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를 죽인 ‘종이 한 장’/ 김새별
나는 살면서 세 번의 사기를 당했다.
믿었던 이에게 크게 당해 보기도 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속아 봤다.
뉴스에서 나오는 사기꾼들의 이야기를 보면 어떻게 저런 걸 당하나 싶겠지만, 막상 당하는 입장에서는 잘 모른다.
지나고 나서 보니 사기당한 거였다.
원망만큼 자책이 든다. 그런 게 사기다.
그런 걸 노리는 게 사기꾼이다.
내가 당한 사건을 조사했던 형사가 말해주더라.
인간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남자.
여자.
사기꾼.
막상 사기꾼을 잡아서 심문하다 보면 다른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부모이기도 했단다.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착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단다.
이런 사람들이 왜 그런 죄를 지었을까,
안타까운 생각이 들다가도 형사인 자신도 이들에게 사기를 당하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상습적인 사기꾼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사기 치는 것에 일말에 죄책감도 전혀 없다는 것.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도 그것을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솜방망이 처벌은 그들에게 경각심을 주지 못한다.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피해자들만의 몫이다.
사기꾼들은 피해자들의 그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번 사기친 사람은 또 같은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세 번의 사기를 당했지만 나 역시도 되돌려받지 못했다.
가해자들도 처벌받지 않았다.
내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번에 간 현장의 고인도 사기사건의 피해자였다.
고인은 40대 남성.
한때 의류 쇼핑몰을 운영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었다.
가게를 접고선 오토바이로 배달 일에 나섰다.
현장은 도심 외곽의 빌라였다.
20평 남짓한 지하 방.
볕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공간에 처분하지 못한 새옷들이 방 한가득 쌓여 있었다.
집주인의 말로는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그곳에서 4년째 살았다.
힘든 사정인 줄 알았지만 월세 한 번을 밀리지 않았고 인사성이 바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4년을 살다가 최근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그 이후 세입자는 목숨을 끊었다.
집주인도 충격이었다.
‘왜 자살했을까’.
그 정도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주인은 부동산 사람과 만나기로 했다며 자리를 떴다.
이제 내겐 타인이 의뢰한 고인의 ‘유품’이 남았다.
고인의 유품에는 독촉장과 같은 서류는 없었다.
모든 사람은 재정적으로 힘들어지면 먹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들부터 연체되기 시작한다.
카드값, 각종 세금, 집세와 같은 것들 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지만 자신이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본인이 먹고 마시는 것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해가는 일이다.
그런데 이 지하방 고인의 유품에선 뭔가 채무적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이성에 대한 흔적도 없었다.
무엇이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그러다 몇 가지 서류가 끼워져 있는 스프링 노트가 눈에 띄었다.
펼쳐 보니 새로 맺은 부동산 계약서였다.
주소를 보니 지하방이 아닌 다른 곳 빌라 2층이었다.
한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깜깜한 이곳과는 달랐겠지.
볕이 잘 드는 창을 가진 2층이었을까.
그가 숨진 이곳보다 비쌌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 지하에 살다가,
4000만원에 40짜리 2층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목돈을 모아 조금이라도 월세를 아낀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엿보이는 계약서였다.
그래서 집주인에게도 이사간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계약까지 끝내놓고 왜 그랬을까.
부동산과 만나고 온 집주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의문이 풀렸다.
“요즘 부동산 사기가 극성이라더니.
착한 사람인데 안됐어. 어쩌다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중계약 사기를 당했대요.”
“그게 뭔가요?”
고인이 빌라 2층으로 옮기는 계약을 중개한 부동산 직원이 중간에서 돈을 가로챈 거였다.
집주인이 반전세로 내놓은 물건이었는데, 부동산 직원이 전세금액을 확 올려놓고선 고인에게서 목돈을 받은 뒤 사라졌다.
“원래 집주인이 내놓은 건 2000만원에 80만원짜리 반전세였다는데, 부동산 쪽 직원이 보증금을 4000만원으로 올리고 월세를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입주 전에 인테리어 공사비가 필요하다며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네요.”
요새 누가 그렇게 큰돈을 현금으로 주고받을까.
하지만 사기란 건 남들은 의심해도 당하는 본인은 그러려니 하는 법이다. 그 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별다른 의심을 안 했던 모양이다. 더구나 집주인과 직접 만나지도 않고 동네에서 좀 알고 지냈던 부동산 직원과 대신 계약했는데 그가 그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여기보다 평수가 좀 작긴 해도 2층이라고 좋아했는데, 무슨 일인지….”
집주인이 안타까워했다.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던 팬데믹 시절도 꿋꿋히 버텨냈던 사람이었다.
40대 중반의 아직 젊은 사람이었다.
하던 사업이 망했지만 희망을 잃지 않았고 쉬지 않았다.
그렇게 모으고 모았던 돈이었다.
인생의 한칸 한칸을 올라가기 위한 그 간절함을 노린 악독한 범죄였다.
티끌을 모아서 마련한 4000만원을 들고 날랐다.
당한 사람의 인생까지 ‘티끌’로 되돌아 갔다.
그러나 늘 그렇듯 고통은 피해자의 몫이었다.
죽음까지 말이다.
이사 나갈 날짜가 정해졌나 싶어서 내려와 봤더니 집주인에게 알듯 말듯 사기를 당했다며 횡설수설했다고 한다.
다른 세입자를 구한 것도 아니어서 안쓰러운 마음에 며칠 그냥 두었단다.
“마음을 좀 추스를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놔뒀는데, 내려와서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고 전화도 안 받고. 그럴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이상해서 경찰에 신고한 거예요.”
집주인이 다녀간 다음 날 벌어진 일이었다.
더 이상 버텨낼 힘이 없었던 것일까.
고인을 힘들게 한 것은 잃은 돈이었을까,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었을까.
돈과 함께 의지도 사라진 것일까.
알게 모르게 쌓여오던 불운은 마침내 어느 한 사람으로 인해 사방을 꽉 틀어막았다.
고인은 그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대신 삶을 포기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많은 사기 행각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사기꾼들에게 꼭 말하고 싶다.
"오늘 배신하는 자, 내일은 배신당할 것이다."
(김새별/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