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엽토 오솔길
한 달여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앞둔 이월 첫날이었다. 반짝 추위가 찾아왔다만 오후가 되자 날씨는 영상으로 풀렸다. 산책과 등산을 겸해 집을 나섰다. 퇴촌삼거리에서 사림동 사격장으로 올랐다. 갈색 메타스퀘어 가로수는 미끈하게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사격장 주변 벚나무들은 한 달쯤 지나면 꽃망울이 몽글몽글 부풀 것이다. 다른 데보다 양지바른 편이라 꽃이 일찍 피는 곳이다.
일요일을 맞아 등산객들이 간간이 보였다. 사격장 잔디운동장을 돌아 누군가 가꾸는 텃밭 근처를 지나는 즈음이었다. 텃밭에는 겨울을 난 마늘과 유채가 파릇한 싹을 보였다. 볕바른 언덕에는 큰개불알꽃이 점점이 피어났다. 큰개불알꽃은 엷은 보라색으로 송이가 자잘했다. 남들은 그냥 스쳐 지나도 나는 허리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다. 나는 이미 올 겨울 여러 곳에서 본 들꽃이었다.
큰개불알꽃에 눈도장을 받고는 소목고개로 올랐다. 고개 못 미쳐 약수터에서 샘물을 한 모금 떠 마시고 산마루 쉼터에서 쉬면서 산행 방향을 정했다. 정병산까지 오르기엔 비탈길이라 무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맞은 편 봉림산 낮은 산자락을 넘어 봉림사지로 가도 된다. 창원대학 뒤나 태복산으로 향하는 숲속 나들이 길은 이번 방학 중 걸은 바 있다. 덕산마을로 내려서는 오솔길도 있다.
나는 산등선을 따라 계속 걸어 용강고개에 이르는 길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길에 익숙한 도시인에게 부엽토 오솔길을 걷는다는 것은 행복이다. 소목고개 쉼터에서 일어나 산등선 북사면으로 드니 낙엽활엽수림 오솔길은 가랑잎이 삭아 푹신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야산의 삭은 부엽토는 카펫을 깔아둔 듯했다. 부엽토 길은 습기를 머금어 먼지가 일지 않아 좋았다.
시누대숲을 지나니 태복산으로 건너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태복산으로 가질 않고 골프장과 인접한 낙남정맥 산등선을 따라 계속 걸었다. 진행 방향 왼쪽 울타리 너머는 창원컨트리클럽이었다. 누렇게 시든 잔디 위에는 캐디를 대동한 골퍼들이 샷을 날려댔다.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필드엔 골퍼들이 삼삼오오 보였다. 진행 방향 오른쪽 산등선 북사면은 단감과수원이 넓게 펼쳐졌다.
건너편 봉림산 숲에서는 쇠딱따구리가 삭은 나무를 쪼는 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쇠딱따구리는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트렸다. 오리나무와 아카시나무가 주종인 활엽수림을 걸었다. 몸체가 좀 큰 직박구리들이 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날면서 재잘거렸다. 내가 녀석들을 쫓아 따라가는 건지 녀석들이 나를 따라 오는 건지 분간이 안 되었다. 붉은머리오목눈이와 박새들도 떼 지어 종알거렸다.
산등선 아래는 25호 우회국도가 창원대학 뒤 정병터널을 빠져나왔다. KTX선로 창원터널도 나란히 뚫렸다. 구룡산 아래 육군 정비창 너머는 주남저수지가 보였다. 그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철새들도 한두 달 후면 시베리아 벌판으로 돌아갈 것이다. 먼 비행으로 소진될 열량을 보충하려면 도래지에서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쫄 것이다. 동읍 일대 군데군데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었다.
아까 소목고개에서 서쪽 산등선을 따라 계속 나아가면서 산새소리는 공으로 들었다. 잔디밭의 골퍼들은 경기에 집중하느라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파란 하늘이나 새소리들 제대로 듣고 있는지 궁금했다. 도계동으로 내려서지 않고 용강고개까지 갔다. 고갯마루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소답동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 시내로 들어가는 105번 버스를 갈아타려고 버스정류소에서 서성거렸다.
오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버스정류소였다. 대학생으로 헤아려지는 한 아가씨가 주남저수지를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하는지 물어왔다. 나는 버스정류소에 붙은 노선도를 가리키면서 1번 마을버스를 타고 십분 남짓 가면 주남저수지라고 일어주었다. 택시 요금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 물어와 마을버스가 자주 있으니 택시까지 탈 필요는 없다고 했다. 좋은 탐조 걸음이 되길 바랐다. 15.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