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민사학이 죽어야 한국사가 산다
최근 이주한이 지은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읽었다. 평소에 생각해온 것과 같은 내용이기에 많은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식민사학이 죽어야 한국사가 산다>는 글을 써보았다.
나는 1945년생이다. 70고개를 바라보고 있다. 사실 내가 태어난 1945년 8.15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지배한 친일 식민사학자들은 한국인의 탈을 쓴 일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식민사관의 폐해는 한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하고 폄훼하여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열등감을 안겨주었다는 점에 있다. 주체적 국민에게 노예의식을 심어주었다는 죄과가 크다. 광복 68년이 되도록 한국사는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가 창작한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학을 만들어낸 자들과 그 제자들이 대를 이어 한국 사학계의 주류로 군림하면서 역사교육을 주물러왔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 같이 수백억 원의 혈세가 들어가는 국가기관이 앞장서 일제 식민사관을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 역사교육의 현실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는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들에게 숙청당하는, 참으로 주객이 전도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정치를 편하게 하려고 친일파를 끌어안은 이승만정권이 반민특위를 강제해산함으로써 친일파를 처단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세우려는 애국적, 역사적 시도를 물거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 역사학계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 수사관보(修史官補)를 지낸 일제의 앞잡이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자리 잡고 일제 황국 식민사관을 한국사의 정설로 둔갑시켰다.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고 민족정기를 말살하는 식민사관은 이병도의 제자 김철준, 한우근, 김원룡, 이기백 등으로 연결되며 오늘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그렇게 친일 황국 식민사학은 실증사학이란 허울 좋은 이름을 내걸고 민족사학을 깔아 뭉개왔던 것이다.
이병도는 1896년에 태어나 1919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와세다대학교에서 이른바 일선동화(日鮮同化)를 주창한 요시다 도고(吉田東伍)에게 영향을 받았고, 황국사관의 권위자인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에게 역사를 배웠다.
1925년에는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사관을 만든 주역인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수사관보가 되어 식민사관으로 일관한 <조선사> 총서 편찬에 적극 참여했다. 조선사편수회에서는 이마니시 외에 식민사학자인 이나바 이와키치(蹈葉岩吉), 김원룡의 스승인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등과 일했다. 이들 대부분은 황국사관의 최고봉으로 꼽히던 동경제국대학교의 시라토리 구라기치(白鳥庫吉)의 지도를 받있다.
또 이병도는 1934년에는 식민사관 전파를 위해 진단학회를 만들어 대표가 되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경성제국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수많은 식민사학자들을 양성하고 사학계를 좌지우지했다. 이병도는 그 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박물관장, 대학원장, 문교부장관, 학술원장, 국사편찬위원 등을 거치면서 사학계 최고 원로로 행세했다.
뿐만 아니라 1970년 박정희정권 때는 국토통일원 고문, 1980년 전두환정권 때는 국정자문위원을 지냈다. 이런 친일 식민사학자가 대한민국 학술원 원장도 하고 문교부장관도 했으니 지금 우리 역사와 교육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이병도와 이기백, 김원룡 등은 이제 죽고 없지만 그 제자와 제자의 제자들이 여전히 한국 사학계의 주류로 버티고 서서 식민사학을 고수하고 있으니 우리 역사교육이 큰일이라는 것이다.
이들 식민사학자들이 한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고 폄훼한 주요 골자는 이렇다.
단군조선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다. 중국에서 온 위만이 고조선을 통치하면서 비로소 국가가 되었다.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漢四郡)은 한반도에 있었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요는 한국사는 중국의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1910년에 한국을 점령한 뒤 통치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한국인들이 단군왕검을 국조로 받들고, 고대에 백제가 일본에게 문화를 전해주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사를 왜곡 날조하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한국사 초기에 한반도 북부에는 중국의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고, 남부에는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가 있었다고 날조했다.
특히 이병도는 고대사 편수를 담당하며 단군조선을 부인하는 등 한국사의 난도질에 여념이 없었다.
이병도는 고조선 사회를 미개사회로 규정하고 단군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중국의 식민정권인 한사군의 위치를 만주가 아닌 한반도라고 주장했다.
1984년 진단학회에 실린 대담에서 이병도는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았다.
“혹시 선생님 사관에 대해 식민지 사관 운운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식민지 사관이요? 난 개의치 않지만 나도 따진다면 민족사관입니다. 내 자찬인지는 모르나 내 공로가 커요. 난 오로지 역사가의 양심대로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병도의 민족사관은 친일 식민사학이지 절대로 민족사관이 아니다. 박은식과 단재 신채호와 위당 정인보, 그리고 그들의 맥을 잇는 윤내현과 이덕일 같은 학자들이 정통 민족사학자들이다.
이병도가 열성적으로 활약한 조선사편수회가 <조선사>를 편찬한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일선(日鮮) 합병의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 조선인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식민사학자들은 임나일본부를 주장하기 위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김부식의 날조로 몰아부쳤다. 김원룡 같은 식민사학자는 고고학적 증거가 자꾸 나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도저히 부인만 할 수가 없으니 ‘원삼국시대(原三國時代)'라는 해괴한 개념을 만들어냈다.
어쨌거나 서기 300년대, 4세기까지 한반도에서는 삼국이란 왕국이 성립하지 않았다는 터무니없고 허튼 주장이다.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인 이만열은 식민사관을 이렇게 정리했다.
‘식민사관은 일제가 한국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 합리화하기 위해 고안했다. 일제는 어용사가들을 동원해 그들의 식민정책을 정당화하가 위해 <조선사>를 편찬했다. 기본내용은 한국사의 상한 연대를 삭감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일본보다 더 오래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국사는 고대부터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면서 단군을 부인하고 중국인 기자와 위만에 의해 국가가 성립되었다고 강변했다. 세 번째는 한국사는 줄곧 외세의 지배를 받았고, 네 번째는 한국문화는 외국에서 왔고, 외국 것을 모방했다는 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하여 나치체제의 철저한 청산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본제국주의가 청산되지 못했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패전 70주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일제의 죄악상을 부정하고 온갖 망언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라. 이는 무엇 때문인가. 일본제국주의가 창안한 황국사관, 즉 천황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일본인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매국적 친일 황국 식민사학자들을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군이 없으면 고조선도 없고, 고조선이 없으면 한국사도 없다. 이병도도 죽기 직전에 인정한 단군과 고조선을 그의 제자 노태돈과 손제자 송호정 등은 아직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자기들만 모시고 있으면 뭐라 하지 않겠지만 그 헛된 학설을 계속 주장하고, 다음 세대에게 그런 허황한 식민사관을 심어주고 있으니 상황이 매우 심각한 것이다. 식민사관이 뼛속까지 들고, 영혼까지 병든 것이다.
지난 2007년 고교 국사교과서에 이렇게 실렸다.
‘족장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었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이처럼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한 마디가 교과서에 실리는데 근 6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재삼 강조하지만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한사군은 발해만 연안 요서지방에 있었다. 한 무제가 고조선과의 전쟁이 끝난 뒤에 자신의 장군 순체와 양복을 처형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고조선의 내분 때문에 어부지리로 승리를 했는데, 그나마 얻은 땅은 겨우 고조선의 서부 변경 일부에 불과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고조선이 망한 뒤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은 고조선이 있던 요서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한사군이 평양 부근 대동강 유역이라니 참으로 말도 안 되는 수작이다.
말이 나온 김에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겠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사를 자기네 당나라 변방의 지방정권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있던 나라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거란족의 요나라도, 여진족의 금나라도, 몽골족의 원나라도, 여진족의 청나라의 역사도 모두 중국사가 되고, 징기즈칸도, 누르하치도 모두 중국인으로 둔갑한 것이다.
중국의 역사지도집에는 만리장성의 동단이 황해도 수안으로 되어 있다. 이것도 이병도가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의 탐원공정, 단대공정이란 중국사의 상한을 더 올려잡기 위한 것이다. 중국인들이 그동안 동이족 오랑캐의 역사라고 멸시하던 동이족의 유적, 고조선의 유적이 중국의 은허(殷墟)보다 훨씨 오래 전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중국은 중국사의 기원을 황하문명(黃河文明)이라고 하지 않고 요하문명을 중국사의 시원으로 날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이족도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이제 앞으로는 단군왕검도 저희 조상이라고 우길 것이다. 단군 할아버지까지 중국인의 조상으로 빼앗기면 한국사는 무엇이 남는가.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식민사관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댓글 공감합니다.
절대 공감입니다
식민사관이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고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것이 그져 놀랍습니다
공감합니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이렇게라도 잘못된 것을 공유할수있다는것이 다행입니다.
식민사학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기본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너무 논의를 단순화시킨 글이 아닌가 합니다.
우선, 이병도 이후 한국 사학은 제자리걸음만 했을까요? 아무리 한국 사학계가 선배 학자의 권위를 존중하는 분위기라고 해도 해방 이후 60년간 이병도 학설이 그대로 유지되리라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이병도 이후의 변화는 전혀 보지 않은 채 이병도에만 골몰하는 건 마치 현실의 늑대가 아니라 이미 박물관에 가 있는 박제화된 늑대와 싸우는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다음으로 원삼국시대 개념 논쟁은 주로 고고학자와 사학자간의 논쟁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속칭 '이병도 계열' 이라고 해서 원삼국개념에 동의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사학계 쪽은 원삼국시대라는 개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오늘날의 식민사학자라고 규정한 '송호정' 도 원삼국시대라는 개념을 폐기하고 '시대사 구분에 역사적 실체로 판명난 고조선을 넣어야 한다'(즉, '고조선 시대' 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그럼 송호정은 원삼국시대 개념에 반대했으니 식민사학자는 아니게 되는 건가요? 이런 점들은 논의가 그리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함축한다고 봅니다.
80년대까지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 2010년대에 와서까지 식민사학 논쟁 벌이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식민사학이라는 표현은 일종의 '우물에 독뿌리기' 로서 상대를 악(惡)으로 만들게 되어 논쟁을 학문적 수준이 아니라 윤리적 수준으로 전환시켜 버립니다. (이는 일부 환단고기 옹호론을 '유사역사학' 이라 매도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갖습니다.)
철학논쟁이 아닌 다음에야 학문적 논쟁, 특히 어느 정도 입증 가능한 분야에 대한 논쟁은 서로의 비판과 반론만으로 충분하다고 봅니다. 상대방의 주장에 굳이 가치함축적인 '이름' 까지 붙여 줄 필요는 없겠지요.
미주가효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이마니시 류~이병도에 의해 정립된 조선사의 우물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 사학계에 대한 비판 정도로는 인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고조선, 고구려의 영토가 대부분 중국에 속해 있는 관계로 인한, 유물, 유적,사료등에 대한 후대의 접근이 직접적이지 못한 한계 또한 크다고 봅니다. 제대로 연구하기 힘든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도 많기 때문에 앞으로 좀더 발전적인 계기가 열리길 기대해 봅니다.
현 한국사학계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선학의 견해의 틀을 가지고 사료를 접근하여 그 틀과 어긋나는 것은 수긍하지 않으려는 억설이 난무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학자 식으로 분류하는 경우의 상당수는 그자의 어떤 학문적 성향보다는 그자의 현실 행태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나치 독일 시절에 히틀러와 나치를 위해 일한 바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나치 당에 입당하여 대학 총장으로서 히틀러 총통에게 복종하고 지지할 것을 내용으로 학생들에게 연설하고 동료 교수가 반 나치 행위를 하였다고 고발하는 등의 행동을 한 바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이데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의 연구 결과에 관계없이(연구 내용에 나치에 동조하는 내용이 없더라도) 나치 학자 내지는 친 나치 학자라고 불리는 걸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병도는 하이데거보다는 훨씬 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일제시대에 <조선사편수회> 에서 부일활동을 한 바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친일사학자' 라는 오명을 벗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병도의 구체적인 '논문 내용' 내지는 '연구 결과물' 에서 식민사학적 성격이 있는지는 조금 판단하기 애매하다는 생각입니다. (근본적으로 '식민사학' 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부터 정의를 해야 하며, 어떤 결론을 식민사학적이라고 한다면 나름대로 합리적인 논증을 통해 그 결론을 냈더라도 과연 식민사학이라고 매도당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중요한 건 식민사학이냐-아니냐가 아니라 논리적이냐-논리적이지 않느냐가 아닐까요?)
미주가효님//
맨 끝에 중요한 건 식민사학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논리적이냐 않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셨지요.
논리적이란 말 속에는 진실을 포함하였다고 생각이 드는데, 만약에 진실이 포함되고 논리적이라면 식민사학 즉 한나라 지배에 있었다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주입하여 교육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식민사학은 진실을 고의로 삭제하고 부풀리고 비틀었기 때문에 논리적이라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며, 또 논리적이지도 못합니다.
요즈음 제 글이 몇 개 되는데,
반박해 보십시요.
과연 이병도 사관을 옹호는 님께서도 논리적인지 보고 싶습니다.
파사님/미주가효님의 지적은 이병도를 옹호하는게 아닙니다. 정치 내지 사회적으로 '친일파'였지만, 그의 역사학이 '식민사학'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병도의 책 내용을 보고 판단해야하지, 이병도가 친일파였으니까 당연히 그의 역사학도 식민사학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상당 부분 비약이 됩니다. '나치 부역자' 하이데거의 철학이 파시즘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의 책을 읽어봐야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참고로 하이데거의 철학 문제는 그의 위상에 걸맞게,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 역시도 '인문, 사회과학자의 학문은 그의 정치적 삶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만, 이를 이병도나 하이데거 등 개별 인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증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문제입니다. 저 역시도 이병도의 책을 읽고 판단하고자 이 문제는 보류해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표면적으로 이야기하는 식민사학과 反식민사학(=민족주의 사학 or 사회경제사학)이 어떠한 내용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합니다.
신농님이 제가 하려던 말을 해 주셨군요. 하이데거를 언급한 이유는 그가 친나치 학자이기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그의 철학내용을 비판하진 않는다는 걸 지적하기 위함입니다. 그의 철학적 연구결과들에 대한 비판은 학문적-논리적으로 하면 될 뿐이지 친나치라는 그의 전력으로 비판할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이데거는 친나치주의자였으므로 그의 주장은 나치주의자의 망상일 뿐이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정당한 비판이 아니라 선입견에 의한 오류일 뿐입니다.
이병도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병도에 대한 주장에서 그가 일제시대에 친일적 행위를 했다는 것은 이병도 개인을 비판할 사유는 되지만, 그가 식민
사학자라 불릴 만한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연구결과가 무시되어야 할 이유는 없지요. 연구결과는 논리적으로 비판하면 그뿐입니다. (그리고 '식민사학자' 라는 이유는 논리적 비판이유는 못 됩니다)
동일한 논리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언급되는 환빠에 대한 비판 중, 환단고기 옹호론자의 행적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그들 주장의 비논리성에 대한 근거인 양 말하는 것(예를 들어 임승국이 독재정권을 옹호했다는 건 임승국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근거는 못 되는 식)도 오류가 됩니다.
이처럼 어떤 부류의 주장에 대한 가치지향적인 '이름붙이기' 는 대개 선입견을 유발할 뿐이라 저는 이런 '이름붙이기' 를 그다지 좋게
진 않습니다. '내' 가 반대하는 상대에 대해 가치지향적인 이름을 붙인 뒤 그 이름을 강조하는 행위는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고조선과 단군왕검의 실재 사실을 부인 부정하고,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역사를 왜곡 날조한 것이 식민사학입니다. 이병도가 만리장성 동단을 황해도 수안으로 비정했기에 중국이 얼씨구나 하고 자기네 역사지도집에 그렇게 그려 넣은 것입니다. 만리장성 동단이 한반도 황해도가 맞습니까? 이래도 이병도의 사관을 실증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외국 지도에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이어졌다고
대거 등장하고 있는데
다 이유가 있군요....
이병도 학설의 오류일 뿐입니다. 오류를 가지고 비실증이네 하는 것 자체가 어폐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