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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 굳건한 믿음의 기초를 세워라! (골로새서 2:6~10)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 번 한 주간도 온전한 믿음의 성도로서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긴 다리가 어디에 있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미국 폰차트레인 코스웨이(Pontchartrain Causeway) 대교입니다.
1956년 9월경에 완공한 총길이가 38.4㎞로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폰차트레인호수를 가로질러 남쪽의 메터리(Metairie)와 북쪽의 맨더빌(Mandeville)을 연결하고 있는 다리입니다.(카트리나 사건)
또한, 골든게이트 브리지(Golden Gate Bridge) 또는, 금문교(金門橋)라고 부르는 다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골든게이트 목에 위치한 현수교입니다.
이 골든게이트 브리지는 샌프란시스코 만과 태평양을 잇는 아주 중요한 다리로서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 주 매린 카운티(Marin County)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또한, 1937년에 완공한 이 다리는 그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였습니다. 지금은 세계 5위로 떨어졌지만, 그래도 대단한 브리지(Bridge)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다리는 완공이 된 후, 샌프란시스코 시의 상징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리의 높이만도 장장 227m로서 다리의 길이는 1,280m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다리를 공사할 때, 해마다 2~30명씩 인부들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리공사를 맡은 시공사는 다리 밑에 그물망을 설치해서 떨어져도 죽지 않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단 한사람도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공사 진척도 20%나 향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떨어져도 그물 때문에 산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의 삶 속에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러한 믿음은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에도 든든한 믿음의 기초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도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기초에서 나오고 뿌리에서 나오고 중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이와 같이 여러 가지 건물들은 기초와 뿌리가 생명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초와 뿌리가 약하면, 아무리 잘 지어놓은 건물이나 세계적인 다리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를 보십시오! 중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지진으로 인하여 땅이 갈라지고 흔들려 수많은 건물들이나 다리가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기초와 뿌리가 튼튼하지 못한 건물이나, 다리들은 조금이라도 지반이 흔들리거나 금이 가면 금방 무너지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의 성도들도 신앙의 기초와 중심이 부실하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해당되는 무슨 질책성 설교만 들어도 시험에 들어 넘어지고 흔들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또한 목사들이나, 성도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기분이 상하면, 그동안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신앙이 일시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영적으로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수많은 성도들이 이단들이 살살 꼬드기면, 그냥 그 소리에 솔깃하고 따라가 버리거나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가 버립니다. 마치 고기 덩어리로 유인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배가 고픈 강아지처럼 말입니다.
여러분!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보십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온전한 믿음으로 단단하고 깊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튼튼해야 할 말씀으로 무장된 믿음의 기초와 중심이 부실해서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들에 있어서 기초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건물이나, 다리의 기초가 중심을 바로 잡고서 튼튼할수록 아무리 거센 바람과 파도가 몰아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바로 이러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으십니까?
작년 1월 달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새로 건축된 162층 높이의 세계 최고 높이의 고층건물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건물의 이름을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라고 하는데, 높이만 장장 830m나 되며, 우리나라 삼성건설이 지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생각을 해보십시오! 만일 그 거대한 세계적인 건물이 기초가 부실해 보십시오, 과연 그 건물이 며칠이나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모래 위에 세운 건물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기초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부연설명)
때문에 학문에 있어서도 기초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면 곧 바로 전공과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기초학문부터 공부를 시키지 않습니까?
또한, 군대를 갖다온 남자 성도님들은 잘 알겠지만 군대에 입대하면 그 다음날부터 총 쏘는 것부터 가르치지 않잖아요? 무엇부터 가르칩니까? 기초훈련과 줄 서는 것부터 가르치잖아요!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도 온전한 믿음을 갖춘 신앙의 삶을 유지 하시 위해서는 이처럼 말씀의 기초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갖춘 신앙의 기초가 무엇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닮은 건강한 영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인정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영성으로 살아가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하여 영적인 힘과 능력과 교통이 이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하나님의 영적인 힘을 빌려 이 육신의 삶 속에서 능력을 겸비한 지도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7절 초반부에 보면, “예수 안에서 뿌리를 박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골로새 교회는 에바브라디도가 사도 바울을 통해 하나님을 영접함으로서 그곳에 최초로 복음을 전함으로 시작된 교회였습니다.
그 후, 한동안은 교회의 역할을 잘 감당하면서 든든히 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헛된 철학을 숭배하는 영지주의자들이 그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 시대에 가장 교회를 혼란에 빠트린 사람들이 영지주의자들이었는데, 이 시간을 통하여 그들의 실상을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란? 주전 2세기 중반부터 활동을 하면서 영혼은 선하고 물질은 악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통하여 성육신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을 한 자들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을 무력화 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경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천사와 정령을 숭배하고, 극단의 금욕생활을 강조하는 신흥 율법주의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과 이 세상의 중재자로 나선 분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주의 정령이라고 주장을 하면서 선한 영으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그 당시 사람들을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들 영지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부활, 그리고 구속사역을 통한 구원의 목적에 정면으로 도전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비 성경적인 이단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이 육신의 세상에서 가장 큰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아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능력과, 구원의 힘과,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온전한 마음으로 믿고 신뢰하는 일, 그 자체가 이 육신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오묘한 신비 중에 신비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경시하고 부정하면서 구속의 의미를 축소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단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나 성령님은 절대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같이 예수 그리스도만 걸고 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하지 않고, 순전히 인간임을 주장하며 그 분의 신성을 축소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이론을 내놓아 혼란을 야기 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단들의 사명은 새로운 이론으로 성도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신앙을 혼동 시켜 그 영혼을 죽이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의 말씀으로 바로 서지 못하고 기초가 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만들려는 사단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문제는 이단들이 찾아와서 마음에 드는 말로 속삭이는 소리를 믿고, 마치 어린아이가 과자를 사준다는 말에 유괴범을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따라가듯이 그들의 말에 속아 무작정 따라 나선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성도들은 성경의 말씀으로 무장된 영적인 기초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꼭 비교하자면,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하는 어린 애들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귀까지 여리기에 영적인 분별력까지 잃어버리고, 자꾸 일을 저지르고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 당시 골로새 교인들이 이러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단들의 속삭임을 그대로 믿고 따라나서서 우왕좌왕 하며, 어느 쪽이 진리인지를 갈피를 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그 소식을 듣고 심각하게 염려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옥중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 서신을 통해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며, 호소의 글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잘 살펴보면 사도 바울이 몇 가지 사항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 서신의 핵심인 “예수 안에서 굳게 서라!”는 내용의 말씀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시는 메시지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인정을 하십니까?
그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이렇게 온전치 못한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심정은 곧 예수님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성도들이 말을 안 들으면 ‘멋대로 한번 해 봐라!’하고 포기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들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한 번 선택한 성도들을 끝까지 돌보시고 책임을 지십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하나님의 마음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강조하기를 “그 어떠한 유혹에도 결코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 육신의 세상에는 주님과 나 사이를 벌려 놓으려는 조건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때문에 평안한 생활이 그 중의 하나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평안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평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을 풀리게 함으로서 게으르게 하고, 졸리게 하고, 방심하게 하는 아주 무서운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쾌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도 다 주님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위험한 것은 이단 사설들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사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책들도 이상한 신앙형태들도 많이 접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주변만 하더라도 교회는 많지만, 믿고 찾아갈 건강한 교회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단들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축소하고, 구속의 의미를 부정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이 더럽고 추악한 이 육신의 세상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들의 구주이신 주님이 되셨으며, 속죄의 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약속을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일생을 포기하고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전하고, 부활을 전하고, 십자가를 위해서 일평생을 다 바쳐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어느 그릇된 사설들이 골로새 교회에 들어와 성도들을 현혹하여 우왕좌왕하게 만들어 혼란케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옥중에 갇혀있는 사도 바울이 얼마나 분노를 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눈물의 서신을 통하여 이와 같이 간곡히 부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서서 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사도 바울이 명한 이러한 말씀에 온전한 믿음으로 순종하며 따라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이신 그 분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그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와 여러분들이 기초가 든든한 믿음으로 굳게 설 수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나폴레옹이 새 말에 올라탔는데, 그 말이 갑자기 뛰는 바람에 생명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장병들 중에 그 누구도 선뜻 나서서 말을 제지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병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말을 진정을 시켰습니다. 그때서야 나폴레옹은 비로서 안도의 숨을 쉬며 말에서 내리면서 이렇게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너는 이제부터 장교로 임명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는 장교들만 앉는 자석으로 가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그때, 한 장교가 ‘너는 사병이니 사병들 자리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병이 ‘나도 이제부터는 장교랍니다.’라고 말하자 ‘누가 너를 장교로 만들었느냐?’고 의아해 하면서 묻자, 그 사병은 ‘황제께서 방금 선포 해 주셨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너는 나의 자녀라!’고 하셨으면 그 사람은 그 순간부터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서 임명을 받았음을 믿으시고, 항상 온전한 믿음의 기초를 단단히 하여 그 어떠한 경우라도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7절 상단의 말씀을 보면, “예수 안에 깊이 뿌리를 박으라!”고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라도 골로새 교인들의 믿음들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신의 말씀을 영적으로 살펴보면, 깊이 뿌리를 박으라는 표현은 다리나 건물에 비유하여 한 말씀이었습니다. 때문에 마태복음 7장 24절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집을 짓되 반석위에 세운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3장 17절에서도 “너희가 예수 안에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6절과 7절을 요약해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으로 넘치게 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 모두는 항상 온전한 믿음으로 무장된 기초의 근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각종 건축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기초석 즉, 머릿돌에서 시작하여 기둥을 똑바로 세워가며 지어갑니다. 때문에 그 머릿돌은 그 건축물을 지을 때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기초석인 것입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온전한 믿음의 기초석은 우리들의 머릿돌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때문에 우리 모두의 믿음의 대상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숙이 뿌리가 박혀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오늘 이 서신을 통하여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 점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전하는 저도 만일에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단들에게 미혹되어 그들의 말에 솔깃하여 영분별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그들을 따라간다면 얼마나 염려를 하겠습니까? 정말로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은 옥중에서 탄식하며 강조하기를 “예수 안에서 깊이 뿌리를 박아 세움을 받으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본문을 쓴 사도 바울은 왜 “그 안에서(in Christ)”란 말을 여러 차례 강조를 하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있으며, 구속의 사역을 통하여 죄 사함과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들 주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나지 않는 사람들의 지식이나, 사변신학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천주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변신학의 시작은 철학자 칸트에게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칸트의 어머니는 경건주의 자였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집에서 지겹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언제부터인지 칸트는 찬송소리가 지긋지긋 해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예술 중에서 음악은 제일 밑바닥의 예술”이라고 혹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청년시절에 교도소 옆에서 하숙을 하면서 죄는 모두가 마귀 때문에 짓게 되니 양심을 회복하려면, 마귀를 좆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 쫒는 방법은 찬송뿐이라 하여 밤늦게까지 교도소를 향하여 찬송을 불러대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칸트는 사변신학, 사변철학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사변적으로 머리로 마음으로 연애를 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여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으로만 연애를 하다가 결혼도 못하고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도 사변적으로 도덕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강조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구주로, 부활의 주님으로, 구속주로, 자신의 영을 살리는 주님으로 다가왔겠습니까? 때문에 그러한 체험 없는 무의미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때마다 환경마다 흔들리고 아무런 힘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모습을 지닌 성도들을 너무나 잘 아는 사도 바울은 “예수 안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라!”고 강조를 하게 된 것임을 믿으시고, 그 어떠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말씀으로 기초가 튼튼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를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왜 갑자기 하나님을 잊고 우왕좌왕 하는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저버려서 그렇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잊으면 배은망덕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당부를 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육신의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와 은총입니까? 또한, 예수님의 고난과 구속, 그리고 부활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얼마나 큽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생명을 주님께서 구원해 주시고, 구속하시어 구출해 주시기까지 하셨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분의 은혜를 그리 쉽사리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많은 성도들이 왜 그분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속의 진정성, 분명한 성령의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들은 자신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기까지의 실감나는 몸부림이 뒤따라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시기까지 몸부림과 수고와 고민을 가지는 만남이 있어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향한 그러한 몸부림과 수고와 고민도 없이, 어느 순간에 주님을 세상적인 자기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이해를 하면서 쉽게 받아들일 때,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쉽사리 생각하며 믿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쉽게 얻은 믿음과 조건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쉽게 얻은 결과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산에 있는 나무도 바람이 없는 무풍지대에서 자란 나무는 좋은 재목이 되질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연의 세계에 한파를 보내시고, 폭풍과 비바람을 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좋은 재목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들의 삶속에서도, 신앙의 삶속에서도 한파와 폭풍, 그리고 비바람을 보내십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것들을 통하여 감사와 깨달음의 삶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믿으십니까?
어느 어촌에 고기잡이를 나갔던 배가 밤늦게까지 항구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가족들과 온 동네사람들이 걱정을 하며 밤새동안 부두에서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밤늦게 고기를 잡으러 같던 어느 어부 집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온 동네 사람들은 정신없이 불을 끄느라 온밤을 세워가며 고생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집은 불에 타버리는 가혹한 시련을 맞이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믿음의 성도들에게도 한파와 비바람이 한꺼번에 몰아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드디어 배가 돌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배가 풍랑으로 방향을 잃고,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방황을 하고 있는데, 육지에서 갑자기 큰 불빛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 불을 향하여 방향을 잡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런 일로 인하여 내 집이 불난 것이 재앙일까요? 아니면 구원의 불일까요? 이처럼 인간들의 삶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다져져서 하늘의 섭리를 뒤늦게나마 깨달아 알게 됨으로서 겸손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 하네다 공항 근처에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올림픽 경기를 앞두고 도로정비를 하게 되어 그 교회가 헐리게 됨으로서 엄청난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논의하는 중에 어느 장로님이 ‘그 돈으로 우선 교회부터 짓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알고 보면 그 같은 방법이 가장 쉬운 발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어느 집사님이 ‘우리가 거저 받은 돈으로 교회를 지으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니 이 많은 돈을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받았으니, 이 돈 전부를 자선기관에 기부하고, 교회는 우리의 땀과 정성과 헌금과 우리의 희생을 들여서 교회를 짓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찬성을 하여 보상받은 돈을 자선기관에 기부하고, 성도들이 물심양면으로 헌금을 해서 교회를 다시 아름답게 지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모습의 행함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하게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아주 정상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이러한 믿음을 지닌 교회와 성도들이 있는 곳, 즉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는 그 어떠한 일이 닥치더라도, 결단코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감격이 있고, 감사가 있으며, 주님께서 분명히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골로새 교인들은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구속을 축소하려는 영지주의자들에게 너무 쉽게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뼈저린 아픔과, 그리고 고난과 은혜를 체험해 보았다면, 그렇게 쉽게 예수님의 뜻을 잊어버리고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너무 쉽게 형식적으로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옥중에 있던 사도 바울은 그러한 소식을 듣고 마음이 상하였을 것입니다. 성도들의 어리석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욕됨에 속이 상하였을 것이고, 이단들의 행위에 분노가 치솟았을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인 이 서신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권고를 하였던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한 믿음으로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든 삶들은 영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즉,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유지는 하나님의 뜻에 지배를 당하여 영의 인도함만을 받는 삶을 뜻한다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이러한 믿음의 성도들은 영적 ‘플라시보 효과’를 얻게 됩니다. 플라시보는 ‘가짜 약’이라는 뜻으로서 의사가 환자에게 밀가루를 단호하게 신약이라고 속이고 먹이면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에 온전하게 지배를 당하여 살게 되면, 이 육신의 삶속에서 이러한 ‘플라시보’ 효과를 거두게 되며, 하나님 안에 기초를 세우면, 결코 능치 못할 일들을 당치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영적관계를 이루시어,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한 믿음의 뿌리를 깊숙이 내려서 그 어떠한 고난과 환란, 그리고 풍파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의 건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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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자료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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