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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의 시대(~1880)
최초의 자동차는 17세기 후반에 등장했다. 1678년 플랑드르의 성직자였던 페르디낭드 베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가 60센티미터의 작은 증기 자동차를 선보였다. 이 자동차는 중국 황제를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였다. 1769년초에는 프랑스의 공병장교였던 니콜라스 죠셉 뀌뇨(Nicolas-Joseph Cugnot)가 2기통 3륜 증기기관을 탑재한 증기 자동차를 성공적으로 시연해 보였다. 뀌뇨의 자동차는 1시간이나 달렸지만 브레이크가 없어 파리 시 교외에서 언덕길에서 정지하지 못해 벽에 부딪히는 최초의 자동차 사고를 일으켰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동차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은 리차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이 1801년 증기 마차를 만들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 후 약 10년동안 영국에서는 핸드 브레이크, 변속기, 조향 장치 등이 개발되었다. 대량 운송수단으로서의 상업적 성공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시의 자동차는 크기도 큰 데다가 속도 또한 너무 빨라 사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이에 1865년 빅토리아 여왕은 최초로 공공 도로에서의 자동차 통행법을 공표하게 된다. 이 적기조례(Red Flag Act)라 불리는 이 법률에는 적색기를 흔들고 경적을 울려야만 보행자를 앞질러 갈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1896년까지 계속된 이 법률로 자동차 개발은 위축을 받게 되고, 대신 증기기관차에 개발이 더 가속화되었다. 미국에서는 1789년 올리버 에반스(Oliver Evans)가 미국 최초의 자동차 관련 특허를 취득했다. 이 특허를 이용해 에반스는 1804년 증기기관을 탑재한 자가추진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 이 자동차는 육상뿐만이 아니라 수상에서도 이동할 수 있는 미국의 첫번째 수륙양용 자동차였다. 1860년 벨기에 출신의 에티엔 르와르(Etienne Lenoir)가 석탄가스로 움직이는 2행정 내연기관의 자동차를 만들었다. 그의 실험은 2마력으로 3시간동안 7마일을 움직이는 성과를 얻었으나 자동차 연구를 지속하지는 않았다.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개발한 칼 벤츠
1880년대 후반 몇몇 독일의 발명가들은 휘발유 내연기관으로 자동차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휘발유 내연기관 자동차는 칼 벤츠(Karl Benz)가 선보였다. 그는 1885년 만하임에서 시연을 보이고, 1886년 1월 29일 관련 특허를 취득한 후 1888년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를 시작했다. 이 3륜 양산 자동차는 무게가 250킬로그램이고 200알피엠(rpm)에서 0.85마력의 힘을 내는 1기통 4엔진을 얹고 최고 시속 16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었다. 곧이어 1889년 고트리브 다임러(Gottlieb Daimler)와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역시 휘발유 내연기관을 장착한 1기통 4륜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 들은 1886년 세계 최초의 오토바이를 발명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베테랑기(1880~1905)
1888년 독일에서 칼 벤츠에 의해 휘발유 자동차가 양산되기 시작했지만, 영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자동차를 위험물로 취급해 여러가지 규제가 가해졌다. 결국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제조 회사는 칼 벤츠에게 특허 사용권을 사와 1889년 설립된 파나르 르바소(프랑스어 Panhard et Levassor)로 프랑스의 차지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1893년 찰스 듀리에(Charles Duryea)가 그의 동생 프랭크 듀리에(Frank Duryea)와 미국 최초의 자동차 제조 회사인 듀리에 모터 웨건 회사(Duryea Motor Wagon Company)을 설립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서 자동차 생산을 주도했던 회사는 올즈모빌(Oldsmobile)이었다. 올즈모빌은 1902년부터 큰 규모의 생산라인을 가동하고 있었다. 곧이어 캐딜락, 윈톤(Winton Motor Carriage Company) 그리고 포드 자동차 회사도 수천대의 차량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국 서부 시대 동안에는 수많은 기술자들이 자동차 기술을 활발하게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경쟁적으로 증기 자동차, 전기 자동차, 그리고 휘발유 자동차를 제작하였다. 심지어는 엔진을 두개 또는 세개나 장착한 자동차를 고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대에 들어서 휘발유 내연기관을 장착한 자동차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엔진 배기량도 증가하여, 1200씨씨(cc)까지 증가했다. 현대의 자동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스/전기 하이브리드 자동차, 다중밸브 엔진, 오버헤드 캠샤프트(OHC), 4륜구동 굴림방식 등등이 모두 이 시기에 시도되었다가 폐기되었다. 이러한 기술혁신과 시도는 너무 급격히 이루어져 자동차 외형, 재질, 제어장치 등등의 자동차 구조에 관한 명확한 표준이 정립될 수 없었다. 예컨데, 수많은 베테랑 자동차들이 스티어링 휠 대신에 키(tiller)를 사용하여 방향을 바꿨으며,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구동축은 현대까지 사용하는 체인 구동 방식이 사용되었고, 승객실 위로 지붕이 있는 형태의 자동차 외형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1895년 11월 5일 조지 셀던(George B. Selden)이 2행정 자동차 엔진에 관한 미국 특허(U.S. Patent 549160)를 취득했다. 이 특허는 결론적으로 미국의 자동차 기술 발전을 방해하는 특허가 되고 말았다. 셀던은 이 특허를 큰 미국 자동차 회사에 라이센스를 주고 로얄티를 챙기게 된다. 베테랑기 동안에 일반인들은 자동차는 유용한 기계장치가 아니라 그저 신기한 기계장치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고장도 자주 일어나고 연료는 구하기 어려웠으며,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구입한 자동차는 한 해만 지나도 구형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자동차의 유용성을 입증한 큰 사건들도 있었다. 1888년 칼 벤츠의 아내였던 베르타 벤츠(Berta Benz)는 어린 두 아들의 간청으로 만하임에서 친정이 있는 포르츠하임까지의 106킬로미터를 아이들을 태우고 달리게 된다. 이 사건으로 베르타 벤츠는 후에 자동차의 어머니라 불리게 된다. 미국에서는 1903년 호레이쇼 넬슨 잭슨(Horatio Nelson Jackson)이 그의 애견 버드(Bud)와 함께 자동차로 북미대륙 횡단에 성공한다. 1894년에는 7월 세계 최초의 자동차 경주대회가 프랑스 일간지인 르 프티 주르날(프랑스어: Le Petit Journal) 주최로 파리-루앙(126km)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1906년에는 최초의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Grand Prix motor racing)가 역시 프랑스에서 개최되었다.
브래스기(1905~1918)
주로 미국에서 사용되는 자동차 역사의 한 시대인 브래스기(brass era)는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7세의 시기라 하여 에드워드기(Edwardian era, 1905년-1918년)라 한다. 브래스기의 시작이 되는 1905년은 호사가들의 취미가 아닌 일반인들의 필요에 의해 자동차가 판매되기 시작한 해이다. 브래스기의 10년은 자동차 구조에 대한 기준이 정립되는 시기였다. 이전까지 시도된 수많은 실험적 디자인과 대체 동력 시스템은 더 이상 시도되지 않았다. 당시에 정립된 표준화된 자동차 구조는 파나르 르바소의 시스템 파나르(프랑스어 Systeme Panhard)였다. 파나르 르바소는 시스템 파나르를 광범위하게 라이센스해 주었고, 비로소 표준화된 자동차가 제작되었다. 이 구조는 엔진을 자동차 앞부분에 위치시키고, 후륜구동 굴림방식, 내연기관 그리고 활동 기어를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4륜 대형 마차 형태의 탈 것은 빠르게 사라져 갔고, 소형 무개 마차 역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 시기 동안 수백개의 작은 자동차 제작 회사가 등장해 경쟁하면서 자동차 기술 개발 역시 빠르게 진행되었다. 중요한 기술로는 1930년 로버트 보쉬(Robert Bosch)가 고안한 전기 점화, 1910년과 1911년 사이에 찰스 커터링(harles Kettering)이 개발한 전기 자동 시동기가 있다. 그 외에도 독립현가식 장치, 4륜 브레이크 등도 이 시기에 개발되었다. 판상 스프링이 현가장치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고, 프레임 재질은 나무에서 L형강으로 바뀌었다. 또 변속기와 연료 흡입 조절판을 적용해 다양한 속도로 주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리 결정된 고정 속도로 주행하는 자동차들이 이후에도 계속 제작되어 주요 기술이 되지는 못했다. 브래스기에 생산된 자동차들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1908년 - 1927년 포드 모델 T - 브래스기에 가장 많이 생산된 자동차. 모델 T는 유성 톱니바퀴식 변속기와 페달로 동작하는 제어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1910년 - 1920년 부가티 타입 13 - 진보적인 기술과 디자인을 가진 자동차 경주용 모델이다. 이후로 유사 모델인 타입 15, 17, 22, 23이 제작되었다.
빈티지기(1919~1930)
빈티지기(vintage era)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9년부터 주식시장이 붕괴되었었던 1929년 말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동안 제작된 자동차들은 엔진이 자동차 앞부분에 있고, 지붕을 가지고 있었으며 표준화된 제어 시스템으로 제작되었다. 내연기관 엔진의 개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어 고급 차종에서는 다중 밸브와 오버헤드 캠 엔진이 채택되었다. 심지어 최고급 차종에는 V8, V12, V16 엔진들이 장착되기도 했다.
빈티지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자동차은 다음과 같다.
1922년 - 1939년 오스틴 7 - 오스틴 7은 전세계 수많은 자동차 제조 회사들이 이 차의 틀을 라이센스 받아 여러 모델들을 제작했을 정도로 유명한 오스틴 모터 회사의 자동차이다.
1924년 - 1929년 부가티 타입 35 - 타입 35는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경주용 자동차이다. 이 자동차는 5년 동안 여러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무려 1,000번 이상의 우승을 차지했다.
1927년 - 1931년 포드 모델 A - 포드 모델 T의 성공 후 포드 자동차 회사는 포드 모델 A를 발표함으로써 과거의 영광을 이어갈 수 있었다. 포드 모델 A는 4백만대가 생산되면서 빈티지기 동안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되었다.
1930년 캐딜락 V-16 빈티지기에 만들어진 최고급 모델로 V16 엔진이 장착되었다. 이 모델은 부가티 르와이얄(Bugatti Royale)과 함께 전설적인 최고급 모델이 되었다.
전쟁 이후기 (1949~1974)
194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새로운 자동차 디자인이 출현했다. 미국에서는 제너럴 모터스, 올즈모빌 그리고 캐딜락이 고압축 V8 엔진을 장착한 모델들을 선보였다. 영국에서는 1951년 맥퍼슨 스트럿을 장착한 포드 칸설(Ford Consul), 1948년 모리스 마이너(Morris Minor) 그리고 1949년 로버 P4(Rover P4)가 발표되었다. 이탈리아의 엔초 페라리는 250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란치아 역시 V6 엔진을 장착한 란치아 오렐리아(Lancia Aurelia)를 발표했다.
1950년대에는 전세계로 자동차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엔진의 힘과 주행 속도가 크게 증가하고, 자동차 외형도 점점 우아하게 바뀌어 갔다. 이 시기에는 소형자동차가 크게 유행했다. 알렉 이시고니스(Alec Issigonis)가 개발한 미니와 피아트 500이 유럽을 휩쓸었고, 일본에서는 경자동차(일본어: 軽自動車)가 보급되었다. 전설적인 폴크스바겐의 비틀은 히들러가 만들어낸 독일의 국민차임에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 남아 미국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캐딜락 엘도라도(Cadillac Eldorado)와 같은 최고급 자동차도 오랜 공백기간을 거쳐 다시 출현했고, 페라리 아메리카와 같은 GT카가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들어서는 자동차 시장에 변화가 생긴다.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여전히 고급 기술을 채택한 자동차를 생산하였고 일본이 한국전쟁 특수 이후 경쟁력있는 자동차 생산국으로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되면서, 디트로이트는 외국의 경쟁업체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제너럴 모터스, 크라이슬러, 그리고 포드 자동차 회사의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서둘러 소형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시장에서 거의 성공하지 못했다. 또 이 시기는 BMC와 같은 거대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해외 계열사를 통한 수입(캡티브 수입 captive imports)과 배지 엔지니어링 방식이 미국과 영국에 유행처럼 번진 시기였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유행의 결과로 페라리, 마제라티 그리고 란치아와 같이 틈새 시장을 공략하던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들은 거대 기업에 흡수되고 만다. 한편, 1960년대의 미국에서는 포니카와 머슬카의 등장으로 자동차 성능이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1964년 머슬카인 포드 머스탱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1960년대 초반에 가장 유명한 자동차 중 하나가 되었다. 1967년에는 시보레가 카마로(Camaro)를 내놓아 머스탱과 경쟁하기도 했고 계속해서 1968년는 카마로 Z28를 출시했다. 1969년에는 포드 자동차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라서면서 머스탱 보스 302(Mustang Boss 302)와 머스탱 보스 429(Mustang Boss 429)를 발표했다. 그러나 승승 장구하던 미국 자동차 업계는 1973년 석유 파동이 일어나면서 크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 규제, 일본과 유럽으로부터의 자동차 수입 증가, 뒤쳐진 기술개발 등등이 그 원인이었다.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유럽과 일본에서 수입된 BMW, 닛산, 토요타의 소형 자동차들은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큰 배기량의 자동차들보다도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하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일본은 미국 시장을 기반으로 1970년에 530만대 생산기록을 세우고, 1974년에는 268만대 수출로 세계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유럽과 함께 세계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는 3극화 체제를 형성하게 된다. 전쟁 이후기의 가장 큰 기술적 발전은 독립현가식 방식이 대중화되었고 다양한 연료분사 방식이 개발되었다는 데 있다. 또 이 시기에 자동차를 설계하는데 있어서 점점 안전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 가장 주목받은 기술은 NSU의 펠릭스 방켈(Felix Wankel)이 고안한 로터리 엔진과 가스 터빈, 그리고 터보차저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자동차는 다음과 같다.
1948년 - 1971년 모리스 마이너(Morris Minor) 전세계로 보급된 대표적인 전쟁 이후기의 자동차.
1949년 - 1968년 올즈모빌 88(Oldsmobile 88) 고압축 V8 엔진이 장착된 모델로 대량생산되어 고성능 자동차인 머슬카 시대를 열었던 자동차이다.
1958년-1967년 시보레 임팔라(Chevrolet Impala) 전쟁 이후기를 풍미했던 아름다운 자동차이다. 판매도 크게 이루어 졌던 자동차이다.
1959년 - 2006년 미니(Mini) 40년동안 소형차의 대명사가 이 모델이다. 전 시대를 거쳐 가장 유명한 자동차 중 하나가 되었다.
1961년 - 1975년 재규어 E-타입(Jaguar E-type) 재규어 자동차를 구한 모델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뛰어난 성능으로 인해 14년동안 70,000대 이상이 팔렸다. 이로 인해 1960년대 스포츠 자동차의 대표적인 디자인이 되기도 했다.
1962년 - 1977년 BMC ADO16 영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전륜구동 모델이다. 그러나 BMC의 과도한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인해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1962년 - 1964년 페라리 250 GTO(Ferrari 250 GTO) 최초의 슈퍼카이다. 이 모델은 1960년대 초반 각종 자동차 경주 대회를 휩쓸었다.
1964년 - 1970년 포드 머스탱(Ford Mustang) 머슬카이면서 포니카의 시대를 연 대표적 자동차이다.
1969년 닷선 240Z(Datsun 240Z) 일본 최초의 스포츠 자동차 중 하나로 미국에서 폭발적인 판매를 기록한 자동차이다. 저렴하면서도 잘 만들어진 이 모델로 인해 일본은 자동차 산업을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1975년 - 1976년 캐딜락 시리즈 70(Cadillac Fleetwood Seventy-Five) 이 시기에 생산된 가장 큰 자동차 중 하나이다. 크고 비효율적인 엔진을 가진 이 모델은 1970년대 미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를 보여준 대표적인 모델이 되고 말았다.
현대기(1975~)
1974년 세계 자동차 보유대수가 3억대를 돌파하면서 시작된 현대기는 1975년부터 약 25년간의 기간을 가리킨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 시기의 자동차들은 기술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과거의 자동차들과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미래의 자동차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할 때 현대기는 표준화, 플랫폼 공유, 그리고 CAD를 이용한 설계가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현대기에 있어서 몇가지 주목할 만한 진보는 전륜구동과 4륜구동 굴림방식, V6 엔진의 적용, 연료분사 방식의 광범위한 확산에 있다. 물론 이런 기술들은 이미 초기에 등장했었지만, 현대기에 들어서서야 일반적인 기술로 각광받게 되었다. 거의 모든 현대의 자동차들은 엔진을 가로로 설치하고 전륜구동 굴림방식으로 주행한다.
기술적 특징에 비해 차체 형태는 현대기에 들어서 급격하게 변화했다. 최근의 자동차 외형은 해치백, 미니밴 그리고 SUV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실용성을 강조하는 추세로 인해 점점 고성능의 크로스오버 SUV와 스포츠 웨건이 강세를 띄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픽업 트럭이 각광을 받고 SUV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기의 또 다른 특징은 연비와 엔진 출력이 크게 증가했다는데 있다. 1970년대 자동차 연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족으로 인해 컴퓨터화된 제어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엔진 출력이 급격히 향상되었다. 1980년대에는 강력한 스포츠 자동차들만이 200마력(150kW)의 엔진출력을 가졌지만, 20년 후에는 거의 모든 일반 승용차들이 그 정도 엔진출력을 가지게 되었다.
현대기의 대표적인 모델은 다음과 같다.
1974년 - 현재 폴크스바겐 골프(VW Golf) 현대의 대표적인 해치백 소형차이다. 직렬 4기통 엔진에 5명의 태울 수 있다.
1977년 - 현재 혼다 어코드(Honda Accord sedan) 1990년대 미국에서 포드 타우루스를 밀어내고 가장 유명해진 자동차이다. 이 모델을 계기로 아시아 자동차 제조 업체들이 고급 세단 시장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1983년 - 현재 크라이슬러 미니밴(Chrysler minivans) 2-박스 미니밴으로 스테이션 웨건을 시장에서 밀어내는데 일조를 한 모델이다. 이 모델을 계기로 오늘날의 크로스오버 SUV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1986년 - 현재 포드 타우루스(Ford Taurus) 1980년대 후반에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전륜구동 세단이다. 이 모델은 CAD로 설계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3년 - 현재 지프 그랜드 체로키(Jeep Grand Cherokee) 4륜구동의 전형적인 고급 SUV 모델이다. 이 모델은 크게 비싼 가격이 아님에도 V8 엔진과 고급 인테리어를 갖춰 인기를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