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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수) 맑음.
어제 이어 오늘도 과원 시비 하로 아우 내외 11시 넘어갔다.
7시 반경 기침을 하여 8시 10분경 조반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다 졸음이 와서 누웠더니 아우가 돈을 갖다 주고 과원비료 주로 간다고 간 후 제수씨 보건소 갔다 온다며 12시 다 되어 기성이 데리고 과원으로 간 후 곧 선례도 왔다.
도장 새겨 둔 것 가줄로 와서 모두주고 돼지고기 한 근을 시켜서 아버지와 함께 중식을 먹었다.
고기 없으니 아버지도 벌써 덜 넘어 가시는지 고기를 사올까 하신다.
사다 두어도 제때 해주지 않고 담아두고 맛이 변질되도록 하고 돈을 주어도 제대로 맞는 것 안사오고 고기 사다 주면 냉장고에 7일 이상 열흘 한달씩 넣어두고 그거 해주기 바라다가는 말 할 수 없는 심장만 틀리고 아예 잊어버리고 주는 데로 먹지 간장을 두고도 주지 않고 된장도 두고도 고추장만 주니 식성을 몰라서 그러면 몰라도 이젠 알면서 그렇게 주니 수다스럽게 말하기도 싫다.
말해도 실천하지 않으니까 저녁 먹고 있다니 장춘이발 정규가 오늘 동생한테 신문보라고 왔다.
잠깐 들려서 소주 한잔하고 갔다.
귀단 박승호 어른 숙모하고 재혼하신 분이 며칠 전 전화를 이웃집에 했다는데 어인일인지 알고 싶어오셨다며 숙모를 데려 가려면 지금이라도 데려가고 더 좋은 자리 보낼 때 있으면 보내라 상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가 왜 그럴 권한도 없고 어차피 함께 살고 계시니 서로 위해 주시면서 잘살면 된다하고 가신 후 법화경 약찬계를 필기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데 제수씨 오병이 전화를 받은 후 귀단에 숙모 찾느라고 함부로 전화를 했던 모양이다.
이웃에 소문이 났다면서 왜 본인이 없으면 저녁에 하지 다른 집에 전화를 했느냐 앞으로 그러지 말라고
내한테 와서 충고해주고 가신다.
함부로 끼어들어 남의 입장 생각지 않고 말을 하여 나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였다.
나무관세음보살
90년3월22일 목 맑음.
7시반경 전화벨이 울려서 잠자리에서 받았다.
예감이 내한태 오는 전화인 것 같아서 내래 하는 소리 귀단 오국모 소리였다.
제수씨 수화기 들었다 끊어쓰면 어제 밤에 아저씨하고 무슨 얘기 했는데 딸이 있는데 길에서 낳았다 하던데 하였다고 했다.
아저씨 잘 못 듣고 하는 말씀인 것 같으나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넘겨 직겨 본 모양이다.
오병이가 왔다가 엄마를 만나고 가려고 전화로 엄마를 불러다 놓으라 했다하여 옆집과 저근집에 알아본 전화를 내가 했는데 다른 집에 한일 없었다 하고 다음부터 직접 집으로 오국이 한태 번호를 물어서 확인하고 오라고 했으며 엄마를 보고 싶으면 만나로 올 때 그렇게 하라고 당부 했다고 한 후 기침을 하여 제수씨한테 문하니 신승우씨가 이름이 바로 밑에 있어 옆집에 이슬 줄 알고 해봤다고 했다.
어제 밤에 아저씨가 찾아와서 이웃집에 함부로 전화하지 말라고 자기 집으로 할일 있으면 해 달라 하드라고 한 후 조반이 끝나고 주진 사장어른이 노인회 총회가 있어서 오셔다고 하면서
들어오시어 커피한잔 드시고 옛날 아버지와 함께 큰이야기도 해주시고 조모와 사돈어른 자당이 외가로 열촌 동생언니 였다며 아주 친하게 지냈다고 하셨다.
10시반경 가신 후 영레이디 기사를 저녁때 까지 모두 옮겨 쓴 후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삼세인과 경을 일부 쓰다가 자정이 넘어 취침을 했다.
초저녁 안동숙모 난희 결혼준비 하느라 수고한다고 안부 전화를 했더니 서울 태훈네도 와 있었다.
오늘 대구 가서 전자제품 모두 해주고 왔다며 신경을 써 그런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삼촌은 내일 밤차로 올라오실 거라고 했다.
대절 차는 요촌까지 온다고 했다.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 지내가면 잊겠지 큰일 앞두고 있으니 신경이 많이 쓰일 줄 알고 있다.
90년3월23일 (금) 비.
기침이 늦었다
8시경 방을 치우고 아침을 먹은 후 오늘은 면도를 했으며 머리도 감고 발도 씻고 치아도 닦았다.
집배원이 편지 한통을 갖다놓고 갔다.
하양 김정희한태서 답장 왔다. 자세한 내용이다.
편지를 정초에 받아 본 후 처음 이다.
비가 조금씩 오는 가운데 풍산 교도소에 전화를 하여. 고성호가 출감되었는지 알아보니까.
오늘 마침 출감 했다고 하였다.
아우가 제수씨치아 돈 때문에 다투고 있는 모양이다.
치아를 할 때 돈을 어떻게 준비하여 준다는 예산도 없이 시작했는지 함께 의논 했는 줄 알았더니. 제수씨 스스로 32만원이나 든다는 치아를 한다고 다니다가 생각하니 뒤우로 많은 돈 들어 치아 했다고 아우한테 원망이라도 들을가바 무엇을 핑계로 트집을 잡고 이빨하지 안는다고 하며 한참 소란스럽더니 어디로 가버린 모양인지 보건소 아저씨 전화로 빨리 와야 한다며 제촉 했다.
나는 아버지 병원계실 때 수고했다고 각각 십만원씩 준돈과 그 동안 약 심부름시키고 남은 돈 등등 뜨게 하여 모우고 설 아래 핫도그 한 돈 설 돈도 한 5만원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빨을 하는가보다 생각하고 있었더니 이 돈은 모두 어디에 쓴 모양인지 친정에서 가지고 왔다고 하는 모양이다.
점심은 3시 넘어서 아우가 차려서 먹고 휴식을 취하고 밤에는 tv보다가 오늘 일기를 쓴다.
아버지와 나는 못 들은 척 개입하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다.
그래가지고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을 듣고만 있다.
제수씨 술책에 안 넘어 가고 안 된다고 본다.
알면서도 모른척하고 따라주어야 하니 마음이 편할리 없다.
그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관세음보살
3월24일 토요일.
비 오고 구름 송아지 낳아쓰며
교통사고를 냈던 고성호 석방 되서 찾아 왔다 갔다.
금일장날 비가오기 시작 하였다. 조금씩 오던 비가 오후부터 구름만 끼고 날이 개였다.
제수씨 연금 쌀과 연료비를 타 오시어 2만천백십원을 주신다. 이달에는 만원이나 줄었다.
중식을 할 때 삼촌이 오시어 송아지를 낳아다고 하셨다.
암송아지라고 해쓰며 과원 다 갈았다고 하셨다.
내일 랑희 결혼식 축의금 봉투를 써드리고 소주 한잔 하시고 바로 나가 볼일 보시고 와서 놀다 가셨다.
고성호 출감하여 인사하로 온다는 전화가 왔다더니 3시경와서 아버지한태 인사하고
얘기 좀 하다가 동생방으로 간 후에 티브이보다 책을 읽고 석식을 한 후 고성호군 내일갈라고 얘기하고 놀다 저녁 오래도록 제수씨와 아우하고 얘기하고 있다.
나는 여자친구 기숙이와 8월 달에 찾아와서 만났다가 해어 진후 서신을 써둔 것을 기성이를 시켜 공책을 사온 것 옴겨 적으며 밤을 보내다가 자정이 넘었다.
부처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잊지 안 습니까
아버지 교통사고로 내가 많은 원망도 듣고 애들 대리고 집을 본다고 직접 병원에 가서 간병 하는 사람 못지않게 심적 고통이 많아지만 아버지 화를 내는 것 진정시키고 악연도 연이니 앞으로 깊은 우정 의형제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미래를 위하여 살자고 한 후 오늘이 지나갔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90년3월25일 일요일 맑음.
도계 백부 처남 사장 어른께서
박위중 어른과 아버지 밖에서 만나 모시고 들오셨다.
마음으로 술 대접을 한번 하고 싶었던 어른들이므로 처음으로 주비를 5천원 써봐다.
오늘은 4촌 동생 랑희 결혼식 날이무로 제수씨 서둘러 아침을 차려주시고 8시차로 나가시고 아침이 끝나고 선예 기성이 자는 대서 놀다 4서입문책 현모전을 가지고 나와 읽는데
박위중 어른과 도목 구미 장한진 사장께서 들오셨다.
막걸리 두병을 배달시켜 드시고 지난 과거를 회상하시며 위중 어른께서 막걸리 두병을 더 사가지고 드시고 커피 넉 잔을 불러 마시고 두 시경 점심을 식히니
식당이 모두 하지 안는다하여 돈육 한 근을 시켜 안주하여 드시고 사장 어른께서 의로운 말씀을 하시고 저 의견을 들어주시고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3시경에 모두 가시고 아우가 차려주는 점심을 먹었다.
12시반경 고성호가 간다고 인사하여 악수를 한 후 잘가라하고 티브이를 보다가 기성이와 선예 돈 달라고 졸라서 각각 2백원씩 주었다.
신실이 오는데 은진이가 따라와서 오락실 할배 돈백원만 주세요 하여 백원이 마침 있어서
주었다 가지고 가서 오락한다며 나가고 신실이 하고 얘기 조금하다가 신실이는 가고 휴식을 조금 취한다고 누어다니 선예 기성이 또 돈 달라고 와서 올라타고 조르는 바람에 일어났다
6시 반경 제수씨 큰일 보고 와서 떡과 바나나 한 개씩 주었다.
다녀 온 얘기는 묻지도 않았고 동생들 만났다 안 왔다. 아무 말도 한마디 없었다. 이상하다.
약 1개월 전부터인지 저녁 때부터 두서너 시간 씩 심장이 울렁 울렁 벌렁벌렁 이상하다.
느낌이 조용히 잔잔한 마음이 아니고 왜 이렇게 마음이 안정이 안 된 상태일까?
무슨 증조일까? 알 수업네 불안과 긴장 초조 그런 감정이다.
무슨 일로 심기가 이러는지 판단이 잘 안 된다.
90년3월26일 월요일 맑음.
안동 종숙모 면에 볼일 보고 들어왔다.
기침하여 아침부터 먹고 집 앞에 나가다 박효순 조부를 만났다.
10시차로 안동 해동사에 가 있는 효순 조모 때문에 나간다고 가시고 고성호가 오는 것을 봤다고 하였다. 악하게 그러지 않아 찾아봐야 도리라 생각하고 온다더란다.
볼일 있어 왔다며 갈창사장도 온 것 갔다.
강씨들 화수회 하였는지 모르겠다.
방에 오니 복지신문과 인천 조족님 답장이 와있다.
읽다니 안동 종숙모 편에 서류 좀 떼 달라 하여 왔다며 차시간이 있어 들어와서 막걸리를 내가 두병 사가지고 와서 대접했다.
11시 20분차로 가신 후 책을 보며 수지침을 연구하다니 경주 식당 아저씨 오셨다 가시고 중식은 두시 넘어 라면으로 했으며 우 동장 안동군보를 갖다 주고 가신다.
약을 끓이는 것 봐놓고 물을 주전자에 한주전자 좀 달랬더니 그냥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신다. 아버지가 밖에 갔다 오시다가 떠가지고 오시고 신실이가 왔다 갔다. 비빔밥 반찬을 하여서 잘 먹었다.
일어나니 기침이 많이 났다.
담이 섞여 나오고 실핏줄이 보인다.
결핵이 재발된 건 아닌지 걱정되고 어제 큰일에 갔다 온 이야기는 안동 종숙모한테 잘 들었다.
TV 보며 저녁에 책을 보다니 제수씨 오늘 이빨이 완성되어 소장 치과선생 한잔 접대 한다고 사온 맥주 한 병 가지고 나오시어 대구 동생 옷 사 입으라고 돈 만원 주더라고 했다.
이빨 돈은 동생이 다 주었는지 물으니 아버지
병원 있을 때 집에 와서 준돈 보태서 다주었다 하여서 기성이 편도수술을 해야 된다 하여 돈 안 드니
조용할 때 하도록 하라 했다.
꼭 해야 된다면 아버지도 소견서 끊어서 안동병원에 가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사진을 찍어 봐야 된다고 했다. 발원문을 쓰고 수지침학회에 편지 한통 쓴 후 취침했다.
1990년 3월27일 화요일 맑음.
수지침 학회 책 준문 하는 편지 발송
금일은 아우 내외 과수원 잡초 김 메고 발코드 작년에 바르다 남은 것을 갖다 발랐다.
나는 오락실 보면서 어머니 생전에 나에게 하시던 말씀과 살아 온 일상생활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기억나는 대로 초안을 대강 적어 보았다.
선예는 학교 갖다 와서 점심을 하는 대 보건소가서 약 좀 받아 올래 하니 돈백원 주면 갖다 온다하여 전화해 놓아더니 가서 받아와서 먹어 더니 좀 덜한 것 같다.
어제 수지침 학회 써 둔 편지는 응급처방 책 신청과 물리기구 준문 을 하였다.
국민 학생을 오백십원 주고 우체국에 심부름을 시켰다.
2만원 소액환을 등기로 부쳐 달라고 했다. 저녁 때 선예는 옆에 와서 잠을 자고 기성이와 모두 왔다.
석식이 끝나고 오늘 모은 돈 5천원 제수씨 가지고 나가고 전화 온 것 음성 전화 예기 한 후 오전에 김실이 전화 대구 갖다 온 이야기를 들었다.
자정까지 쓰던 것 계속 써 놓고 취침을 했다.
3월28일 수요일 비.
미산 아제 도장 새기로 왔다 가고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왔다.
아침을 먹고 조금 있다니 미산 아제 기팔씨 도장 새겨 놓으라고 전화했던 모양이다.
가줄로 오셔서 새길 동안 잠시 대화를 하고 가시고 어제 못 쓴 일지를 쓴 후 오늘도
어제 이어 어머니 생존시에 있어던 모든 것을 기록 하려고 기억을 되살리며 기록 하였다.
점심을 먹고 오전에 메주를 따내서 씻어 놓는다.
내일 담그려는 모양이다.
소금 산다고 아부지 한태 돈 만원 달라 해서 제수씨 소금을 사왔다.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왜 이제까지 두고 있다 급작시리 장을 담는지 일진을 보니까 초 3일 날이 중일이다 나흘 날은 갑오일 내 생기일 아무 날이나 맘 내키는 대로 날을 맞추지 않고 담는다더니 날이 양일은 좋지 안타. 이틀 거듭 초다 셋 날로 미루어 담으라고 말할까 하다가 맛이 있든 업든 그 장을 못 먹고 죽는 한이 있어도 말하지 안으리라 말해다가 뒤우로 맛이 없어도 원망 그대로 담았다가 맛있어도 날이 좋지 안타더니 맛만 좋타하면 안 그래도 꼬투리 잡지 못해 그러는 대 뒤소리 안들을려면 이제는 일채 모른다 해야 올을 것 같다.
남들이 물으면 아는데까지는 말하지만 제수씨 한태는 말해 놓으면 뒤우로 꼭 내 탓을 하시니까
이렇게 오늘 하루가 지나갔으며 당분간 죽은 듯이 살기로 마음먹고 무슨 소리 하든 말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참고 살리라.
본인이 복 받으려면 스스로 반성해야지...
내남없이 모두 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90년3월29일 목요일 흐림.
고요한 소리 불교 모임에서 지장경을 우송해 왔다.
장날 아침 동창 택기 전화가 왔다.
우리 빈집 외양간에 소를 먹이도록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주기로 했다.
공상자 종숙 어른 혹시 가지고 가셔는지 문의전화를 하고 조금 있다니 종형수 숙모 장에와서 들왔다.
얘기하다 밖에 나가더니 종형 삼촌도 오셨다.
분무기 얘기를 하고 돈이 좀 있나하여 더 빌려드릴 것은 없다하고 가신 후 안마 오득 형님 형수 장 오셨다가 흑태 속청 씨를 구해 가시려고 한다기에 드리라 하고 도목 할배 아부지 퇴원해 오셔도 못 와 보셨다고 들와서 한 시간 정도 대화 하시다 가신 후 8대조 회전 용등을 석물 놓을 때 25년 전에 없에다는 것도 알았으며 사당 건립에 대한 내력도 알았다.
권정 파조 고려말엽 좌사간을 지내신 사복제 검교공파 2대조께서 기념 식수한 해 나무를 봉신 권가들만 하다가 타성씨도 동참 했으나 경자년과 경술년 두 번 별신굿 놀이 하는 구경 재현을 봐는 대 건립금 나온 것으로 운구와 농악기를 장만 했다고 하시고 수몰 될 때 보상을 받아 타 성씨와 반씩 나눠서 해오다 끝내 유지 못 하고 중단 대었다 하신다.
종숙 삼촌 들오셔서 맥주 사다 마시고 놀다 삼촌은 먼저 리어까에 등겨와 씨레기 헌 타이어 주브를 싣고 가시고 종숙 어른하고 3시가 넘도록 이런 저런 대화를 하고 놀아는대 내가 실언을 한 것 같다.
재종이 집 살 때 아부지 보태 준 돈이 3백만원 된다는 이아기를 하고 싶어 한게 아니고 부천 땅값 이야기 나오다보니 그 이야기가 나와는대 나는 들은 대로 말하다보니 아제는 6백만원 올라 갖다며 당장 계산하여 돈 보내라고 한다 하시더니 집에 가서 전화를 하신 모양이다.
종숙모 성질 알면서 왜 들은 소리 아제 한태해서 재종 한태 돈 보내라고 전화하고 소란을 피운 모양이다 나를 책하는 전화가 왔다.
내가 괸히 들은 대로 말하다 부자간에 이간질 한 것 같다.
미안 하다. 참으로 말조심 단단히 해야 한다.
무심코 한 말이 그럴 줄 누가 알까? 아부지 저녁을 채 두 숟가락도 드시지 않고 국만 마시고 숟가락 놓으신다. 불상한 생각이 든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3월30일 금요일 흐림.
오늘 오후 선예가 보건소에 가서 약을 받아왔다.
아침을 먹고 동생이 과원에 간다고 동전을 갖다준다.
지장경을 독송하다니 선예가 엎어져다며 옷을 버렸다며 들와서 갈아입고 나간후
신실이 와서 김치를 가지고 가며 경운기 손봐가지고 조금 전에 갖다고 했다.
11시 다 데서 가고 동생은 10시 쯤 먼저가고 끝남이 도장 새긴 것 가줄로 왔다.
주민등록 하려고 왔다가 다음에 오란다고 했다.
면직원 송경환 부인 손두리 여사 박기조 부인 정경윤 부인 박분자 진성모 이렇게 놀러 왔다가 제수씨 밭에가고 없어서 바로가고 쓰레기 차가 와서 실어갔으며 오전에 지장경을 끝까지 읽어는대 지장보살 명호를 염불 하는대 3 만에서 7만번 이상 외우면 소원이 잘 이루어지고 모든일이 뜻대로 잘 풀린다는 설명이 있으므로 점심을 먹고 약 탕기에 아부지 약을 지어 온 것 다 잡수어서 아부지께서 깨끗이 씻어 쓰며 나는 약을 정리 한 후 방청소 해놓고 애들 돈을 봐꿔 주면서 한 시간을 지장보살 염불을 열심히 하다가 저녁까지 계속 일만번 이상을 하였다.
제수씨 들에서 돌아올 때 아지매 한 말 사라하여 가지고 왔다 하며 애들을 찾아 놀러 갖다하고 서당골 박 무한 어른 전화가 왔다.
동생 내외 과원에서 만나 우리 빈집을 사라하드라며 확실히 적당한 가격에 팔면 산다고 전화가 와서 확실히 산다면 팔겠다는 결심을 보여 드렸다.
어제 동생은 상명이 아빠가 왔을 때 뜯어서 과원에 다가 헛간으로 두어 칸 꾸미고 뜯자고 햇으나 대답을 하지 않았다 뜯자며 품들고 짓자면 20만원 이상 들어야 하며 그 집에 혼이 베어 있으므로 뜯어 버리기에는 아까웠으므로 누가 살려고 산다면 좋게다 마음먹고 있는 대 마침 길수네가 산다는 전화가 있어
지장보살 염불한 공덕이 즉시 나타나는 느낌을 받았다.
3월31일 토요일 맑음.
과원에 칠 유황을 끓인 날
어제 저녁 박무한 어른 우리 빈집을 금방 살 것처럼 넘어 오라더니 오늘 식전에 다시 전화 오기를 9일 장까지 연기를 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도 결단력이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큰집 끓인 약통을 옴겨서 끓일 예정이 여는데 약이 담겨 있어 약통을 제수씨 식전에 나가서 물어보고 구해다가 신서방 한태 입구를 따 달라 하여 서둘러 가서 약을 3통이나 끓여놓고 왔다고 했다.
나는 선례하고 오락실을 보며 집 앞에서 놀다 종형님 오신 것 같아서 빈집 매매를 위하여 의논할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어제 저녁에 면직원 송경환 부인이 닭계장을 끓여갖다 준 것을 오늘 낮까지 잘 먹었다.
오늘도 지장보살 염불을 두 시간을 외우며 생활 하였다.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이시여 지장보살 불가사의한 가피력으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이 중생업이 소멸대어지고 바라는 소원이 하나하나 성취대어 이중생도 인간다운 삶을 누려보게 하여 주소서.
어서어서 괴로움이 소멸대게 하소서.
지장보살 마하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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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명심보감 님의 일기 잘보고 갑니다
어르신 과 돼지고기 찌게를 한근씩도
파는모양입니다
틈틈히 도장도 파는 모양입니다
재주가 참 많으십니다
신발가게 말아먹고 촌으로 다시 들어가기 싫어서
분식점 선예네집을 하면서 테이블 게임기(겔라그) 한대로 시작해서 컴퓨터게임장을 허가받기 위 이웃동네 80만원을 빚내서 두대의 컴퓨터 게임기로 50원짜리 동전을 벌어 모은것이 게임기 20대까지 확장했으나 1993년을 최정점으로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들어 2005년쯤에 폐업을 했는데요.
그 게임사업을 하면서 틈틈히 도장을 새겨서 수입을 늘렸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교육으로도 과외수입을 좀 챙겼었는데...
지금은 스스로의 수입 제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