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은 왕실의 말을 훔쳐 타고 세 명의 친구와 도망쳐 비류수(沸流水)에 이르렀다. 그의 뒤에는 추격군이 있었다. 이에 주몽이 “나는 황천(皇天·천제) 아들이며 (물의 신) 하백의 외손이다”라고 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줌으로써 추격병을 피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졸본부여다.
졸본부여의 왕에게는 딸만 있었는데, 주몽은 졸본부여 왕의 딸인 소서노와 결혼했다. 그곳에서 세력을 키운 주몽은 기원전 37년(‘삼국사기’ 근거) 왕국을 세우고, 이듬해 송양이 이끄는 비류국을 공격해 항복을 받아냈다. 기원전 33년에는 행인국을, 기원전 28년에는 북옥저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이때의 주몽 왕국은 고구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 도교의 성지인 오녀산
사료에 따라서는 주몽이 왕위에 오른 곳을 ‘흘승골성(訖升骨城) 또는 ‘홀본(忽本)’으로 적고 있는데, 이것은 졸본을 다르게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를 알려면 졸본(卒本)부여가 어디에 있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중국 학자들과 일본 학자들은 요녕성 신계시 환인만주족자치현 환인진 유가구촌에 있는 오녀산성을 졸본으로 보았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것이 만주족(여진족의 후예, 1000여만명)이다. 고유의 문자와 말을 갖고 있던 여진족(후금)은 1625년 심양을 성경(盛京)으로 바꿔 부르며 도읍지로 삼아 청나라를 세우고, 1644년 북경으로 천도해 중국 전체를 장악했다. 하지만 급격한 한화(漢化)정책을 채택해, 지금 그들의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만주족은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환인현은 말과 글을 잃어버린 만주족을 위한 자치지역이다.
환인(桓仁)은 단군의 할아버지인 천제 환인(桓因)을 연상시키나, 한자가 다르다. 본래 회인(懷仁)현이었다가 환인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니, 단군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지명이다. 환인현을 가로지르는 강이, 심양시를 관류하는 혼하(渾河)와 혼동하기 쉬운 ‘혼강(渾江)’이다. 심양의 혼하는 요하로 합류되지만, 환인의 혼강은 수풍댐 상류의 압록강으로 흘러든다.
오녀산성이 졸본성이라면 혼강은 비류수가 된다. 고구려가 졸본을 수도로 삼은 기간은 40년이다. 그래서인지 오녀산에서는 고구려와 관련된 전설이 거의 전하지 않는다. 오녀산(五女山)은 이 곳에 있던 다섯 선녀가 혼강에 살며 사람을 괴롭히던 괴물과 싸워 함께 죽은 것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답사팀 이끈 윤명철 교수 “고구려는 여러 민족 아우른 大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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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연구에서 큰 문제점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학자가 적다는 점이다. 중국 사서(史書)에 고구려에 대한 기록이 꽤 있으므로 중국학자들이 이를 찾아내 분석해놓은 자료가 많다. 그러나 국내에서 국사학을 연구한 학자들은 중국어에 서툴러 중국 문헌을 제대로 분석 해내지 못했다. 이것이 국내 고구려사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원인이다. 이러한 시절 고구려사 연구에 큰 획을 그은 학자가 고구려연구회를 만든 서길수 교수(서경대)이다. 서 교수는 중국 출입이 어렵던 시절부터 중국에 들어가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함으로써 중국이 어떻게 고구려 유적지를 바꿔왔는지에 대한 자료를 축적했다. 이번 탐방팀을 이끈 동국대 윤명철(52) 교수는 서 교수의 뒤를 이어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해온 학자로 유명하다. 윤 교수는 뗏목을 타고 대한해협을 건너고 서해를 횡단함으로써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에도 중국과 한반도 일본 간에 교류가 가능했다는 것을 입증한 바 있다. 이 탐험으로 인해 그는 ‘한국의 인디애나 존스’란 별명을 얻었다. 윤 교수는 고구려인들의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직접 말을 타고 만주 일대를 답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사학계는 두 학자의 노력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중국이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비로소 국사학의 영역을 동북아 전역으로 확대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중국의 역사왜곡을 바로잡겠다며 국사학자들을 중심으로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재단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바로잡아가는 속 시원한 결과를 내놓지 못한 채 삐걱거리고 있다. 고구려사는 국사학뿐만 아니라 당시의 국제관계학 관점에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서 교수와 윤 교수는 국제관계학 관점에서 본 고구려를 연구함으로써 고구려가 여러 민족을 아우른 대 제국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 |
(계속) |
첫댓글 윗 분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매형이 한국을 빛낼 100인(행동하는 지성인)에 선정되었군요 ㅎㅎㅎ(윤명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