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손경찬의 대구경북 人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인선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 / 계명대교수 )
이인선 전 경북경제부지사님을 만났다. 대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와 석사 박사과정까지, 그녀는 ‘식품미생물학과’라는 실용학문으로 이학박사를 취득한 후에 계명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신 분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ST) 원장을 거쳐 계명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2011년 경상북도 정무부지사에 취임하고 4년 동안 정무와 경제 부지사를 역임하는 등, 학계와 정계에 몸 담아온 이력이 그녀에게 ‘일벌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지금 어떤 일을 하시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교수와 미생물학 면역학 연구자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지역에 국가기관을 만들어서 기업과 학생들을 지원하고 자원을 키우는 일을 하고 있어요.”
기업이 잘 되어야 청년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역에서 둥지를 틀고 살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의지가 그녀만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학자로서의 면모와 정계 일선에서 쌓아온 내공이 그녀의 전체적인 커리어를 형성하고 있다. 지역협력연구소장으로 10년간 나라 일을 하고 대구과학기술원 원장을 지내며 대구시와 기업, 학교의 컨소시엄으로 전방위적인 일을 하며 늘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려고 애써왔다.
그러한 노력이 통했는지, 이 부지사는 2011년에 과학기술유공훈장을 받았다. 할아버지 故 이준석 지사님도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며, 나라 일에 헌신하라는 운명을 타고 났나 보다고 한다. 국제소화기암학회 젊은 과학자상과 제 1회 대구시 여성대상, 여성공학인 공공부문 대상,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지역공헌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거기 더하여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제4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을 지내고, 제21대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역전된 결과로 좌절하고 말았지만 그녀는 언제든 불러주면 국민을 위해 일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당찬 결의를 보이기도 한다. 2019년에는 산업부에서 주관한 전국경제자유구역 성과평가에서 개청 이래 처음으로 최우수 등급을 달성하고,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지역공헌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모두 ‘일벌레’답게 몸을 아끼지 않고 맡은 일을 충실히 해낸 결과라고 여겨진다.
“좌우명이 무엇인가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라는 말이 있죠. 중국 당나라 임제선사의 언행을 담은 <임제록(臨濟錄)>에 나오는 말인데, 수처작주는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뜻이고, 입처개진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자리이니,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부지사는 보수적인 성향이 짙은 도시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경제 부지사를 지낸 관록으로, 국민들이 맡기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다 해낸다는 각오가 되어 있다. 대학과 공직에서의 오랜 경험을 지역구와 국가를 위해 더 낮고 뜨거운 가슴으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뜻을 내보인다. 서로 성격이 다른 구미의 창조경제핵심센터와 포항의 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히든챔피언벤쳐가 탄생하기를 기대하며 청년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주려는 꿈을 안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녀의 그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자신의 꿈에 이르기 위해 청년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현대의 청년들 사이에 맴돌고 있는 ‘3포’를 의식한 듯했다. 3포란 취업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까지 포기하는 심각한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취업이고 경제적인 바탕으로 홀로 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것인데, 코로나로 인해 현재의 어려운 사정으로 곤궁함에 빠진 청년들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눈치다. 이 부지사는 말한다. 자신이 스스로를 일으켜야 한다고. 세상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살얼음판인 것을 한시도 잊으면 안된다고 한다. 목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매진해야 한다며, 특히 여성들이 더 강해져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자신 역시 여성이어서 받았던 불합리한 면을 언급하며, 이 사회는 아직도 여성에게 불합리한 불신을 갖고 있으며, 여자와 남자 사이의 차이를 100%라고 꼬집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이 더 많이 노력해야 하며 삶은 생존경쟁의 연속이고, 세상은 가차 없는 전쟁터라고. 자식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던지고 싶지만 어머니 아버지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는 게 삶이라고 한다. 삶이 모질고 가혹한 것은 대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라고.
“어떻게 해서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의과대학 면역학 연구원을 맡은 것이 시작이었어요.”
이과 학문이 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책적으로 연결되어 공직에 들어서게 되었다. 식품가공학과 교수여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후로 그녀는 20년간 공직의 길을 걸어왔다. 대구과학관 유치, 생산기술연구원, 기계연구원, 정보통신연구원 등, 수목원에서 테크노폴리스까지 13km 긴 터널을 뚫기까지 예비타당성과 문화재통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4년에 터널공사를 완공하고 테크노폴리스를 신세계로 완성시키게 된다. 지역을 위해 헌신하고 사는 걸 자신의 일이라는 인식으로 살았고 지역에서 뼈를 묻을 거라서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런 마음가짐이 그녀를 여성 최초의 전통미생물자원연구센터장과 계명대학교 대외협력부총장을 지내게 했고, 여성최초의 대구경북과학기술원장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장을 지내기까지 그녀는 매순간마다 온 힘을 다 해서 일했다. 매사에 꼼꼼하고 시원하게 일을 해내는 능력이 그녀를 필요로 한 일이었고, 자리가 그녀를 원했다.
“총선에서 홍준표 의원에게 졌는데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여성이어서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총선에서 졌다는 원망이 많았지만,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여성을 약하다고 판단하는 인식이 잘못된 것이다. 정작 큰일을 해내는 사람은 여성이다. 배지도 없을 때부터 도와주었지만 총선에서는 오직 적이 있을 뿐이었다. 한 번의 좌절이 준 교훈이 있다면, 국민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면 다 받아주는, 기준 없는 당권의 체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교수직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정치인이 아니라 미생물학을 연구하며 학자로 살다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그렇게 살 수도 있었는데, 운명의 흐름이 나를 정계로 이끌었어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면역학교실 연구원으로 있을 때 암 예방 연구와 장기이식의 조직적합성을 10년간 연구했다. 함황식물인 브로콜리, 양배추에서 추출한 예방 물질을 췌장암에 걸린 햄스터에 먹여서 암 예방 효과를 살피는 연구였고, 현재 캐비신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어떤 식품이 암으로 표식되기까지 8년이 걸린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92년에 우리나라와 일본재단에서 15명을 각 분야별로 선정한 선진연구 교류에 선발되어 암 예방 연구로 18개월을 보냈다. 그렇게 자신만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는데, 그 일을 계속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다.
“지금 다시 연구자로 돌아간다면?”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어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이 벤츠 창업이나 기업으로 취업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지역에서 헌신하는 거예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할 때가 가장 행복했지만 이런 일 만큼은 가르치는 일만큼 잘 할 자신 있어요.”
혁신도시에 국가기관들이 많이 와 있는데 국가에서 이 부지사를 불러서 일을 해달라고 불러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연구와 교육이라는 성스러운 일만큼이나 헌신적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그녀가 연구자의 길에서 벗어나 정치로 들어서도록 운명이 그녀를 이끌었다, 내강외유 (內剛外柔)! 그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는 동안 떠오른 말이다. 최초의 여성 부지사로 테크노폴리스 터널을 뚫는데 필요한 예산타당성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내면에서 조용히 끓고 있는 강한 힘의 작용으로 여겨진다. 온유하면서도 차분하게 한 걸음씩 내딛으며 먼 일까지 내다보는 직관으로.
“자신의 자리에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으세요?”
자신의 발자취를 자주 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정말 최선을 다해서 잘 살았다는 말을 듣고 싶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임기 동안 머물다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지역출신의 일꾼들은 다르다. 취업을 앞둔 청년들이나 정치인이나 입장이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들은 우선 눈에 보이는 화려한 스펙이나 배경에 주목하기보다 정말 제대로 일을 하는 사람을 불러서 아낌없이 능력을 활용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지역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일꾼을 놓치지 않는 사회풍토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