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리다…
잭 웰치는 실패한 경영자
'株主자본주의' 는 죽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학술 잡지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이 만드는 이 월간지의 2010년 신년호에 충격적인 내용의 논문이 하나 실렸다.이 논문은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는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앞으로의 시대는 이 논문의 제목이기도 한 '고객 자본주의의 시대(The age of customer capitalism)'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의 존재 목적을 주주 이익 극대화에 둔 주주 자본주의는 지난 30여년간 미국이 주도한 세계 자본주의의 금과옥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붕괴했다는 주장을 미국식 자본주의의 교과서가 커버스토리로 실은 것이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영계의 반성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 논문을 쓴 로저 마틴(Roger Martin) 교수를 Weekly BIZ가 만났다. 토론토대 로트먼비즈니스스쿨의 학장인 그를 만난 곳은 캐나다가 아니라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이었다. 그의 뉴욕 출장길에 어렵사리 인터뷰 시간을 잡았다.
그는 지난해 더타임스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의 경영사상가 50인'에 뽑혔고, 2007년에는 비즈니스위크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교수 10인'에 포함됐다. 하버드대에서 문학사를 전공했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나온 그는 컨설팅회사인 모니터컴퍼니의 공동 대표를 지내는 등 이론과 경험을 함께 갖춘 인물로 ≪생각이 차이를 만든다(The opposable mind·2007≫, ≪디자인 씽킹(The design of business·2009)≫ 등의 저서를 냈다.
株價 좇다 기업 망쳐… 허황된 월가의 숫자놀음서 벗어나야…
시장으로 돌아오라… 그 중심엔 소비자가 들어서야 한다…
- ▲ 그래픽=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마틴 교수는 주주 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처럼 이 철학의 화신인 잭 웰치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장기적 유산을 놓고 보면 잭 웰치는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재임 기간 중 130억달러의 시가총액을 4800억달러로 끌어올렸다고 놀라워했죠. 하지만 지금 GE의 시가총액은 1700억달러에 불과합니다. 시장의 기대를 너무 끌어올려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틴 교수는 나아가 주주 자본주의의 안전장치로 마련해 놓은 '이사회(board of directors)' 역시 완전히 실패한 자가당착의 구조물이라고 비판했다. "내일 당장 포천(Fortune) 선정 500대 기업의 이사회를 모두 없애도 기업 지배구조의 평균적인 질이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좋아질 수 있어요." CEO가 주주의 이해가 아닌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가 이사회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사회 멤버를 뽑는 것은 결국 CEO들이고, 두툼한 보수와 지위를 바라고 이사회 멤버가 된 사람들은 절대로 CEO와 맞서서 해고될 위험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들이 허황된 월가의 숫자 놀음에서 벗어나 실제 시장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중심엔 고객이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목적은 소비자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피터 드러커의 지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의 목적 함수는 지금까지의 '주주 가치의 극대화'에서 '행복한 고객과 더 많은 고객 확보'로 대체돼야 하고, 이는 결국 주주 가치 역시 높이는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 그는 많은 경영 대가와 CEO들의 이름을 거론했다. Weekly BIZ가 인터뷰한 팀 브라운 아이디오 최고경영자,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 교수,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도 포함해서 말이다. 사실 마틴 교수는 이들 모두와 가까운 친구 사이였다. 크리에이티브 생태계에서 이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고, 마틴 교수는 이들의 허브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주 자본주의와 잭 웰치의 실패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은 논문에서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가 실패했다고 하셨죠. 어떻게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까.
"1976년 마이클 젠센과 윌리엄 메클링은 주주 자본주의를 주창하는 기념비적 논문('기업 이론: 경영 행동, 대리자 비용 및 소유구조')을 발표했습니다. 전문 경영인들이 주주보다는 자신의 이해를 앞세우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주장이었죠. 그런데 제가 그 논문이 나온 1976년 이전과 이후를 데이터를 갖고 비교해 본 결론은,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를 주창한 이후 주주의 이익이 더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주주 이익 극대화는 주가의 상승을 의미하는데, 경영자가 자신의 행동을 통해 주가를 계속 끌어올리는 게 불가능합니다. 주가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기분과 시장의 기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기대가 너무 높을 경우 경영자들이 이 기대를 더 올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가령 2001년에 시스코시스템의 시가총액이 6000억달러였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집집마다 10대의 라우터(서로 다른 네트워크를 중계해주는 장치로 시스코의 주력 제품)를 설치할 것이라고 기대했죠. 그러나 지금 시스코의 시가총액은 1500억달러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나쁜 경영진들이 주주가치의 4분의 3을 파괴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기대가 너무 높아서 그 기대를 회사의 현실로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틴 교수는 "이제 경영자들이 주가가 아니라 본연의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IBM의 주가수익비율(주가를 1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이 20배라고 해보죠. 이것은 주가의 5% 만이 현재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지불되는 것이며, 나머지 95%의 주가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대(expectation)에 지불하는 가격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제 비율이 거꾸로 바뀌어야 합니다. 95%가 현재 일어나는 것에 의해 지불되어야 하고, 5%가 앞으로 일어날 기대를 반영한 것이어야 합니다."
―CEO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기업의 이사회가 또 다른 대리인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사회를 어떻게 개혁해야 이런 문제를 방지할 수 있습니까.
"이사회에 대한 생각에 완전한 혁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회가 기업의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경영자와 같은 대리인이 주주의 이익 대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고들 합니다. CEO는 주주의 이해가 아니라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사회를 통해 대리인인 CEO가 올바로 행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죠.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논리에 오류가 있습니다. 이사회는 스스로 또 다른 대리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CEO가 이사회 멤버를 고르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는 CEO는 자신의 행동을 저지할 수 있는 사람을 이사회의 멤버로 뽑지 않습니다. 그릇되게 행동하는 CEO는 그릇되게 행동하는 이사회를 구성하는 겁니다.
결국 나쁜 CEO 밑에는 나쁜 이사회가 있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것이고, 좋은 CEO는 좋은 이사회를 구성할 테지만 이 경우에는 처음부터 이사회가 필요 없었다고 할 수 있죠. 바로 이 대목에 이사회의 논리적인 결함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사회 멤버가 되기를 원합니까. 몇 가지 원인을 살펴볼 수 있는데, 우선 두둑한 돈을 받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이사회 멤버들의 평균 연봉은 25만달러입니다. 이 연봉을 위험에 빠뜨리게 할 행동을 이사회에서 하겠습니까? 결국 두둑한 보수 때문에 이사회 멤버가 된 사람은 좋은 이사가 아닙니다. 또 다른 경우는 위신(prestige) 때문에 이사회 멤버가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쫓겨날 위험을 무릅쓰고 이사회 회의 도중 일어나서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원인을 하나씩 지워가면 이사회 멤버가 되려는 이유가 주주들의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주의 이해를 대변해서 이사회 멤버가 될 수 있는 단 한가지 선한 동기는 공공 서비스입니다. 현대 민주 자본주의를 위해서 시민의 의무로서 공공서비스를 하는 심정으로 이사회 멤버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죠. 돈과 위신 같은 이유로 이사회 멤버가 됩니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잘못된 모습을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융기관의 경영자 보상에 상한(cap)을 두자는 논의가 있고, 이사회가 제 구실을 못한 것은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이사회에 기업 경영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주주 자본주의의 종언과 이사회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로저 마틴 교수의 주장은 소수 의견에 속한다고 조성욱 서울대 경영대 교수가 말했다.
株主 자본주의 '안전장치' 이사회가 CEO 견제않고 함께 이익 챙기는 폐단…
기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가 아닌 소비자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
그렇게 해야 장기적으로 회사가 살아…P&G·존슨앤드존슨을 보면 분명하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행복한 소비자 확보
- ▲ /로저 마틴 제공
"고객 자본주의는 실제 시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기업의 목적은 소비자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물건을 만드는 실제 행동과 연결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합니다. 서비스와 물건을 계속 만들도록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소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지불한 것 이상의 가치를 만드는 것이 결국 장기적으로 회사가 성공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영자도 장기적으로 좋고, 주주들도 좋아집니다.
주주 가치 극대화에 초점을 맞추면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조치를 취하지만,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어렵습니다. 코치나 프라다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갑자기 비용을 절감해 가격을 20% 낮춘 제품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 보죠. 보다 값싼 가죽을 사용하고, 그 덕분에 비용과 가격을 떨어뜨리면 시장에선 매출과 이익이 올라가고, 주주들은 '환상적'이라고 즐거워할 겁니다. 하지만 5년만 지나면 브랜드의 명성은 퇴색하고, 기업의 성과는 떨어질 겁니다. 물론 과거에 그 결정을 내렸던 경영진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두툼한 현금을 챙겨서 은퇴한 뒤입니다. 결국 주주들이 손해를 보게 되죠. 주주 가치 극대화는 결국 장기적으로 주주들의 손해로 돌아오는 모순에 이르고 마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주 가치 극대화가 종업원 해고 등을 부르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만, 제 논리는 다릅니다. 나는 주주 가치 극대화는 결국 주주 가치 극대화에 나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의 목적함수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여전히 이윤의 극대화인가요.
"이윤의 극대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행복한 소비자와 더 많은 소비자 확보가 목적함수가 되어야 합니다. 이익 목표로는 주주들이 초기에 투자한 비용을 넘는 수익의 확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요체는 그것을 극대화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익을 극대화 한다는 것은 가능한 한 최대의 이익을 뽑아낸다는 것이고, 이는 다른 가치를 희생하는 겁니다. 한 가지를 극대화하면 다른 것은 희생됩니다. 이것이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이고, 많은 비난을 받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행복한 소비자와 더 많은 소비자 확보가 목적이라면 어떤 숫자를 가지고 이 목표를 측정할 수 있습니까.
"주주 가치 극대화를 추구할 때보다 측정하는 게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소비자들의 만족도를 재는 대리 변수 등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소매 판매업체라면 동일 점포 매출 성장률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당신의 점포에서 작년보다 더 많은 상품을 사고 있는가를 재는 것이죠. 같은 소비자들이 더 많은 제품을 사거나, 더 많은 고객이 방문할 때 이 수치는 올라갑니다. 만약 P&G라면 존슨&존슨과 비교해서 시장점유율을 잴 것입니다. 가격을 내려서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 다른 방법도 가능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행위는 미래의 기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고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기업이나 기업인이 있습니까.
"존슨&존슨을 좋은 예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 회사 본부 건물에는 '신조(credo)'라고 부르는 회사의 사명(mission)이 새겨져 있죠. 첫째가 고객이고, 둘째가 종업원이며, 셋째가 지역사회이고, 맨 마지막이 주주입니다. 주주가 맨 마지막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앞의 세가지를 잘하면 주주도 좋아진다는 것이죠.
제가 최근에 확인했을 때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세계 8번째였습니다. 고객이 첫째고, 주주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지구상 어느 기업보다도 높은 시가총액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이레놀 리콜 사건은 이 회사가 고객을 첫째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죠. 포천(Fortune) 매거진의 리스트 가운데 '소비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회사'와 '종업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회사' 이 두 가지야말로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장 강력한 목표로 꼽을 수 있습니다. "
―그 동안 많은 CEO들을 만나셨는데, 가장 인상적인 3명만 꼽는다면.
"우선 P&G의 래플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오랫동안 일했기 때문에 그에게 닥친 도전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민하지만 전인적인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인류애를 지닌 인물이며, 그의 철학은 고객과 종업원 친화적입니다. 나머지 두 명은 인포시스의 창업자인 낸던 나일카니(Nilekani)와 테디 블레처 CIDA 설립자를 꼽을 수 있습니다. 나일카니는 놀라운 방법으로 인포시스를 설립했고, 훌륭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블레처는 남아공의 사회기업가인데 가난한 흑인들을 위한 무료 대학을 최초로 설립했습니다. 그의 훌륭한 점은 어려운 일들이 닥쳐 주위에서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마다 '그래, 한번 해보자'며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훌륭한 마음을 가지고 독특한 일을 한 비즈니스맨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