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희토류 개발을 위한 '광물 협정'을 놓고 벌이는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자존심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광물 협정'은 3년을 끈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방안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향해 '독재자', '선거를 치르지 않은 대통령', '가진 카드가 없는 협상자' 등 전방위로 가하는 비판도 위협적이다. 오죽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 평화 보장, 나토 가입을 전제로 사임하겠다는 배수진을 쳤을까 싶다.
그러나 지금까지 흐름은 서로 팽팽한 평행선을 긋고 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rbc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일 전쟁 발발 3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게 100%의 보너스(이자)를 원한다"며 "1달러를 원조하고 2달러를 달라고 한다"고 미국 측 광물 협정 초안을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는 앞으로 10세대에 걸쳐 (협정 서명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이유로 "협정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국이 제시한 광물 거래는 5,000억 달러 규모에 이른다는 그간의 언론 보도도 확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그는 이날 미국 측의 요구가 기본적으로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은 (무상) 보조금이었다. 보조금을 부채로 인정할 수 없다. 값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논의해야 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수천억 달러가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지원 받은 1천억 달러다. 우리는 전쟁 비용으로 총 3천200억 달러를 썼는데, 우리(우크라이나)가 1천200억 달러, 유럽 동맹국들이 1천억 달러, 미국이 1천억 달러를 댔다. 500억 달러도 아니고, 300억 달러도 아니지만, 500억 달러도, 100억 달러도 돌려줄 준비가 안됐다. 보조금을 부채로 인정하지 않겠다."
그의 이같은 항변은 "광물자원 협정 체결은 가까운 미래의 문제"(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 "젤렌스키 대통령이 곧 협정을 승인할 것"(마이크 왈츠 미국 국가 안보 보좌관)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오히려 '우크라이나는 광물 거래의 일환으로 5천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미국의 구상에 반대했다고 보도한 미 블룸버그 통신의 기사와 더 가깝다. 미 뉴욕 타임스(NYT)는 "미국이 당초 제안보다 더 강력한 협정안(5천억 달러의 기금 조성)에 우크라이나 측이 서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키예프가 가까운 시일안에 서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희토류의 하나인 스칸튬. 미국은 우크라 스칸튬 매장량을 소량으로 보고 있다/사진출처:위키피디아
이처럼 서로 다른 내용이 흘러나오는 것은, 우크라이나 권력층이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언제 또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올지 모른다. 그것 역시 공식 발표가 아니라면, 최종 결론이라기보다는 미-우크라 간의 '밀당'의 한 장면일 것이다. 관심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언제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압박에 버틸 수 있을까다.
◇제 발등을 찍은 젤렌스키 대통령
광물 협정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소위 (러시아에 대한) '승리 플랜'의 일환으로 제기한 것이라, 제 발등을 찍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수백억, 수천억 달러를 지원한 조 바이든 전임 미국 행정부에게는 선의의 표시로 전달됐지만, 우크라이나 지원에 책임이 없는 트럼프 새 정부에서는 한순간에 '거래'로 바뀌었고, 그간의 군사적, 재정적 지원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형태로 변질됐다.
트럼프 측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승리 플랜'을 꼬투리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청구서를 들이민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광물 자원의 실제 소유자, 즉 국가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이후 동유럽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과는 달리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경제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쟁을 계기로 '올리가르히 올가미'를 벗었다. 우크라이나의 핵심 올리가르히들은 전쟁 직전까지 돈과 권력, 언론 등을 장악하고 국가를 쥐고 흔들었다. 푸틴 대통령이 2003년 호도르코프스키 전 유코스 회장을 세금 포탈 혐의로 구속 기소하기 전까지 러시아 올리가르히 전성시대를 생각하면 된다. 정치적으로 무명인사나 다름없던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도 올리가르히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우크라 TV 채널 1+1 소유및 운영/편집자)였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나 지난 3년간의 계엄령과 총동원령 기간에 국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푸틴 대통령식 '국가 자본주의' 시대를 연 것이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전임 대통령들도 '올리가르히의 덫'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는 '유로 마이단'(정권을 전복시킨 2014년 대규모 시위/편집자)에 의해 쫓겨났고, 이어 들어선 페트로 포로셴코는 총선에서 패배해 야당인 '인민전선'(즉, 올리가르히 세력)과 권력을 공유할 수 밖에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이 설립한 당 '인민의 종'을 앞세워 올리가르히 무력화를 시도했으나, 전쟁 직전인 2021년 말 리나트 아흐메토프를 정점으로 한 올리가르히들의 반격에 밀려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등 혼쭐이 났다.
우크라이나 콜로모이스키가 기소돼 재판을 받는 장면/텔레그램 캡처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으로 그를 살려준 것은 전쟁이었다고 한다. 정장을 벗어던진 셔츠 차림(젤렌스키 특유의 패션)의 이미지로 우크라이나인들의 대러 항전을 이끌었고, 대(對)국민 지지율을 회복한 뒤 계엄령 하에서 전권을 쥔 국가안보국방회의(우리의 국가안보실)를 이용해 올리가르히를 구속하고, 그의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켰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권한에 대해 "모든 사업체의 운명, 가장 규모가 큰 사업체조차도 그의 손에 달려 있다"며 "올리가르히의 자산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국가안보국방회의의 제재를 통해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누구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산의 배분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은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는 '독재자'로 비쳐지고, 나라를 거덜낼(?) 수도 있는 미-우크라 광물 협정도 그가 마음만 먹고 서명하면 끝난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기존의 올리가르히 체제를 청산한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광물 자원이 기본적으로 사유 재산이라고 우길 수 없는 처지로 몰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우크라 광물협정의 내용은
미국이 제안한 광물 협정의 정확한 내용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최신 버전은 미 NYT가 보도한 내용이다. NYT는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키예프(키이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했다가 퇴짜를 맞은) 초안보다 훨씬 더 강한 제안이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측에 제시됐다"며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 광물 자원의 개발 수익 뿐만아니라 석유와 가스 개발및 판매 대금, 항만과 같은 사회 인프라 이용료 등 거의 모든 국가 수익의 절반(50%)을 매칭펀드(공동자금 출자) 형식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특별 기금'이 5천억 달러에 이를 때까지 넣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겉으로는 매칭펀드이지만, 미국 측은 실제로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 이미 키예프에 제공한 군사 지원금에서 까기로 했다고 한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미국은 이 기금을 우크라이나 복구사업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그는 이 기금을 미국이 운영하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고질적인 부패 구조를 들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원과 인프라 및 기타 자산에서 창출한 수익을 국가 재건및 개발 사업을 담당하는 기금에 투자하는 것이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미래 투자에 대한 경제적 관리 권한을 갖게 된다"며 "이같은 틀은 건전한 민간 투자를 유치하고 우크라이나의 전후 성장을 담보할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성, 지배 구조를 마련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합작 투자의 개념으로 보면 미국측 논리가 아주 일방적이지는 않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만남/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문제는 광물 자원의 개발 목표가 서로 다르다는 데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광물 자원으로 우크라이나의 향후 안보를 보장받자는 것이고, 미국은 이미 제공한 대(對)우크라 지원금에 대한 대가(청구서)로 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 3주년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에 "우크라이나 하늘을 100% 보호해 달라"며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 30기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광물 자원과 패트리어트 방공 미사일과 바꾸자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는 또 미-우크라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광물 협정을 체결하자고 요구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20일 키예프에 온 키스 켈로그 미 우크라이나 특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협정을 체결할 것을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구 조건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미-러 장관급 회담에 참석한 스티븐 위트코프 중동 특사 등 미국 측에서 계속 '조만간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는 주장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압박의 수위를 최대한 높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운영하는 인공위성 통신망 '스타링크'의 제공 중단설이 대표적이다. 전장에서 '스타링크'가 끊어지면 러시아를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우크리아나 드론들은 '끈 떨어진' 연이 되고 만다. 통제력을 잃은 드론들이 어디에서 떨어질 지 아무도 모른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선택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긋는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쉬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에게는 아직 하나의 카드가 남아 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이다. 전쟁 발발 3주년을 맞아 영국과 EU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추가로 단행했다. 명백히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미-러-우크라 평화협상과는 다른 길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스타머 영국 총리, 독일 총선에서 승리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CDU(기독민주당) 대표 등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워싱턴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 설득이 나설 것이다.
하지만 미-우크라 간에 광물 거래가 실패하면 양국 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지원이 끊어진 상태에서 러시아와 전쟁을 계속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그래서 나오는 시나리오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남미(南美)식 친미 독재국가화를 용인한다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곧바로 광물협정에 서명할 것이라는 설이다. 그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차기'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가당키나 한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