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과 한국 학생운동이 동일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모두가 한총련 진군가를 부르고 한총련 출범식에 참가하고, 학생회 선거 시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한총련에 대하여 평가하였다. 한총련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 역시 한총련에 대한 공동의 책임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중운동적 원칙에 입각한 치열한 고민들이었음은 물론이었다. 대중에 의해, 투쟁을 통해 합의되고 창출된 학생대중권력의 표상으로서 한총련은 한국 학생운동의 동의어,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총련은 96년 연세대 사태, 그리고 97년 출범식 과정에서의 두 청년의 죽음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면서 언론과 정권의 마녀사냥식 표적이 되고 말았고 이는 한총련의 위기, 즉 학생운동의 위기를 초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한총련의 위기를 초래하는 촉매제였지 그 근본원인은 한총련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몰계급적 사상이었다.
몰정세적, 몰계급적 사상을 가지고 외치는 한총련의 통일운동은 학우들 그리고 민중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반민주/민주의 대립구조였던 과거에서 한총련이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이바지했슴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민주/민주의 대립구조에서 자본/노동의 대립구조로 변화한 지금의 현실에서 한총련은 민중의 새시대를 향한 한국학생운동의 미래가 될 수 없는 듯하다.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캐리어사내하청·한국통신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시장의 유연화, 즉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 민중에 대한 자본의 착취가 가속화되는 시대적 상황에서도 자주, 민주, 통일을 외치는 한총련은 6.15남북공동성명 이행 및 지지관철을 자신의 핵심과제로 삼고 9기 한총련 출범식(6월 2∼3일, 한양대)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시기에 통일이라는 것은 의약분업, 의료보험재정파탄, 대우자동차·캐리어사내하청노조 폭력진압, 경제침체 등으로 위기에 몰린 김대중정권이 자신의 위기 탈출의 마지막 비상구를 만드는 것을 돕는 것이다. 김대중정권의 반민중적 본질이 이미 들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안겨다줄 대통령이라는 환상에 빠져있는 한총련은 노동자민중이 그토록 외치는 김대중정권퇴진의 구호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한총련은 한국학생운동의 대표체일 수 없다.
몇해전부터 이러한 비판을 받아온 한총련은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였고 결국 또 다른 학생회연대체의 건설은 필연적인 임무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연 것이 바로 전학협이다.
2001년, 자본의 시대, 자본의 급속한 팽창과 무한 가치증식을 위한 신자유주의 질서재편 속에 민중의 삶은 변치않고 소수의 착취의 자유만이 역사를 동여매고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 이러한 자본의 반세기를 넘어 민중의 새시대를 향한 학생운동의 복수연대체 시대를 연 전학협은 이제 그 출범 세돌을 맞고 있다. 자본의 폭력에 반대하고 보편적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전학협은 반자본의 기본적 정체성 하에서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이윤추구만을 위해 질주하는 자본의 폭거에 대항하는 모든 제 민중들과 함께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조직이 될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민중의 정치, 노동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민중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것을 그 정신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정신은 지난 추운 겨울, 방학을 헌납하며 연대한 대우자동차 투쟁을 전국적 투쟁으로 만들어냈으며 또한 한국통신·캐리어비정규직 철폐투쟁을 선두에서 연대하고 있다. 이 모든 모순의 근원인 신자유주의를 막아내는 투쟁은 김대중정권퇴진 투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이에 3기 전학협은 김대중정권퇴진의 기치아래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점철된 한국사회, 이제 전학협의 이름으로 절망과 굴레의 역사를 넘어 노동자민중이 주인으로 서는 새 세상을 향한 제3기 전학협의 힘찬 진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