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베리 상 2회 수상 작가 캐서린 패터슨의 감동의 신작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국내에서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를 통해 잘 알려진 ‘빵과 장미’라는 말은 현대 노동운동사에서 상징적인 구호다.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에서 일어난 파업에서 처음 등장한 이 구호는 노동자들에게 기본 생존권(빵)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릴 권리(장미)도 필요하다는 의미로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다.
『비밀의 숲 테라비시아』와 『내가 사랑한 야곱』 등 수많은 청소년소설로 국내에서도 사랑받는 작가인 캐서린 패터슨은 『빵과 장미』에서 두 소년소녀의 눈에 비친 파업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 보일 뿐 아니라, 파업 노동자들의 자녀들을 기꺼이 돌봐준 타지역 사람들의 감동적인 실화를 들려준다.
『빵과 장미』는 패터슨이 우연히 자신이 살고 있는 버몬트 주 배러의 사회주의자 노동회관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회관 앞에서 서른다섯 명의 아이들을 촬영한 사진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빵과 장미 파업’ 동안 배러에 머문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의 어린이들.” 파업 기간 동안 집을 떠나 머나먼 배러에서 지내게 된 아이들의 사연이 궁금해진 패터슨은 이후 자료조사에만 꼬박 3년을 매달렸다. 그리고 유명한 구호인 ‘빵과 장미’가 생겨난 1912년 로렌스의 파업을 이민 노동자 가정의 소녀와 토박이 부랑자 소년을 통해 그린 『빵과 장미』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일어선 사람들, 그들에게 주저 없이 지지와 도움의 손길을 보내준 사람들의 실화는 그렇게 우리 시대에도 큰 울림을 주는 이야기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오늘부터 엄마는 공장이 아니라 거리로 나간다
그리고 동네 아이들과 나는 저 멀리 버몬트로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1912년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의 추운 밤, 싸구려 공동주택 뒷골목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잠을 청하던 열세 살의 제이크 빌은 신발을 찾으러 온 열두 살의 로사 세루티와 만나게 된다. 미국 토박이인 잭은 나이를 속이고 방직공장에서 일하는데, 아버지도 있고 판잣집이긴 해도 집도 있지만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매질을 피해 노숙을 일삼는다. 이탈리아계인 로사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엄마와 언니, 어린 남동생과 함께 공동주택에서 사는데, 학교 성적이 좋아 집안의 자랑거리다. 잭이 로사의 구두를 찾아주고 이를 계기로 로사는 식구들 몰래 제이크를 집에서 하룻밤 재워준다.
로렌스에서는 공장의 이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임금삭감에 반대하는 파업 시위가 한창이다. 담임선생님도 파업은 위험하고 옳지 않은 일이라고 말하는 마당에, 엄마와 언니가 공장에 나가지 않고 파업에 참여하자 로사는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전전긍긍한다. 파업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지 못하는 제이크는 돈을 벌어 술을 사다주지 않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피해 이탈리아계 파업 노동자들을 따라다니며 밥과 잠자리를 해결하거나 성당에 몰래 들어가 포도주와 성체를 훔쳐 먹고 잠을 잔다.
파업 시위는 일명 ‘워블리들(wobblies)’이라 불리는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의 지휘 아래 평화적으로 진행되지만 공장주와 결탁한 주 당국이 폭력 진압하면서 시위 노동자가 군대의 총에 맞아 죽는 참극이 벌어진다. 한편, ‘워블리들’의 지도자 빅 빌 헤이우드가 로렌스에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로사의 엄마와 여성 노동자들은 로사의 도움을 빌어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라는 피켓을 만들어 헤이우드가 도착하는 날 기차역으로 가져간다.
워블리들은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어린 자녀들이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판단해 ‘휴가’를 계획한다. 미국 전역에서 파업이 끌날 때까지 아이들을 보살펴줄 사람들을 모집해 이들 가정에 임시로 아이들을 맡기는 프로젝트다. 엄마는 로사를 휴가 보내기로 결정하고, 휴가 지원서를 내러 간 이탈리아 회관에서 로사는 제이크를 다시 만난다. 로사가 뉴욕에 간다는 소리를 들은 제이크는 뉴욕에 가고 싶은 마음에 신분을 속이고 지원서를 내려고 한다. 하지만 부모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판잣집에 돌아간 제이크는 잠든 아버지 곁에 누웠다가 아침에 아버지가 꽁꽁 얼어 죽어 있는 걸 발견한다. 죽은 시체도 무섭고, 자기가 사다준 술에 취해 얼어 죽은 게 아닌가 싶어 제이크는 그 길로 도망쳐 로사가 탄 기차에 몰래 올라탄다.
마지못해 기차에 오른 로사는 의자 밑에 숨어 있는 제이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지만 동행이 생겼다는 생각에 차마 뉴욕이 아니라 버몬트 주의 배러로 가는 기차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두 아이는 남매 행세를 하기로 하고 제이크는 이탈리아계인 살바토레(살)가 된다. 뒤늦게 로사는 제이크에게 버몬트 주로 가는 기차라고 털어놓고, 제이크는 도착하는 즉시 도망쳐서 어떻게든 뉴욕에 가리라 다짐한다.
기차가 버몬트에 도착하고 제이크와 로사는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옷도 장만한다. 하지만 제르바티 씨는 거의 말이 없고 아이들에게도 데면데면하게 대하는데, 나중에 아이들은 제르바티 부부의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까막눈인 제이크는 학교에 가는 낭패를 모면하기 위해 제르바티 씨의 석공소에서 일을 거들며 배우겠다고 나선다. 그러면서도 두 아이는 각자 고민을 끌어안고 있는데, 로사는 로렌스에 두고 온 식구들이 걱정되어 하루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어하고, 제이크는 돈을 마련해 뉴욕으로 도망칠 궁리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크는 제르바티 씨의 공장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금고를 털려다 그만 제르바티 씨에게 들키고 마는데……
빵과 장미 파업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산업혁명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기업가들은 높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할 노동자들을 확충해야 했다. 그리하여 인력알선업자들을 유럽 각지에 보내 값싼 노동력을 모집했고 그 결과, 1912년 당시 로렌스에는 최소 30개국에서 온 노동자들이 45개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초기 노동자들이었던 미국 토박이나 아일랜드인들은 이미 공장과 지역에서 요직을 점하고 있었다.
그러던 1912년 1월 주의회에서 여자와 어린이의 노동시간을 주 56시간에서 54시간으로 단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성인 남자가 성인 여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았기 때문에, 공장주들은 일괄적으로 노동시간을 54시간으로 줄이고 기계 가동속도를 높이고 단축된 노동시간으로 인해 생길 이윤손실을 임금삭감을 통해 메우려 했다. 그로인해 훗날 ‘빵과 장미 파업’으로 불리는 역사적인 파업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파업은 이민 노동자 그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이 놀라운 결속력을 보여주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의 핵심인물로 파업을 이끌었던 빅 빌 헤이우드는 “여성들 덕분에 파업에서 이겼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2월이 되면서 파업 노동자들은 대규모 저지선을 형성했고 7,000명에서 1만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지구 일대를 빙 두르는 사슬을 이루어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식량은 바닥나고 어린이들은 굶주렸다. 그러자 사회주의 신문인 뉴욕 ‘콜 Call’은 노동자들의 아이들을 다른 도시의 파업 지지자 가족들에게 보내 파업 기간 동안 돌보게 하자고 제안했다. 유럽에서는 파업 노동자들이 이렇게 한 바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놀랍게도 단 3일 만에 ‘콜’에는 아이를 맡아주겠다는 편지가 400통 답지했다. 그리하여 세계산업노동자동맹과 사회당이 대대적인 어린이 출애굽을 조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네가 나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어”
캐서린 패터슨은 가혹한 노동환경, 파업과 진압이라는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을 두 소년소녀의 눈을 빌어 거리를 두고 그리고 있다. 로사와 제이크는 오히려 파업에 반대하거나 상관없다는 쪽이다. 열두 살 로사는 가난한 이탈리아계 이민 노동자의 딸로, 학교에서 우등생인 소녀는 ‘교양 있는’ 미국 시민이 되기를 원한다. 파업에 참여하는 엄마와 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로사는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노심초사한다. 이민 가정의 똑똑한 아이인 로사는 교육이 오히려 이 아이를 가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경우인 셈이다. 열세 살 제이크는 미국 토박이지만, 판잣집에서 살며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데, 아버지는 걸핏하면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따뜻한 가정도, 제대로 된 교육의 기회도 가져보지 못한 제이크는 오로지 생존 본능만 남은 거친 아이다.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파업이라는 압도적인 상황 속에서 두 아이는 분노와 동정, 절망이라는 감정들을 오가며 갈팡질팡하고, 『빵과 장미』는 그런 두 아이의 시점에서 ‘빵과 장미 파업’을 따라간다.
캐서린 패터슨이 『빵과 장미』를 쓰게 된 동기인 한 장의 사진에 얽힌 사연이 드러나는 ‘배러에서의 휴가’에서 두 아이는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행복한 삶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된다. 특히나 『빨강머리 앤』이나 『위풍당당 질리 홉킨스』를 떠올리게 하는 비천한 고아와 마음을 닫은 어른이 교감하는 결말은 가슴 먹먹한 감동을 전달한다. 격렬한 파업 현장을 떠나와 머나먼 배러에서 두 아이는 아낌없는 선의와 연대를 경험하며 마침내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행복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