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서교, 즉 천주교를 가까이했다는 이유로 18년간 유배 생활에 처해진 것이 1801년이었다.
다산은 귀양살이 동안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가 세상을 뜬 건 1836년이다.
<종의 기원>을 쓴 영국 과학자 찰스 다윈은 1809년 태어났다. 다산이 1762년생이니 약 50년의 시차가 있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것은 1859년이다.
앞서 다윈은 22살 때인 1831년 일생일대의 항해를 한다.
당시는 파나마운하가 개통되기 전이어서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가는 배들은 남아메리카의 마젤란해협을 지나야 했다.
영국 해군은 비글호를 보내 이 항로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다윈은 이 배에 박물학자 자격으로 승선했다.
항해는 애초 2~3년을 예상했지만 1836년까지 5년이 걸렸다. 영국을 떠난 비글호는 대서양을 남하해 남아메리카 동쪽과 서쪽 해안을 샅샅이 훑고 갈라파고스, 타히티,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희망봉, 다시 남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을 거쳐 영국으로 귀환하는 대장정을 펼쳤다.
다윈은 이 항해에서 진화론의 단서들을 발견했다.
약관의 나이에 5년에 걸쳐 세계를 항해한 다윈과, 서교를 접했다는 이유만으로 18년간 벽지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다산의 삶은 너무 대조적이다.
19세기 초 영국과 조선의 처지를 상징하는 듯하다.
다산은 1797년 천주교 문제로 계속 비방을 받자 자신의 입장을 밝힌 상소, 즉 ‘자명소’를 썼다.
그는 처음 서교에 빠질 때는 천문·역상·수리·농정·기계 등에 매혹되었는데 신해옥사(1791년) 뒤 완전히 손을 떼고 잘못을 뉘우쳤다고 적었다.
편협하고 고루한 조선의 유교정치가 호기심 가득한 젊은 선비의 앞길을 틀어막은 것이다. 영국과 조선의 운명은 여기서 갈린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조선시대처럼 정치가 나라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