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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봉래산 정상에 있는 별마로 천문대 입니다, 천문대 바로 옆에는 페러그라이딩 활공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활공을 하면, 영월 동강변 둔치에 대개들 착륙을 합니다,
드디어 가을, 선선해지며, 일교차( 日較差 )가, 심( 深 )하여 진다는, 예보( 豫報 )가 나오기 무섭게, 보건소( 保健所 )에서, 2018년 어르신 독감( 毒感 : 인플루엔자 ) 예방 주사( 豫防注射 ) 접종( 接種 )하시라고, 병원( 病院 ), 의원( 醫院 ) 명단( 名單 )과 함께 통보( 通報 )가 날라 왔다, 매년( 每年 ) 통보( 通報 )되는 연례행사( 年例行事 ), 한 해( 一年 )가 지났음을, 알리는 저녁 종소리, 한 해, 한 해, 늙어 간다는, 관청( 官廳 )의 낙인( 烙印 ), 내 나이가 몇 인데, 하는 작은 안위( 安慰 )를 하여 보지만, 역시 내 몸속의 세포( 細胞 )들은, 물기를 잃고 시들어 간다는, 세월( 歲月 )의 경고장( 警告狀 ), 나라에 대해서는, 고맙기는 하나, 서글픈 통보( 通報 )장, 마음이 영 개운하지가 않은 것은, 나 혼자 만의, 깊은 속을 들어 내는, 독백( 獨白 )일 가,
무더운 더위가, 여름을 알리더니, 늦은, 10월 태풍( 颱風 : 콩레이 )이 남부지방( 南部地方 ) 일부( 一部 )를 거처서 지나갑니다, 월요일( 月曜日 )인 10월 8일에는, 전형적( 典型的 )인, 한국( 韓國 )의, 가을 날씨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미루어 두었던, “ 주왕지맥, 세종장->분덕재->삼옥재->봉래산->영월역 ” 구간( 區間 )을 산행하기 위하여, 밤 열차( 列車 )를 타고, 아름다운 산의 고장, 영월로 달려갑니다,
이번 산행은, 영월읍과, 영월군 북면( 北面 ) 마차리( 磨磋里 )를, 이어 주는 분덕재( 分德峙 )에서 시작( 始作 )하여, 주왕지맥 산( 山 )길을 조금 걸은 후, 655.0봉에서 갈라 저 나와, 능선( 稜線 ) 길을 따라 오다가, 삼옥( 三玉 )재를 거처, 봉래산( 蓬萊山 ) 장상( 頂上 )으로 올라간 후, 내려와 금강정( 錦江亭 ) 주변( 周邊 )의 금강공원( 錦江公園 )을 둘러보고, 영월역에서 산행을 마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해발( 海拔 ) 높이가 가장 높은, 봉래산에는, 단종( 端宗 )의 슬픈 역사( 歷史 )가 살아 숨 쉬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國土地理情報院 )에서 발간( 發刊 )한, 한국의 지명( 地名 ) 유래집( 由來集 ), 중부편( 中部篇 ), 영월군 604-605 페이지에는, 봉래산을 다음과 같이 기록( 記錄 )을 하고 있습니다, 내용( 內容 ) 중, 일부( 一部 )를 발취( 拔取 )하여 보면,
봉래산( 蓬萊山 ) : 영월군( 寧越郡 )의, 영월읍( 寧越邑 ) 영흥리( 永興里 )와, 삼옥리( 三玉里 )사이에, 있는, 해발 높이 799( m )인 산으로, 영월읍의 북동( 北東 )쪽에 있습니다, 봉래산은, 사육신( 死六臣 )의 한 사람인, 성삼문( 成三問 )이, 단종 복위( 復位 )에 실패( 失敗 ) 한 후, 처형장( 處刑場 )으로 끌려가면서, 읆은 시조( 時調 )에, 나오는 산으로 도, 유명( 有明 )합니다, 또 영월팔경( 寧越八景 )의 하나인, 봉래채운 ( 蓬萊彩雲 )은, 봉래산 기슭을 휘감아 도는 운무( 雲霧 )모습을 말 하는 것입니다, 봉래산 아래로는, 어라연( 魚羅淵 )을 거처, 흘러온, 동강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봉래산 아래 동강변( 東江邊 )에 있는, 금강정( 錦江亭 )과 낙화암은( 落花巖 ), 단종애사( 端宗哀史 )를 고이 간직한, 장소( 場所 )이기도 합니다, 봉래산 기슭인 속골에는, 송산사( 松山寺 )라는 절이 있습니다, 이 절이 있는 곳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절 이름을 송산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일본 강점기 시절, 영월의 신사( 神社 )를 관리하던, 일본인 후쿠다가, 봉래산에다 쇠못을 박아, 영월의 혈( 穴 )을 끊기도 하였습니다,
금강정은 낙화암 위에 위치( 位置 )한 정자( 亭子 )로, 아래로는, 유유히 흐르는 동강이 있고, 그 앞 쪽으로는, 계족산( 鷄足山 )과 태화산( 太華山 )이, 그림 같이 펼 처 저 있습니다, 금강정은, 1428년( 세종 10 )에, 김 복항( 金 福恒 )이 금강정을 지었다고 하나, 영월제영( 寧越題詠 )에 의하면, 장정공( 莊靖公 ) 이무( 李堥 )가, 영월 군수( 郡守 )로 있을 때, 동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사재( 私財 )를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춘천으로 가던 중, 금강정에 들러 지은 것으로 보이는, 「금강정」이라는 시( 詩 )도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한편, 우암 송시열( 宋時烈 )도, 1684년( 숙종 10 )에 금강정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 금강정기( 錦江亭記 ) ”를 썼다고 합니다, 건축양식은, 앞면 4칸, 옆면 3칸의 익공계( 翼工系 )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입니다, 정자의 바닥은, 우물마루이며, 출입하는 칸을 제외한 나머지 칸에는, 머름이 둘러져 있습니다. 정자 안에는, 이승만( 李承晩 ) 전 대통령의 친필인, “ 금강정( 錦江亭 ) ”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김복항( 金復恒 )이, 금강정을 지은 이후, 군수 이야중( 李野重 )이, 무너져 버린 금강정을 다시 짓고, 1792년( 정조16년 )에 부사 박기정( 朴基正 )이, 중수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1969년과, 1976년에 단청을 다시 칠하는 등의 부분 보수를 하였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 금강정( 錦江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낙화암은, 단종임금이 억울하게 승하( 昇遐 ) 하신 후, 임금을 모시던 궁녀( 宮女 ), 관비( 官婢 ), 궁비( 宮婢 ), 무녀( 巫女 ) 6명과, 시종( 侍從 ) 1명이 통곡( 慟哭 )을 하며, 치마를 뒤집어쓰고, 동강으로 떨어져, 순절( 殉節 )한 장소( 場所 )로, 낙화암( 落花巖 )이라는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금강정의 뒤쪽에는 순절한 분들의 혼을 모시는 민충사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계유정란( 癸酉靖難 )은, 단종의 숙부( 叔父 : 삼촌 )인, 수양대군( 世祖 : 首陽大君 )이, 어린 나이에 왕위( 王位 )를 물려받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 簒奪 )하기 위하여 일으킨 정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란에 반대하는 여러 사람들을, 살생부( 殺生簿 )를 만들어 주살( 誅殺 )하였습니다,
사육신( 死六臣 )은, 단종의 왕위 찬탈에 불복( 不服 )하여, 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모반( 謀反 ) 협의( 協議 )로 처형( 處刑 )되거나 목숨을 끓은 사람 70명 중, 6분을 말합니다, 그분들의 함자( 銜字 )는 성삼문( 成三問 ), 박팽년( 朴彭年 ), 하위지( 河緯地 ), 이개( 李塏 ), 유성원( 柳誠源 ), 유응부( 兪應孚 )입니다, 이 분들 중에 성삼문의 절명 시 2수를 실어 드립니다,
봉래산가( 蓬萊山歌 )로 불려지는 성삼문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몸이 주거 가서 무어시 될꼬하니
蓬萊山( 봉래산 ) 第一峰( 제일봉 )에 落落長松( 낙낙장송 )되야 이셔
白雪( 백설 )이 滿乾坤( 만건곤 )할 제 獨也靑靑( 독야청청 )하리라
《청구영언》 표기법을 따랐으나 부득이한 것은 현대어로 바꾸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 한국고전》)
다른 절명 시 하나,
擊鼓催人命( 격고최일명 )
回頭日欲斜( 회두일욕사 )
黃泉無一店( 황천무일점 )
今夜宿誰家( 금야숙수가 )
둥둥둥 북을 쳐 사람 목숨 재촉하는데,
머리 돌려 돌아보니 해는 이미 기울었네,
황천길에는 주막이 하나도 없는데,
오늘밤 뉘집에서 자고 갈거나,
금강정이 있는, 금강공원, 여러 개의 비( 碑 )가, 도열( 堵列 )하 듯, 서 있는데, 난고( 蘭皐 ) 김 병연( 金炳淵 : 흔히 부르는 함자로는 방랑시인 김 삿갓 ) 어른의 비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비( 詩碑 )에는, “ 개다리 소반에 죽 한 그릇 ”이라는 한시( 漢詩 )가 적혀있습니다, 이 시가 탄생( 誕生 )한 배경( 背景 )에는, 당시 가난한, 서민( 庶民 )들의, 정서( 情緖 )가 농축( 濃縮 )되어 있어, 더욱 가슴에 와 닫는 듯합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 가지고 오는, 변 서방이라는 나무 꾼 에게, 삿갓 어른이 절을 찾아 가는데, 길을 모르니 절이 어디에 있는 지 물어 봅니다, 변 서방은 절을 찾아 가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누추( 陋醜 )하지만, 저의 집에 묵어 가시라고 권 합니다, 산기슭에 있는, 한 칸짜리 작은 움막, 방 한 복판에는 화로( 火爐 ) 하나가 있고, 마누라도 없는 모양새, 화로에는 불씨마저 꺼 저, 방은 싸늘하기 그 지 없습니다, 화로인 즉 슨, 커다란 통나무 뿌리를 캐어다가 모양 없이 잘라서 만든 것입니다, 그 모양이 호랑이 대가리( 머리 ) 같기도 하고, 고래가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합니다, 이 괴상( 怪狀 )하게 생긴 화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삿갓 어른, 빙그레 웃고 나서 즉흥시( 卽興詩 ) 한 수를 읊어 봅니다,
頭似虎豹口似鯨( 머리는 호랑이요 입모양은 고래지만 )
詳看非虎亦非鯨( 자세히 바라보니 이도 저도 아니로다 )
若使雇人能盛火( 머슴을 시켜 불이라도 활활 피워 놓으면 )
可煮虎頭可煮鯨( 호랑이도 고래도 능히 구워 먹겠구나 )
시를 읊고 있는데, 변 서방이, 저녁이라고 들고 들어 온 것이, 삶은 감자 반 바가지뿐입니다, 변 서방은 언제나 이런 식사를 하지만, 손님 대접이 소홀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미안해합니다,
다음 날 아침, 점심을 겸해서 먹을 것인 지, 해가 중천( 中天 )에 떠서야, 햇볕이 잘 드는, 토방에 멍석을 깔고, 어두침침한 방보다는, 햇볕 쪼이는, 이곳이 낫다고 하며, 아침을 잡수시라고 부른다. 나가 보니, 개다리소반에 죽 한 그릇이, 덩그렇게 놓여 있는데, 그 죽이라는 것이, 어찌나 묽은지, 하늘에 뜬, 구름의 그림자가, 훤히 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손님 대접( 待接 )을 하려고, 쌀 한 줌을 어렵게 구하여, 죽을 쑤어 내어 왔습니다, 미안해하는, 주인과, 마주앉아, 맹물과 다름없는, 멀건 죽을 마시면서, 시 한 수를 다시 읊어 봅니다,
四脚松盤粥一盃( 네 다리 소반에 죽 한 그릇 )
天光雲影共徘徊( 하늘빛 구름그림자가 함께 비치네 )
主人莫道無顔色( 주인양반 조금도 무안해 할 것 없소 )
吾愛靑山倒水來( 내 본시 물에 거꾸로 비친 산 그림자를 좋아한다오 )
1 산행년월일시 :
2018년 10월 8일 월요일 구름 많음 20/7(도) 미세먼지 : 좋음
2 산행지 가는길 :
노원역 : 4호선->창동역 : 1호선->청량리역 하차->청량리 역사( 驛舍 )로 이동->
2 산행지 가는길 :
2018년 10월 7일, 일요일, 23시 20, 정동진행 야간열차에 승차( 특실 : 일반석 : 경로우대 : 8,000원 )->2918년 10월 8일, 월요일, 01 : 43분 영월( 寧越 )역 하차->영월역 근처에 있는 세종장 모텔에서 취침->04시 30분 일어나서->아침식사->세종장 출발->GPS ON, 산행시작
3 집으로 오는 길 :
봉래산을 내려와, 열차( 列車 ) 탑승( 搭乘 ) 시간( 時間 )이 충분( 充分 )하여, 금강정( 錦江亭 ) 부근( 附近 )에 있는 금강공원( 錦江公園 )에 도착( 到着 ), 금강정 정자 건물과 낙화암을 둘러 본 후,
제 17차, 대한민국( 大韓民國 ) 남극( 南極 ) 세종기지( 世宗基地 ) 과학 연구단( 科學 硏究團 )월동 대( 越冬 隊 ) 대원( 隊員 : 지구 물리 연구원 : 地球 物理 硏究員 )으로 근무( 勤務 ) 중( 中 ), 2003년 12월 6일( 현지 : 現地 : 날짜 ), 연구 활동( 活動 )을 마치고, 세종기지로 귀환( 歸還 )을 하던 중, 실종( 失踪 )이 된, 동료( 同僚 ) 월동대원 3 사람을 구조( 救助 )하기 위하여 구조대에 지원( 支援 ) 동참( 同參 )하여, 2003년 12월 7일 20시 50분 경, 악 천후( 惡 天候 )로 인하여, 남극 킹 조지섬 부근( 附近 ) 아델리 섬 해상( 海上 )에서 구조선( 救助船 )이 전복( 顚覆 )되어 순직( 殉職 )한, 의사 전 재규 연구원 추모비( 義士 全 在奎 硏究員 追慕碑 ), 방랑시인 김 삿갓, 난고 시비, 항일 의병장( 抗日 義兵將 ) 정 대억( 丁 大億 ) 의사 순국 비( 殉國 碑 ),
군위 현감( 君威 縣監 )을 지내다, 단종( 端宗 )의 유배( 流配 ) 소식( 消息 )을 듣고, 영월로 낙향( 落鄕 )하여, 있던 중, 단종이 승하( 昇遐 ) 하시자, 충신( 忠臣 ) 엄 흥도( 嚴 興道 )가 단종의 시신( 屍身 )을 수렴( 收斂 )하는데 도움을 준 후, “ 너희들은, 농촌( 農村 )으로 돌아가, 후손( 後孫 )들로 하여금, 소( 牛 )나 기르고, 농사( 農事 )를 지으면서 생활( 生活 )하며, 절대( 絶對 )로 공명( 公明 )을 구( 求 )하여 서는 안 된다, ” 라고 하는 유언( 遺言 )을 남긴 후, 청령포( 淸泠浦 ) 서강( 西江 ) 강물에, 몸을 던 저, 자결( 自決 )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 사종( 丁 嗣宗 ) 충신의, 소개( 紹介 ) 입간판( 立 看板 ), 충의비( 忠義碑 )도 읽어 보고, 산책로를 산책하다, 열차 시간이 되어 영월역으로 출발( 出發 )을 합니다, 영월역에 도착을 하여, GPS를 OFF 하고 산행을 마무리 합니다,
17시 26분 청량리 행 무궁화호 승차->20시 05분 청량리 역 도착->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으로 이동->1호선 승차->창동역 하차->마을버스 노원 5번 승차
4 산행시작 :
세종 장 모텔 앞 공터( GPS ON : 05시 32분 54초 )
5 산행종료 :
영월역 앞, 광장( GPS OFF : 16시 06분 41초 )
6 산행시간 : 10시간 33분 47초
7 산행거리 : 21.434 156 041 995( Km )
8 이정표 통과시간( 숫자의 단위는 Km ) :
05 : 32 : 54 세종 장 모텔 앞 공터
06 : 29 ㈜ 다가식품, 동강청정김치,
이번 산행을 하기 바로 전, 산행( 주왕지맥_엄흥도 기념관_두목재_미나미골_시루산_분덕재 이정표_분덕재_ 속골 구간 산행 )시 산행 종료 지점,
06 : 37 서낭당건물 통과
06 : 45 송산사, 별마로 천문대( 삼옥재 )갈림길
06 : 55 이정표, 속골, 송이골[ MTB코스 4.4( Km ) ]
07 : 10 돌비석에, ( 주 ) 대로
07 : 17 입간판, 사단법인 대한불교 보현사
07 : 19 안내판, 영월읍 영흥13리 살기 좋은 물골안 마을입니다,
200(m) 화살표
07 : 31 돌비석, 북면 분덕재, 해발 472( m )
주왕지맥 산행 시작
07 : 45 영월엄공상하지묘( 寧越嚴公相河之墓 )
08 : 11 삼각점 통과, 영월 424, 2004 재설
주왕지맥과 갈라지는 지점, 봉래산 분기( 分岐 )능선 시작
10 : 25 비포장도로 통과, “ 06 : 55 이정표, 속골, 송이골
[ MTB코스 4.4( Km ) ] ”와 연결이 되는 듯
( 산악 자전거 길과 만나는 지점 ) ???
11 : 04 묘 통과
11 : 27 삼옥재, 영월 별마로 천문대 가는 도로,
삼옥마을, 속골, 별마로 천문대( 봉래산 정상, 페러그라이딩 활공장,
산림욕장 ) 삼거리길
12 : 17 산림욕장 근처에 있는, 봉래산 등산 안내도 통과
12 : 18 이정표 : 속골 5.1( K ), 산책로, 천문대 1.2,
향토수목전시장 0.4( K )
12 : 22 화살표 등산로 표시
13 : 11 이정표 : 안내소 0.4( K ), 주차장 0.5( K ), 천문대
13 : 36 이정표 : 안내소 0.2( K ), 주차장, 천문대 1.0( K )
13 : 45 안내판 : 갈림 계단 길 : 숲속교실, 체력 단련 장
13 : 53 안내 돌비석 : 별마로 천문대
13 : 54 영월군 관광안내도 입간판
14 : 00 영월군 페러글라이딩 활공장( 滑空場 )
14 : 00 봉래산( 蓬萊山 ) 정상비( 頂上碑 ), 해발 799.8( m )
14 : 12 팔각정( 八角亭 )
14 : 51 이정표, 천문대 1.7( K ), 산책로입구 0.8( K ), 영월읍
14 : 52 팔각정하나( 2층 팔각정 )
14 : 08 이정표, 산책로입구 0.2( K ), 동강
15 : 11 이정표, 산책로, 금강공원, 옆에 가로등 점멸기
15 : 13 봉래산 등산 안내도 통과
15 : 18 안내 목판, 불교 조계종 봉래산 광덕사
15 : 20 영월상수도정수장 정문
15 : 24 금강정 안내판 촬영, 금강정 정자 촬영
15 : 27 전 재규 의사 추모비 촬영
15 : 33 난고 시비 촬영
15 : 40 의병장 정 대억 의사 순국비 촬영
15 : 45 충신 정 사종 안내 입간판 촬영, 정 사종 충의비 촬영
16 : 06 : 41 영월역 앞, 광장
9 지점명에 대한 정보 :
지점 명( 地點 名 )에 대한 정보는, 산행시, 본인이 사용하는, 산행용 GPS( 익스플로리스트 510 )를 사용하여, 작성한, 웨이포인트( way point )를 트랙메이커( GPS TrackMaker )를 사용하여, 다시 한 번 작성하여 본 것입니다, 작성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1) 05 : 34 : 41 세종 장, 203.800( m )
(2) 06 : 44 : 15 속골, 봉래산 갈, 291.680 m )
(3) 06 : 53 : 15 송이골 엠티비, 306.360( m )
(4) 07 : 29 : 30 분덕재, 469.870( m )
(5) 08 : 09 : 07 삼각점, 655.480( m )
(6) 10 : 23 : 00 비포장도로, 499.750( m )
(7) 11 : 02 : 27 묘, 610.160( m )
(8) 11 : 25 : 57 삼옥재, 476.500( m )
(9) 12 : 20 : 12 등산로, 674.550( m )
(10) 13 : 59 : 04 봉래산( 정상 ), 803.000( m )
(11) 14 : 10 : 09 팔각정, 700.000( m )
(12) 14 : 50 : 27 팔각정하나, 411.300( m )
10 지형도로 본 산행경로 :
지도를 다운받아, 그림판 등에 연결하여 보시면, 스크롤이 가능한 큰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장->영월대교->속골, 봉래산 갈( 림길 : 삼옥재 가는길 )->송이골 엠티비->물암골 입구->분덕재( 주왕지맥 시작 )->655.0봉( 주왕지맥 갈림길, 봉래산으로 가는 분기 봉 )->664.0봉( 알바 한 곳 )->543봉->511봉->비포장 도로( 송이골 엠티비와 만남 ???->606.6봉->596.9봉->삼옥재->등산로 화살표 표시판( 산림욕장 근처 )->봉래산( 정상 )->팔각정->팔각정 하나( 2층의 큰 팔각정 )->금강공원->영월역
11 산행 길에 대한 이야기
① 세종 장 모텔에서, 분덕 재까지는, 포장도로를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4( Km )에서 5( Km ) 정도의 거리입니다, 분덕 재는 영월시내에서, 속골을 지나, 영월군 마차 리로 가는, 길에 있는 고개로, 영월 시내와 마차 리 사이의, 거의 중간 지점에 있는 고개입니다, 마차 리에 분덕이 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주왕지맥 산길과 만나게 됩니다,
② 분덕 재에서, 삼옥 재 까지는 거의 길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MTB 용 도로 근방에는 길이 있기는 합니다, 655.0봉( 삼각점 있음 )에서 주왕지맥과 갈라 저, 봉래 산 방향으로 가는, 능선길이 시작됩니다,
③ 664.0봉에서 알바( 길을 찾지 못 함을 말합니다, ) 하였습니다, 산길이 없고, 밋밋한 산봉우리라, 내려가는 길로 착각을 하여 알바를 하였습니다, 길 찾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습니다,
④ 삼옥 재에서 봉래산 정상까지는, 봉래산 정상에 별마로 천문대와, 페러그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포장도로가 나 있습니다, 저는 능선 길을, 경로로 그려서 가지고 갔으나, 도로에 있는 가이드 레일을, 산길과 포장도로가 만날 때, 넘어 가야하는 부담도 있고, 삼옥 재에서, 산길로 오르는 길을, 찾기가 어려워,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갔습니다, 첨부한 지형도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도로 길이, 산길 보다, 더 거리가 먼 듯합니다, 구불 부불 올라가는 길입니다, 봉래산은, 산길의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계속 치고 올라가는 길이기 때문에, 오르기가 조금은 힘이 듭니다, 영월 시내에서 보면, 큰 묘를 연상 시키는 자태를 하고 있습니다,
⑤ 산림욕장 근처에, 화살표 등산로 표시가 되어 있어, 등산로를 걸어 보자 하는 생각으로 가 보았으나, 길이 희미하여 지고, GPS의 경로와, 걸어가는 산길이, 서로 달라서, 되돌아 나왔습니다,
⑥ 봉래산 정상에서, 금강 공원까지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기는 하나, 길이 좋고, 잡고 오를 수 있는, 로프도 설치가 되어 있어, 안전한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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