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문화거리에서...
***2019년 6월 30일 일요일 맑음?***
지기들과 범일동 골목길(웹툰, 이중섭 거리/ 누나, 친구의 길)~좌천동 매축지마을, 자성대공원(?) 탐방...!
걱정했던 장마비가 남쪽으로 내려간(?) 하늘엔 흰구름이 두둥실.....
미끄럼을 탈세라 조심조심(?)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빈(?) 우리네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ㅎㅎ
웹툰 이바구길 - 이중섭 문화 거리 - 누나의 길 - 범일동 구름다리(친구의 길)는 얼른...!,
좌천동 매축지 마을 - 부산진지성(자성대)은 느긋하게...!,
그리고 점심(목촌 돼지국밥 범일점)은 맛있게...!! ㅋㅋㅋ
"친구야, 니들이 있어 참 좋다. 7월 셋째 일요일에는 삼랑진으로 '낙동강 레일바이크' 타러 가자!!"
*자성대(역사 공부?): 자성대의 유래는 부산진성을 본성 또는 모성(母城)이라는데 대해 자성대의 성을 지성 또는 자성(子城)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또 정상에 자성을 만들어 장대(將臺)로 삼았다고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부산포에는 내성과 외성이 있었는데, 내성(內城)인 본성(本城)은 현재 정공단이 있는 일대를 중심으로 뒷산인 증산(甑山)을 둘러싸고 있던 성이고, 자성대는 그 외성(外城)으로 쌓은 것인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부산에 주둔하면서 부산성을 헐고 왜성(倭城)으로 다시 쌓아 왜군의 지휘소로 이용되었다. 왜군을 몰아낸 뒤 명나라 만세덕 휘하 군대가 머물러 만공대라고도 했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성과 사대문을 쌓고 관아를 고쳐 부산진첨사영(釜山鎭僉使營)으로, 좌도수군첨절제사의 숙소로 쓰였다. 동서의 산을 따라 성벽으로 성곽을 두르고 바닷물을 끌여들여 참호를 20 미터 너비로 만들어 배가 바로 성벽에 닿도록 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시가지 정비라는 명목으로 성을 철거하고 자성대 일대 해면은 매축되어 옛모습이 없어졌다.
1974년~1975년 부산시에서 정화 복원공사를 하여 동문, 서문, 장대를 신축하여 동문을 건춘문(建春門), 원래는 진동문(進東門), 서문을 금루관(金壘關), 자성대 정상부에 장대는 진남대(鎭南臺)라고 각각 이름 붙이고 편액을 달았다.
조선시대에는 성 안에 객사, 동헌 등 많은 관공서와 창고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귀화한 명나라장군 천만리(千萬里)의 후손이 세운 천장군기념비와 동쪽 산 중턱에는 남해안 일대를 노략질한 왜구를 소탕한 최영장군 비각이 보존되어 있다.
*영가대: 광해군 때 경상도 순찰사 권반이 부산진성 근처 해안가에 선착장을 만들고 그 위에 나무를 심고 정자를 만들었는데,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였던 오윤겸(吳允謙)이 이 정자에서 일본으로 출발한 다음부터 통신사행은 이곳에서 해신제를 올리고 일본으로 갔다. 1624년(인조 2) 선위사 이민구(李敏求)가 일본 사절을 접대하기 위해 부산에 파견되었다가 이 정자를 보고 권반의 고향 안동의 옛 이름인 영가(永嘉)를 따서 ‘영가대’(永嘉臺)라고 이름지었다. 원래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 서쪽 경부선 철로변에 있었던 영가대는 1905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철거되어 일본상인 오이카와(及川民次郞)의 별장인 능풍장으로 옮겨졌다가 사라졌는데, 2000년 부산광역시의 역사유적지 표석 설치계획에 따라 동구 좌천동 지하철역 부근의 도로공원에 “부산포왜관·영가대터” 표석을 세웠고, 2003년 동구청에서 지금의 위치(자성대 동문 옆)에 복원했다. - 위키백과에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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