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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의 수박 겉핥기 체험기/ (교사) 이장희
평소 마음속으로만 갈망해 왔던 유럽문화를 접할 기회가 내게도 왔다. 이른바 지구촌 시대, 교육현장의 주체인 교사에게는 세계와 함께 호흡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이해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에 대구교육청에서 우리 교사들로 하여금 세계의 선진국을 찾아가 직접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보고 듣고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러한 국외체험연수에 여러 선생님과 함께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2002년 12월 29일, 대구를 출발한 일행은 김포를 거쳐 웅장한 미래형 공항인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인천에서는 프랑크푸르트행 아시아나 항공의 우리말을 쓰는 친절한 스튜어디스들의 안내를 받으며 갈 수 있어서 편안하였다. 비행기는 끝도 없는 시베리아를 거치며 9천 피트 이상 높이의 상공을 11시간 비행 끝에 유럽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독일 프랑크프루트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국제공항답게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았다. 이곳에서 로마행 비행기는 예약 문제로 연수단 전원이 함께 탑승할 수가 없었고, 나를 포함한 18명은 다음 비행기를 타기 위해 2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독일 항공인 루프트한자를 이용해서 모든 연수단은 다행히 자정 전에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하였다. 시차관계, 불편한 좌석, 앉은 채 지낸 피로에 잠 못 이룬 긴긴 밤을 보내고서야 도착한 공항 입구에 큰 글씨로 씌어진 <ROMA>라는 현판이 상당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해 왔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로마 시내 곳곳에 있는 성당의 아침 종소리와 함께 유럽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에는 성당만 2만 곳이 넘는단다. 국민 중에 가톨릭 신자 98% 정도. 우리는 자기 일에 무척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안내하는 별명이 '조르쥬'인 현지 한국인 안내원에게서 신바람 나게 이탈리아 전반적인 소개부터 들을 수 있었다. 고대의 화려한 전통과 유물을 간직하며, 현대의 최첨단 패션과 유행을 잘 융합시키고 있는 이탈리아는 유럽대륙에서 지중해 쪽으로 장화처럼 뻗어 나와 있다. 로마는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큰길가의 상가와 살림집이 6층 정도 높이로 거의 옛 유적을 그대로 보전한 채 현대 문명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2층에 해당하는 층부터 그들은 1층이라 표기한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 안에는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가로 잘 알려진 이곳은 전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이라는 성스러운 의미 외에도 미케란젤로의 불후의 명적 <천지창조>와 같은, 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훌륭한 예술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 '이탈리아 미술의 보고'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의 본격적인 여정은 바티칸 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이 바티칸 박물관을 완전히 에워쌀 정도로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도 이른 시간부터 움직였지만, 두 시간 이상을 투자하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인도를 꽉 차게 메운 대여섯 겹의 줄이 2km 이상 계속되었다. 현지 가이드는 이 정도는 많은 인파가 모인 것도 아니란다. 관람료가 10불이었는데 하루에 모인 돈을 전부 계산하려면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돈을 세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훌륭한 조상 덕을 톡톡히 보는 이탈리아인이 아닌가? 바티칸 박물관의 실내외 소장품 중 중요한 대표작만 골라 보는데도 2시간이 걸린다. 내부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피냐 정원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박물관 내부에서는 직원의 지시에 따라 일방통행을 하도록 하고 있다.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1,400여 개의 방들이 있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대리석 조각들과 회화들을 감상할 수 있다. 작가들은 단단한 돌로 어떻게 밀가루반죽처럼 실김나게 인물상을 조각하였을까? 대리석은 우리의 화강암처럼 처음부터 단단한 돌이 아니란다. 대리석은 땅 속에서 캐낼 적에는 부드럽고 무른 상태로 생겼는데 공기 중에서 산화작용을 거쳐 쇳덩이처럼 단단해진다니 자연의 묘한 조화이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천정화<천지창조>, 피렌체의 산마르코 대성당의 프라 안젤리코의 명작 등은 '프레스코'라는 독특한 기법으로 그려졌다. 프레스코 기법은 그림의 수명은 오래 가지만 사용은 쉽지 않다. 우선 회반죽의 석회 성분을 준비하는 시간도 오랜 기간이 걸리고, 건물의 내부 벽이나 천정에 온 몸을 비틀어가며 그려야 하므로 무척 힘든 작업을 계속하게 된다. 평면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입체감이 너무도 뚜렷이 드러나 부조인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어두워지는 로마 거리를 바쁘게 걸으면서 관광을 하다가 트레비분수에 도착한 순간 로마의 평화로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분수의 아름다운 배경은 나폴리 궁전의 벽면을 이용한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수 중앙에는 해마가 끌어 올린 커다란 조개 위의 냅튠 신과 트리톤 신의 대리석 조각들이 있다. 이 분수의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병사에게 한 처녀가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수원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는 전설을 갖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로마로 돌아오길 소원하며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등 뒤로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힘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쓴다고 한다.
건축 당시 5만여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는 원형경기장(콜로세움)의 낮의 모습과는 또 다른 밤 풍경은 간접 조명에 의한 은은한 불빛으로 색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날 남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안타깝지만 로마를 뒤로 하고 북부 이탈리아로 달렸다. 버스로 이동하던 중 이탈리아 특유의 쏘는 듯한 강렬한 태양 빛 아래 펼쳐진 환상의 도시는 발음부터 매력적인 ‘피렌체’였다.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피렌체 역사지구’ 전체가 1982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관광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로마에 이어 역사와 문화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11세기~16세기에 걸친 많은 문화유산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세계 예술의 많은 부분을 이탈리아가 간직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피렌체는 로마와 함께 엄청난 유산을 보유한 도시이다. 피렌체를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버스는 피렌체 시가지로 진입하였다. 먼 곳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던 피렌체를 발로 밟으면서 손으로 만지면서 감상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던 즐거움이었다. 두오모 광장을 중심으로 단테의 생가,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 베키오 다리, 그리고 미켈란젤로 광장까지 모두 걸어서 구경을 하였다. 피렌체에서 밀라노로 가는 길, 페렌체를 떠날 때에는 작렬하는 듯한 강렬한 햇빛이 눈도 뜨기 어렵게 하더니 밀라노가 가까워질수록 북부 이탈리아의 짙은 안개가 우리를 감싸기 시작했다. 안개는 갈수록 짙어지고 날은 어두워오는 바람에 우리는 차라리 괴기스럽다는 느낌마저 가지며 밀라노에 도착했다. 밀라노 성모마리아 성당에서 받은 느낌은 매우 독특하였다. 안개에 뒤덮인 높이 108m의 성당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환상인지 헷갈리게 했다. 성당의 맨 꼭대기에는 황금의 성모 마리아가 강신하는 모습의 조각이 걸려 있고 그 어마어마한 성당의 외벽 전부에는 송곳 하나 꽂을 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귀한 조각들이 가득 새겨져 있었다. 500년 동안 지어 와서 지난 1964년에 완공한 최신 건물이란다.
폼페이 벽화 등 옛 유적을 본 것도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2,500여 년 전 문물을 통째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은데 이러한 유적이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것 자체 또한 신비롭지 않은가? 그 당시 호화로웠던 문화시설, 마차 속도를 조절하던 둔덕 겸 횡단보도로 쓰인 닳아빠진 돌, 길고 뾰족한 돌을 수없이 박아 길을 만든 넓디넓은 광장 등이 기억에 생생하다.
이렇게 짧지만 인상적이었던 이탈리아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도시‘라는 명칭에 걸맞게 수천 년의 역사가 층층이 쌓여있는 로마, 또한 환상의 도시 나폴리와 소렌토, 멀미가 날 정도로 쾌속으로 달려 간 카프리 섬의 풍경, 꽃의 도시 피렌체, 그리고 대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밀라노에서의 체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문화, 문명적 역량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는 식성이지만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란 놈은 덜 익은 국수처럼 맛이 없었고, 주식으로 먹는 빵도 돌을 씹는 것 같아 일행 모두는 한국 전통음식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랐다. 차라리 중국 음식이 서양식보다는 나았다.
스위스에서 알프스 융프라우를 올라가면서 인간의 발길 닿지 않은 만년설의 장엄함, 자연에 길들여 사는 인간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가 있다. 이곳은 한국인의 발길이 잦아 몇 안 되는 우리 말 통역이 방송되는 곳이란다. 기온이 냉랭하여 꼭대기까지 다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겠다. 스위스에서 교실 길이만큼 긴 이상한 나팔(?) 등의 연주와 요들송을 들으면서 함께한 저녁 파티, 유난히 맑은 하늘 총총한 별들은 스위스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디종을 거쳐 파리로 이어졌다. 그 유명한 몽마르트 언덕과 샹젤리제의 낭만, 그리고 세계 민주화 운동의 본산이라 할 콩코드 광장에서의 감동, 신도시 라데팡스가 보여준 미래형 도시의 광경은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과 방식을 배울 수 있게 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루벤스, 고야, 다비드, 앵그르 등 르네상스 이후 거장들의 실물 작품들을 감상하고 내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큰 그림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모나리자’ 등 진기한 몇몇 작품 앞에서는 사진촬영마저 금지되어 있었다.
이곳 유럽에서 가장 마음을 고달프게 했던 것은 물 부족 문제. 우리는 평소 우리나라에서 실감하지 못했던 숭늉, 생수가 이렇게도 아쉬운 필수품인줄 모르고 살았다. 이런 나라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돈을 지불하고 사 먹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물을 아껴 써야겠다.
마지막 여행지 영국으로 향하며 우리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 런던과 벨기에 브뤼셀 구간을 시속 300km로 해저 터널을 통해 약 세 시간 만에 연결하는 초고속 열차, 유로스타를 이용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고 큰 박물관과 공원들은 영국의 풍요로움과 여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또 시민의 자유정신과 그것을 용인하는 관료들의 조화가 부러웠다. 박물관 출입에 입장료가 없는 것이 신기했는데 박물관 안에는 관광기념품 가게가 곳곳에 있어 가족끼리 함께 온 관광객들이 호기심에 찬 눈으로 물건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박을 나서면 사람이 정말로 우선인 차도엔 신호등에 관계없이 길 건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이라 손을 들고 여럿이 건널 때에는 빨간 불이든 파란 불이든 아무도 짜증내지 않고 자동차가 양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의 운전석은 당연히 왼쪽에 있다. 그런데 이곳은 오른쪽이 운전석이다. 옛날 마차를 몰던 습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내를 누비는 2층 버스도 새삼스럽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레이하운드’라는 2층 버스가 있었다.
런던에서 대영박물관, 자연사박물관을 둘러 본 후 우리 일행은 서둘러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히드로(Heathrow) 공항으로 이동했다. 히드로 공항은 영국에서 제일 큰 공항이며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규모의 공항이라고 했다.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 수속을 끝내고 21:00시 런던 출발 아시아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연수 일정이 빡빡하여 피곤했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연수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고대 유물과 선진 문물에 대한 경이 때문일 것이다.(끝)
2002년 모범공무원표창 받은 덕분에 연말에 중학교사 35명, 고교교사 35명에 선발되어 10박11일간 외국연수팀에 참가했었습니다. 19~20시간 수업하며 교무부장 맡아 바쁠 때였지요.
2003년 수필 '수'字도 모르던 때에 국어과 이미옥 선생님 부탁을 받고 50여 쪽의 '연수보고서'를 교과서 삼아 저의 느낌과 생각을 집어 넣어 번개 같이 적어봤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기간제 교사로 복직한, 박사학위까지 소지한 그 선생님께서 면밀히 편집해 주셔서 제때에 인쇄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군요. 그때 교무업무를 도와주신 고마운 선생님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카톨릭'을 '가톨릭'으로, 띄어쓰기가 달라진 도시명을 고친 것 외에는 그 책에 실린 문장 그대로 옮겼으니 표현이 서툴러도 양해 바랍니다.
출처: ‘지산’ 창간호, 지산중학교, (인쇄)영광사, (발행인)도인기, (지도교사)한미옥, 2004.

첫댓글 돈 안들고 여행 잘 하셨네요. 바티칸은 이탈리아 가 아니고 도시국가랍니다. 도시국가 바티칸 말고 또 한 국가가 이탈리아 안에 있어요. 산마리노
본문에 '가장 작은 독립국가로 잘 알려진'이라 돼있음. 20여년 전 직접 본 것만 적었음.
@이장희 이탈리아가 돈 많이 벌었을거라는 것을 보면서
바티칸이 돈을 많이 벌었을테지요
@장수영 지당한 말씀. 다만 바티칸은 이탈리아를 갔기 때문에 봤고, 이탈리아에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많은 유적들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하더군요.
그리고 촌놈이 24년 전 처음 바쁘게 70명 중 1인의 눈으로 본 광경...
덕분에 유럽여행 잘 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영국, 프랑스보다 후진국이었으니 호랑이 담배 피던 때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