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건너며 흩어진 가족 이제야 한자리에 모였는데…"
위 절반 잘라내고 항암치료"좀 무서웠어요. 수술은 처음이라…. 그래도 남한은 의술이 훌륭하니까 다 나을 수 있겠죠?"
21일 오후 충남 천안시 쌍용동 바울선교교회. 아들 정민(1)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며 방긋 웃어보이는 수민(27·가명)씨의 손동작엔 힘이 없었다. 5년 후 살아있을 확률이 20~30%에 불과한 위암 4기 엄마를 보며 갓난아기 아들은 미소 지었다.
북한을 탈출해 2008년 한국에 온 수민씨는 지난달 9일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3시간 동안 위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 지난 2월 25일 위암 판정을 받기 전만 해도 수민씨는 다시 모인 가족과 함께 시작할 남한 생활을 상상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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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달 9일 오전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 병실에서 위암 수술을 앞둔 탈북자 수민(가명)씨를 (오른쪽부터) 친정어머니 미현(가명)씨와 바울선교교회 김성은 목사 부부, 교회 교인 등이 격려하고 있다.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수민씨는 현재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신현종 기자 shin69@chosun.com
수민씨는 한국에서 만난 북한 출신 성호(26·가명)씨와 결혼해 천안 바울선교교회 김성은(45) 목사의 도움으로 교회 안에 6.6㎡(2평) 넓이 골방을 만들어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작년 3월 나사렛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한 뒤에는 "통일되면 북한에 올라가 의료활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 미현(가명)씨도 작년 제3국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한 뒤 딸 부부와 함께 살고 있다. 김 목사 후원으로 만삭의 수민씨가 남편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가, 브로커에게 돈을 주고 농촌마을로 팔려간 어머니를 구출했다. 남동생도 탈북에 성공해 최근 한국에 들어왔다. 두만강을 건너면서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날을 눈앞에 둔 것이다. 남편 성호씨는 신학을 공부한 뒤 김 목사와 함께 탈북자 선교 활동에 나설 목표를 세우고 올해 2년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수민씨가 3년 전 중국에 있을 때부터 느꼈던 위 통증이 결국 4기 위암으로 발전한 것이다.
"위암인 걸 알고선 계속 죽만 먹었어요. 북한에서 풀죽을 먹으며 지낸 이후 죽은 처음이네요. 북에서 자주 굶은 탓에 기어이 위에 탈이 난 것 같아요."
수술 후 1차 항암치료를 받고 휴약(休藥) 기간을 보내고 있는 수민씨는 오는 5월 3일부터 2차 항암치료에 들어간다. 단국대병원 지예섭 교수는 "위암 4기의 경우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이 20~30%에 불과하다. 젊은 나이에 비해 임파선 전이가 심한 상태라 다른 기관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며 "3개월마다 한 번씩 CT촬영을 하며 몸상태를 관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은 목사는 "수술비 400여 만원은 수민씨 사정을 알게 된 서울 목동 지구촌교회(담임목사 조봉희)에서 지원했지만, 앞으로 들어갈 항암치료비와 가족들이 겪을 고통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