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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여호야긴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느후스다요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24:9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24:10 그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24:11 그의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24:12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그의 어머니와 신복과 지도자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의 왕 여덟째 해이라
24:13 그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집어내고 또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만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24:14 그가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가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더라
24:15 그가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왕의 어머니와 왕의 아내들과 내시들과 나라에 권세 있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24:16 또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싸움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 왕이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24:17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라 하였더라
24:18 시드기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하무달이요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24:19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24: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25:1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
25:2 그 성이 시드기야 왕 제십일년까지 포위되었더라
25:3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 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
25:4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가 아라바 길로 가더니
25:5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그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25:6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들이 그를 심문하니라
25:7 그들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 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갔더라
◈ 주해
1. 요시야의 전무후무한 종교개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다에게 쏟기로 하신 진노를 거두지는 않으신다.
1) 요시야가 죽자마자 그 이후에 왕이 되는 4명의 왕과 백성들은 다시 여호와 보기에 악을 행한다.
2)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참여하여 언약을 갱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한 것이 형식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긴 요시야는 하나님이 내리는 재앙을 보지 않지만, 형식적으로 종교개혁에 참여했다가 다시 악을 행하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집행된다.
2. 여호아하스는 3개월간 악을 행하다가 애굽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는다.
1) 애굽에 의해 세워진 여호야김은 11년간 통치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2) 그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바벨론을 섬기다가 애굽을 의지하여 3년만에 반역했으나 도리어 바벨론에 의하여 위기에 처한다.
3) 그는 요시야와 선지자들이 경고한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고 있음을 무시하고 외교와 정치로 해결하려다가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3.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도 3개월을 통치하였는데,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1)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에워쌈을 당하자 여호야긴은 항복한다.
2) 여호야긴 왕은 그의 어머니와 신하들과 지휘관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을 맞으러 나갔고, 바벨론 왕은 그를 포로로 사로잡는다.
3) 느부갓네살은 여호와의 성전 안에 있는 보물과 왕궁 안에 있는 보물들을 모두 탈취하고 성전의 금 그릇들을 모두 깨뜨린다(13절). 이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된 일이다(렘 27:16-22).
4.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긴 통치 때 2번에 걸쳐서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다.
1) 먼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과, 관리와 용사 만 명, 모든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간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만 남게 된다(14절).
2) 그 후, 여호야긴 왕을 비롯하여 그의 어머니와 왕비들과 내시들과 고관들을 모두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갔다(15절). 또 칠천 명의 용사와 천 명의 기술자와 대장장이를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갔는데, 이들은 모두 뛰어난 용사요, 훈련된 전사들이었다(16절).
5. 여호야긴을 포로로 끌고간 바벨론은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고 그는 11년간 통치한다.
1) 바벨론은 여호야긴의 삼촌 맛다니야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꿈으로 지배권을 행사한다.
2) 시드기야는 여호야김과 똑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19절).
3) 왕들은 연이어서 악을 행하였고, 여호와의 진노는 그들을 모두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왕하 24:20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6. 요시야 때부터 활동한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에게 계속해서 심판과 구원의 말씀을 전하였다.
1)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임으로 바벨론에게 항복하든지, 아니면 언약을 돌이키든지 하라고 촉구하였다.
2) 그가 계속해서 악을 행함으로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때가 지난 후에는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왕과 백성을 구하는 길이라고 말씀을 전하였다.
“너는 이 백성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둔다. 이 도성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염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를 에워싸고 있는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나아가서 항복하는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은 건질 것이다. 나는 복을 내리려고 해서가 아니라, 재앙을 내리려고 이 도성을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도성은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들어갈 것이고, 그는 이 도성을 불질러 버릴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렘 21:8-10).
3) 하나님은 바벨론은 심판의 도구라고 하시면서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하신다.
7. 열왕기하 25장은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말씀이다.
1) 하나님은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보냈으나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2) 시드기야는 가나안 지역에 다시 간섭하려는 애굽을 믿고 반역했으나 하나님이 보낸 바벨론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고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만다.
3) 바벨론은 약 18개월 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하였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 안에는 먹을 양식이 다 떨어진다.
4) 결국 예루살렘 성벽이 뚫리고,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필사적으로 도망한다.
8. 그러나 시드기야는 여리고에서 바벨론 군대에게 추격을 당하고 만다.
1) 시드기야의 군사들은 모두 그를 버리고 흩어진다(5절).
2) 모두가 떠나버린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바벨론 왕에게 끌려간다(6절).
9.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를 심문하고, 시드기야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처형하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뺀 다음에 쇠사슬로 묶어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7절).
1) 느브갓네살이 시드기야를 무자비하게 다룬 것은, 반란에 대한 응징이다.
10.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는 닮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1) 둘 다 남유다의 왕이 되었고,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고, 예레미야가 언약으로 돌이키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한 말씀을 듣지 않았고,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다.
2) 다른 점은 여호야긴은 바벨론에게 항복하였고, 시드기야는 끝까지 바벨론에게 반역하고 항거하였고, 도망하였다.
3) 그나마 둘 중에 나은 자는 여호야긴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항복함으로, 심판을 받아들이는 순종을 하게 된다.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나 후에 풀려나고 노후는 평안하게 죽는다.
11.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약자를 괴롭히며, 하나님 앞에서 교만한 자들을 심판하신다.
1) 악을 행하면서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말씀도 듣지 않고, 끝까지 악을 행하면, 마지막으로 사는 길을 제시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심판을 받아들이는 항복”이다.
2) 여호야긴이 말씀에 순종하여 항복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나마 항복하고 비참함을 받아들이는 여호야긴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12. 하나님의 모든 자비와 인내와 긍휼에도 돌이키지 않고 악을 행한 자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징계를 수용하는 것이다.
1)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와 이방인에게 항복하는 것, 포로로 끌려가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2) 시드기야에게 항복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비참한 일이요 파괴적인 수치심이기에 그는 끝까지 항복을 수용하지 못해서 끝까지 반역하였다.
3) 그런 시드기야에게 예레미야는 끝까지 “항복해야만 산다”는 경고요 구원의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은 자가 마지막으로 사는 유일한 길은 바벨론에게 항복하여 바벨론을 섬기는 수치를 수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4) 자존심이 상하고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시드기야의 저항으로 수 많은 백성들이 죽고, 자신은 아들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두 눈이 뽑히고 놋 사슬에 매여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한다.
13. 하나님은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고, 모든 족속에게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로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1) 그러나 끊임없이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에게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서 언약으로 돌아오고 말씀을 준행하라고 하셨다.
2) 말씀을 듣지 않고, 끊임없이 악을 행하자, 마지막으로 “심판을 받아들임으로 사는 길을 택하라”고 명령하셨다.
3)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들을 거역함으로 멸망 당하고 만다.
14. 그나마 두려워서 항복한 여호야긴과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하나님은 살려주셨다. 심판을 받아들이기라도 하면, 하나님은 다시 말씀을 듣게 하시며 다시 사는 길을 열어주신다.
1)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포로들에게 말씀하셨다(렘 29:23).
2) 포로된 땅에서 정착하며 살되, 온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그들은 포로된 땅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하나님이 포로로 끌려간 그들을 향한 생각은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라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 결국 그들을 포로에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내가 너희를 두고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재앙이 아니라 번영이다. 너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는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너희가 나를 부르고, 나에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의 호소를 들어주겠다.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마음으로 나를 찾기만 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너희를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겠다”(렘 29:11-14a).
◈ 나의 묵상
악을 행하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항복한 여호야긴은 겁쟁이 같고 불행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여호야긴과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에게 도리어 생명의 길이 되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말씀에는 아멘으로 응답했으면서, 심판을 수용하는 일에는 왜 더딘지를 돌아보니, 나는 유독 자존심이 상하거나, 수치심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호야긴이나 시드기야나 그놈이 그놈이지만, 시드기야가 자존심이 더 세고, 파괴적인 수치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같은 악이라도, 수치심과 자존심이 세고 고집이 세면 골치아프다. 그런데 어릴적부터 형성된 나의 성향은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다. 자존심만은 지켜야 했다. 그것이 덜 비참해지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자존심이 세고 파괴적인 수치심이 있으니까 겸손해지기가 힘들다.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수치를 받아들이고, 나의 악과 교만에 대하여 공의로운 심판과 평판을 듣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옳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내 마음으로 그 심판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 심판을 수용해서 수치를 당하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티끌과 그림자 같은 자가 무슨 자존심이냐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나의 자존심은 내가 너무 티끌처럼, 그림자 같아서 생긴 자존심이다. 티끌이 이것마저 없이 밟히면 않된다는 생존 욕구다. 돌이켜 보면 쓸데 없는 자존심과 수치다. 그렇다고 내가 나를 어찌하지는 못한다. 파괴적인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어리석다고 말해도 돌같이 굳은 마음은 듣지를 않는다.
그러기에 창세전에 나를 그리스도 안에 택하신 주님께로 나아가 이런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맡기는 길 밖에 없다. 나를 창조하신 주님이 나를 아시고, 나를 고치실 수 있다. 벌거벗기시고, 악명높은 죄인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시기 위하여 그 엄청난 수치를 기꺼이 담당하신 주님께 내 마음을 맡긴다. 나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신 주님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다. 그분이 내 마음의 보좌에 앉으사 통치하심으로만 어리석게 형성된 내 마음이 새롭게 된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이 마음을 주님의 주권에 맡기며, 주님이 마음대로 다루시도록 의뢰한다.
그리고 해아래서의 수고가 헛됨을 수용한다. 최선을 다해도 헛다리 짚게 됨을 수용한다. 나의 악과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심판을 수용한다. 그리고 바벨론의 심판을 수용하고 견딜 수 있는 힘 주시기를 기도한다. 주님과 함께, 주 안에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수치심으로 가리지 않는 정직함을 구한다. 그 심판을 받아들이고 견딤으로 그리스도의 무덤에 참여하기를 원한다.
다시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가장 가난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먹고, 십자가 사랑으로 확증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내 안에 내주하시는 부활의 주, 전능하신 하나님께 내 영혼을 의탁한다.
◈ 묵상 기도
주님, 나도 모르게 형성된 내 마음과 성향이 주님을 대적하며 교만하게 합니다. 주의 보혈로 오염된 영혼과 모든 부정성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구하오니, 빚어 주십시오.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영원에서 제 마음을 만지사 다윗처럼 심판을 경배로 받아들이며, 주 앞에서 겸비하게 하여 주십시오.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자라도 주께 돌아가 겸비하게 하소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택하셨으니, 주님의 손 안에 있고, 나를 영접하신 주님 안에 있습니다. 성령께서 제가 주 안에 있고, 주님이 제 안에 있음을 환히 알게 하여 주십시오. 심판을 받아들이고, 언약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결론으로 삼고, 주님의 생각과 마음이 저의 결론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십자가 안에서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고난 가운데, 심판가운데, 그 마음의 낙심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치유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안아 주십시오. 청년들 각 사람을 찾아가셔서 소망과 생명을 주십시오. 입시생들이 주님 안에서 입시를 치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복생에 은혜를 베푸시고, 오늘 하루도 제 안에 생명있음을, 부활의 주가 제 생명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