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상영한 기타 이야기를 봤습니다.
기타 이야기는 3년 째 투쟁하고 있는 기타를 만드는 콜트와 콜텍의 노동자들의 투쟁 다큐영상입니다.
감독의 이야기로는 개인적으로 영상을 스케치하다가 점차 노동조합의 요구로 영상을 추가로 담다 보니 다큐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오늘 상영한 기타 이야기는 1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2부는 대략 7월 경에 개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오늘 상영은 원주의 다큐동아리 '나무'에서 주관하는 행사입니다.
오늘 상영으로 약 740여 회를 넘었다고 하더군요.
클트는 인천에 있는 법인의 이름이고 콜텍은 대전에 추가로 확장한 박영호사장의 법인 이름입니다.
제가 처음 기타를 배우던 때는 세고비아 등이 주류였는데
콜트는 약 90년대 즈음에 중저가 시장에 진입해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영상에 있는 바이어의 말에 따르면 4번째 쯤에 달하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입니다.
현재 노동자들은 고등법원에서 승소했구요.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영상을 보자고 각종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메일도 쏘고..문자도 보냈지만
참여한 동지는 저와 이건수,임용규 동지 3명이라서 쫌 그랬습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인데.....
오늘 관람비는 회원들은 1만원이었고..비회원들은 5천원이었습니다.
약 20여명이 관람을 했고..관람비를 내는 걸 보니 비회원은 4명이더군요.
마지막에 감독이 대전에 있는 콜텍노동자들이 재정사업을 하고 있는 장세트를 홍보하고 갔습니다.
다음 카페에 '산들바람'(http://cafe.daum.net/sntj1/)이라고 있습니다.
많이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격 후기.
기타에 대한 기억들은 아마도 조금씩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으로 기억하는데요.
새로 이사간 동네(원주에서는 구룡골이라고 하는 태장2도 원마트 건너편 동네입니다.여기 조돈관동지가 살고 있습니다..^^) 옆집 아저씨가 기타를 주셨지요..
그래서 열심히 시내에 있는 레코드가게를 들낙 거리며 기타 줄을 사고..기타 통기타 교본도 사고..노래 책도 사고..
대학 때까지는 그런대로 기타를 치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지요...ㅎㅎㅎ
대학 때는 잔 재주에도 불구하고 몇 곡을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뭐..악보는 다 사라지고 없지만..
그 기타가 망가지고..
지금은 먼저 떠난 누나가 사준 기타로 대학을 버티다가..
군대 갔다 와서는 큰 맘 먹고 하나 샀었는데..
그것도 망가지고..그래서 아교를 사서 때워보겠다고 난리를 피웠는데..수리는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아마도..이석봉동지가 또 하나 선물했었는데..
그것도 목이 똑! 부러져서..결국 그 이후로는 기타하고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최근엔
노래하는 노동자 김성만동지가 몇몇 동지들에게 기타를 수리해서 선물했다는 글을 읽고
나도 선물해주면 고맙겠다고 했더니 흔쾌히..중고 기타가 들어오면 주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소식은 없습니다.
아마도 전국의 투쟁현장을 다니느라 바쁘기도 할 것이고..
최근에는 직접 얼굴을 본 적도 없으니 잊었겠다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오늘 상영에 많은 동지들이 참여해서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나누고..
노동자의 문화예 대해서도 이야기도 나누고..
지역의 연대운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기대만 너무 컸네요..
뭘 어떻게 해야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할 수 있을까 고민입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영상을 보면서 몇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많은 약품을 마시면서..
근골격계질환에 걸리면서..
손가락이 짤려가면서 만들었던 기타.
만들줄만 알았던 노동자들이 콜트,콜텍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인디밴드와 문화활동가들의 작은 콘서트에 참가하고 느낀 감정
내가 만든 기타가 이렇게도 사용되는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는 순박한 노동자.
단지 기타를 다시 만들도 싶다던..
그냥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노동자들
자신들을 착취하던 그 빌어먹을 공장을 접수하겠다는 생각이 아닌
정말 순박해서..그래서 또 화가 나기도 하는..모습.
독일 박람회에서 원정투쟁단을 맞은 유럽의 노동자들이 부른 노래 중에
"투쟁하는 자들은 패배하기도 하지만 투쟁하지 않는 자는 이미 패배한 것이다"라는 노랫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같은 상황에서는 더 절절한 노래입니다.
지금 가진것마져 빼앗길까봐 투쟁에도 나서지 못하는 나약한 운동.
독일 원정단의 모습을 보면서 울컥 했습니다.
라파즈한라 비정규노동자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벌써 3~4년이 지났네요..
지금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동지들이네요..
프랑스 원정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유럽위원회의 동지들과 주고 받았던 메일도..
라파즈동지들이 복귀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프랑스노총과 연대하면서 라파즈동지들을 기억해주고 연대해주었던 동지들.
콜트,콜텍의 원정투쟁에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유럽동지들이 함게 해 주었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송경동동지의 시가 생각 납니다.
"박씨 니가 시키는대로 내가 다할줄 알아..."라고 노래를 부른 연영석동지와
물론 수 많은 무지션들의 노래도..
꿈의 공장을 찾아서 - 송경동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인천으로 빠지는 길가
섬처럼 버려진 조그마한 악기공장이 있다 콜트악기다
전자기타를 만들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대전 지나 계룡IC로 빠지면
또 문 닫힌 공장 하나가 있다 콜텍악기다
통기타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30년 동안
사람들 몰래 세상을 튜닝하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던 이들이 있다
세계 기타의 삼분의 일을 생산했다
하나같이 시골 장터 옹기처럼 수더분한 사람들
짝눈이도 있고 3급 장애인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문을
기타 몸체처럼 잔금 하나 없이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
창문 하나 없던 공장에서 유기용제를 다루며
자신의 폐를 기타통 속처럼 숭숭 구멍 내
작은 호흡에도 울리게 했다
사장은 그런 노동자들의
지문과 기침과 땀과 눈물을 화폐로 바꿔
1000억대의 자산가가 되었다 더 값싼 기계들을 찾아
공장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빼돌렸다
화폐의 가치만이 신기루처럼 쌓여가는 세상에서
1000일째 갈 곳 잃은 사람들
지금은 문 닫힌 공장
그러나 한때 이곳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노래를 낳던
희망의 공장이었다 세상의 모든 혼돈을
가지런히 조율하던 사랑과 연민의 공장
세상의 모든 가녀린 목소리들을 하나로 묶던
연대의 공장이었다
노래가 노래를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삶이 삶을 배반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
이 공장을 살려내라
이 공장은 우리 모두의
꿈의 공장
* 2007년 겨울, 처음으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위장폐업한 공
장을 지키며 생계를 위한 수세미 뜨개질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일할 때도 십수년 근속자 월급이 법정최저임금 정도였다. 2008
년 8월 다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의 지문이 사라진 세상에서 어
떤 노래가 우리 모두의 노래일까. 몇명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그들과 함께하기 시작했다. 새벽 본사 점거를 들어갔따 경찰특
공대에 끌려나오는 그들과 함께 눈물짓고 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지금도 우리는 홍대 앞 '클럽 빵'에서 그들과 함께, 그들
만을 위한 콘서트를 연다
-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창비. 2009.12.30>-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