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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머리와 근원을 혼동하지 말라
부제: 레쉬와 코프가 가르치는 거룩함
1. 코프 (ק)
숫자값: 100
소리: ㅍ. k
형상: 바늘구멍, 바늘귀를 형상화한 문자
의미: 파괴하고 다시 세우다, 뒤, 구별, 거룩, 자르기, 절단하기, 부수기, 제거하기, 단절하기, 생명을 전달하기, 바늘귀를 통과하는 거룩의 길
코프는 히브리어 알파벳 중에서도 매우 깊은 묵상을 주는 글자입니다. 여러 해석이 있지만, 오늘 우리는 코프를 '바늘귀', 곧 아주 작은 구멍이라는 의미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고대 히브리어에서 코프는 작은 구멍, 바늘귀, 좁은 통로의 이미지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작고 불편한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 통과하게 하시는 좁은 길"을 보여줍니다.
1) 코프로 시작하는 중요한 단어가 있다.
"קָדוֹשׁ 카도쉬" 뜻은 "거룩하다", "구별되다"입니다.
그러므로 코프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거룩함은 넓은 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거룩함은 좁은 문, 작은 구멍, 바늘귀를 통과하며 만들어진다.
예슈아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이 말씀은 단순히 부자를 정죄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부자의 문제는 돈 자체가 아니라, 붙들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아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상태, 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바늘귀는 큰 것을 그대로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듯이, 사람도 자기 욕심과 교만과 세상의 짐을 그대로 지고는 하나님의 거룩한 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2) 코프는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작게 만들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비워야 거룩의 길을 통과할 수 있는가?
세상은 우리에게 크게 되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합니다.
더 높아지라고 말합니다.
더 인정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토라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길은 때로 좁습니다.
작아져야 지나갈 수 있습니다.
낮아져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비워야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코프의 비밀입니다.
3) 코프는 세상과 다른 길이다.
그러나 나쁜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명의 길입니다. 좁다고 해서 가난한 길이 아니고, 불편하다고 해서 저주의 길이 아닙니다. 좁은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훈련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시려고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거짓된 자아, 교만, 탐욕,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세상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게 하시기 위해 좁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코프는 "거룩의 훈련"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라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라는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깎이고 내 삶이 하나님의 길에 맞추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프는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합니다.
거룩함은 훈련 없이 오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좁은 길을 통과한 사람에게 남는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4) 출애굽은 구원의 완성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이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 가시는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넜다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내산도 지나야 했고,
광야도 지나야 했고,
수많은 훈련도 받아야 했습니다.
즉, 구원은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5) 그래서 율례와 규례가 주어진 것이다.
만약 출애굽이 구원의 완성이라면
굳이 시내산에서 토라를 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출애굽한 백성에게
율례와 규례를 주셨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토라는 시작된 구원을 완성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훈련 과정입니다.
6) 사람이 하는 일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여기서 사람과 하나님의 역할이 분명해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걷기로 선택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으며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사람은 순종을 시작하지만,
거룩함은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사람은 길을 선택하지만,
그 길에서 사람을 빚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7) 그래서 순종은 필수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다 하신다면 나는 가만히 있으면 되겠네."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훈련하십니다.
광야는 애굽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훈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나온 사람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아브라함도 "내가 가겠습니다."라고 순종한 이후에
22장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훈련받지 않습니다.
훈련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도 없습니다.
8) 거룩함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그래서 거룩함은 내가 열심히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닙니다.
또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거룩함은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훈련받은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성령으로 깨닫게 하시며,
시험으로 연단하시고,
징계로 바로잡으시며,
마침내 자신의 성품을 우리 안에 새기십니다.
그래서 참된 의는
내가 만든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이루신 의입니다.
9) 코프에 관한 비유 이야기
"왕이 만든 좁은 문"
옛날 한 왕이 새로운 궁전을 지었습니다.
궁전은 매우 아름다웠고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궁전의 정문은 아주 넓었지만,
왕을 만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습니다.
사람들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왕께서 왜 이렇게 좁은 문을 만드셨을까?"
"조금만 넓게 만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떤 사람은 커다란 보따리를 메고 왔습니다.
금도 있었고, 은도 있었고, 값비싼 옷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공로를 적은 두루마리를 가득 안고 왔습니다.
"나는 이만큼 선한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두루마리 때문에 문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왕 앞에서도 자신의 명예를 내려놓지 못했고,
또 어떤 사람은 자존심 때문에 몸을 숙이지 못했습니다.
모두 문 앞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때 한 노인이 천천히 걸어왔습니다.
그는 짐을 하나씩 내려놓았습니다.
금도 내려놓고,
명예도 내려놓고,
자신의 자랑도 내려놓고,
마지막에는 허리를 굽혀 머리까지 숙였습니다.
그제야 그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좁은 문을 만든 것은 사람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너희가 무엇을 붙잡고 사는지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은 노인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너는 내 궁전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10) 교훈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좁은 길로 인도하십니까?"
랍비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좁은 길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좁은 길을 지나며 내려놓는 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든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들어가기 위해 기꺼이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다."
2. 레쉬 (ר)
숫자값: 200
소리: ㄹ. R
형상: 사람의 머리를 형상화한 문자
의미: 시작하다, 머리, 두개골, 우두머리, 새로운, 끝, 정상, 시작하기, 생각이 방향을 만든다
레쉬는 ראש (로쉬) 라는 단어의 첫 글자입니다.
로쉬는 머리, 시작, 처음, 으뜸, 우두머리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사람들은 레쉬를 볼 때
"무엇이 먼저인가?"
"누가 머리인가?"
를 먼저 생각합니다.
1) 시작은 시작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처음"이라는 말을 쉽게 지나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이라는 말은
반드시 시작하게 하신 분
을 전제합니다.
시작이 있다면
시작 이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작은
영원과 같은 말이 아닙니다.
2) 오직 한 분만 시작이 없으시다.
성경은 오직 한 분만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이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계실 영원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3장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한 시편과 선지서에서도
여호와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으로 찬양합니다.
그분은 창조되지 않았으며,
누군가에게 생명을 받은 분도 아니십니다.
그분만이 모든 것의 근원이십니다.
3) 예슈아는 무엇의 시작인가?
여기에서 히브리적으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예슈아는 무엇의 시작입니까?
성경은 예슈아를
첫열매, 맏아들, 처음, 머리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표현들은
역할과 질서 속에서의 처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예슈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첫열매입니다.
그분은 새 창조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여시는 시작이 되셨습니다.
즉, 예슈아는 새 창조의 시작이며
부활 생명의 시작입니다.
4) 레쉬는 질서를 말한다.
히브리인에게 머리는
권력을 뜻하기보다
질서를 뜻합니다.
머리가 있으면
몸이 방향을 잃지 않습니다.
예슈아께서는
새 창조 공동체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새 생명의 길’
즉,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5) 여호와와 예슈아를 혼동하지 않는다.
히브리적 관점에서는
머리와 근원을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슈아는 새 창조의 머리이시지만,
모든 존재의 근원이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예슈아께서도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으며,
아버지께 받은 것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슈아의 영광은 아버지를 드러내는 영광입니다.
예슈아께서 머리가 되신 것은
아버지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시는 질서 안에서 입니다.
6) 우리의 삶의 레쉬는 누구인가?
레쉬는 단순히 시작을 배우는 문자가 아닙니다.
레쉬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머리는 누구인가?"
돈이 머리가 되면 돈이 방향을 결정합니다.
세상이 머리가 되면 세상이 삶을 이끕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뜻이 머리가 되고,
예슈아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길을 따른다면,
우리의 삶은 새 창조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예슈아는 새 창조의 시작이시며,
아버지 여호와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십니다.
이 질서를 이해하는 것이 히브리적 사고의 핵심입니다.
7) 레쉬와 코프: 머리를 아는 것과 구별하는 거룩함
교회에는 머리가 있습니다.
그 머리는 예슈아입니다.
예슈아는 교회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시고, 세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신 예슈아와 예배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교회의 머리 자체를 종착점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께서 친히 가리키신 아버지, 곧 창조주 여호와께 나아가 경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슈아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높이셨고, 교회의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슈아께서 하신 사역의 방향은 언제나 분명했습니다.
“나를 통해 아버지께로 오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라.”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슈아를 높이는 것은
예슈아를 여호와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께서 순종하신 그 길을 따라 여호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8) 레쉬: 머리를 바로 아는 것
레쉬는 머리, 시작, 첫째, 우두머리의 의미를 가집니다.
성경은 레쉬를 “예슈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로 증언합니다.
머리가 없으면 몸은 방향을 잃습니다.
교회도 예슈아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예슈아는 교회의 질서이고, 방향이고, 생명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예슈아를 통해 말씀을 배우고, 순종을 배우고,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그러나 머리는 근원과 같지 않습니다.
몸의 머리가 몸을 이끌지만, 생명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레쉬를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은
예슈아의 위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께서 맡으신 머리의 역할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9) 코프: 거룩함은 구별에서 온다
거룩함은 단순히 뜨겁게 예배하는 감정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무엇이 머리인지,
무엇이 근원인지,
누가 보내심을 받은 자인지,
누가 보내신 분인지,
누가 길인지,
누가 목적지인지 구별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이 구별이 무너지면 예배도 흐려집니다.
예슈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슈아께서 경배하라고 하신 여호와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예슈아를 따른다고 하면서
예슈아께서 순종하신 아버지의 뜻을 놓칠 수 있습니다.
10) 핵심 가르침
예슈아는 문과 같습니다.
문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문이 없으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문 앞에만 머물면 집의 주인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슈아는 길이십니다.
길이 없으면 아버지께 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길의 목적은 길 자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따라 아버지께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슈아를 믿는다는 것은
예슈아 안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를 통해 여호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프는 이렇게 연결됩니다.
거룩함이란 아무것이나 섞지 않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구별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예슈아는 교회의 머리이시지만, 교회의 예배가 향해야 할 근원은 창조주 여호와이십니다.
예슈아를 참으로 높이는 길은 예슈아를 아버지의 자리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예슈아께서 열어 주신 길을 따라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11) 교회는 예슈아를 머리로 모신 공동체이다.
교회는 예슈아를 통해 창조주 여호와를 경배하는 공동체입니다.
레쉬를 모르면 교회는 머리를 잃고,
코프를 모르면 교회는 머리와 근원을 섞어 버립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의 거룩함은
단순히 열심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누가 머리인가?
누가 근원인가?
누가 보내신 분인가?
누가 보내심을 받은 분인가?
누가 예배의 대상인가?
이것을 바르게 구별하는 사람이
참으로 거룩한 사람입니다.
12) 비유 이야기
"왕자의 왕관"
옛날 한 왕에게 사랑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왕은 아들을 온 나라 앞에 세우며 말했습니다.
"오늘부터 이 아들은 내 나라의 모든 백성을 다스릴 왕자가 될 것이다."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왕자에게 절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두 사람이 논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은 말했습니다.
"왕자가 이제 우리를 다스리니 왕보다 더 높다."
다른 사람은 말했습니다.
"아니다. 왕자는 왕이 보내셨으니 왕보다 낮다."
논쟁이 점점 커지자 왕이 그들을 불렀습니다.
왕은 조용히 왕자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겨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 왕관이 누구의 것이냐?"
사람들이 대답했습니다.
"왕자의 것입니다."
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다. 이 왕관은 원래 내 것이다. 내가 내 아들에게 맡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왕자의 머리에 왕관을 씌워 주며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왕관을 썼다고 해서
왕관의 근원이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맡겼기에 그가 쓰는 것이고,
내가 세웠기에 그가 다스리는 것이다."
왕자는 즉시 왕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 왕관은 제 영광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왕은 아들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백성의 머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머리는 될 수 있어도
근원이 될 수는 없다."
13) 교훈
한 제자가 랍비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사람들은 왜 머리와 근원을 자꾸 혼동합니까?"
랍비가 대답했습니다.
"머리는 길을 인도하지만,
근원은 생명을 준다."
잠시 침묵한 뒤 다시 말했습니다.
"샘이 있기에 강이 흐른다.
강이 마을을 살린다고 해서
샘이 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의 근원이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는 머리가 될 수 있지만,
근원이 되지는 않는다.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머리를 존중하면서도
근원을 잊지 않는다."
"레쉬는 우리에게 '누가 가장 높은가?'를 묻는 문자가 아닙니다.
'누가 나의 머리인가?', 그리고 '누가 모든 것의 근원이신가?'를 묻는 문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은 머리를 존중하지만, 영광의 근원은 언제나 홀로 거룩하신 여호와께 돌립니다."
@ 객관식 문제
1. 코프(ק)의 숫자값은 무엇입니까?
① 10 ② 50 ③ 100 ④ 200
2. 코프의 핵심 이미지로 설명된 것은 무엇입니까?
① 집 ② 바늘귀 ③ 물 ④ 손
3. 코프가 가르치는 거룩함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① 크게 되는 것 ② 많이 가지는 것 ③ 구별되어 통과하는 것 ④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4. “카도쉬”의 뜻은 무엇입니까?
① 머리 ② 거룩하다 ③ 생명 ④ 말씀
5. 바늘귀의 비유가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무엇입니까?
①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는가? ② 누구보다 높아져야 하는가? ③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 ④ 어떻게 인정받을까?
6. 출애굽은 본문에서 무엇으로 설명됩니까?
① 구원의 완성 ② 구원의 시작 ③ 율법의 폐지 ④ 광야의 실패
7. 시내산에서 토라가 주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① 백성을 벌하기 위해 ② 구원을 취소하기 위해 ③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하기 위해 ④ 애굽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8. 거룩함은 누구의 작품입니까?
① 사람의 열심만의 결과 ② 세상의 인정 ③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작품 ④ 지식의 축적
9. 레쉬(ר)의 숫자값은 무엇입니까?
① 50 ② 100 ③ 200 ④ 400
10. 레쉬의 기본 의미는 무엇입니까?
① 머리, 시작 ② 물, 생명 ③ 입, 말 ④ 손, 행함
11. “로쉬”는 어떤 뜻을 가집니까?
① 거룩 ② 머리, 처음, 으뜸 ③ 문 ④ 쉼
12. 본문에서 오직 시작이 없으신 분은 누구입니까?
① 모세 ② 아브라함 ③ 예슈아 ④ 여호와
13. 예슈아는 무엇의 머리로 설명됩니까?
① 애굽의 머리 ② 새 창조 공동체의 머리 ③ 세상의 왕국의 머리 ④ 바벨의 머리
14. 레쉬가 가르치는 중요한 구별은 무엇입니까?
① 부자와 가난한 자 ② 머리와 근원 ③ 과거와 미래 ④ 광야와 애굽
15. 예슈아를 참으로 높이는 길은 무엇입니까?
① 예슈아를 아버지의 자리로 옮기는 것
② 예슈아께서 열어 주신 길을 따라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
③ 예슈아를 단순한 선지자로만 보는 것
④ 토라를 버리는 것
16. 코프를 모르면 어떤 위험이 생깁니까?
① 머리를 잃는다 ② 머리와 근원을 섞어 버린다 ③ 광야를 지나지 않는다 ④ 말씀을 읽지 않는다
17. 거룩함은 감정만이 아니라 무엇이라고 설명됩니까?
① 구별하는 능력 ② 성공하는 능력 ③ 논쟁하는 능력 ④ 지배하는 능력
18. “문”의 비유에서 예슈아는 무엇으로 설명됩니까?
① 목적 없이 머무는 장소 ②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는 길과 문 ③ 세상의 왕 ④ 광야의 시험
19. 왕자의 왕관 비유에서 왕관의 근원은 누구입니까?
① 왕자 ② 백성 ③ 왕 ④ 신하
20. 마지막 때의 거룩함은 단순한 열심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① 감정 ② 지식 ③ 구별 ④ 명예
주관식 / 하브루타 질문
1. 내 삶에서 “바늘귀를 통과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짐은 무엇입니까?
2.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구원을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완성”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까?
3. 예슈아를 머리로 존중하면서도 여호와를 모든 것의 근원으로 경배한다는 것은 실제 예배와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할까요?
4. 나는 지금 무엇을 내 삶의 머리로 삼고 있습니까? 돈, 사람의 인정, 감정, 두려움, 말씀 중 무엇이 나를 이끌고 있습니까?
5. 거룩함을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구별하는 능력”으로 본다면, 내가 다시 구별해야 할 신앙의 질서는 무엇입니까?
객관식 문제 답
| 1 | ③ |
| 2 | ② |
| 3 | ③ |
| 4 | ② |
| 5 | ③ |
| 6 | ② |
| 7 | ③ |
| 8 | ③ |
| 9 | ③ |
| 10 | ① |
| 11 | ② |
| 12 | ④ |
| 13 | ② |
| 14 | ② |
| 15 | ② |
| 16 | ② |
| 17 | ① |
| 18 | ② |
| 19 | ③ |
| 20 | ③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