 일들로 인하여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이 금세 사라지는 것처럼 멸망당할 것이며 그들이 섬기던 제단은 황폐하여 그 자리에 찔레와 가시가 돋아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산을 보고 자기들을 가려달라고 하며 작은 산을 보고 자기들 위에 무너져 수치를 가려달라고 할 것이다.
나는 주를 섬기면서도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가리려고 온갖 무화과 옷으로 치장을 하는 자였다.
그런데 아담이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은 히브리어로 ‘학고레’라 하여 가느다란 벨트에 불과한 것이다.
그 벨트로 부끄러움과 비참함을 가리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은 더 비참해지며 그야말로 꼴불견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나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임을 고백한다.
나는 가린다고 가리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비참해져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그런 자가 되고 만 것이다.
주님의 심판은 그들을 죽이기 위한 진멸이 아니기에 하나님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들을 징계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그 이스라엘을 보시면서 회개를 촉구하신다.
(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오늘 이 말씀이 나를 향하신 주의 엄중하신 말씀임을 깨달아 내 육의 심비에 새기기를 원한다.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기 위하여 나의 묵은 땅을 기경하여야 한다.
묵은 땅,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버린 땅을 파헤치고 돌멩이를 걷어내고, 독초나 나무뿌리를 뽑아내서 부드러운 땅으로 만드는 일은 고난이고 심판과 같은 고통이다.
그러나 그 일이 없으면 결코 좋은 밭이 될 수 없다.
내 속에 있는 묵은 마음을 기경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는 것이 곧 여호와 하나님을 찾는 때이다.
그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공의를 세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과 분리되었던 나를 다시금 심판을 통하여 연합하게 하는 주의 은혜의 손길이다.
비록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내가 살 길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연합은 곧 죄와의 분리이다.
죄와 분리되고 하나님 편에 서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다.
이 심판이 내 마음을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게 한다.
심장이 끊어지는 고통이 지금 나를 휘감는다.
그 고통은 육신의 아픔이 아니라 나의 죄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죄로 인한 고통은 남들에게 말할 수 없으나 주님은 아시기에 더 큰 고통이다.
이런 나는 주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주님께서 세우신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은혜임을 안다.
(롬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데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차라리 주님이 놓으신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에 걸려 넘어지면 세상에서는 우스운 꼴이 되며 비참해질지라도 정작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믿는 자의 궁극은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항상 주님 앞에 서 있는 자의 모습으로 오늘 이 시간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자비와 인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거치는 반석에 걸려 넘어지지만 그곳에서 다시 일으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가히 크고 엄청나다.
나도 나를 용납할 수 없는 실로 엄청난 죄인이지만, 그런 나를 지금까지 인내하시고 용납하여 주심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티끌과 재 가운데 앉아 마음의 옷을 찢으며 주의 심판을 받아들여 주님 안으로 들어갈 뿐이다.
주님과의 연합!
그것은 내 안에 주님의 생명이 있음이요, 오늘도 그 생명으로 살아감을 의미한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내 안에 고통과 아픔이 있지만, 그 아픔은 주님의 아픔이 그대로 내 안에 이입된 것임을 안다.
나의 아픔이 곧 주님의 아픔이요, 주님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다.
그러나 이 아픔은 결코 슬픔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요 영원한 기쁨을 위한 주님의 사랑의 결정체이다.
나는 이 마음을 내 안에 고이 간직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없어지고 오직 주님만 내 안에 부요하기를 원한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인애를 내 온 몸에 느낀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이 시간 높이 찬양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감히 주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더러운 입이지만 이 시간 주의 보혈로 씻음받은 나는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주님의 영광으로 크로노스의 시간을 틈입하여 나를 찾아오신 그 은혜는 나의 영광이 되어 다시 주님께 올려 드리나이다.
더럽고 추하며 비참한 나의 모습을 가렸던 무화과 옷을 이제 벗나이다.
주의 은혜의 걸림돌이 나를 살렸사오니 주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리나이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며 오직 내 안에 영원히 거하여 나를 품으소서.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 거하여 아버지 안에 온전히 거하기를 원합니다.
내 영을 받으소서.
높임을 받으소서.
주는 나의 전부이오니 오직 주의 말씀이 나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