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선물로 받는 믿음
마태복음 12:41~42
찬송가 323장(부름받아 나선 이 몸)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은 구약 시대에 은혜를 입은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성읍 사람들이요 또 하나는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과 같이 먼 곳에서 올라온 남방 여왕 곧 스바 여왕입니다. 이 두 사람이 장차 심판 날에 예수님 당시의 완악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선민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말씀을 들었으나 회개하지 아니하였으며, 성전 가장 가까이 살고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가까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으나 들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망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듯 구약 시대에도 이방인들 중에서도 예외적으로 은혜를 입어 구원의 반열에 들어온 소개하고 있으며 반대로 도리어 완악한 마음으로 스스로 패망을 자초한 선민 이스라엘의 예를 소개함으로써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것이 실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과 이적을 이방 백성들 가운데도 분명히 드러내보여준 적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왕 바로와 애굽 백성들 앞에서 수많은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열 번이나 되는 엄청난 재앙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통하여 이루어짐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 신이요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온갖 잡신과 우상과 주술들이 헛된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도 애굽 왕 바로와 더불어 애굽 사람들은 끝내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잡신 숭배, 우상 숭배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또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온 후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변의 잡족들에게 친히 크신 권능을 보여준 적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이스라엘 군대를 쳐서 대승을 거두고 이스라엘이 지극히 소중히 여기는 여호와의 법궤를 탈취하여 블레셋 영토로 끌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법궤를 승리의 전리품으로 삼고 자랑하던 그들은 곧장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이는 법궤가 가는 성읍마다 온갖 재앙들이 그 성읍을 덮쳤기 때문입니다. 아스돗, 가드, 에그론 이 세 성읍으로 법궤가 옮겨가는 동안 그 가는 곳마다 무서운 독종이 사람들에게 들러붙었고 들판마다 들쥐가 번성하여 모든 농작물들을 다 먹어치웠습니다. 아스글론과 가사 성읍에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재앙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술사들을 동원하여 이러한 재앙의 원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온 까닭인가 아닌가를 알아보려고 회의 끝에 한번도 멍에 매지 않은 젖 나는 두 마리 암소가 끄는 새 수레에 하나님의 법궤를 올려놓고 독종 모양의 금붙이와 들쥐 모양의 금붙이들을 여호와 하나님께 예물로 바쳐 이스라엘 영내로 돌려보자고 했습니다. 만일 새끼를 두고 그들이 아무도 끌지 않는데도 이스라엘로 가게 되면 이 재앙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재앙임을 인정하고 그렇지 않으면 우연히 발생한 재앙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후에 시행했는데 놀랍게도 법궤를 올려놓은 새 수레를 끄는 두 마리 젖 나는 암소가 집에 새끼들을 떼어놓고 울면서 이스라엘 땅인 벧세메스로 곧장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짐승의 모성애의 본성을 거스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그 재앙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 확실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블레셋 사람들은 이와 같이 놀라운 재앙을 내리시고 자기들이 섬기던 다곤 신에게 벌을 내리신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돌아서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 블레셋 사람들 중에 누구도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이 섬기던 우상 잡신 숭배에 그냥 머물러 있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다니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참 신이시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여러 일들이 있었으나 끝내 우상 숭배자로 머물렀으며,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창설자 고레스 왕도 자기를 위하여 이백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예고해놓으신 일들에 대하여 들었으므로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자가 되어야 할 터인데 여전히 제우스 신과 헬리오스 태양신과 기타 잡신들을 섬기는 자로 살다가 그렇게 죽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이적과 표적을 많이 본다 한더라도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자기들 앞에 기적과 이적을 많이 베풀어주고 해도,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자기들 앞에 찾아오셔서 각종 이적과 기적을 베푸시고 놀라운 설득력 있는 말씀으로 가르친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니 절대로 믿음을 갖지 않고 도리어 더 마음이 완악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보면, 이방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을 은혜 입은 자로 소개하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서 요나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과 같이 먼 곳에서 찾아와 그 지혜를 인하여 탄복하며 감동을 받고 돌아간 남방 여인이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누가복음 4장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모시고 대접하였던 시돈 지방 사렙다의 과부를 한 예로 들고 또한 엘리사 선지자에게 문두영을 고침받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을 예로 들고 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었으나 기이하게도 여호와 하나님을 참 신으로 믿고 구원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이적과 표적과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접한다 해도 다 구원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8 말씀은 참으로 진리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아 구원을 받은 자 된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의 이해력이나 우리 자신의 결단과 의지로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은혜로 주어진 믿음을 받았으니 이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소중히 간직하고 나 같은 죄인에게 이러한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기억하면서 더욱 더 온갖 충성을 다하는 남은 생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아무리 많은 이적과 기적을 베풀더라도 완악해지는 이들을 볼 때에 이상히 여기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우리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전적인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