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함진아비. / 正道 金珉煥
약 45 년 전 인천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친구 몇 명이서 장가를 가는 친구의 함을 짊어지고 경북 상주로 갔었다.
상주의 읍내에서 버스에서 내려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한 20킬로 쯤 걸어가는 길이었을까? 징글징글하게 멀고도 험한 농촌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출발지에서부터 신부 집까지 감나무가 어떻게나 많은지 감들이 길바닥에 넓브러져 있어 걸어 갈 수가 없도록 감들이 지천을 이루고 있다.
산이나 들이나 밭이나 온통 감나무를 빼고는 아무 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우리들은 늘어진 감 가지를 밟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서 걸어가야만 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어린 아이들도 얼마든지 따먹을 수 있도록 감이 가지마다 축축 늘어져 있는 것이다.
붉게 잘 익은 홍시가 날 잡아 잡수시오. 하고 매달려 있는가 하면, 땅바닥에 떨어진 홍시도 얼마나 많은지 도무지 글로서는 표현이 안 된다.
그러니까 누가 아무리 많이 따먹는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말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갈증이 심해서 감을 하나 따가지고 냉큼 한입을 베어 물어 씹고 있는데 단감이 아니라 땡감이라서 떫어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었다.
홍시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땡감을 따가지고 씹는단 말인가?
매사에 덤벙덤벙 덤벙대기를 잘 하는 내가 그날도 혹독하게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걸어가고 있었을까? 신부 집에 다 왔다고 그런다.
우리들은 오징어를 낮 짝에 뒤집어쓰고 여비를 달라고 하며 돈을 밟고 걸어가는 장난 같은 것은 일체 하지 않기로 하고 무조건 신부 집으로 들어갔다.
먼 곳에서 왔다고 상을 차려왔는데 그야말로 내 생전에 그러한 상은 처음 받아 보았다.
산해진미의 음식들을 차린 큰 상을 한상 가득하게 차려온 것이다.
그런데 다음에는 또한 감으로만 상을 차려왔는데 참으로 기가 막힌 상이다.
곶감 한 접시
홍시 한 접시
반시 한 접시
단감 한 접시
감 생채 한 접시
감 과자 한 접시
감 전병 한 접시
감 요리 한 접시
감 수 정강 한 접시
감 동치미 한 접시
감 깍두기 한 접시
아무튼 감으로만 만든 요리를 한상 가득하게 차려왔는데 한가지씩만 맛을 본다고 하더라도 배가 부를 것 같은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함진아비들을 보고 촌구석의 처녀들이 환장을 한 가시나들 같이 좋아하며 따르고 있다.
오케이바리 이게 웬 떡이냐?
인천으로 가지고 하면 연지 찍고 분바르고 할 것 없이 무조건 따라올 태세이다.
모두다 장가를 간 유부남들인데 무작정 좋다고 따라올 태세이니 참으로 따분한 일이다.
우리들은 마치 꽃밭 속에서 노닐고 있는 나비처럼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집에서 알면 그야말로 통곡소리가 날 일인데 해골바가지만 꺼떡거리며 머리통에 패랭이를 쓴다고 양반이 된단 말인가.
아서라. 말아라. 정신 차려라, 청양 고추나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왕창 깨물어가며 정신 차려라.
등짝에 비단을 싣고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처럼 가정을 지키며 묵묵히 내조를 잘하고 있는 각시를 생각하면 귓빵맹이를 맞고도 도리께 질을 당할 일이다.
머리를 잘라 신발을 삼아도 시원치 않을 잡놈들 두더지처럼 땅속을 기어 다니며 참회를 해야 할 것이다.
45년이 지나간 옛날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상주에는 감이 무척 많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감이나 사러 상주를 가 봐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