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철도에 실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겠습니다. 한 예로 수도권의 신분당선을 타보면, 통행방향이 자동차와 달리 좌측통행입니다.
반면 서울지하철2호선은 우측통행입니다. 같은 철도인데 왜 다를까요? 또 서로 달라도 괜찮을까요?
그 설명을 하려면 먼저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를 살펴야 합니다. 철도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보다 먼저 도입된 최초의 근대교통수단이지요.
1899년-고종황제 3년- 9월 18일 경인선 개통이 시작인데요. 일본의 영향을 받았죠. 일본은 영국에서 철도를 도입했고요.
영국과 일본 모두 좌측통행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우리 철도가 좌측통행 방식으로 굳어진 것이죠.
구체적으로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구간-과거 철도청 구간으로 국유철도, 국철이라고도 부름-은 다 좌측통행입니다.
KTX, 새마을호처럼 장거리를 운행하는 지역간 철도와 신분당선 같은 광역전철이 이에 해당하죠. 다만 KTX는 전용고속선로에서는 상황에 따라 통행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 철도가 들어온 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19세기 외세 침탈의 아픈 역사가 녹아있죠.
원래 경인선 철도 부설권은 미국인 기업가 모스(J.R. Morse)가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설자금 조달이 어려웠죠.
그러자 군침을 흘리고 있던 일본이 적극 협상해 1898년 공정의 절반이 진행된 상태에서 권리를 양도받습니다. 그리고 인천~노량진 구간을 임시 개통했던 것이죠. 물론 대한제국 정부의 허락 절차는 없었죠.
반면 경부선은 처음부터 일본이 부설권을 손에 쥡니다. 1898년 9월 일본과 대한제국이 ‘경부철도합동조약’을 체결한 것이죠.
철도용지를 대한제국이 무상 제공하고 완공 후 일본이 15년 간 운영하다가 대한제국이 되사지 못하면 자동적으로 10년 씩 연장하도록 되어 있었으니까 불평등한 약탈조약이었지요.
그나마 러일전쟁 후 이 조약마저 휴지조각이 됩니다. 이미 완공해 운영 중이던 경부선을 국유화해 한국통감부-조선 총독부 전신-에 귀속시켜 버리거든요.
경의선은 건설과정이 더 복잡합니다. 철도 부설권을 프랑스의 종합설비회사인 피브 릴르(Fives-Lille)사가 갖고 있었는데요.
두 세 차례 노선답사만 했을 뿐 돈이 부족해 계약기간 3년이 지나도 착공하지 못합니다. 할 수 없이 프랑스가 일본에 경의선 철도부설권을 팔겠다고 제안하죠.
그러나 일본이 조건이 불리하다며 거절합니다. 사실 간신히 손에 넣은 경부선도 자금조달에 애를 먹고 있던 터라 여력이 없었던 것이죠.
결국 약정에 따라 대한제국이 부설권을 환수하지요. 그러자 전부터 자력으로 철도 건설을 추진하고 있던 박기종이 1899년 ‘대한철도회사’를 설립해 부설권을 얻습니다.
마침 그때 국내에서는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이권을 외국인에게 넘기지 말자는 이권수호운동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개 민간인이 자금을 조달해 철도를 건설하기에는 국내의 자본축적이 열악했었잖아요?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자 대한제국 정부가 1900년 9월 궁내부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직접 건설에 나섭니다. 각국의 외교사절을 초청해 기공식까지 열죠.
외세에 시달리던 대한제국이 모처럼 의욕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선 것이죠.
그러나 경의선은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를 세로로 연결해 대륙과 바다를 잇는 혈맥이잖아요? 대륙진출의 야심을 불태우던 일본이 군사적 경제적으로 놓칠 수 없는 핵심전략 인프라죠.
돈으로 황실을 회유하다가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사상 필요하다며 50년간의 임대조약을 맺고 경의선 부설권을 강탈합니다. 그리고 불과 733일 만의 강행군 끝에 1906년 3월 용산~신의주 전 구간을 개통하죠.
그런데 약 100년 후인 1984년 완전 개통된 서울지하철 2호선은 왜 우측통행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서울시가 지하철을 건설할 때 우측통행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죠. 광복 이후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연스레 우측통행방식이 적용된 것이죠. 지역간 철도와 연결 운행할 필요가 없던 점도 고려됐고요.
이에 따라 부산, 대구, 광주 등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철도도 모두 우측통행방식이 된 것이죠. 물론 용인선과 같은 경전철도 이에 포함되죠.
이런 사정은 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철도를 처음 도입할 때 어떤 나라의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운행방식이 다른 것이죠.
그래서 영국․일본․중국․인디아․프랑스는 좌측통행이지만, 미국․독일․러시아․스페인은 우측통행입니다.
이제 지금까지 내용을 중간 정리해보죠.
코레일 구간을 다니는 지역간 철도와 광역전철은 좌측통행입니다. 도시 내 경량전철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도시철도는 우측통행이고요.
그런데 예외가 있습니다.
첫째는 1974년 8월 15일 우리나라 지하철시대를 열었던 서울지하철 1호선. 도시철도 가운데 유일하게 좌측통행이죠.
경인선․경부선과 연결 운행해야하기 때문에 그에 맞춰 좌측통행 방식으로 건설된 것이죠.
둘째는 서울지하철 4호선입니다. 4호선도 1985년 상계~사당 구간을 처음 개통할 때는 우측통행이었죠. 그러다가 1994년 광역교통대책으로 철도청이 운영하던 안산선과 직결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선 통행방향이 서로 다를 것 아닙니까? 또 전기 공급방식이 철도청은 교류, 서울지하철은 직류인데다 신호체계도 달랐거든요. 철도청과 서울시가 서로 자신들의 방식을 고수하며 한 치의 양보 없이 다툰 것이죠.
당시 건설교통부가 중재를 했으나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았죠. 결국 고민 끝에 특이한 해결책이 나옵니다. 이른바 ‘꽈배기 굴’인데요.
4호선 남태령역과 선바위역 사이에 상․하행선 선로가 마주치지 않고 위 아래로 통과하는 입체 ‘X’자형 교차 선로를 만든 것이죠.
이 구간을 통과할 때는 전기가 공급방식이 바뀌기 때문에 잠시 끊긴다고 해서 사구간이라고도 부르는데요.
현재 이 사구간에서 서울 선바위 방면으로 가는 차량은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과천 남태령 방면으로 가는 열차는 우측통행에서 좌측통행으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4호선은 우측+좌측통행인 것이죠.
법률상 열차의 통행방식은 철도법과 도시철도법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국유철도는 좌측통행, 도시철도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측통행을 하도록 되어있죠.
그런데 철도는 연결․직결되어야 효과적이잖아요? 열차 통행방식이 운영주체나 노선에 따라 다르다면 연결․직결이 어렵고, 이용자 불편과 안전문제가 발생할 수 있죠.
그렇다고 4호선의 통행방식을 다시 통일시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겁니다. 여러 시설과 신호시스템 등도 함께 뜯어 고쳐야 해서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철도교통은 저탄소 고효율의 장점과 유라시아대륙철도와의 연결을 고려할 때 앞으로 계속 뻗어갈 미래교통입니다.
작년에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도 이런 점을 고려해 전국 단위와 광역대도시의 철도망을 대폭 확충한다고 합니다.
투자규모가 2030년까지 92조원에 이르는데요. 얼핏 보더라도 철도망이 간선도로망 수준으로 촘촘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4호선과 비슷한 혼선이 나타나지 않도록 사전에 대비하고, 철도운영기술을 첨단화시켜 명품으로 만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 관련 자료나 보다 상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e10IqBS3WmM
철도에 숨은 역사, 왜 지하철은 우측통행이고 기차는 좌측통행일까?같은 철도이면서도 기차와 지하철의 통행방향이 서로 반대인 이유와 상황을 알아봅니다.(생활 속 역사1, 166회 영상) 참고자료바퀴와 날개, 강갑생, 팜파스, 2020.11.20.한국철도건설백년사(상), 한국철도시설공단, 2005.12.30.책 구매 링크 바퀴와 날개 https://...www.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