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으로 싸워 상대를 이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원시시대에 자연발생적으로 발달한 씨름은 요즘도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몽골에서는 13세기 칭기즈칸 시대에 국가행사로 열린 ‘브흐’라는 씨름이 남아있다. 러시아인들은 ‘삼보’라는 씨름경기를 만들었는데, 삼보는 러시아말로 ‘무기없는 자기방어’를 뜻한다. 터키 고유의 씨름 ‘카라쿠자크’는 ‘강한 근육을 가진 자가 이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원전 776년에 시작된 고대올림픽 경기종목에는 레슬링과 복싱이 빠지지 않았다. 1896년에 아테네에서 시작된 근대올림픽에도 복싱과 레슬링은 인기종목이었다. 둘 다 상대를 꺾어야 승부가 나는 경기다. 그래서 스톡홀름 올림픽에선 무려 11시간이나 레슬링 경기를 한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상이 발달하면서 경기장의 격투기는 영화나 게임의 중요한 오락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경기장에서보다 훨씬 강도높은 폭력을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듦으로써 ‘폭력의 미학(美學)’이란 누아르 장르까지 탄생시켰다. 90년대 말 국내에서도 개봉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이란 영화는 “사람을 때려봐야 진정한 자기를 알 수 있다”는 과대망상적인 인간 우화(寓話)를 그리고 있다. 때리고 맞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두 사람의 주인공은 추종자를 불려가면서 ‘파이트 클럽’이란 비밀조직을 만들어 폭력으로 세상을 정화하겠다고 날뛴다.
요즘 우리 10대들에게도 ‘파이터 클럽’이 번지고 있다는 보도다. 한쪽이 쓰러지거나 항복할 때까지 1대1로 무제한 혈투를 벌이는 게 게임의 법칙이라니 결코 놀이라고 보기 어렵다. 싸움장면을 동영상으로 보여주는 인터넷 카페만 30여개에 초등학생까지 실전에 나서고 서열도 정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종격투기’를 보며 식사하는 곳까지 생겼다니 요지경 세상이다.
이런 싸움패의 교본은 영화와 TV, 게임이다. 80년대 중반에 출현한 2인용 격투게임은 어린이들의 필수코스가 된 지 오래다. ‘친구’ 등의 조폭영화가 인기를 끌더니, 쌍절곤을 휘두르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요즘 장안의 화제다.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TV드라마는 폭력의 온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익명성에 사회분위기까지 살벌해지자 사이버상의 폭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교생에게 용돈주며 ‘조폭수업’ 시키고, ‘폭력만이 구원’이라며 피터지게 싸우는 나라에도 미래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