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스님의 기운이 서린 곳, 홍룡사
홍룡사는 ‘천명의 성인이 나툰’ 천성산 계곡에 앉아 있습니다.
산 주변에는 신라 고찰인 통도사와 내원사가 있지만, 한곳은 조계종 교구본사라는 점 때문에 다른 한곳은 비구니 수행도량이라는 점 때문에 시민들의 발길이 쉬 머물지 못합니다.
반면 홍룡사에는 불자나 일반시민 모두 세속의 짊을 잠시 벗고서 머물 수 있는 삶의 여백이 있어 좋다.
‘물이 떨어지며 피어나는 무지개’로 풀이되는 ‘홍룡사’에 가면 염리심(厭離心)이 절로 난다.
‘깨달음(佛)을 챙긴다(念)’라는 선(禪)의 의미보다는 그저 마음이 가라앉고 고요한 평안을 느끼는 상태, 다시말해 ‘세속의 흐름에 들뜨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염리심에 감응하기 때문인 것 같다.
홍룡사 아래쪽은 수량이 풍부한 골짜기 다섯 가닥이 모여 물도 넉넉하고, 곳곳에 너럭바위가 널려 있을 뿐 아니라 숲도 적당히 우거져 있는 등 계곡 풍광 또한 뛰어나 여름철이면 물놀이 피서객들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명(寺名)에서 터에 이르기까지 물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홍룡사는, 그래서 관음도량입니다.
폭포 옆으로 백의관음이 봉안된 관음전이 있고, 선방으로 이용하고 있는 무설전에는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홍룡사의 관음보살 중에는 폭포에 현현(顯現)합니다는 낭견관음보살도 있습니다고 하는데, 1천여년 동안 감로수를 쏟아낸 폭포와 인접한 곳에 관음도량이 들어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홍룡사의 창건배경 및 역사
홍룡사는 선학원(禪學院)에 속하는 사찰입니다.
신라 제30대 문무왕 13년인 673년 원효(元曉)스님이 낙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습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즐비하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대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홍룡사에는 원효 스님과
천명의 성인에 관한 설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원효스님께서 척판암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중국 당나라 산서성 태화사에 수도하던 천명의 대중이 뒷산이 무너져 위급한 사고를 당할 것을 예견하고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 보내 태화사 상공에 날아다니게 했습니다.
대중이 공중에 뜬 판을 보고 놀라 일주문 밖으로 나온 순간에 산사태가 나서 절은 무너져 버리고 대중은 모두 위기를 모면했습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들을 구해준 인연으로 1천명의 중국 대중이 도를 구하기 위해 원효 스님을 찾아왔는데, 이때 원효스님께서 천성산에 89개 암자를 짓고 머물게 했습니다고 합니다.
그 후 대중들은 천성산 상봉(지금의 화엄벌)에서 원효 스님의 『화엄경』 강설을 듣고 모두 득도했는데 절 옆의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설법을 들었습니다고 해서 ‘낙수사’라 이름 지어졌다.
또 산 이름 역시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대중 1천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습니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이라고 바뀌었습니다고 하며 이것이 바로‘천성’이라는 이름이 생긴 연유입니다.
당시 89암자에서 정진하고 있는 대중들을 운집시키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습니다고 하는데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와 화엄경을 설하던 화엄벌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