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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7월20일 수요일 [(녹)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수도회] 희망과 인내 속에 커가는 하느님 나라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예레 1,1.4-10
† 복음 마태 13,1-9
◈ 오늘의 묵상
씨를 뿌리는 것은 땅에 생명을 심는 것입니다. 이 작은 생명의 씨앗이
열매를 맺으려면 햇볕과 비, 그리고 땅의 재질, 농부의 인내 등 많은
요소가 함께 작용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당신 말씀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농사는
그 작물의 종류, 기후, 토지 등에 따라 그 짓는 방법이 차이가 납니다.
하느님의 농사법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땅을 차별하여
고르지 않고 어디든지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더 좋은 땅만을 골라
효과적으로 씨앗을 뿌리면 좋겠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의 마음에
씨앗을 뿌려 모두를 당신 구원으로 초대하십니다. 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미리 제외해 버리는 것은 사랑이신 당신의 본질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농사법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인내와 기다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생애는 늘 기다리는 것입니다. 씨 뿌린 이가 그것이 빨리
자라도록 절대로 강제하지 않듯이, 사랑은 언제나 상대방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바라고, 오해했던 것이 풀리기를 기다리고, 나의 변화된
모습을 알아봐 주기를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성급하게
결론을 내고 먼저 잘라 내버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모든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니다.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가 된 열매는 기쁜 마음으로 거두시지만, 돌밭에 떨어져
열매 맺지 못한 씨앗은 누구보다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2016년 다해 7월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제1독서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 예레미야서의 시작입니다. 1,1.4-10
복음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9
살아오면서 창피함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어떤 것이 나를 가장
부끄럽고 당황스럽게 만들었을까요?
길을 가고 있는데 내 바지의 지퍼가 열려 있음을 발견할 때는 어떨까요?
예전에는 많이 창피했었는데 이제는 뭐 그럴 수도 있다 싶습니다. 바지
지퍼를 환하게 내놓고 다니는 사람은 저 말고도 너무 많이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강의를 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아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을
때 몹시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저 역시 배우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이 역시 그렇게 창피하지 않습니다.
제가 원했던 성적보다 낮게 나와서 부끄러웠던 과거를 떠올려봅니다.
이 역시 이제는 그렇게 창피하지 않습니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 공부 잘 못했어요.”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 다 하는 것을 나만 잘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때 창피했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저는 신부가 되기 전까지 수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물 근처만 가면 작아지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창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수영을 배워서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수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배우면 그만인
것입니다.
어떤 생활이든 창피한 생활이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 많은지요? 정말로 우리가 창피해야
할 것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주님의 뜻에 맞지 않게 살아서 내 영혼이
주님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창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은 뒤에 어떠했습니까? 너무나
부끄러워서 도저히 자신 있게 자신들의 몸을 드러내놓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숨어 있으니 동산 나무 사이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좋은
씨가 어떤 곳에 떨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길가, 돌밭,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서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져야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의문 하나를 갖게 됩니다. 왜 농부는 길가, 돌밭, 가시덤불 같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곳에 씨를 뿌리는가라는 의문이지요. 이런 어리석은
농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부분은 차별하지 않는 주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악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해도 구원의 길에서는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부끄럽고 창피한 일입니다.
주님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우리였을까요? 부끄럽고 창피해서 어딘가
숨고 싶은 마음은 아닌지요?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그 창피함을 극복해서 세상 밖으로 나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할 때,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야말로 깨어서 사는 것이다
(칼 구스타브 융).
창피해요~~~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좋은 생각’ 중에서)
조선시대에 점을 잘 치기로 유명한 도사가 있었다. 세 사람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중 도사를 찾아가 묻지요.
“과거에 급제할 수 있을까요?”
도사는 눈을 감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가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손가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라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세 사람은 더 묻지 않고 길을 떠났다. 제자가 도사에게 물었다.
“한 손가락은 무슨 의미입니까? 세 명 중에 한 명만 급제한다는
것입니까?”
“만약 그리된다면 그런 뜻이지.”
“그러면 두 명이 붙으면 틀린 것이 아닙니까?”
“그때는 한 명이 떨어진다는 뜻이지.”
“만약 셋 다 급제하게 되면요?”
“하나도 빠짐없이 합격한다는 뜻이다.”
도사는 말했다.
“나쁜 점괘가 나오면 낙담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잘 된다고 말하면 경솔해 지는 법이지. 사실 점괘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무조건 맞는 점괘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굳이 이상한 것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함을 기억하면서 스스로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기억합시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희망과 인내 속에 커가는 하느님 나라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7월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마태 13,1-9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었다.”(13,8)
The parable of the sower
희망과 인내 속에 커가는 하느님 나라
예수님께서는 서기 27년경부터 활약하셨는데 초기에는 인기가
높았으나, 30년경 말기에는 인기가 떨어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는 고작 열두 제자와 몇몇 부인들만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간 듯 보이는 상황에서 아마도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핵심은 씨 뿌리는 것 자체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처음에는 씨 뿌리는 농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나 마지막에는 큰 기쁨을 안겨 줍니다(13,8).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하느님께 기대와 희망을 두며 살아가는 하느님 나라는
거듭된 실패에도 성장해가며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씨 뿌리는 사람은 결과에 대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씨가 어디에 뿌려지듯 성장해가고 최선을 다하여 결실을 내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실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은
결실도 그것을 내는 이에게는 넉넉한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의 힘을 보여주고 하느님의 사랑을 반사하는 거울이요
씨앗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서 살아가지만 주님
때문에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가진 것이 없고 배우지
못해서, 때로는 정의의 편에 선다는 것 때문에 박해를 받기도 하고,
거대한 자본의 힘이나 부당한 권력 행사 앞에 불의하게 짓밟히는
억울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모두가 협력하여 가꾸어나가야 할, 인간의
마음속에 던져진 한 톨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추수 날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이 작은 씨앗을 잘 가꿔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배척과 소외, 차별과 불의에 맞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생명을 가져다주는 사랑과 정의의 나라를 회복시키려고 투신하셨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 차별받는 이들 곁으로 다가가 진정한 인간의
해방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까지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랑과 정의를 위해 투신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실제로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정의를 부르짖고 정의롭게
살려는 사람일수록 부당한 탄압과 고통을 더 심하게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당장 어려움, 문제, 대결, 심지어 죽음의
위협에 맞서게 됩니다.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의로운 행동과 말, 사소해
보이는 작은 배려와 사랑의 몸짓이 별 볼일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끝까지 이런 실천을 이어갈 때 희망이요 사랑이신
그분께서는 그 작은 씨앗을 통해서도 넉넉한 열매를 맺어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보잘것없는 사랑을 통해서도 엄청난 일을 이루시고 우리
삶을 변화시켜주시며 바로잡아주시는 주님의 권능을 믿고 인내하며
그분께 나아가야겠습니다. 온갖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
2016년 다해 7월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예레 1,9)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저는 말주변이 없습니다. 입술이 더러운 사람입니다.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안다.
하지만 나는 너를 모태에서부터 점지하였다.
내가 이제부터 너의 입이 되어 주마.
내가 네 입에 담아주는 대로 말하기만 하여라.
말을 너무 유창하게 잘 하는 사람 달변가들은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 수는 있어도
하느님의 예언자가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들은 좀 우직하고 단순하고
때론 어린이같고 때론 시인같기도 합니다.
말씀묵상을 몇년간 계속하면서 고백하건데
저는 많은 묵상을 하지 않습니다.
미리 원고를 준비하고 탈고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직관적으로 잠시 묵상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해 주시도록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냥 폰에서 직접 써내려갑니다.
그러다보면 오탈자가 그냥 있고 때론 말이 잘 안 되기도 하고
논리적 비약도 있습니다.
그냥 붓가는대로 적습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받아적으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듣습니다.
간혹 제 머리를 굴리다보면 이건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그럴듯한 내 말이구나 단박에 느낍니다.
오늘은 내 말은 좀 줄이고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말씀하시도록 한 번 해 보지 않으실래요?
어떻게 해야하냐구요?
잘 안 돌아가는 잔머리 굴릴 생각 말고
조용히 그분이 말씀하시도록 기다려 보세요.
그분에게 말씀하실 기회를 드려 보자구요.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 9)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7월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 9)
말씀을 잃은 우리들에게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마음의 밭을 깨우는 것은 언제나 말씀이었습니다.
좋은 땅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말씀으로 하여 좋은 땅이 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막연한 마음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하는 마음입니다.
말씀의 길은 마음의 여정입니다.
마음이 조용해지면 빛나는 것은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예수님 말씀을 꺼낼 수 있다면
분명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말씀안에서 살아야 할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곧 좋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맛은 마음의 맛이며 삶의 맛이 될 것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2016년 다해 7월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 마태 13,1-9
제기동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사제관 앞에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감나무를 보니, 아직 익지 않은 감들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책을 늘 가까이 하시고,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학자
신부님이셨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여쭤 보았습니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감나무에서 익지 않은 감들이 떨어졌습니다.’ 본당
신부님께서는 제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감나무는 스스로 익지 않은
감들을 떨구어 내는 겁니다. 감나무는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 스스로
조절을 하는 것입니다.’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감들이 떨어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적성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성당 마당에 대추나무가 있었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지도 않았는데
익지 않은 대추들이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제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왜 익지 않은 대추들이 떨어졌나요?’ 저는 배운 것이 있어서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가을에 더 풍성한 대추가 열리기 위해서 스스로 조절을
하는 거란다.’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 있다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그것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헛된 욕망과 욕심이
있다면 역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시기와 질투로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비옥하게 만들어야
‘사랑, 희망, 믿음’은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성서에
나오는 여러 직책 중에 예언자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언자는 점쟁이처럼 우리들의 사주를 알려주고, 앞날의 행, 불행을
점치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해주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예언자 중에는 어떤 분들이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해 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이사야 예언자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이야기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
아모스 예언자가 있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미리 준비하고, 물로 세례를
주었던 세례자 요한도 있습니다. 예언자들에게는 4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의 부르심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언자들의 능력이 뛰어나서 부른 것이
아닙니다. 예언자들이 많은 업적을 보여 준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 예언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두 번째는 예언자들의 태도입니다. 예언자들은 2가지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도, 거부하는 사람도 모두 예언자로 부르셨습니다. 요나 같은
경우에는 도망가지만 결국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선포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였습니다.
불의와 갈등과 죄악이 있는 곳에서는 하느님의 심판을 이야기했습니다.
절망과 어둠이 가득한 곳에서는 희망과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비록 죄가 크다 할지라도 뉘우치기만 하면
모든 잘못을 용서하는 분이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네 번째는 고난과 시련입니다. 모든 예언자들은 크고 작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거짓과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것은 커다란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공동체에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억울하게 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과 고난은 거름이 되어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어떤 특정한 계층의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모두가
예언자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 모두는
예언자입니다. 우리가 그 부르심에 ‘예’라고 응답하고,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고, 하느님의 뜻을 삶을 통해서 증언할 때 비록 고난과 시련이
따를지라도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을 주고, 씨를 부리는
것은 우리들이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하느님이 배양하신 씨앗(예수님 말씀)
2016년 다해 7월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하느님이 배양하신 씨앗(예수님 말씀)
하느님이 배양하신 씨앗(예수님 말씀)은 계시며 그게 바로 성경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말씀이신 씨앗을 받아들여 잘 키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 소출을 죽는 날 하느님께 가져다 드려야 영원세상 배정을 받습니다.
인간이라면 이정도 돼야 하늘 하느님 아빠와 소통되는 차원 아닌가요?
그렇지 못하면 짐승? 말하기 거북하니 그냥 ‘그러면 안 되지요.’라고만.
그럼 마음 잡초 뽑으며 가꿉시다. 그래서 확실한 소출 내야 하니까요.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마태오 13,7~8)”
뭐가 잘 사는 건지도 모르고 돈 권력 욕심 일등, 사회가 사람 엉망
만들죠? 신앙생활! 이거 정말 기막히게 좋은 인생입니다. 인간 최고의
보물 삶이죠.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청주] 수고와 땀의 열매|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7월20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 마태 13,1-9
수고와 땀의 열매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씨앗이 튼실해야 하고 땅도 좋아야 합니다.
그리고 알맞은 기후가 필수입니다. 그러나 기후는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힘을
다하고 그 다음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더 깊이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오늘은 씨앗의
비유입니다. 씨를 뿌렸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졌고,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땅이 중요합니다. 좋은 땅에서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좋은 씨앗이 아니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좋은 씨앗과 좋은 땅은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알맞은 기후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시니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삼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좋은 땅이 아니라면 땅을 일구고 거름을 하여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수고와 땀이 필요합니다. 또한 좋은 씨앗을 구하려면 그만한 경륜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후를 맞추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달려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환경을
얼마나 소중하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마음의
밭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좋은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의 수고와 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후 열매는 하느님께 맡겨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좋은
씨앗인 말씀이 있어도 무관심하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좋은
밭인 마음이 있어도 전해주는 말씀이 없으면 또한 열매는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시면 서른
배, 예순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부드럽고 우리의 마음은 단단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자주 듣게 되면 마음이 열려 하느님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교부푀멘). 그리고 말씀은 귀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새겨들어야만 참된 이익을 거둘 것입니다. 더더구나 말씀대로 실천하게
되면 그 말씀의 능력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다 보면 이러저러한 일에 접하게 되고 서운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길바닥, 돌 밭, 가시덤불에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좋은 땅에 떨어져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을 뿌리는 일은 적잖은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결실은 내 생각대로 쉽게 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매는
하느님께서 맺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고와 땀으로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뜻을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씨앗의 법칙
1.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둔다.
2.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3.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4. 뿌린 씨 전 부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5. 뿌린 것 보다는 더 많이 거둔다.
6.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7. 종자는 남겨두어야 한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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