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감동의 쓰나미,안습인 자료올립니다.
타이틀은 거창하게 하여 기대하신 분들도 계실 텐데..
기본은 제가 올렸던 내용에 좀 더 추가해서 하나의 완성된 게시글입니다.
음악까지 웅장하고,내용에 맞게 했습니다.
음악을 느끼면서 감상하시면 더욱 더 안습인,감동의 쓰나미의 자료가 될 것이다.^^;
박지성은 어렸을 때 몸이 굉장히 약했고 가정형편도 어렸웠다고 한다.
그래서 박지성의 부모님은 그런 몸 약한 아들의 체력을 키워주기 위해 밤낮으로 백방으로 전국각지르 돌아다녀 아들의 몸보신을 위해 개구리를 달여 주었다고 한다.
또 그의 발은 축구선수로서는 최악인 평발이었고 다른 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았고 왜소했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던 그를 주목하는 클럽은 없었다.작고 왜소하다는 이유로...
그러나 그는 세계최고의 리그 프리미어리그 명문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여 맹활약을 펼치고 있고 맨유에 신형엔진,습격자의 역활을 하는 선수가 되었다.
김남일 그는 어렸을 때 김남일의 집이 빚더미에 올라 않아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고 어머니는 공사장 밥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어렵고 힘든 집안에서 자랐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최고의 스타로 등극하였고,지금은 k리그 최고의 미드필드로 되었다.
황선홍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출하고 집안이 가난하여 잘 못먹고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는 잘 못먹고 자라 물을 잔뜩 먹으며 그렇게 가난과 배고픔의 슬픔을 달래곤 했다.94년 월드컵 당시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볼리비아전에서 황선홍 선수가 보여준 플레이를 단일 경기 사상 ‘최악의 축구’로 꼽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지독한 부상으로 98년 월드컵을 뛰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폴란드 전 첫 골을 넣고 뒤늦게 축구선수로서 4강을 가는 업적을 이루는데 공헌을 했다.
안정환 그는 어머니가 이혼하구 외할머니품에서 자랐고 초등학생때 수원에서 서울까지 다니느라 키가 작았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운 모델의 부인하고 결혼하고 2002년 월드컵 중요한 미국전 동점 골,이탈리아 전 역전골을 넣은 선수가 되었다.
송종국 선수의 아버지가 해외에서 일하고 국내로 들어와서 사기를 많이 당했었다. 그리고 송종국선수는 그런 환경의 돌파구를 축구로 삼앗는데 배제중학교 시절에 축구화 사실을 돈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피구를 완벽하게 봉쇄하고 2002년 좌 영표와 함께 우 종국의 실력을 입증되었다. 지금 슬럼프에 겪고 있지만 다시 부활 할 것이다.
카를로스는 어렸을 때 막노동을 하면서 축구의 꿈을 키웠고 집안이 가난해서 중 3때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지구방위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있고 세계 최고의 왼쪽 윙백이다.
지단 그는 알제리계 이민자 가난한 집안의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찬사를 받게 되고 프랑스의 핵심 선수가 되었다.
토티 그도 한 때 볼보이 출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많은 브라질의 세계스타들도 집안이 가난하여 이렇게 축구를 했다.
축구황제 펠레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브라질 축구선수들 뿐 아니라 남녀노소 축구를 즐기죠)
하지만 가난할 수록 축구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서 월드 클래스 급의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티에리 앙리는 파리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방랑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지금은 아스날을 대표하는,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다음은 앙리의 어린 시절의 애기입니다.(정말 감동임)
티에리 앙리는 1977년 파리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앙리가 유소년시절을 보낸 파리의 빈민가는 언제나 범죄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전과자, 부랑아, 각종 접대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이런 거친 환경을 보고 자란 앙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파리의 불량소년이 되어있었다. 앙리는 나쁜짓을 서슴지 않고 하고 다녔고 같은 지역에 사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불량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악명을 떨치고 다녔다고 한다. 앙리의 별명인 TiTi는 이때 붙은 별명으로 ‘파리의 불량소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당시 앙리와 어울렸던 친구들은 앙리가 축구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악명 높은 마피아 혹은 전과자가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이러한 앙리의 행실 때문에 앙리의 아버지는 하루라도 근심걱정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한때 축구선수이기도 했던 앙리의 아버지는 앙리를 이러한 ‘어둠의 세계’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축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훌륭한 운동신경 탓에 앙리는 각종 테크닉들을 금방 배워가며 축구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축구선수의 길을 갈 것 같았던 앙리는 잠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왜냐하면 앙리가 다니던 학교의 체육선생님이 앙리가 가진 유연성과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고 400mH(400m 허들)선수를 하라고 권유를 했기 때문이다. 앙리는 처음 보는 허들이란 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엔 400mH 선수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타고난 운동신경 탓에 앙리는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점점 육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육상에서 엄청난 재능을 보인 앙리의 미래는 더 이상 앙리와 어울리던 불량배들의 미래처럼 어둡지 않았다. 육상선수로서의 길은 열려있었고 미래는 보장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앙리는 이러한 육상선수의 길을 접고 다시 축구선수가 되기로 굳게 결심한다. 앙리가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네덜란드의 천재 골잡이 반 바스텐이었다. 우연찮게 본 축구중계에서 본 반 바스텐의 플레이에 매료된 앙리는 축구의 참된 매력에 사로잡혔고 앙리는 다시 축구선수를 하기로 굳게 다짐한다. 반 바스텐을 자신의 모델로 삼고.
차붐은 그는 가난한 농부 출신으로 태어나 가난과 배고픔을 뼈저리게 겪어왔다.
하지만 그는 분데스리가에서 통산 98골을 넣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가 되었고 세계적인 축구계가 인정하는 차붐의 전설이 되었다.
아직도 유럽에서는 한국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이을용 선수 그는 고등학교 졸업이후 대학이나, 프로에서 스카웃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때로는 나이트클럽에 일을 하면서 방황하기도 하였다.
2002년 월드컵 때 미국전 패널티 킥을 실축하며 팬들의 큰 비난을 받을 뻔 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전 동점골의 어시스트를 했고 터키 전에 그림같은 프리킥 골을 넣고 지금은 터키에서 맹활약하고 있고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가 되었다.
◆기타 명언◆
영광이란 한 번도 실패함이 없이 나아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때 마다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다시 일어나는데 있다. -스미스-
추위에 떨어본 사람일수록 태양의 따스한 맛을 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생명의 귀중함을 안다. -휘트먼(영국의 시인)-
슬픔이란 누구든지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늘 슬픔이 따를 것이다. -셰익스피어-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장 자크 루소-
첫댓글 난 볼보이출신이였던 토티가 왜 인생역전한건지 모르겠음.
앙리얘기는 많이 와전됬네요ㅋㅋ
아전이 아니라 와전
아 오타수정ㅋㅋ
앙리 허들안했는데..
현축구선수중에 앙리 불량 소년시절에 같이 놀던 선수도 있다던데 아시는분?
에브라
근데 음악이 안나와요...
설기현선수도
저거 앙리얘기 감동얘기였다가 무도에서 사실아닌걸로 판명나고나서부터는 그저 루머 ㅋㅋ
호날도도 추가되야 할듯 .. .
2 호날두도 어렸을때 아빠가 알콜중독인가? 여서 한달에70만원으로 근근히 살았다던데
ㅋㅋㅋ 안정환은 머야..수원에서 서울까지 다니느라 키가 작았다니.. 문법이 왜이따구야
데코가 없는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