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용감” “아이들 대상 실험”… 성토장 된 ‘만5세 입학’ 간담회
교육차관-유치원 학부모 간담회
장상윤 교육부 차관(앞)이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관련 유치원생 학부모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정부가 중요한 교육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동주 기자
“이런 무성의하고 경솔한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지 화가 납니다. 모르면 용감한 건가요.”(학부모 곽유리 씨)
“아이들이 한글을 몇 살부터 배우는지 아세요? 지금도 입학 1년 반 전부터 한글을 가르치는데 이젠 만 3세부터 시켜야 되나요?”(학부모 A 씨)
교육부가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의 여론 수렴을 위해 유치원생 학부모들과 만났지만 정작 엄마들의 성토만 쏟아졌다. 학부모들은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장상윤 교육부 차관과의 간담회에서 “조기 입학 과도기 아이들이 실험 대상이냐”며 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수도권 유치원 학부모 9명이 참석했다.
○ “사과 받으러 왔다” 뿔난 학부모들
전날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책 폐기’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발 물러섰지만 간담회에 모인 학부모들은 분을 삭이지 못했다. 간담회 준비도 ‘졸속’이었다. 학부모들은 2일 오후 3시경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간담회 참석 제안을 받았다. 한 학부모는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질문 내용부터 미리 알려달라고 해서 황당했다”고 말했다. 간담회가 언론에 공개되는 사실을 현장에서 알고 얼굴과 이름 공개를 거부한 학부모도 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권영은 씨는 “답변을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이번 혼란에 대해 사과받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만 5세 취학’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교육부와 학부모의 판단이 엇갈렸다. 장 차관은 “아이들의 발달과 지식 습득 속도가 예전보다 빨라졌다”고 말했다. 반면 학부모들은 “사교육 증가로 인한 착시효과”라고 반박했다. 셋째가 조기 입학 대상인 B 씨는 “엄마들은 같은 학년에서 12개월 벌어지는 것도 우려해 1, 2월 출산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 격차가 15개월로 벌어지면 한 교실에서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가 조기 입학의 보완책이라고 한 초등학교 돌봄 교실의 오후 8시 확대, 한글 교육 시간 확대 등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게 학부모 주장이다. 두 자녀 학부모인 김성실 씨는 “지금도 오후 7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이 가능하지만 갑작스레 돌봄 교실이 취소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꼬집었다.
○ ‘출구전략’ 고민하는 교육부
교육부는 이날 당초 2학기 학사 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잡혀 있던 박 부총리와 시도교육감 간담회에 갑자기 만 5세 입학 안건을 추가했다. 이 역시 장 차관과 유치원 학부모 간담회, 전날 박 부총리와 교육단체 간담회와 마찬가지로 교육부가 뒤늦게 ‘공론화’ 모양새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사고 있다.
시도교육감들은 교육부가 ‘교육청 패싱’을 했다며 소통 부재를 비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육청 논의 없이 발표하는 정책은 현장 혼란만 가져온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의 하윤수 부산시교육감도 “지금은 학제 개편을 할 때가 아니다”고 밝혔다.
전방위에서 반대가 거센 만큼 정부가 학제 개편안을 밀어붙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날도 교원, 학부모 단체가 연합한 ‘만 5세 초등 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는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학제 개편안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갔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1∼3일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등 13만10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7.9%가 취학 연령 하향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연령의 학생이 피해를 입는다’는 이유가 68.3%로 가장 많았다.
교육부는 일단 의견 수렴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부총리가 직접 추진 계획을 밝힌 학제 개편안을 바로 철회하는 것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선 여론조사 결과가 부정적일 경우 정부가 “국민 여론에 따르겠다”며 정책 철회를 선언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 차관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여러 의견을 경청해 늦어도 내년 상반기(1∼6월) 안에는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조유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