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계는 반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대는 늘 다른 누군가가 되라고 배워왔다.
“다른 사람이 되어봐라. 이웃집 아들처럼 되어라. 얼마나 똑똑하냐. 저 여자아이를 봐라. 걸음걸이가 얼마나 우아하냐. 그렇게 되어봐라!”
그대는 늘 다른 누군가가 되라고 배워왔다. 아무도 그대 자신이 되라고, 자신의 존재를 존경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대 자신의 존재는 타고난 선물이다.
절대로 모방하지 말라. 그것이 내가 말하는 바이다. 절대로 타인을 모방하지 말라. 그대 자신이 되어라. 그것은 그대가 존재계에게 진 빚이다. 그대 자신이 되어라!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되어라. 그러면 그대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신은 그대를 그토록 사랑했다. 그래서 그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그대가 존재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대에 대한 신의 무한한 사랑의 증거이다.
하지만 그대의 특별함은 타인과 비교하고 이웃, 친구, 아내, 남편과 비교하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라. 그대는 연민 때문에 뱀에게 신발을 신기고 있다.
“불쌍한 뱀이로구나. 다리도 없이 어떻게 걸어 다닐 것인가?”
마침 뱀이 지네의 발아래 떨어졌다. 그런데 그 지네는 뱀에게 연민을 느끼며 이렇게 생각했다.
“불쌍한 뱀이군. 나는 다리가 백 개나 되는데, 뱀은 다리가 하나도 없네. 어떻게 걸어 다닐까? 적어도 다리 몇 개는 있어야 할 텐데.”
그래서 뱀에게 다리 몇 개를 붙여주는 수술을 한다면, 뱀을 죽이는 꼴이 될 것이다! 뱀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옳다. 그에게는 다리가 필요 없다.
그대는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좋다. 나는 이것을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을 존경하는 것은 에고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 자신을 존경하는 것은 자존심이 아니다. 자신을 존경하는 것은 창조자에 대한 존경을 의미한다. 그대는 신성이 그려낸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존경한다는 것은 그대가 그 화가를 존경한다는 의미이다.
특별한 존재로 존경과 인정을 받고, 그런 존재로 수용되려는 어리석은 노력들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 오쇼의 <성공이란 무엇인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