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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평범한 일상을 사랑했던 마리아님, 저희와 함께 걸어주십시오!
이토록 큰 부끄러움과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은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자비하신 주님께서는 인간 역사의 잔악함과 남루함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자비를 베푸십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아무리 슬프고 스산함에도 불구하고 힘과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주님 축복과 사랑의 표시로 받은 이 은혜로운 첫날, 우리 모두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 죽음과도 같은 깊은 슬픔에 잠긴 이웃에게 그분의 복음을 선포하며 따뜻이 위로하는 사랑의 예언자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교회 전례는 새해 첫날을 세상 모든 신앙인들의 모델이요 이정표이신 성모님 대축일로 정해 경축하게 합니다. 참으로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확신합니다.
사실 마리아는 지극히 작은 존재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산골이자 변방 나자렛 출신의 어린 소녀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토록 작은 존재 마리아를 당신 인류 구원 사업의 첫째가는 협조자로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휘황찬란한 영광의 길, 떠들썩한 권력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큰 것을 작은 것 안에, 참나무를 도토리 안에, 말씀을 육신 안에, 영원을 순간 안에 담아두기를 좋아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화려한 겉모습이나 번쩍거리는 빛 또는 성전의 장엄함과는 거리가 먼 하느님의 새로운 길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누워계실 거친 지푸라기로 만든 구유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아기는 젖이 먹고 싶어서 훌쩍 거리기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소 지으며 우리를 향해 아주 작은 손을 내뻗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아기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든 신앙인들의 신앙 여정의 가장 좋은 모델이요 본보기가 되시는 나자렛의 마리아의 삶과 영성에 대해 소개하는 짧으면서도 유익한 소책자가 하나 출간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종 수도회 소속 사제이며 대 영성가인 에르메스 론키의 ‘마리아는 길을 떠나’(바오로딸)입니다.
열심히 책을 읽다보니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너무나 적합한 기도문이 눈에 띄길래 소개합니다.
평범하고도 거룩한 여인 마리아님,
저희가 평범한 일상의 삶을
구원 역사가 이루어지는 터전으로 여기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나자렛 집의 냄비와 베틀 사이에서, 눈물과 기도 사이에서,
양모 실타래와 성경 두루마리 사이에서
당신은 진정 온전한 여성의 품위를 지닌 모습으로
회한 없는 기쁨, 절망하지 않는 슬픔, 기약없는 이별을 체험하셨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랑했던 마리아님, 저희와 함께 걸어주십시오.
하늘의 모후 관을 쓰시기 전 가련한 이 땅의 먼지를 먼저 맛보셨던 마리아님,
저희가 하느님의 업적에 경탄하는 마음만은 잃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스도에게 위안을 받는 그리스도인이기보다
그리스도와 사랑에 빠진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안토니오 벨로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어머니는 자녀의 어떤 미래를 지원했느냐에 따라 공경의 수준이 결정된다
개신교에서는 성모님을 한 신앙인으로서 공경하지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공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처음부터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알고 지지하고 어머니의 역할을 했기에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공경받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천주의 모친 성모 마리아 대축일에 우리는 예수님을 낳고 키우시며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도록 평생을 헌신하신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 묵상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구원의 계획에서 하느님과 깊이 협력하신 마리아의 역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어머니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희생적인 사랑과 자녀의 진정한 목적을 위한 변함없는 헌신입니다.
진정한 어머니는 자신이 받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미래를 위해 주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1열 3장 16-28에서 솔로몬 왕의 유명한 판결은 이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두 여인이 한 아이의 어머니라고 주장하지만, 솔로몬은 희생정신을 통해 진짜 어머니를 알아냅니다. 참된 어머니는 아이가 다치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말하며, 자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할 수 있다면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성모님도 요셉 성인과 함께 예수님을 살리기 위해 이집트로 피신하셨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이십니다.
성경에서도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보여준 헌신을 볼 수 있습니다. 탈출기 2장 1-10절에서 그녀는 파라오의 명령에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기고,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맡겼습니다. 그녀의 사랑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지도자로 모세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강물에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심장을 찢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파라오의 종살이에서 탈출시키는 인물인 모세가 되었기에 구약의 모세의 어머니로서 공경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받아야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떤 자녀든 그 정체성에 대한 사명이 존재합니다. 그 사명에 협조했다면 어머니는 그 사명을 수행한 자녀의 어머니로 공경받습니다.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어머니인 투르 페카이의 삶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문맹이었고, 여아 교육을 금기시하던 사회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딸의 여성 교육에 대한 꿈을 지지하며 위험에 직면해 있던 말랄라를 끝까지 응원했습니다.
말랄라가 생명을 위협받으면서도 계속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어머니의 도덕적 지지에서 나왔습니다. 결국, 말랄라는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되었고, 어머니의 믿음과 희생이 세상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투르 페카이는 그냥 어머니가 아닌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그 사명을 위해 지원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은 처음부터 ‘하느님 아드님의 사명’을 지원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명은 당신 희생으로 모든 인간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전한 메시지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한 순간부터 마리아는 믿음과 용기로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습니다.
천사가 지시한 대로 그녀는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며(루카 2,21), 그분이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맡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의 삶 동안 마리아는 그분의 말씀과 행동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매 순간 지지했습니다.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종들에게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고 말하며 예수님이 첫 번째 기적을 행하고 공생활을 시작하도록 도왔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아래에서도 마리아의 침묵 속의 존재는 그녀가 아들의 사명에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리아의 삶은 어머니의 역할이 단순히 생물학적 관계를 초월하여, 하느님 아드님의 사명을 지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고 지혜가 자랐다고 합니다. 부모가 예수님의 사명을 지원하며 키워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아드님, 곧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불리시고 공경받아야 당연합니다.
저의 어머니도 교육받지 못하고 자라셨습니다.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라셨지만, 아들 셋을 잘 키웠고 그중 하나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성당 가면 사제의 어머니로서 존경받으십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어떤 공경을 받을지는, 내가 이 세상에서 누구의 어머니가 되느냐에 달렸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하느님 자녀를 낳고 성장시키면 하느님 자녀의 어머니로서 하늘에서 공경받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은 인간이 어떻게 하늘에 들어가고 하늘에서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지 보여주신 분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은 마리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가까이 이끄는 삶을 살 때, 우리도 이 거룩한 사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우리가 땅에서 하느님의 일을 어떻게 양육하고 지원했는지에 따라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우리의 삶을 하느님의 계획에 봉헌하며, 우리의 희생이 영원한 열매를 맺을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마리아의 믿음, 용기, 사랑을 본받아 다른 사람들을 올바른 목적을 향해 인도하는 영적 어머니와 아버지가 됩시다. 아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2,16-21: 그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며, 성 바오로 6세께서는 1968년부터 이날을 세계 평화의날로 제정하셨다. 마리아께서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낳아 주시면서 새해의 모든 날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기를 기원하는 듯하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복음은 목자들이 천사가 그들에게 알려준(루카 2,11) 구세주를 찾아가는 장면이 소개하고 있다. 목자들의 관심은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에게 있다. 그들이 찾고 있던 것도 아기였고, 그들이 본 것을 이야기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도 아기에 관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아기에 대해 말하면서 그 옆에 있는 어머니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리는 없다. 그러나 복음에서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19절) 간직하는 마리아의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목자들이 그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기쁨이 퍼져나가도록 하지만, 마리아는 그 일에 담겨 있는 보다 깊은 의미와 주님의 가르침들을 파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마리아의 모성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준다. 그것은 아들의 신비에 언제나 보다 철저히 참여하고자 하는 사랑에 불타는 모성이다. 그 모성은 갈바리아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까지 동화하는 모성이다.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었다”(21절). 할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 계약의 징표였다(창세 17,11). 남자에게는 하느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징표이다. 예수께는 구원업적인 수난의 전표이기도 하다. 마리아는 십자가의 죽음에 처할 운명을 타고난 아들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 때문에 마리아의 모성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기에 더욱 풍요롭다.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에서 모든 인간을 그리스도의 피로써 생겨난 자기의 자녀들(요한 19,26)로 받아들인다. 마리아는 항상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의 역할에 종속되어있는 모습을 우리도 따를 수 있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갈라타서의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고 성령의 선물을 베풀어주신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극하여 악의 힘에 억눌렸던 우리를 속량하시어(참조: 갈라 4,5), 당신 자신의 신적인 자녀 관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 4,5). 이 자녀는 법적인 권리를 얻는 것보다도 우리의 존재를 다시 나게 하는 내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성령을 받음으로써 우리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갈라 4,6)로 부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 4,7).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새롭게 해주시기 위해 마리아가 필요하셨다.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들을 구원해 내시고.”(갈라 4,4-5). 때가 찼을 때, 즉, 하느님의 구원이 실현되려는 때,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다. 하느님의 아들은 율법의 속박을 없애기 위해 율법의 지배하에 태어나신 것처럼 마리아에게서 살과 피를 취하실 필요가 있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 결정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없었으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시지 못했을 것이고, 그분이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면,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해 갖는 우리의 하느님의 자녀 관계도 어느 정도 마리아의 모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리아의 역할을 볼 때, 마리아가 어떻게 평화의 주인(이사 9,5)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새해의 평화에 대한 표징이 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평화는 바로 자녀들-형제들의 관계를 생기게 하는 모성이라는 표징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자녀-형제 관계에서 사람들은 서로 이해하고, 존경하고, 용서하고, 섬길 수 있게 된다. 결국, 평화는 우리의 어머니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최초의 선물이며, 그 모성을 통하여 생명의 신성함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에 대한 공격은 모성을 파괴하는 것이며, 따라서 평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태중에 잉태된 생명을 파괴하는 것도 안 되는 일이다. 또한, 젊은이들을 그릇된 길로 몰아가는 사회적 폭력의 원인이란, 바로 폭력을 쓰는 젊은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모성적 사랑의 결핍에 있다. 그 사랑의 결핍으로 모든 것을 헛되이 여기고 누구에게나 반항한다.
마리아는 이렇게 평화의 상징이며, 마리아의 모성을 펼침으로써 평화를 만들어내는 진정한 평화의 창출자이시다. 마리아는 마리아의 찬가에서,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 1,51-52). 폭력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민수기의 대사제가 백성들에게 축복하는 이유를 알아들어야 한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6). 이제 이 축복이 마리아의 미소와 함께, 그리고 우리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한 해를 진심으로 감사하고, 새해를 봉헌하는 시간이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2025년 을사년 (乙巳年)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지난 2024년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연말에 찾아온 많은 아픔은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났는지…. 새해에는 좋은 일만 가득해지시길 기도합니다.
여행 등을 통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만 복잡한 이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정말 그럴까 싶었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다녀오신 분과 성지순례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하셨으니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이분 덕택(?)에 너무 힘든 순례가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싫은 것이 많은지, 그리고 자기 다녀온 경험과 계속해서 비교하시는지,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여행 안에서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주의 철학가 임마누엘 칸트는 평생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의 경험 통로는 책과 사람들과의 대화뿐이었습니다. 여기에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학문 연구와 가르치는 데 몰두했습니다. 여행 등의 경험이 전혀 없지만, 그는 엄청난 철학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경험의 객관적 형태보다 자기가 마주한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더라도 해석하는 힘이 없다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해석은 우리 신앙 안에서 묵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 안에서 분명 깊이 있는 깨우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낳아 주신 어머니를 기리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구세주의 어머니시지만, 앞에서 먼저 말씀하시지도 또 행동하시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지만, 특별한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이는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또 예수님을 성전에서 다시 찾으셨을 때도 보여주셨던 모습입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면서, 하느님의 뜻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의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모습, 즉 기도와 묵상을 통해 하느님 뜻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믿지 못한다는 생각으로써는 절대로 하느님의 뜻을 알 수도 따를 수도 없게 됩니다.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모습을 따르면서 하느님의 뜻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024년과는 다른, 보다 의미 있는 2025년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타인이 내게 내어주는 시간은 언제나 소중한 선물이다. 지금은 나미브 사막의 폭풍우처럼 희소해졌지만 누군가에게 한 시간 혹은 하루 동안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성모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이
인간적으로 참으로 고된 길이었음에도
역설적으로 참다운 평화의 길이었습니다.
분명 하느님 안에서
참된 평화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올 한해도 저에게는 쉬운 길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음에서의 저의 사명에 피곤하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두려운 마음에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고,
편안함과 안주하려는 게으름 때문에
타성에 젖어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길이 아니라
쉬운 길로 가고자 하는 유혹도 있을 것입니다.
이 유혹과 시련들 앞에서
평화가 짖밟히고 사라진 이 세상 앞에서
저는 새해 아침을 열며
인간적인 나약함을 이겨내고
참다운 평화의 길을 모색하고 걸어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기도립니다.
올 한 해는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성모님처럼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며 침묵하며 제 갈 길을 걸어가며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하느님의
어머니를
뵈옵는
은총 가득한
새날입니다.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만나는
새날입니다.
고마움과
소중함과
특별함은
우리 삶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이어집니다.
사람의 아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드디어
한 여인이
사람이
되어오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시는
어머니께서는
어머니의 여정을
걸어갑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첫마음이신
어머니를
첫 번째로
만나십니다.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우리 믿음의
고백입니다.
싹을 틔우고
꽃이
피기까지는
사랑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가장 큰 용기이며
가장 좋은
평화입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님의
모습에서
진정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
평화를 얻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도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십니다.
더 기쁘고
더 행복한
새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진심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2,19)
'근하신년!'
오늘 복음(루카2,16-21)은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말씀'과 '목자들이 아기 예수님을 뵙는 말씀'입니다.
2025년 새로운 한 해가 밝았습니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 한 해를 되돌아봅니다.
2025년 새해는 새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극심한 정국 혼란 속에서 새해를 시작합니다. 거기에 더해져 여객기 대참사라는 큰 아픔과 슬픔을 안은 채 2025년 새해를 시작합니다.
모두의 구원이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안고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이 큰 기쁨의 축제 때에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일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라는 물음도 던져봅니다. 그리고 "사랑이신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라는 탄원의 목소리도 던져봅니다.
이러한 때에 먼저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동방에서 찾아온 목자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놀라운 탄생 소식을 듣고,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2독서(갈라4,4-7)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4,7)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물려받은 상속자들입니다. 그동안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상속자로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과 사랑을 살아왔는지 한번 곰곰이 되새겨 봅시다!
이 되새김 속에서 2025년 새해를 맞이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분명 우리에게 큰 은총과 평화를 내려주실 것이고, 지금의 큰 위기를 큰 기회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복음말씀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민수기의 말씀입니다.6,22-27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말씀입니다.4,4-7
형제 여러분, 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7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16-21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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