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수행 / 최영준
아라비아사막 모래계곡 속에 묻혀 있는 소라화석을 보았다 반짝이는 조개화석, 화려했을 석화 굴껍데기화석, 이름모를 바닷새화석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사리 때 조금 때처럼 계곡이 쓸려나가고 부풀어 올랐다
그때마다 바람에서 간간이 바다냄새가 났다
황량한 사막에서 모래바람에 쓸려간 수많은 시간들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가슴에 응어리가 생기고, 뜨거운 불덩이를 가슴에 품었다
모래계곡에 뿌리를 내리고 숨쉬듯 열기를 뿜어내는 소라화석, 반짝이는 조개화석, 화려했을 석화 굴껍데기화석, 모두들 돌이 되어 묵언수행 중이다
그날 이후, 내 가슴에도 모래계곡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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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았다 / 최병무
아라비아사막은 푸른 바다의 궁전이었다
수억년,
누가 보았다, 어젯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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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의 말 내 안에 발효되지 못한 생각들, 모양과 빛깔을 덧입혀 집 한 채 지었습니다 별처럼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달빛 문패도 달았습니다 천 개의 강에 뜨는 달빛을 꿈꾸며 언젠가는 내 별로 돌아가 내 별에 떠오른 달빛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시집의 첫 문을 엽니다
2011년 1월에 최영준 =================
최영준 시인의 시세계 창조적인 삶의 활력과 호모 노마드의 역동적인 상상력 / 박제천 1. 좋은 시를 읽으면 즐겁다. 최영준 시인의 시처럼 개인사가 맞물린 경우엔 시인의 자서전을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좋은 시를 읽으며 시인이 선호하는 낱말의 속뜻을 찾아내면 절로 흥이 난다. 평면적인 일상사가 아니라 체험과 동반한 시의 속내가 그윽하고 감칠 맛이 나면 더욱 신명이 난다. 좋은 시는 암호와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 아무리 좋은 시라고 평판을 받아도 독자가 그 암호를 풀 능력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시인의 자전적인 삶이 배경장치라면 독자는 힘들이지 않고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시의 곳곳에 자리잡은 배경이 먼저 시를 이끌어간다. 반복되다보면 암호표가 외어지는 것처럼 작품 한 편보다는 시집 한 권을 통 채로 읽을 때 얻게 되는 이점이다. 작품 한 편에서는 불분명했던 한 시인의 세계관, 시시계가 비로소 전모를 드러낸다.
시인들은 누구나 저마다 이러한 장치를 독자적으로 개발한다. 근래엔 무슨 질병처럼 암호해독 코드를 사유화하여 시인이 직접 제공하는 난수표를 지니고 있어야만 가까스로 읽어질 수 있는 애매모호한 가짜 난해시가 판을 친다. 참으로 이상한 풍조지만 그럴수록 최영준 시의 정공법은 더욱 빛을 발한다. 시인이 태어나고 성장한 지역, 그에게 처해진 환경과 같은 외적인 특징이 그가 가슴으로 느끼고 겪었던 추억이며 희망, 상처며 집념과 같은 것들과 합쳐져 발효되고 숙성되면서 형상화되는 개성적이서도 개인사적인 시세계가 싱그럽기 때문이다. 마치 상선약수의 수원지를 발원지로 삼은 듯 뿜어 올리는 상상력의 분수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진다. 최영준 시인의 첫 시집 『새우등꽃 꽃잔치』는 일견해 창조적인 삶의 활력을 전신으로 껴안는 호모 노마드의 역동적인 상상력 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생동력은 아마도 7,80년대 한국사회 의 격동기에 생존을 위해 중동의 건설현장에 파견되었던 시인의 개인사와 맞물린 결과라 여겨진다. 취업을 위해 ‘내몰린 사막행’에서 시인은 오히려 사막을 전신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막의 떠돌음’과 같은 수동적인 장치를 능동적인 ‘유토피아 찾기’로 변환하고 증폭시키는 탁월한 작시법을 개발한다. 거의 전투적이라 불러도 좋을 시인의 이러한 남성적인 상상력은 수록작품들의 입체적인 현장감에 힘입어 특별한 긴장을 자아낸다.
본래 유목민 혹은 유랑자를 뜻하는 라틴어에 불과한 노마드를 질 들뢰즈가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으로 바꾸듯 시인은 사막에서의 생존 법칙을 창조적인 또 다른 세계를 창출해내는 동력으로 사용한다. ‘유목 즉 삶의 떠돌음’이 담고 있는 공간 이동을 예술세계의 상징적인 키워드로 제시한 것이다. 통과의례에 불과할 수도 있었을 사막체험이 시인에게 상상력의 뿌리를 내리면서 사막은 상징이자 은유가 된다. 수도자가 고통과 좌절에서 ‘묵언수행’을 끌어내듯 시인은 사막체험을 예술가의 생체험 으로 바꾼다. 사막은 이제 허무와 체념의 장이 아니라 창조의 무한한 변용이 가능한 백지가 된다. 고갱이 원시의 자연에서 본원의 인간을 찾아낸 것과 같은 이치다. 사막의 백지는 상상력의 지형도라 할 수 있다. 사막은 사하라나 리비아메만 있는 게 아니다. 거문도 동쪽 뱃길의 바다도 사막이고 은하계의 참게자리별도 사막이다. 마찬가지로 진시황릉의 병마용은 중국 산시성 시안에 존재하기보다는 메트로폴리탄의 밤거리 빌딩이 되어 ‘눈에’ 불을 켠다. “아라비아사막/ 모래계곡 속에 묻혀 있는 바닷새화석”은 시인의 가슴 속에 자리잡고, 서울도 북미대평원도 시인이 명명한 새 이름으로 상상력의 지형도에 기입된다. 은하계의 참게자리별은 천 개의 강에 뜨는 천 개의 별빛처럼 왕숙천에도 나타나고, 「블랙 스완」 의 전광판에도 나타난다. 시인의 이러한 기법은 기상(奇想; conceit)이나 절연(絶緣; depaysment)이 아니다. 장자가 말하듯 고통 또한 삶의 필연적인 조건임을 깨우친 자가 그에게 주어진 세계를 상상력으로 변용시키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 상징이자 은유가 된 사막은 이제 도처에 존재한다. 사막은 유목민의 삶, 노숙자의 삶, 여행자의 삶, 예술가의 삶으로 확장된다. 시인은 그 영혼의 백지에서 발신되는 사막의 메시지를 하염없이 다른 세상으로 송신한다. 시의 우주로 발신되는 시인의 전파는 지금 이 시간에도 파장을 그리며 날아간다. 이 시집은 그러한 기록의 첫 번째 묶음이라 할 수 있다. 2. 『지혜의 일곱기둥』에서 T,E.로렌스는 “아랍에는 4만명의 예언자가 있다고 한다.……알 수 없는 어떤 정열적인 동경이 그들을 사막 속으로 몰아간다”며 사막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숙명을 피력하고 있다. 로렌스가 누구인가. 영화로도 널리 알려졌듯이 로렌스는 아라비아 독립전쟁에 뛰어든 영국군 첩보장교로 낭만적인 신화를 스스로 창출한 인물이다. 아라비아전쟁을 회고한 『지혜의 일곱 기둥』역시 신청자에 한해 128부만 출판할 만큼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다. 생애에 걸쳐 T,E.쇼, J,H. 로스와 같은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으며 중령으로 제대했으나 공군과 육군의 사병으로 재입대하고, 정부에서 주는 작위를 사양하는 등 기행을 일삼다가 40살의 이른 나이에 오토바이사고로 사망한 아웃사이더에 속하는 유형이다. 현대소설의 어느 주인공보다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생애에 걸쳐 창출한 신화적인 인물이다. 코린 윌슨은 『아웃사이더』의 제2장에서 “뇌 속에 있는 용광로의 불”을 서서히 꺼가는 사례로 빈센트 반 고흐와 함께 로렌스를 다루면서 “인간은 자기가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설파한다. 동경과 자유를 가슴에 받아들이면 예언자가 되고, 아웃사이더가 될 수밖에 없다는 그 사막에서 시인은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체험하고 무엇을 사색했기에 시인이 되었을까. 그 무엇이 생존법칙이 지배하는 사막을 마술처럼 시인의 수원지로 바꾸었을까. 시인의 상수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면 시집의 제3부 <들꽃 블랙박스>에 실린 일련의 ‘사막시편’ 연작을 먼저 보아야 할 것같다. 사막 시편들은 아라비아사막, 리비아사막, 사하라사막 등 중동과 아프리카의 사막을 현장으로 삼고 있다. 종래의 한국 시인들이 감성적인 이미지로 사막을 다루 었다면 최영준 시인은 체험적인 현장감으로 사막의 속성을 재해석한다. 시인이 보여주는 사막은 다채로우면서도 내밀한 질감이 팽팽한 탄력을 유지한다. “신기루처럼 사막에 번져가는 내 몸속 A형 장미꽃”이 사막형제의 가슴에 활짝 피어나는 사막. “죽은 자들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인/ 들꽃들의 세상,/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날아오르려는 자들의/ 비행장”으로 존재하는 사막. “길을 잃고 서 있을 때” 길을 찾아주고 등을 떠밀어주는 쇠똥구리가 살아 있는 사막. “독침 한방이면 낙타도 쓰러뜨리는/ 강한 독이 그의 핏속에 흐르는” 황제전갈이 떠오를 때마다 “내 삶의 사막 곳곳에 오아시스가” 생겨나는 재생과 화해의 사막이다. 예컨대 ‘사막시편’을 대표하는 표제작「들꽃 블랙박스」 는 다음과 같다.
리비아사막에 비행기 잔해가 나무둥치처럼 뒹군다 피 묻은 살의 흔적인가, 곳곳에 붉은 들꽃들이 피어 있다 폭발의 충격으로 꽃잎은 산산조각이 나고 꽃 이름도 확인할 길이 없다 찢겨진 가지에 남아 있는 향기만이 너의 유일한 증거품이다 나는 비행기에서 튕겨나온 파편들을 들추면서 마지막 비행에 올랐던 네 자취를 찾는다 너를 찾는 헬리콥터의 레이저광선이 사막 여기저기에 내리꽂혀도 이미 들꽃이 된 오렌지빛 너의 블랙박스에서는 눈이 아린 향만 쏟아져 나온다 막혔던 혈관이 뚫린 듯 몸 속을 도는 내 생의 추억들이 하염없이 눈에서 흘러내린다 리비아사막은 죽은 자들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인 들꽃들의 세상,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날아오르려는 자들의 비행장, 그곳을 떠나며 나는 들꽃 한 송이를 옷깃에 매달았다.
-「들꽃 블랙박스」 ‘사막 시편’들은 성취도가 높은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은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대자연의 자연법에 시인 또한 들꽃 한 송이로 녹아들어가는 천연의 순리를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어느 날 리비아사막을 찾아간다. 마지막 비행에 올랐던 지인의 사고사 때문에 비행기가 추락한 장소에서 블랙박스를 찾아나선 길이다. 알다시피 ‘블랙박스’는 비행기나 차량에 장치한 운행일지 이다. 블랙박스를 분석하면 사고의 경위를 운행기록이나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블랙박스는 명칭과 달리 검정색이 아니라 형광물질이 칠해진 오렌지빛 박스가 대부분이다. 시인이 찾아간 추락 장소엔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 본 들꽃들은 이상하게도 하나같이 붉은 색이다. 시인에게는 그 꽃들의 색깔이 예사롭지 않다. “피 묻은 살의 흔적”만 같다. 비행기 폭발의 후폭풍으로 인해 꽃잎들도 산산조각이 나 있는 것 같다. 꽃이름도 알 수 없다. 찢겨진 꽃가지에서 시인은 그의 향기를 찾아낸다. 눈에 보이지 않고 코로 맡아볼 수 없는 향기이지만 그 향기가 가지에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꽃의 향기일 수도 있지만 그의 쉐이빙 로션 향기 일 수도 있고, 그의 땀샘일 수도 있으며 마지막 대기 속에 뿜어낸 그의 피냄새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건 오직 찢겨진 가지이지만 그의 존재를 증거하는 냄새가 “남아 있기”에 시인은 비행기의 튕겨나온 파편들을 들추면서 그의 자취를 찾는다. 붉은 들꽃 속에서 오렌지빛 블랙박스를 찾아내고 눈이 아린 향을 맡는다. 막혔던 혈관이 뚫린듯 몸 속을 도는 그와의 추억이 시인의 눈을 통해 눈물로 흘러내리며 도처에 눈이 아린 향을 뿜어낸다. 이 향기 속에서 시인은 들꽃들이 곧 “죽은 자들을 온 가슴 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곳이 “날아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날아오르려는 자들의/ 비행장”임을 깨우친다. 시인과 대상이 일체가 되어 보이는 것이 없되 없는 것에서 보이는 것을 찾아 읽는 색즉공 공즉색의 법열을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달리 ‘사막시편’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무색무취한 작품이다. 시의 주인공 로렌스에서 풍겨 나오는 낭만과 열정, 모험과 신비는 의도적으로 거세되어 있다. 「들꽃 블랙박스」에서 깨우친 삶의 무상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여백 속에 오히려 서사를 숨겨둠으로써 스스로 그렇게 존재하는 대자연을 부조하는 방식이다. 들뢰즈의 노마디즘이 창조적인 흐름의 한편으로는 순응적인 ‘스스로 그러한 노장의 무위자연’과 연결고리를 갖듯이 시인 또한 아라비아의 모래물결 속에서 울려오는 로렌스의 숨결에서 도도한 혁명과 낭만의 역사를 읽기 보다는 그 또한 자연으로 돌아간 장삼이사의 애잔한 추억담을 읽어낸다. 데이비드 린이 감독하고 피터 오토, 알렉 기네스, 오마샤리프가 주연을 맡아 대자연과 인간의 드라마를 연출한 대하서사드라마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로렌스며 아라비아 사막은 얼마나 장엄한가. 아카데미상 7개 부문을 석권하면서 불후의 명화로 기억되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나오는 광활하면서도 신비롭기 그지없는 아리비아사막은 잊혀지지 않는 감동의 무대이지만 그 붉은 사막은 이제 로렌스의 것이 아니라 시인의 사막이고, 시인이 만난 로렌스 역시 신화 속으로 사라져간 덧없는 삶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라비아의 붉은 사막에서 만난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흰 옷을 입고 있다 붉은 바위산, 붉은 돌로 이루어진 아라비아사막의 로렌스는 희디흰 달빛모래 옷을 입고 있다 그가 걸을 때면 아라비아사막에 잔잔한 모래물결이 인다 사막에 모래물결 천이 바다처럼 펼쳐진다 물결마다 로렌스의 금빛 머리칼이 반짝이고 주름진 골마다 그의 꿈과 좌절을 새겨 넣는다 고요함이 모래능선을 따라 흐른다 모래물결 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로렌스의 숨결이 붉은 사막을 흔들어 깨운다 몸과 마음을 다독여 삶의 무늬를 만들어낸다 어느 새 나는 모래물결 천을 온 몸에 휘감은 채 로렌스의 모래물결 위를 걸어간다 만들면 지워지는 내 삶의 무늬가 아라비아사막의 모래물결로 일렁인다 희디흰 달빛모래 옷을 입은 내가 걸어간다 붉은 사막, 어디론가 바삐 걸어간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하지만 시인의 사막행은 사막행을 자원한 로렌스의 대칭에 서 있다. 시인은 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사막으로 온 것이다. 혁명을 삶으로 사는 낭만이 아니라 사막을 돈으로 바꾸어야 하는 ‘내몰린 사막행’이다. 시인이 아라비아 사막에서 로렌스를 만나고 “모래물결 속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로렌스의 숨결”을 들으며 그 모래물결 속에서 로렌스의 영광과 좌절을 읽으면서도 결코 시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통의 체험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삶의 무늬가 어떠해야 하는지 시인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낭만을 제거한 로렌스의 의상은 “희디흰 달빛모래 옷” 이면 족하다. 아라비아사막에서 로렌스를 추억하는 것만으로 시인의 가슴은 설레지만 “만들면 지워지는 삶의 무늬”가 어떤 것인지 자각할 만큼 냉정한 관조가 그의 본분이다. 최영준 시인의 ‘사막 시편’이 체험적인 현장감을 살리고 있으면서도 냉엄할 정도로 객관적인 거리를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역시 사막에서 고독과 상처와 좌절을 겪었기에 시인은 오히려 사막을 재생의 상징이자 은유로 받아들인다. 인간에게서 해방되는 낭만적인 상징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인간을 자각하고 갱신하는 상징이다. 아라비아 사막을 비롯해 리비아사막, 사하라사막에서 시인은 좌절과 상처로 얼룩진 고통의 추억을 재생의 오아시스로 재구성한다. 시인에게 있어 사막은 우리네 삶과 동일한 의미로 읽혀진다. 사막은 삶의 상징이자 기호이기에 삶 또한 사막과 같은 동일성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한다. 사막은 사람의 삶과 무관한 불모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네 사람의 곳곳에서 만나고 부딪치고 이겨내야 하는 생존의 조건임을 깨우치면서 시인은 사막을 상징과 은유로 받아들인다. 그 황량한 사막에서 각성의 오아시스를 찾아내고 좌절과 상처를 토양으로 삼아 백화난만한 꽃밭을 만들어내는 판타지의 마술을 익힌다.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그 기이한 꽃밭에서 우리는 사우디 센트럴병원의 철제 헌혈대에서 피어난 사막 형제의 A형 장미꽃을 만나고, 리비아 사막에 붉은 들꽃으로 남겨진 들꽃 블랙박스를 보면서 눈이 아린다. 시인의 체험은 현장감을 살리면서 개인에게 부닥치는 삶의 상처, 실패와 좌절, 비명의 응어리를 오히려 불쏘시개 삼아 활활 타오르는 삶의 불길로 용솟음치게 만든다. 여담이지만 호사가들은 우리나라에도 사막이 있다고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사막이 아니라 사구라 불리는 것들이다. 간조 때 바닷가 모래가 바람에 불려 거대한 모래언덕을 만드는 해안사구들인데 우리나라에도 130여 개의 사구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충남 태안군의 신두리사구를 비롯해 대청도의 옥죽동사구, 고성군의 동호사구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중 동호사구의 길이가 약 6㎞이다. 고비사막의 1600㎞와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우리 한반도의 면적이 22만㎞2인데 비해 사하라사막의 면적은 930만 ㎞2라 하니 참으로 아득한 넓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사막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가사의한 감회에 젖게 만든다. 그 때문일까, 순정한 영혼들은 사막에 가면 절로 예언자가 되고, 혁명아가 되고, 시인이 되는지도 모른다. 3. 이제 최영준 시인의 첫 시집 표제작인 「새우등꽃 꽃잔치」 를 읽을 차례가 되었다. ‘새우등’은 글자 그대로 가슴과 다리가 맞닿을 만큼 허리를 구부려 등이 툭 튀어나오는 자세다. 이런 자세로 잠을 자는 것을 모태 회귀로 풀이한 글도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잠이 들면 본능적으로 자궁 속의 태아가 되는 고단한 삶의 주인공들. 시인은 지하철역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자는 노숙자들의 튀어나온 등에서 문득 수족관의 새우들을 연상한다. 아니 수족관의 붉은 색유리 속에 불빛을 받아 번쩍이는 새우들을 보면서 노숙자들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시각적인 오브제를 먼저 제시함으로써 저들을 동일시 하려는 시인의 기법이 충분한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 이다. 시인은 수족관의 새우와 지하철역의 노숙자들이 하나같이 잠의 자궁 속에서 피워내는 꽃을 본다. “낮이면 등 속에 꽃을 숨겼다가/ 등줄기에 뜨거운 핏덩이가 뭉클거리는 밤이면” 저마다 등에서 꺼내드는 “마술의 꽃”을 본다. 어둠의 바닥까지 내려가 본 자가 아니면 찾아내고 보아낼 수 없는 도저한 시력이 아닐 수 없다. 저들의 나락을 온몸 온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느껴 깨우치는 천연의 연민이자 보살행의 자비라 할 수 있다.
유리 수족관 속, 새로 들여온 새우들이 허리를 구부린 채 잠들어 있다 품종이 달라선가 모양새도 각각이다 색유리에 불빛이 번지면 꽃 모양이 되는 것만 똑같다 그날 밤, 나는 보았다 도시의 수족관에 모여든 새우들이 여기저기서 피워내는 새우등꽃을 등에 문신을 새기듯 그늘진 삶의 무늬가 온몸으로 번지고, 응어리진 뿌리마다 어둠을 자양삼아 피워내는 꽃, 낮이면 등 속에 꽃을 숨겼다가 등줄기에 뜨거운 핏덩이가 뭉클거리는 밤이면 다시 꺼내드는 마술의 꽃을 보았다 지하철역 노숙자의 등에 피어나는 신문지 종이꽃, 그 불꽃 속 저마다 숨겨둔 가족과 만나는 잠, 잠의 세계를 보았다 영이야 순이야 부르는 소리에 오그라들었던 등의 힘줄을 물오른 나뭇가지처럼 빳빳이 세우고 일어서는 새우등꽃들, 새우등꽃, 그 꽃잔치를 보았다
-「새우등꽃 꽃잔치」 시인은 새우등에서 꽃이 피어나듯 노숙자의 잠든 등에서 저들의 삶이 “오그라들었던 등의 힘줄을/ 물오른 나뭇가지 처럼 빳빳이 세우고 일어서는” 삶의 의욕을 읽는다. “응어리진 뿌리마다 어둠을 자양삼아 피워내는 꽃”이다. 잠든 노숙자의 “등줄기에 뜨거운 핏덩어리가 뭉클거리는 밤”은 새벽을 기다리는 자의 몫이다. 시인은 “영이야 순이야”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노숙자들 이 피워낸 꽃잔치를 그 잠 속에서 읽어낸다. 리비아 사막 계곡에서 길을 잃었을 때 시인에게 생명의 끈을 보여주던 허방 속의 쇠똥구리처럼 저들도 언젠가는 싸워 이겨내 삶의 환희를 가지리라는 시인의 소망이다. 중국 청도행의 배에서 “한 사내가 아내에게 했던 말”, “추울 땐 연탄 아끼지 말고 팍팍 때!”라는 통화에서 “연탄구멍에서 뿜어 나오는 뜨거운 불길”을 보았던 시인이 저들에게 기대하는 아름다운 꽃잔치의 화엄경이다. 4. 최영준 시인의 첫시집 『새우등꽃 꽃잔치』는 모두 네 묶음으로 엮어져 있다. 제1부는 <새우등꽃 꽃잔치> 제2부는<내 몸의 식물원> 제3부는 <들꽃 블랙박스> 제4부는 <재수 좋은 날>로 구성되어, 잘 짜여진 영화의 시나리오처럼 입체적인 프레임 속에 창조적인 삶의 활력을 전신으로 껴안는 호모 노마드의 역동적인 상상력이 눈부시게 전개된다. 시인은 중동의 사막에서, 성남의 새벽 인력시장에서, 노숙자의 서울 지하철역에서, 중국의 청도로 가는 겨울바다 에서 부닥친 삶의 좌절과 고통의 상처를 오히려 불쏘시개 삼아 시의 불길을 살려낸다. 사막이든 취업이든 현실이든 시인에게 부닥쳐오는 모든 것을 용광로에 던져 놓고, 그 불길 속에 뜨겁게 확장되며 빛나는 무지개의 거푸집을 떠낸다. 삶의 먹거리를 찾아 혹은 사막을 찾아가고, 혹은 나락에 떨어진 자들의 꿈과 희망을 껴안아주는 보살행과 이타행의 자비와 연민으로 가득찬 시인의 작품들은 “예술작품은 어떤 인간도 넘어서지 못하는 곳까지 가본 사람에게서” 태어나며 “더 멀리 가면 갈수록 더 고유하고 더 개성적이고 더 유일한 것이 된다.”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인상적이고 독자적이다. 결론하자면 첫시집 『새우등꽃 꽃잔치』는 그 아득한 길을 역동적으로 달려온 시인에게 주어진 보상이자 동시에 시인이 앞으로 보여줄 상상력의 시세계가 더욱 경쾌하고 활력이 넘치리라는 신표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가, 이 글을 쓰는 동안, 내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고 음미할 수 있었다.
최영준 시인
전남 목포 출생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방송대 중문학과 졸업 (전) 율산실업, 동아건설 근무 2009년 『문학과창작』등단 시집 『새우꽃 꽃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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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원문보기 글쓴이: 동산
첫댓글
동산 시인의 시가
더욱 다감하고 실감 있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