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에 일어나 엉덩이 차갑게 화장실을 들러 취사장에 가니
대학생은 벌써 요리를 하고 있다.
나도 남은 식재료를 모두 넣어 끓인다.
김치는 얼어 떨어지지 않아 칼로 덩이째 넣는다.
대피소의 날씨판은 영하 15.8도에 풍속도 16m를 가리키고 있다.
하늘엔 찬바람이 가득한데 하얀 달이 떠 있어 구름 너머로 반양봉의 모양도 보인다.
서두른 탓에 6시에 제석봉 비탈을 오른다.
불빛은 드문드문하다.
제석봉의 조망은 없다. 땀을 흘리며 통천문에 도착해서도 사진을 못 찍는다.
중학생인듯한 두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뒤에 따라 붙는다.
랜턴으로로 나무를 비추고 찍어보라고 주제넘은 코치를 한다.
아이들을 보니 내 아이들 생각이 난다.
한강이는 지리산에 따라 온다고 했는데 나도 적극 가자고 못했다.
7시 20분쯤 천왕봉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구름 아래로 붉노란 기운이 가득하다.
바위 아래 바람을 피하고 있다가 천왕으로 오른다.
밝은 빛에 남강의 물줄기가 보이는데 구름이 짙어 해는 보일 가망이 안 보인다.
그러다가 붉게 타는 듯하더니 구름 사이에 붉은 덩어리가 올라온다.
사람들은 감탄하며 일출을 즐긴다.
나도 위로 올라가 아래 있는 젊은이에게 날 찍어달라고 한다.
바람을 피하려 아래로 내려가 동영상으로도 찍어본다.
어젯밤 장터목에서 잔 사람도 여자 두명에 남자가 서른명도 안된 듯 했다.
그 중 일출을 보러 온 이도 절반 정도인가? 천왕봉 주변은 한산하다.
소주를 한잔하고 싶은데 없다.
사흘간의 산짐을 지려면 체력관리를 더 해야겠다.
해는 떠 오르고 40분이 지나자 사람들이 중산리 쪽과 다시
장터목대피소쪽으로 나뉘어 내려간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천왕샘은 거대한 얼음덩이다.
가파른 경사를 스틱에 힘을 가득 주며 천천히 내려온다.
한 시간쯤 지나 법계사입구에 닿아 옷을 한 개 벗고 법계사로 들어간다.
새로이 지리산 할머니상을 놓을 모양이다.
삼층탑을 이리저리 찍어보다가 내려온다.
나이많은 할머니가 윗 법당쪽에서 조심조심 내려온다.
망바위 쯤에서는 한 두삼 오르는 이를 만난다.
내가 법계사에 들른 사이 남자 셋과 날 따르던 대학생은 앞질러 사라졌다.
칼바위를 지나 산행로 입구 통천길에 도착하니 10시 25분이 되어간다.
아스팔트를 걷다가 지름길 산을 지나 정류장에 닿으니 55분이다.
막걸리를 한잔 들이키고 싶은데 진주행 버스가 11시다.
취사장에서 같이 소주를 나누던 남자가 쓰레기 봉투를 사와 산쓰레기를 버린다.
나도 염치없이 배낭에 가득한 쓰레기를 넣는다.
진주까지 5,900원을 주고 한 시간 남짓 버스를 탄다.
학생을 데리고 택시를 타 고속터미널 입구에서 내려 기사가 알려준 추어탕집을 찾아간다.
용인에 산다는 학생은 갈길이 바쁘다고 걸어간다.
7,000원짜리 추어탕을 먹으며 소주생각이 간절하지만
사흘동안 씻지 않고 닦지 않은 몸에 소주 냄새까지 폐가 될까봐
참는다. 광주행은 1시 출발이다.
3시가 약간 지나 광주 에 도착한다.
터미널 2층 사우나에 들러 치솔과 면도기를 산다.
대전에 회의 간 바보는 보지도 않고 고흥에서 올라 온 민수와 현래가 벌써 왔다기에
택시를 타고 상무지구로 간다.
노래방까지 가면서 술에 가득 취해 집으로 왔는데 아침에 가죽장갑이 안 보인다.
김회장님은 내가 들고 간 이면지 가방을 메고 먼저 사라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