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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뒷모습 소종숙
봄이 막 시작되었다. 정월 대보름도 지나고 파릇파릇한 봄나물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토요일 이른 아침 전화벨소리가 울린다. 지리산자락 정기가 흐르는 남원에 사는 큰아들의 목소리다. 지금 출발할 테니 온천에 갈 준비를 하고 계시다가 도착하면 내려오라고 한다. 아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반가웠다. 그 아들의 삶을 회상하면서 가슴 아팠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가슴으로 밀려든다.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아들을 축복해주는 듯 하늘에서 하얀 눈이 펄펄 내리던 날이었다. 면접시험을 보러 간다며 코아백화점에서 처음으로 양복을 사입혀 서울로 보냈다. 그때 내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게 엊그제 같다. 그렇게 선경그룹 공채사원으로 입사하여 sk증권회사 차장으로 근무하다 지점장이 될 무렵 퇴직을 하고, 지금은 영어수학해법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그렇게 인생의 첫발을 딛고 시작했던 직장을 명퇴가 아니고 직업을 바꾼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데 적성이 맞지 않았는지 퇴사를 해버렸다. 그때 전고 선배라는 지점장이 우리 집을 방문했었다. 다들 퇴직하고 나서 후회한다며 아무리 만류해도 안 된다고 부모님이 설득해 보라고 했다. 지점장의 말을 들으니 연봉이 1억이 넘고 10억을 벌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 발을 허공에 내딛는 것 같았다. 제일은행에 다니던 며느리도 퇴직을 하고 두 아이가 있는데 둘다 실업자가 되었으니 부모로서 몹시 걱정스러웠다. 젊은 나이에 10억이라는 돈이 손에 쥐어졌을 때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욕망에 사로잡혀 달려가다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에 휩싸였을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정신적으로 허둥거리며 번민하고 있을 아들을 위해 은밀히 기도를 시작했다. 어머니의 기도는 자녀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밤이면 잠을 자는둥 마는 둥 기도로 밤을 지새웠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사람들과의 만남을 차단했다. ‘전능하시고 어지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는 우리 하나 하나를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뿐인 양 보살펴 주시는 주여, 물질에 풍요가 이끄는 대로 달려가던 아들의 태산 같은 험난한 생각들을 평지와 같이 만들어주시라고 벌거벗은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며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어둠속을 헤메던 아들이 우유배달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금융계는 발을 떼려고 작심을 한 듯싶었다. 그 뒤 한참을 방황하며 지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의 인생에 끼어들지 못했다. 아들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니까. 어느날 행색이 초라한 모습으로 아들이 찾아왔다. 그렇게라도 찾아와준 아들이 고마웠다. 아들과 나는 산속 깊은곳에 있는 기도원을 찾았다. 시냇물이 살 속까지 보이게 흐르는 바위에 마주 앉아서 한참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정신적으로라도 기대고 싶은 아들의 심중을 헤아릴 것 같았다. 이윽고 과묵한 아들의 입에서 말문이 열렸다.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의논 한마디 없이 회사도 고만둔 아들이 엄마에게 처음으로 묻는 답이었다. "엄마, 엄마가 저를 볼 때 무엇을 하면 가장 잘 할 것 같아요?"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아들이 말문을 열었다. 삶에 지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때 나는 무슨 말을 들려줘야 할까, 만감이 교차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때. 어찌나 책을 좋아하던지 그만 보라고 하면 이불속에 숨어서 손전등을 켜고 위인전기를 읽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나도 역시 침묵이 흐른뒤 비장한 각오로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엄마는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라고 생각한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희망과 용기를 줬다. 너는 초등학교 때부터 우등생으로 전북대학교 상대 경경학과 수석으로 입학하여 회사도 공채시험 한 번에 합격하여 입사했지 않니? 공부 외에는 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생각할 때는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특히 수학이라고 생각한다. 회계사시험도 보고 펀드사, 상담사 자격증도 있는데 잠시 쉬었다 걸어본 길을 다시 가는 길이 쉽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야 가보지 않은 길을 찾는 것보다는 그래도 가본 길이 익숙해서 자연스러운 길이 될 것 같다. 아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듯 다사로운 어조로 내 생각을 전해주었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공부지만 내 눈에는 그 길밖에 길이 보이지 않았다.
주님께 드린 기도의 응답인듯 아들은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을 열었다. 어둠속을 헤메던 아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 감정과 의지는 같은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지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아들이 과외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인지도하는 학생들이 서울 명문대학에 입학하면서 아들이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지금은 자기건물에서 영어수학 해법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이제 며느리도 YWC사회복지사로 상담사역과 쉼터장을 감당하며 가정의 안정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부모의 말 한마디가 자녀의 삶에 큰 힘이 된 것 같다. 안 듣는 척하면서도 마음속으로 새겨들었던 것 같다. 자식의 성품을 엄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회사에 다녔으면 돈도 명예도 얻었을지 모르지만 유순한 아들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이었던 것 같다. 더욱이 몇 백 억씩 움직이는 기업증권업무를 관리하다 보니 스트레스는 얼마나 많았을까? 부모들은 이래저래 자식걱정 떠날 날이 없다. 지금은 가난해도 아들의 모습이 평온해 보여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학부모들 대하는 일도 힘들겠지만 학원에 오는 아이들이 희망의 꿈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보며 천직으로 알고 일에 보람을 느낀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잠시 아들의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역경을 딛고 일어나 어둠을 헤치고 나온 아들내외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몇 십 명 되는 학생들을 관리하느라 분주할 텐데 오늘은 다 제쳐놓고 어머니의 생일이라고 온천을 모시고 간다니 기쁜 마음으로 따라 나섰다. 산수가 좋은 환경에 자리잡은 온천이 공기가 맑고 내부시설도 답답하지 않으며 유황온천수가 매끄럽고 참 좋았다. 부산대학에 다니다 군에 입대한 손자가 곁에서 아빠를 보살피는 모습을 보면서 믿음직스럽고 손자가 고마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온천에서 나와 아들이 초밥집으로 안내를 했다. 초밥을 먹고 난 뒤, 파인애풀과 온갖 과일이 진열되어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먹었는데도 속이 편안했다. 초밥집을 나서니 오후가 되었다. 그 밝게 빛나던 봄 햇살이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봄비가 차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아들은 손자가 보는 앞에서 흰 봉투를 꺼내 내손에 쥐어주며 어서 들어가시라고 손짓을 했다. 나는 손자와 함께 빗속으로 사라져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2020. 2.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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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훌륭한 어머니가 아들을 다시 일으켜주었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